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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숨겨진이야기(32 ) / 충주 미륵사지
우리동네숨겨진이야기(32 ) / 충주 미륵사지
  • 동양일보
  • 승인 2019.03.21 13: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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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세와 현세의 경계에서, 하늘재와 온천에서 지친 몸과 마음 씻는 치유의 봄봄봄
만수계곡.
 

(동양일보) 오늘도 눈을 뜨면서 기도를 합니다. 주님, 달콤한 하루의 문을 열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꽃들이 피어나고 새싹이 기지개를 펴는 희망의 아침입니다. 어제 마신 술과 어제 만난 사람들과 어제 했던 많은 일들이 결코 삿되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오늘 하루도 책을 읽고 일을 하고 누군가를 만나는 매 순간이 앙가슴 뛰고 값진 결실로 이어지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남은 시간, 햇살 가득한 한낮의 짧은 시간에 삶의 여백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 여백을 통해 커피 향이 스미고 사랑이 깃들면 좋겠습니다. 저의 삶이 결코 삿되지 않도록 해 주세요….


아침에 눈을 뜨며 하는 기도와 염원이 어디 뜻대로 되겠는가. 독이 든 혀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었으니 오늘은 입술 굳게 다물고 오솔길을 걷고 산길을 걸어야겠다. 그곳에서 마음을 다스려야겠다. 다짐하고 봄 마중을 떠난 곳은 월악산 남서쪽 자락에 위치한 미륵대원지다. 미륵대원지는 대원사라는 사찰 겸 관리들의 숙소인 원(院)이 있던 자리다. 석굴사원을 배경으로 키 큰 석조여래입상과 오층석탑, 석등, 거북 모양의 석물들이 가지런히 늘어서 있다. 눈을 감은 채 매끈한 얼굴을 하고서 특이하게도 북쪽을 바라보고 서 있는 석조여래입상의 호리호리한 모습이 특히 인상적이다.

미륵대원지는 하늘재 초입에 있다. 이 땅에 수많은 고갯마루가 있는데 왜 하필 이곳을 하늘재라고 했을까. 하늘재는 ‘하늘’이라는 뜻을 담겨 있는데, 사람 사는 세상에 하늘 아닌 곳이 어디 있는가. 신라의 아달라왕이 북진을 위해 개척했다는 곳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개다. 그래도 미심쩍다. 이곳의 높이가 525m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보다 더 높은 고개가 얼마나 많은가.

하늘재 이쪽이 충북 충주의 미륵리고 고개 너머는 경북 문경의 관음리다. 미륵은 내세를, 관음은 현세를 상징한다. 그러므로 미륵리와 관음리 사이의 고개는 백두대간의 물리적인 공간을 넘는 것과 동시에 내세와 현세라는 관념적 공간을 넘나드는 길이기 때문에 하늘재라 부르지 않았을까. ‘홍건적의 난’으로 몽진하던 고려 공민왕도, 신라 망국의 한을 품은 마의태자도 하늘재를 넘었다. 공민왕은 충주에서 문경으로 갈 때 하늘재를 넘었으니 내세에서 현세로 내려갔던 셈이고, 마의태자는 금강산으로 향하면서 거꾸로 문경에서 충주로 향했으니 현세에서 내세로 올라갔던 셈이다.

미륵사지 풍경.
미륵사지 풍경.

미륵대원지의 석불입상은 여백의 미와 관용의 덕이 돋보인다. 낮은 육계와 나발, 초승달 같은 긴 눈썹, 눈을 살짝 감고 사색에 젖어있는 표정과 두터운 입술, 그리고 두 손으로 가슴을 따뜻하게 품고 있다. 관용과 베풂과 지혜와 깨달음, 그리고 아름다움까지 모두 담겨 있다. 투덜거리는 내게도 싫은 내색 하나 없이 어서 오라, 쉬어 가라, 비우고 가라 한다. 석등과 석탑, 거북 모양의 귀부에서 그곳을 찾았던 사람들의 소박했으되 간절했을 기원이 느껴진다.

미륵대원지만 보고 하산하면 안된다. 월악산 하늘재로 이어지는 만수계곡은 역사의 길, 생명의 길이다. 하늘재는 세속의 땅에서 하늘의 세계로 가는 미지의 길이다. 그래서 오르는 길은 더디고 신령스러우면 멋스럽다. 꽃들이 봄봄봄 노래를 하며 피어나고 있다. 발 닿는 곳마다 새 순이 움트고 있다. 전나무와 굴참나무와 소나무 숲이 빼곡하게 늘어져 있다. 구름은 지근거리에서 길벗이 되어준다. 말없이 따라오고 말없이 품어주고 말없이 웃어준다. 욕망의 옷을 벗고 그냥 그렇게 살라 한다. 한 줌의 흙처럼, 한 그루 나무처럼, 한 떨기 꽃처럼 그렇게 살라 한다.

미륵사지와 하늘재에서 욕망으로 얼룩진 마음을 비었다면 하산하는 길에는 수안보 온천을 들러야 한다. 몸의 때를 벗기고 누적된 피로를 말끔히 씻겨낼 수 있는 곳이다. 수안보온천은 한 때 전국 3대 온천의 명성이 자자했다. 신혼여행 코스로 인기였으며 질병 치료를 위해 전국에서 찾아온 사람들로 문전성시였다. 이곳은 우리나라 최초의 자연 용출 온천이다. 3만 년 전부터 뜨거운 물이 솟아오른 천연 온천이란다. 조선왕조실록과 동국여지승람 등에도 기록돼 있고 태조 이성계가 욕창을 치료하기 위해 이곳을 자주 들렀다고 한다.

신경통, 류마티즘, 피부병, 위장병, 부인병 등에 효과가 있고 불소가 함유돼 있어 음용하면 충치를 예방할 수 있다고 전해지면서 많은 사람이 이곳을 다녀갔다. 이 때문에 이 마을의 특산품이 꿩고기가 불티나게 팔렸다. 입 안에서 녹는 그 가벼운 맛을 잊을 수 없다. 여행객들은 가까운 미륵대원지에서 마음을 비우고, 목욕을 통해 아픈 곳을 치료했다. 몸과 마음 모두 가볍게 하산했을 것이니 이곳의 여정이 헛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날의 추억, 그날의 영광이 다시 한 번 꽃피기를 소망한다.

■ 글·변광섭 문화기획자, 에세이스트

■ 사진·송봉화 한국우리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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