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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숨겨진이야기(35) 충주관아길
우리동네숨겨진이야기(35) 충주관아길
  • 동양일보
  • 승인 2019.04.11 22: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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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와 풍경, 옛 시간을 더듬다
관아 골목.
청녕헌.

(동양일보) 골목길 모퉁이에 있는 낡은 집이 카페가 되었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사람 하나 없는 유령의 집이라며 삿대질을 하던 곳이었다. 낡은 담장 벽돌과 갈라진 시멘트, 집안 담벼락에 걸려있는 빛바랜 사진 몇 장, 수명을 다하고도 남았을 서까래와 장독대의 옹기종기, 노년의 잡초가 무성한 그곳에 커피향이 나더니 하나 둘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고 새로운 시선으로 두리번거린다.

누구였을까, 얼마나 오랫동안 이곳에서 살았을까. 운명으로 달관하고 그 많은 시간을 순명하며 살았을 누군가의 내음이 끼쳐온다. 낡아짐으로 끝없이 새로워지니 시간은 아름다움을 빚는 거장의 손길이다. 시련으로 더욱 단련토록 하고 사랑으로 더욱 애틋하게 하며 기다림으로 더욱 성숙하게 한다.

지금 여기, 한 시대의 풍상을 온 몸에 새기며 새로운 사랑, 새로운 내일, 새로운 희망을 빚는다. 인생은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와 탯줄을 끊는 순간부터 끝없는 이별의 연속이자 죽음으로 가는 가슴 뛰는 성찬이다. 그 속에서 수많은 삶의 마디와 마디를 만드나니 낡고 빛바랜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며 오래된 것들에 경배를 한다. 오래된 것들은 모두 아름답다.

그래서 골목길을 걸을 때마다 기분이 묘해진다. 옛 추억이 떠오르고, 옛 사랑이 그리워지고, 옛 사람들의 삶이 궁금해진다. 그래서 낮고 느린 걸음으로 그 속살을 엿본다. 두리번거린다. 상처 깃든 풍경이기에, 우리 고유의 삶과 문화이기에 더욱 정겹고 애틋하다. 충주관아길을 걷는 내내 마음이 유순해졌다. 내 마음에도 삶의 향기가 깃들기 시작했다.

충청도는 충주와 청주의 약자다. 충주가 충청도에서 가장 큰 고을이었음을 웅변한다. 그날의 영광은 속절없고 그날의 상처도 아득하다. 남아있는 흔적으로 그날의 영광과 상처를 이야기하는 것은 오만이다. 오직 옛 사람들이 걸어왔던 역사의 길, 생명의 땅을 밟고 있는 것만으로도 기쁨이다. 그들의 생은 끝났지만 꿈은 여전히 유효하다. 살아남은 자의 마음에 깃들어 있다.

관아길은 읍성이 있던 충주의 정치, 경제, 행정, 문화의 중심지였다. 70년대까지만 해도 풍요의 길이었다. 충주시멘트공장이 문 닫고 충주시청이 외곽으로 이전하면서 쓸쓸해졌다. 그렇지만 충주의 역사와 멋과 맛을 즐기려면 이곳을 찾아야 한다. 읍성의 흔적이 있고, 현청과 중원루 등의 문화재가 있으며, 여러 개의 전통시장과 골목길의 풍경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충주정신이 깃든 풍미깊은 곳이다.

임진왜란 때 파괴되었던 충주읍성은 오랫동안 방치되었는데 1869년이 되어서야 충주목사 조병로에 의해 중축되었다. 1866년 병인양요를 겪은 뒤 전국의 성첩과 군기를 보수해 유사시에 대비하라는 조칙이 내려오자 충주에서도 1869년 2월부터 읍성을 개축하기 시작해 그 해 11월에 준공한 것이다. 읍성의 둘레는 3,950척(약 1,817m)이고 벽돌을 사용했는데 405개의 성가퀴(성 위에 낮게 쌓은 담)를 신설했다.

전국의 대부분의 읍성이 그렇듯이 이곳도 4개의 문이 있었다. 문의 크기는 서문이 제일 컸지만 문루(門樓)는 북문이 가장 컸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다른 지역의 읍성보다 견고하고 훌륭하게 만들었다는 이유로 개축을 주도한 조병로 목사가 승진할 정도였다.

그렇지만 이곳도 뼈아픈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 일제의 명성황후 시해와 친일내각의 단발령에 분노하여 전국적으로 일어난 을미의병의 최대 전투지였다. 1896년 유인석이 이끌었던 호좌의진(湖左義陳)은 제천에서 부대를 정비한 뒤 박달재와 산척을 지나 북창에서 남한강을 넘어 충주성을 공격했다. 농민들까지 가세해 1만 명에 가까운 부대가 충주성을 향하자 관군과 일본군은 의병의 공격에 놀라 달아났다. 호좌의진은 단발을 강요하고 일본군을 끌어들인 죄를 물어 충주부관찰사 김규식을 처단했다. 충주성 전투는 을미의병의 전국적인 확산과 호좌의진의 성장에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충주성 전투 중, 북문을 제외한 3개문과 서문 수문청을 제외한 3개의 수문청이 불타는 피해를 입었다. 그러다가 일제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 일제는 대한제국을 침략하면서 저항의지를 분쇄하려고 했는데 그 시작이 서울도성과 전국의 읍성을 철거하는 것이었다. 1907년 7월 30일 내각령 제1호가 ‘성벽처리위원회’ 발족이었다. 읍성이 지역을 상징하는 곳일 뿐 아니라 역사와 정신의 보고(寶庫)였기에 놈들은 이를 말살하려 한 것이다.

관아길 일원에는 낡고 오래된 상처 깃든 풍경으로 가득하다. 충주읍성 사적비에 음각된 글씨가 아슬아슬하다. 천주교 교우들이 동헌으로 끌려와 고초를 겪고 인근에서 순교했던 사실도 기록되어 있다. 500년이 더 된 느티나무는 그날의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새롭게 단장된 중원루와 청녕헌의 단청이 봄날의 꽃들과 함께 자웅을 겨룬다.

무학시장, 자유시장, 옹달샘시장, 젊음의거리 등에서 충주의 멋과 맛을 즐길 수 있다. 전통의 숨결이 그립다면 인근 삼화대장간과 유기공방을 방문하면 된다. 유기공방은 무형문화재 박갑술 선생이 작고한 뒤 그의 아들 상태 씨가 대를 잇고 있다. 충주 관아길은 옛 시간을 더듬으며 상처깊은 풍경을 엿보기에 좋다. 깊고 느림의 미학이 끼쳐온다.

■ 글·변광섭 문화기획자, 에세이스트

■ 사진·송봉화 한국우리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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