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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숨겨진이야기(33)/ 종댕이길과 충주산성
우리동네숨겨진이야기(33)/ 종댕이길과 충주산성
  • 동양일보
  • 승인 2019.03.28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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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호 품고 자연따라 역사 따라 걷는 아련한 봄길
충주산성

 

생각보다 봄이 빨리 왔다. 혹독한 추위 없이 겨울이 지나갔다며 다들 아쉬워했다. 매섭게 들이닥쳐야 할 그 자리엔 미세먼지 뿐이었다. 도시는 온통 뿌연 먼지로 가득했고 사람들은 마스크를 쓰며 콜록콜록 거렸다. 살라는 것인지, 말라는 것이지, 청주인지 탁주인지, 이 도시에 희망이 있는지 다들 구시렁거렸다. 거리의 군밤장수와 군고구마장수는 겨울 한 철이 대목인데 울상이다. 오뎅과 붕어빵을 파는 포장마차 할머니도 허리만 굽어졌을 뿐 삶은 팍팍해졌다.
연일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남쪽지방에는 매화가 활짝 피었다는 소식이다. 산과 들이 해동을 하니 마늘밭 보리밭이 푸릇푸릇해질 것이다. 양지바른 곳에서는 할미꽃이 고개를 내밀고 생강나무꽃도 노란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했다. 이른 아침에 숲속을 오르는데 발 닿는 곳마다 흙살의 싱그러운 기운이 발끝을 타고 가슴으로 올라오니 대지의 온갖 생명이 태기를 하고 입덧을 한다.
봄은 이렇게 온기를 실어 나른다. 희망을 준다. 상실감에 젖어 있는 나그네에게 살아야 할 이유를 준다. 어디로 가야할지 망설일 때 꽃길을 걷고 봄볕 가득한 들녘을 바라보게 한다. 두런두런 봄이 오는 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고 봄의 무덤에서 한유롭게 놀기를 권한다. 마른 가지에 새 순이 돋아나더니 여기 저기서 꽃들이 무진장 핀다. 퐁퐁퐁…. 대지가 트림을 하고 꽃들이 기지개를 펴는 소리가 들리는가. 부드럽고 따듯한 봄날의 아지랑이가 보이는가.
봄은 기다려도 오고 기다리지 않아도 온다. 봄을 이기는 겨울은 없다. 아무리 어깃장을 놓아도 입춘이 지나면 남녘에서부터 하루에 15㎞씩 북상한다. 오직 사람의 마음만 부산스럽다. 내 마음은 아직 꽃대를 올릴 채비가 돼 있지 않았다. 그래서 봄볕을 걷다가, 꽃망울을 보다가 화들짝 놀란다. “얘들아, 나 어쩌란 말이냐. 나는 너를 위해 해준 것도 없고,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나 어쩌란 말이냐.” 이렇게 미안한 마음으로 봄을 맞이한다.

종대이길에서 바라본 충주호.
종대이길에서 바라본 충주호.

충주에 종댕이길이 있다. 계명산 줄기인 심항산 기슭을 따라 만들어진 숲길이다. 385m의 낮은 산을 끼고 있는데 마즈막재에서 출발해 심항산을 휘돌아 마즈막재로 돌아오는 1코스(7.3km)를 느릿느릿 걸으면 3시간이면 족하다. 왜 종댕이길인가. 종댕이(종당·宗堂)라는 말은 인근 상종, 하종 마을의 옛 이름에서 유래된 것으로 충청도 사투리다. 심항산을 종댕이산이라고도 부른다.
이곳은 내륙의 바다로 불리는 충주호를 바라보며 걷는 순환형 숲길이다. 충주시내에 인접해 있는데다 계명산 등산과 더불어 산책코스로 인기다. 한국관광공사가 선정한 3월에 가볼만한 곳이기도 하다. 숲길, 들길, 마을길, 그리고 호수를 품고 걷는 길이니 경치 하나는 끝내준다. 험하지도 않으니 봄 마중 코스로, 도보여행지로 안성맞춤이다. 새벽에는 물안개에 젖고, 낮에는 햇살과 바람에 취하며, 저녁에는 석양에 물드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 기적인가.
상수리나무, 신갈나무 등 참나무 숲으로 우거졌으니 봄에는 파릇한 기운이, 여름에는 우거진 산림과 시원한 바람이, 가을에는 붉게 물든 단풍이, 그리고 겨울에는 설경이 일품이다. 흙길을 고스란히 보존해 탐방객들에게는 최고의 힐링이다. 이 동네 사람들은 충주호를 ‘중해(中海)’로 부르기도 한다. 호수가 국토의 중앙에 있기 때문이다. 유럽에는 지중해가 있고 우리나라에는 동해, 서해, 남해가 있는데 이곳은 지정학적으로 국토의 중심이니 충주호가 ‘중해’라는 애칭도 허튼 것이 아니다. 그러니 충주댐과 물문화관에 잠시 들러도 좋다.
종댕이길 옆에 충주의 남산이 있다. 동서남북 어디든 오를 수 있도록 잘 다듬었다. 산수유꽃이 노란 입술을 삐쭉삐쭉 내민다. 꽃들을 벗 삼아 정상에 오르면 달천의 풍경이 시원하다. 조선 중기의 문신 이행은 달천의 물을 최고로 뽑았다. “달천이 제일이고, 우중수가 둘째이고, 삼타수가 셋째다”라고 했던 것이다.
이곳의 백미는 단연 충주산성. 남산(금봉산)에 위치해 남산성 또는 금봉산성이라고 부른다. 삼한시대에 옥황상제의 노여움을 산 마고신녀가 7일 만에 지었다는 전설이 있어 마고성이라고도 부른다. 산성의 총 길이는 1,120m, 높이는 5~7m이다. 돌로만 쌓았는데 직각을 이룬 성벽은 적들의 공격을 방비할 수 있도록 쌓았다.
충주산성은 고려의 대몽항쟁 때 그 진가를 발휘했다. 몽골의 5차 침입이 있었던 고종 40년(1253년) 때의 승장 김윤후가 이곳에서 군사와 관노를 지휘하며 위기를 극복한 일화는 유명하다. 항전이 장기화되면서 식량이 떨어지고 민심이 동요되자 관노의 노비문서를 불태웠다. 몽골과의 항전에서 공을 세운 자는 신분을 따지지 않고 포상하겠다고 하자 관노들은 용기를 얻어 사력을 다해 싸웠다. 이 때문에 몽고군은 포위를 풀고 철군했다는 것이다.
산 정상에 서니 충주호의 풍경과 월악산의 능선이 또렷하다. 충주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그날의 일을 말하는 사람은 없다. 풍문만 떠돌 뿐이고 산천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봄볕으로 가득하다. 무량하다.
매주 금요일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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