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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숨겨진 이야기(38) 단양팔경
우리동네 숨겨진 이야기(38) 단양팔경
  • 동양일보
  • 승인 2019.05.02 18: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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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신비, 선비의 정신이 깃든 팔경여행
하선암.
사인암.

(동양일보) 오늘 새벽엔 마른 대지를 딛고 일어서는 파릇파릇한 풀잎들을 차마 밟지 못했다. 신비의 옥문을 열 듯 말 듯 부풀어 오른 하얀 목련을 우러러볼 수 없었다. 난분분 꽃비 흩날리는 매화나무 아래에 서서 춘정을 즐기는 것도 사치라는 것을 알았다.

개척하는 마음으로 살아라. 더 낮은 자세로 서 있어라. 가장 아름다울 때, 가장 안정적일 때, 그 자리에서 내려와라. 꽃들은 가장 찬란한 순간에 스스로 목을 꺾는다. 가장 낮은 꽃에서 꽃을 피운다. 머뭇거리지 말라. 해야할 일, 가야할 길이 있다면 지금 당장 하라. 늘 깨어있어라. 자신만의 매력포인트를 만들어라. 향기나는 삶을 살아라. 누군가에게 희망이 되어라. 그 희망이 빛이 되고 노래가 되며 불멸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마음을 다듬으며 길을 나섰다. 단양팔경의 제1경인 도담삼봉에서 춘정을 즐겼으니 나머지 비경도 따라잡아야 한다. 도담삼봉에서 상류 쪽으로 걸어가면 전망대로 이어지는 계단이 있는데 300m쯤 오르면 무지개를 닮은 석문이 있다. 단양팔경 중 제2경이다. 울창한 숲 속의 돌문이 원시의 신비를 품고 있다. 풍경 속의 풍경이던가. 석문 속에 남한강의 맑고 푸른 물결이 끼쳐오고, 드높은 하늘빛이 끼쳐온다. 마고할미의 전설이 있는 암석과 자라모양의 자라바위 등 주변의 풍광이 내게로 온다.

제3경은 구담봉이다. 장회나루에서 유람선을 타고 청풍나루까지 가는 길에 커다란 거북이 한 마리가 절벽을 기어오르는 듯한 포즈를 하고 있다. 물속의 바위에 거북무늬가 있다고 하여 구담(龜潭)이라고 한다. 1548년 이황이 단양군수로 부임해 이곳을 둘러본 뒤 지은 이름이다. 조선의 선비 황준량은 “나루는 돈을 내어 사고 싶었고, 산은 옥을 다듬어 이룬 듯하네. 황량한 길에 인적이 끊어졌는데, 가을이 숲속으로 들어와 밝네”라며 구담의 절경을 노래했다.

제4경은 옥순봉이다. 유람선을 타고 구담봉을 지나면 빨간 교각의 옥순대교와 희고 푸른빛을 뛴 바위가 힘차게 솟아있는 옥순봉이 기다린다. 그 모습이 대나무 싹과 같다고 해서 옥순봉이라고 불리는데, 조선 명종 때 관기였던 두향이 그 절경에 반해 단양군수인 퇴계 이황에게 옥순봉을 단양에 속하게 해 달라는 청을 올렸다. 그러나 청풍부사의 거절로 일이 성사되지 않자 이황은 석벽에 단구동문(丹丘洞門)이라는 글을 새겨 단양의 관문으로 정했다는 사연이 전해진다.

제5경은 사인암이다. 이토록 아름다워도 되는가. 아름다움의 끝은 어디일까. 심오하고 경외감이 밀려온다. 푸르고 영롱한 옥빛 여울이 수백 척의 기암절벽을 안고 휘돈다. 조선 성종 때 단양군수 임재광은 단양 출신의 대학자 역동 우탁 서생이 사인 벼슬로 재직할 당시 이곳에 머물렀다 하여 사인암이라는 이름을 지었다. 단원 김홍도는 사인암의 비경을 그리기 위해 붓을 잡았다가 1년여를 고민했을 정도로 그 풍광을 말로 다 할 수 없고, 글로 다 담을 수 없으며, 붓으로도 칠할 수 없다.

제6경은 하선암이다. 삼선구곡이라고 불리는 선암계곡 중에서 으뜸이다. 3단으로 이루어진 흰 바위가 넓게 마당을 내어주고 그 위에 둥글고 큰 바위가 가부좌를 하고 있다. 그 형상이 미륵을 닮았다 해서 부처바위라고도 불린다. 봄에는 연분홍 진달래와 철쭉이, 여름에는 신선이 노니는 물안개가, 가을에는 붉게 빛나는 단풍이, 겨울에는 눈 쌓인 소나무 풍경이 일품이다. 마음수련에 이만한 곳이 있을까 싶다.

제7경은 중선암이다. 바람이 다듬고 계곡이 씻어낸 하얀 바위들이 옥빛 물살과 짝짓기를 하는 경승지다. 태고에 빛이 있었다고 했던가. 그 빛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아름답고 소중했기에, 온 마음을 후비는 감흥이 남달랐기에 옛 선인들은 바위에 자신들의 이름 석 자를 새겼다. 옛 사람들의 풍류와 시심이 더 깊었을까.

단양팔경은 상선암에서 마침표를 찍는다. 중선암에서 59번 국도를 따라 아기자기한 계곡의 눈요기를 하다보면 길 옆구리를 파고드는 상선암 풍경이 있다. 층층이 몸을 맞대고 있는 바위 아래로 계곡물이 힘차게 휘돌아간다. 맑고 향기로운 소리의 세계, 풍경의 세계다. 인근에 방곡도예촌이 있다. 도공의 마음으로 빚고 손끝으로 담으며 자연으로 풀어낸 순백의 달항아리, 자연의 세계를 오롯이 담은 분청사기를 보며 아름다운 쓰임을 생각한다. 자연은 언제나 정직하다. 세월의 풍상이 깃들이 있기에 더욱 아름답다. 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이 모여 진한 향기를 풍긴다.

■ 글·변광섭 문화기획자, 에세이스트

■ 사진·송봉화 한국우리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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