목계나루의 풍요와 명성은 사라지고 햇살과 바람따라 피어나는 봄봄봄

목계줄다리기.
 

(동양일보) 봄이 오는 길목에 서면 마음이 바쁘다. 남녘의 꽃 소식이 궁금해 두리번거리고 성질 급한 사람은 그곳으로 달려간다. 한 겨울에 붉은 피를 토하며 시를 쓰던

동백꽃이 지고 나면 봄의 전령 복수초가 얼음장을 비집고 노란 입술을 내민다. 북풍한설을 딛고 꽃대를 올린 매화는 내게 다가올 듯 말 듯, 줄 듯 말 듯 연분홍 살갗, 알큰한 그 숨결로 유혹한다.

봄볕 가득한 어느 날, 그 자리엔 산수유와 생강나무꽃과 진달래가 무진장 필 것이다. 일찍 피는 꽃은 잎보다 꽃을 먼저 피운다. 살고자하는 욕망 때문이다. 강인한 아름다움을 간직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봄꽃에 더 열광하는 이유는 기다림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잎보다 꽃이 먼저 피기 때문이다. 혹독한 겨울을 이겼기 때문이다. 사랑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지조와 절개와 충절의 강인함 때문이다. 더 가까이 가야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호숫가를 걷다가 쿵쿵 알 수 없는 소리에 화들짝 놀라 주변을 두리번거리니 차디찬 얼음장이 하나씩 기지개를 펴고 있다. 들길을 걷는데 발 닿는 곳마다 흙살의 싱그러운 기운이 발끝을 타고 가슴으로 올라오니 대지의 온갖 생명이 태기를 하고 입덧을 한다. 소쩍새 소리가 낭창낭창, 딱따구리는 따닥따닥, 그 소리가 어찌나 크고 세찬지 북풍한설에 움츠리고 있던 산이 트림을 한다. 남녘에는 연분홍 매화가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니 머잖아 이곳에도 매화 산수유 개나리 진달래 철쭉이 나란히 봄의 행진곡을 부를 것이다.

목계나루 강변.
목계나루 강변.

 


목계나루를 오가는 내내 봄볕으로 가득했다. 강물은 흐르고 햇살은 눈부셨다. 버들강아지 물오르니 악동들은 버들피리를 부르고 어른들은 밭갈이가 한창이다. 풍경은 목가적이지만 나루터는 무상함이 밀려온다. 어디가 목계나루인지 알 수 없고 거대한 선돌과 목계나루 전시관이 그날의 영광을 웅변할 뿐이다. 충북선 철도가 개통되고 육로가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하면서 조선 후기의 5대 하항(河港) 중 하나라는 오목계의 명성도 사라졌다. 무량하다.

한때 목계나루에는 산촌, 농촌, 어촌의 풍경과 상품이 한자리에 모이고 선부와 떼꾼, 객주, 짐꾼이 모여들면서 배가 닿을 때마다 ‘갯벌장’이 펼쳐졌다. 1908년부터는 정기적으로 오일장이 섰다. 오일장이 서면 바다의 것과 도시의 것, 그리고 내륙이 것이 제 다 모였다. 소금과 생선을 실은 배가 도착하고 서울에서 만들어진 생필품을 실은 배가 도착하면 장이 시작되었다. 상인들은 그 배에 이곳에서 난 농산물을 가득 싣고 목계를 떠나 서울로 갔다. 그 바람에 강변의 목계마을은 번성했다. 한창때는 800호의 집이 들어섰으며 마을 앞 나루에는 100여 척이 넘는 상선이 집결했다. 수운의 중심지답게 풍요로웠다.

이 때문에 목계나루 선주들은 거상의 반열에 오르는 등 부자가 많았다. 마을이 융성하던 그 시절에는 기생에게 춤과 노래를 가르치는 권번과 먼 길을 다니는 소 장수를 위한 마방까지 있었다. 목계가 누렸던 영화는, 그러나 길지 않았다. 충북선 열차가 개통하고 자동차가 등장했으며, 목계다리가 놓였기 때문이다. 잦은 수해와 6·25 전쟁도 목계가 쇠락하는 이유가 됐다.

그나마 별신제와 대보름축제가 그날의 영광과 주민들의 곡진한 염원을 말해주고 있다. 별신제는 뱃길 운행이 무사하기를 기원하고 마을의 안녕을 담아 지내던 제사다. 당고사, 뱃고사, 목계줄다리기 등도 있었다. 사람들은 별신제를 지낸 뒤 작은 띠배를 만들어 흐르는 물살에 떠내려 보냈다. 정월대보름이 되면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모였다. 지신밟기와 걸립, 연날리기, 망우리, 고사, 용올리기, 풍물놀이 등 신명의 마당이었다.

1968년 목계대교가 놓이면서 나루는 더 이상 제 기능을 할 수 없었다. 이른 봄이면 마포에서 거슬러온 새우젓과 소금을 가득 실은 크고 작은 범선들이 닻을 내리고, 새우젓과 소금을 팔며 이 바닷물처럼 불어나는 여름을 기다리던 시절의 얘기는 이제 말해줄 사람도 없다.

충주시는 그날의 영화가 그리웠던지 강배 체험관을 만들었다. 빛바랜 흑백사진과 기록을 통해 풍요로웠던 목계나루를 엿볼 수 있다. 매월 넷째주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목계리버마켓도 열린다. 그날의 영광과 이 동네 시인 신경림의 시 ‘목계장터’의 추억을 되살리기 위해서다. “하늘은 날더러 구름이 되라 하고, 땅은 날더러 바람이 되라하네. 청룡 흑룡 흩어져 비 개인 나루, 잡초나 일깨우는 잔바람이 되라하네….”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삶을 진실한 언어로 그려낸 시다. 입속을 비집고 나오는 시를 읊는다. 구름처럼 바람처럼 왔으니 구름이 되어 바람이 되어 돌아가야겠다.

■ 글·변광섭 문화기획자, 에세이스트

■ 사진·송봉화 한국우리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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