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기상속에 빛나는 성벽, 시인의 젖은 어깨에 쏟아지는 햇살

고구려비 전시관.
 

(동양일보) 봄바람이 어깨를 뚝 치고 달아난다. 햇살이 어슬렁거리더니 제 갈길 찾아 나선다. 밤하늘의 달과 별도 영롱하게 빛나면서 흐른다. 구름은 또 어떤가. 머물러 있는 듯 머물러 있지 않다. 중원대륙을 가로지르는 충주호 그 끝을 알 수 없다. 매화가 피고 목련이 피고 산수유가 피었다. 개나리와 진달래와 벚꽃이 난분분 난분분 흩날린다. 가지 말라고 애원해도 꽃들은 제갈 길을 찾아 나선다.

'라 그란데 벨라짜'. 이태리어로 '숭고한 아름다움'을 뜻한다. 봄은 사람이든 자연이든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이 숭고한 아름다움의 빛을 만든다. 최고의 예술은 자연이다. 인간이 하는 모든 예술행위는 자연을 닮아가는 과정이다. 오늘 나는 숭고한 아름다움을 찾아 길을 나선다.



충주는 중원 땅이다. 중원의 패권을 놓고 고구려와 백제, 신라가 남한강을 사이에 두고 자웅을 겨루던 곳이다. 이곳이 한반도의 중심임을 알리는 비석이 있고, 중앙탑이 있으며, 산성을 비롯한 수많은 유적이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탄금대는 낭만의 숲이 아니다. 남한강을 오연히 굽어보며 삼국 역사의 중심을 통과하는 길이다. 꿈도 많지만 상처도 깊다.

용전리 입석마을에는 남한 유일의 고구려비가 있다. 오래 전부터 이곳에 돌기둥 하나가 서 있었다. 범상치 않았기에 사람들은 귀하게 생각하고 입석리라고 불렀다.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고 저마다의 꿈과 소원을 기원했던 곳이다. 조사해보니 마을을 지켜주던 수호석이 고구려비였다. 돌의 이끼를 제거하고 복원시켰더니 당대의 역사를 고증할 수 있는 기록들이 쏟아졌다. 이곳이 중원대륙임을 확인시켰고, 고구려인의 기상을 엿볼 수 있었으며, 영토 확장에 대한 강인한 의지를 알 수 있었다.

이 마을에 충주고구려비 전시관이 있다. 전시관에는 위대했던 고구려의 기개와 생활상, 역사와 설화를 만날 수 있도록 했다. 고구려 벽화고분인 안악 3호분, 중국 지린성에 있는 광개토대왕비, 충주 고구려비의 발견과정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다. 똘레랑스(관용)와 노마디즘(인식의 확장). 예나 지금이나 영토에 대한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다. 더 크고 좋은 영토를 갖고 싶은 욕망과 이를 지켜내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은 눈물겹다. 치열했기에 소중하다.

전시관 뒤를 돌아 장미산(長尾山)으로 들어갔다. 높지 않은 산이고 긴 꼬리 형상을 하고 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산길을 따라 4킬로를 걸어 중원에 백제가 남긴 장미산성(薔薇山城)을 만났다. 장미산 산허리를 길게 둘러싼 계곡을 끼고 쌓은 포곡(包谷) 석성(石城)이다. 산성의 이름은 장미(薔薇)라는 장수가 쌓았다는 전설에 의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성벽의 둘레는 932m인데 서쪽과 서남쪽 성벽은 원래의 웅장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높이가 4∼6m로, 아랫돌보다 윗돌을 조금씩 물려쌓아 안정감이 있으며, 깬돌〔割石〕을 다듬은 뒤 네모난 면을 바깥쪽으로 두고 정연하게 쌓아 올렸다. 성벽 대부분은 장미산의 비탈진 경사면을 최대한 이용하였으나 성벽 안쪽은 능선을 따라잡고, 골짜기 부분은 성벽의 윗부분이 무너져 어떤 시설이 설치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성 안에서는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여러 토기와 기와 조각들이 발견되었다. 백제·고구려·신라가 차례로 이 산성을 점령하고 경영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다만 지금 남아 있는 성벽은 축조 방식이 보은의 삼년산성이나 충주 남산성과 비슷하기 때문에 신라 진흥왕 때 영토를 넓히는 과정에서 이 산성을 고쳐 쌓았을 가능성도 있다. 산성 주변에 분포한 많은 고분 가운데 최근에 발견된 충주 누암리고분(사적 제463호)은 6세기 후반에 조성된 신라계 고분으로 추정되고 있다.

장미산성.
장미산성.

인근의 노은면 연하리는 신경림 시인의 고향이다. “징이 울린다/막이 내렸다/오동나무에 전등이 매어달린 가설무대/구경꾼이 돌아가고 난 텅 빈 운동장/우리는 분이 얼룩진 얼굴로/학교 앞 소줏집에 몰려 술을 마신다/답답하고 고달프게 사는 것이 원통하다/꽹과리를 앞장세워 장거리로 나서면/따라붙어 악을 쓰는 건 쪼무래기들뿐/처녀애들은 기름집 담벽에 붙어서서/철없이 킬킬대는구나….” 시인의 대표작 ‘농무(農舞)’가 은유의 꼬리를 물고 있다.

그는 농촌의 시리고 아픈 풍경을 노래한 시인이다. 민중의 삶을 먹물로 꾹꾹 눌러 쓴 시인이다. 상처 깃든 그 곳에 시인의 언어가 다가서면 “젖은 어깨에 햇살 눈부시리, 메마른 허리에 봄바람 싱그러우리”라는 메시지처럼 희망이 샘솟는다. 살아야 하는 이유가 된다. ‘목계장터’, ‘낮달’, ‘갈대’ 등 그의 시는 고향의 내음이 깃들어 있다. 진한 땀내가 난다. 아파도 참고 견뎌야 한다.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 아, 그의 시에도 중원의 기상이 움트고 있는가.

■ 글·변광섭 문화기획자, 에세이스트

■ 사진·송봉화 한국우리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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