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속의 도량道場… 억겁億劫의 신비가 흘러나오는 곳

 
 
온달 관광지
온달 관광지

(동양일보) 얘들아, 꽃들이 무진장 피었구나. 어서 일어나 꽃구경 가자. 아빠, 잠 좀 잘께요. 아직 피지 않은 꽃들이 더 많아요…. 그토록 기다렸던 봄봄봄. 꽃들이 지천으로 피었는데 꽃들이 지면 어쩌나 걱정이 돼 늦잠 자는 딸들을 깨운다. 딸들은 꽃구경 가는 것보다 잠자는 것이 더 좋다며, 꿈속에서 꽃구경 할 것이라며 이불속에서 나오지 않는다.

아~. 그토록 기다렸던 꽃들은 난분분 난분분 흩날리는데, 지천으로 연분홍 치마가 휘날리는데, 꽃처럼 나비처럼 바람처럼 햇살처럼 별처럼 쏟아지는데, 딸들은 피지 않은 꽃들이 더 많다며, 좀 더 자야한다며, 자는 것도 꽃이라며 깊고 느리게 봄잠을 잔다.

가족과 함께 춘정을 즐기려 했던 계획은 무산됐다. 홀로의 자유로 길을 나섰다. 단양. 얼마만의 여정이던가. 역사와 자연과 문화의 조화로움을 통해 힐링여행지로 인기다. 첫 걸음은 구인사와 온달관광지다. 끝에서 시작해 하나씩 하나씩 제대로 들여다 볼 것이다.

구인사의 봄
구인사의 봄

구인사는 단양군 영춘면 백자리 해발 600m의 고지에 위치한 천태종 총본산이다. 산 속에 대법당, 광명당, 사천왕문, 청동사천왕상 등 50여 동의 건물과 불상이 들어서 있다. 벚꽃이 꽃비처럼 흩날리고 진달래가 연분홍 입술을 내밀더니 나그네 가슴에 물감을 뿌린다. 이토록 찬란한 봄날, 나는 어떤 사랑을 할 것이며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사연 많은 중생들의 발걸음이 가볍지 않다. 업을 더하며 살아왔으니 이곳에서 그 업을 부려놓고 새로운 기운과 새로운 희망을 얻고자 하는 간절함이 묻어있다. 기도를 하고 내려갈 때는 몸과 마음이 더욱 가벼워지면 좋겠다.

1945년 연화봉 아래 자리를 잡은 상월원각 스님이 손수 칡넝쿨을 얽어 암자를 지었다. 그곳에서 정진에 정진을 거듭하고 부처님의 말씀을 설파하면서 큰 깨달음을 얻었다. 지금의 구인사를 창건하게 된 배경이 되었으며 전국에 140개나 되는 절을 관장하는 총본산이 되었다.

일주문에서 시작해 산줄기를 따라 이어지는 웅장한 기와행렬이 방문객들의 시선을 압도한다. 대궐같은 건축미, 화려한 단청, 실실한 주련, 주변의 때묻지 않은 자연미 등 계곡을 타고 오를수록 기분 삼삼하다. 천태종의 유명한 스님들의 초상화를 모시고 있는 조사전은 사찰내에서도 전망이 좋은 곳에 위치해 있다. 기와 한 장, 창살문 하나에도 금빛으로 찬란하니 구인사의 위용스러움이 돋보인다.

도량을 쌓기 위한 의식을 통해 자연스레 문화가 만들어진다. 삼회향놀이와 생전예수재가 바로 그러하다. 삼회향놀이는 불교의 영산대제 뒤풀이 연희다. 그래서 노래와 춤이 어우러지고 스님과 신도가 함께 풍물놀이와 학춤 등의 흥겨움을 나눈다. 삼회향은 자신의 공덕을 남에게 돌려 그 환희를 더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설법과 회심곡, 학춤을 즐기고 피리 대금 장구 등 삼현육각을 곁들인 놀이가 펼쳐진다. 또 생전예수재는 불교에서 살아있는 사람의 사후를 위해 공덕을 쌓는 종교의식인데 1000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다.

구인사에는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주본’(국보 257호), ‘묘법연화경삼매참법(권하)’(보물 1162호), ‘아미타후불도’(충북도 유형문화재 210호) 등 50여 점의 문화재가 있다. 소중하고 애틋했기에, 간절함이 가득했기에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이다. 하산하는 내내 부처님 나라를 향한 아름다운 상상을 한다. 눈을 뜨고 하늘을 보라는 부처님의 말씀이 굳게 닫혀있던 내 마음을 두드린다. 높고 푸른 하늘처럼 큰 사람이 되고 덕이 많은 삶을 살겠노라 다짐한다.

구인사에서 하산해 온달관광지로 발길을 옮겼다. 고구려의 명장 온달장군과 평강공주의 애틋한 사랑이 깃든 곳이다. 온달산성, 온달동굴, 온달전시관 등을 만날 수 있다. 입구에 있는 드라마세트장. 이곳에서 드라마 ‘연개소문’, ‘태왕사신기’, ‘바람의 나라’, ‘천추태후’ 등의 대작을 촬영했다. 세트장에서 850m 걸어 오르면 온달산성에 이르게 된다. 972m 길이의 온달산성은 한강을 차지하기 위한 고구려와 신라의 전투가 치열했던 전적지다. 바보 온달과 평강공주의 전설이 시작된 곳이다.

고구려 제25대 평원왕의 딸 평강공주는 울보였다. “너 자꾸 울면 바보 온달에게 시집 보낸다.” 평원왕은 공주가 울 때마다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공주가 커서 바보 온달을 찾아 나선다. 아버지의 명을 거역하고 부부가 된 것이다. 공주는 눈 먼 시어머니에게 효도를 다하고, 온달에게 학문과 무예를 가르쳐 훌륭한 장군이 되게 하였다는 게 이야기의 핵심이다.

온달산성이 있는 성산 기슭 지하에서 약 4억5000만 년 전부터 생성되어 온 것으로 추정되는 온달동굴이 있다. 주굴과 지굴의 길이가 800m인 석회암 동굴이다. 동굴 안으로 들어서면 원시의 바람이 간담을 싸늘케 한다. 신비스런 종유석들이 억겁의 세월을 말해준다. 오늘도 길 위의 길을 걷는다.

■ 글·변광섭 문화기획자, 에세이스트

■ 사진·송봉화 한국우리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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