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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에 서서 / 조철호가 만난 사람 ㅡ 최종열 탐험가
이 길에 서서 / 조철호가 만난 사람 ㅡ 최종열 탐험가
  • 동양일보
  • 승인 2019.05.07 2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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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60도와 영하 60도를 견뎌내며 세계의 탐험가로 우뚝 선 충청인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잠재력 일깨울 도전정신과 모험심 키울 탐험박물관 있어야

한국인 핏속엔 탐험의 DNA 잠재해…“내 생애 길에서 출발하고 길에서 끝날 것”



“1991년5월 7일 새벽 1시. 제천의한 사나이는 마침내 살인적인 추위와 시속 20~30㎞ 유빙流氷을이기고세계 3극점의 하나인 북위 89° 59′ 58″ 북극점에 태극기를 꽂았다. 이는 나라로는 미·소·영·불 등에 이어11번째, 팀별로는 18번째의 쾌거였다. 충북 사람들은 아직도 그때의 감동을 선명히 기억하고 있다.” -1992년5월2일자 동양일보. ‘충북의 젊은주역 50인’<26>

탐험가 최종열(당시 35세)씨가1991년 3월 7일지구상에서가장 북쪽에 있다는 육지의 끝 캐나다 워드헌터섬을 출발해 도보와 스키만으로 61일만에 얼음 위를 완주해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인간의 한계를 극복한 내용을 다룬동양일보기사의첫 머리다.

최종열崔鍾烈씨의 직업은 탐험가다. 그리고 ‘최종열 대장’이라불린다.

20대에‘대한민국탐험가’로 명가名價를 얻기 시작한 그는‘세계적인탐험가’가 되어 이제 회갑을 맞았다.

1400㎞에 이르는 국토종주 구보(1985)에 이어 ‘세계의 지붕’ 히말라야 에베레스트(8848m)등정(1987), 한국인 최초 북극점 도달(1991)과 시베리아와 사하라 도보 횡단(8600㎞)에 연이어 성공한 그는 2000년에 들어서자 실크로드 자전거 대횡단(1만6000㎞)과 아프리카 적도대 탐험에 나서 139일간에 걸쳐2만㎞를탐험하는데성공한다.

2010년엔서해-남해-동해-독도를 꿰는대한민국해양대탐험에성공하여명실공히한국 제일의 탐험가로 자리매김을 했다. 아니, 그는이미 탐험마다 ‘최초’라는 수식어가 붙는세계적인탐험가의반열에오른 충청도 사람이다.



젊음과 온 생애 ‘낯선 길’ 내는데 바쳐

5월 3일, 그를 만나기 위해 충북 제천시 청풍문화재단지 한켠에 자리 잡고 있는 녹색치유탐험첼린지학교(이하 탐험학교)를 찾았다. 나흘 뒤인 5월7일이면 그가 사투를 벌이며 북극점에 도달한 지 꼭 28년이 되는 날이어서 이를 기해 동양일보 ‘이 길에 서서’에 그를 꼭 다루고 싶어서였다.

그가 명예직이지만 교장직을 맡고있는 탐험학교의 주변 풍광은 수려했다. 청풍호반의 맑은 물이 손에 잡힐 듯하고 연금공단의 레이크 호텔, 유람선이 올라오면 치솟는 분수가 한 눈에 보였다.

젊음과 온 생애를 오로지 낯선 길을 내는데 바친 최종열(61·제천시 신죽하로 83-24 롯데캐슬 103동 901호)씨는 무용수처럼 예쁜(?)모습으로 나타났다. 키 163㎝에 체중 60㎏의 그는 극지 탐험가의 일반적인 캐릭터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를 지니고 있어 호반 풍경과 잘 어울렸다.


산 뒤로 넘어간 해가 자는 곳은 어딜까?

그는 부산에서 출생했고, 초등학교는 강원도 영월에서, 중학교는 충북 단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다. 그리고 제천에서 청소년기를 보낸다. 가난을 벗어나려 일자리를 찾아다닌 아버지를 따라다녀야 했는데 가는 곳마다 사방이 산으로 가로막힌 곳이었다.

이 같은 산간마을을 전전한 것이 어쩌면 그가 탐험가로 들어서고 성장하고 성공하는데 숙명적으로 따라 붙었던 에너지원이 아니었을까.

산으로 막힌 곳에서 그는 아침마다 떠오르는 해가 저녁이면 산 뒤로 넘어가는데 그 산 뒤로 간 해가 어디서 잠을 자는지 궁금했다. 어떤 집에서 잠을 자고, 잠을 잘 때 해의 모습은 어떤 것인지도 알고 싶어 해가 넘어가는 산마루를 올라가 보았다. 해는 또 다른 산을 넘어 갔고 그 곳을 따라가다 지쳤다. 어린 소년의 호기심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도 매일 보는 해가 넘어가는 산 저쪽이 보고 싶었다. 5학년 때 단양으로 이사 했다. 그리고 중학교를 다닐 때도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에서 ‘산 너머로 간 해의 잠자는 모습’에 대한 궁금증은 풀리지 않았다. 집안사정은 여전히 가난하여 제천으로 이사했고 한약방 등에서 일하며 고등학교 검정시험 준비를 해야 했다.

제천은 소백산맥의 아름다운 산봉들이 에워싸고 있는 곳. 틈만 나면 산에 오르는 일이 큰 기쁨이었다.

월악산, 백운산, 금수산 등 험난하고 예쁜 산을 오를 땐 남들처럼 학교에 가지 못한 서러움이나 가난한 집안 걱정보다는 산 너머에 있을 미지의 세계에 대한 강렬한 동경과 ‘가보고야 말리라’는 집념에 불탔다. 훗날 그는 금수산이나 사인암에 암벽로를 개척, 후배 산악인들의 암벽훈련장으로 쓰이게 했다.


초인적 체력과 정신력으로 북극점 도달

그가 산악인으로 몸을 만들고 허영호 등과 국토 종주 구보로 1400㎞를 주파한 것은 1985년이었고, 2년 뒤 동계 에베레스트(8848m) 등반에 성공한다.

그는 달리는 자동차처럼 탐험가의 길에 탄력이 붙었다. 한국인 최초로 북극점(북위 90°)에 도전한다. 어떤 탐험인들 쉬운 것이 있으랴만 걸어서 북극점에 이르는 일은 영하 60도를 견뎌야하는 초인적인 체력과 정신력의 결합이 아니면 도저히 불가능한 도전이었다. 말이 60도지 온도계는 영상 60도와 영하 60도 까지만 계측할 수 있어 그 이상일 수도 그 이하일 수도 있는 곳을 그는 견뎌냈다.

얼음 위를 스키를 타거나 썰매를 끌며 꼬박 두 달이 넘도록 걸어서 도달한 북극, 얼음뿐인 그 곳에 그는 고향 제천서 가져온 흙을 뿌렸다. 두 줌의 흙을 한 평쯤에 흩뿌렸다. 그리고 중얼 거렸다. “지구 위 꼭지점이 이제 한국 땅이 됐다”고. 그리고 그는 영상 60도가 넘는 열사의 사막을 자전거로 달리는 모험에서도 살아남아 영상과 영하 120도의 편차를 극복해 냈다.

‘무저항,무복종’으로 인도인들을 일깨운 마하트마 간디(1869~1948)는 ‘사랑은 용기 있는 자의 특권’이라했지만, 탐험은 도전하는 자만이 갖는 전유물이다. 극한의 한계를 넘나들수록 성취의 강도가 높은 것이어서 한 번 도전해본 사람은 새로운 도전을 꿈꾸기 마련이다. 그래야 비로소 탐험가가 되는 것이다.


삶의 새로운 영역 맡는 것도 모두 탐험

-직업이 탐험가지요?

“예. 어려서부터 열망해왔고, 20대에 시작한 탐험의 끈을 평생 놓아본 적이 없으니 직업이 탐험가일 수밖에 없지요. 어느새 60대에 들어섰네요.”

-‘최종열탐험학교’라면 될 것을 ‘녹색치유탐험첼린지학교’라고 복잡하게 명명한 까닭이 있는지요.

“2016년에 국비지원을 받을 때 여러 의견을 종합하여 서류를 꾸몄는데 그때 붙여진 명칭입니다. 많은 뜻을 담고자 애쓴 결과물이라고 생각해 주십시오. 그런데 명칭보다도 시설 규모가 작아서 어떻게 손을 쓸 수가 없는 게 안타깝지요. 그것도 2017년부터 올해까지 3년간 시한부로 지원되도록 되어 있어요. 이 건물은 제천시 것인데 임대형식으로 쓰고 있고요.”

-요즘엔 쉬고 있으니 가족들도 안도하고 있겠네요. 탐험이란 언제나 목숨을 담보로 하는 것이어서…

“예. 휴식이 좀 길어졌어요. 그런데 아내(이남옥·59년생)가 6년 전에 세상을 떠났어요. 두 딸 중 큰 애(윤기·33)는 현재 미국 디트로이트에 살고 있고, 작은 애(윤빈·30)는 제 일을 도와주고 있어요. 탐험이라는 것이 꼭 험지險地를 가는 것만이 아니고 삶의 새로운 영역을 맡는 것도 탐험의 범주에 속한다고 보면, 나는 지금도 ‘탐험 중’이라고 말 할 수 있어요. 요즘 들어 더욱 깊이 생각하는 것은 우리나라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이 어떻게 하면 ‘모범생’보다는 ‘모험생’으로 의식을 틔우고 자기를 성찰하며 미래에 대한 도전정신을 갖게 할 수 있을까라는 명제를 갖고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탐험가로서 그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남다른 안내역을 맡아야하지 않겠는가라는 사회적 책무를 무겁게 느끼지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가령, 선진국 같다면 최종열의 탐험이력 정도를 가진 사람을 이렇게 한가롭게 살 수 있도록 가만히 놔두고 있겠어요? 어떤 시설이나 학교나 단체에서 여러 형태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도전과 희망을 불어 넣는 역할로 바쁘게 만들었을 것이라 봅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잠재돼 있는 도전정신이나 개척의지 같은 인간의 자산을 유용하게 활용토록 촉발하거나 유도하는데 아주 적절한 멘토가 나 같은 사람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나를 이렇게 심심하게 놔놓고 있으니 안타깝지요.”

도전과 모험이 없으면 ‘안전’도 없어

-탐험학교에서 그런 일을 하라고 정부가 지원하는 것 아닙니까?

“일반적으로 그렇게들 생각하지요. 그런데 나는 정부나 지자체에서 한 푼도 지원 받는 것이 없어요. 그래서 자유롭기는 하지만 흘러가는 시간이 아깝고 개인의 안위만 꾀하는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안타까워요. 그네들 부모님들의 ‘당장 먹는 곶감’같은 안일한 사고방식도 개선돼야한다고 봅니다. 도전과 모험이 없는데 어떻게 안전이 있으며, 삶의 가치가 향상되거나 다양해지거나 사회적 유대가 될 수 있는지요. 호기심이 없거나 자신의 한계를 시험해 보지 않고 어떻게 지도자가 되고 자신의 미래를 설계하고 경영할 수 있을까요. 무한 체력과 무한 인내를 자양으로 하는 탐험이야말로 개인의 담력과 능력을 최대치로 끌어 늘릴 수 있는 가장 좋은 공부가 아닐까 싶습니다.”

-이 탐험학교를 돌아보니 마당은 마당대로 좁고 실내도 30명 정도만 앉을 수 있는 교실, 몇 평되지 않는 탐험 장비 전시실 등 아쉬운 점이 많은데 어떤 복안은 없는지요.

“제 개인적으로는 어쩔 수가 없는 상태고요.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각 지역의 페교를 리모델링하거나 지자체에서 지원이 된다면 세계적인 탐험학교를 만들 수 있어요. 대한민국 해양대탐험에 쓰였던, 특수 제작된 배 3척도 갖다 놓을 곳이 없어 다른 곳에 있어요. 영상 60도를 달린 자전거며 영하 60도에 끌고 간 썰매 등 모든 장비들 자체가 탐험의 자산들인데 장소가 협소해 제대로 전시해 놓지 못하고 있지요.”

-세계적인 메스콤에 실린 자료들도 있었으면 좋겠더군요.

“말씀이 나왔으니 자랑 좀 하겠습니다. 미국 스포츠 잡지 중 최고로 치는 것이 ‘스포츠 일러스트’입니다. 마이클 조던이나 한국인으로는 박찬호나 박지성 박세리 정도가 실리는 곳에 저도 전 페이지에 소개가 됐습니다. 아웃 사이더나 뉴욕크 타임즈 그리고 CNN등에서도 내 탐험기사를 크게 취급해 미국에서는 가는 곳 마다 알아보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각 방송국들이 탐험 내내 함께 붙어 취재하여 보도하는 등 한국의 자존감을 세워준 기록들이 많이 있는데 어떻게 전시할 공간이 없어요. 이 같은 자료들은 내 개인의 자랑거리가 아니라 충청도거나 대한민국의 자존감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보지요. 특히나 바다 없는 내륙도 출신이 무동력으로 해양대탐험을 성공한 모험사례 등은 어린이들이나 청소년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단초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 쓰인 장비들만도 교실 하나를 채울 정도인데 사장시키고 있어 안타깝기만 합니다.”


“제 삶은 언제나 길 위에서 출발하고 끝날 것”

-앞으로 어떤 탐험을 계획하는지요.

“앞서 말한 대로 내가 체험한 모든 것들이 자라나는 세대들에게 도전과 모험을 촉발하는 계기가 되는 일에 뛰어들고 싶습니다. 그동안의 탐험에 쓰인 경비만도 20~30억원 이상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숱한 탐험에서 얻은 무형의 자산은 그 몇 배가 될 것입니다. 탐험에 쓰인 많은 도구들이 제대로 장소를 잡아 보관되고 전시되면 탐험에 대한 인식들이 달라지리라 믿습니다. 이제 이쯤에서 꼭 험지를 고생하며 다니는 것만이 탐험이 아니라 일찍이 해양민족으로서의 백제인과 대륙을 호령하던 고구려인의 기상이 우리의 DNA임을 깨우치는데 한 몫을 했으면 합니다. 그래서 대한민국 어디에라도 세계적인 탐험박물관을 만들어 ‘살아있는 박물관’으로 운영하는 새로운 탐험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저는 언제나 길에서 출발하고 길에서 끝날 것입니다. 그것이 탐험가 최종열의 생애가 될 것입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비장감어린 소신을 일관되게 피력했다. 몸이 익는 열기 속에서, 온 몸이 오그라드는 유빙 속에서 오로지 자신의 체력과 정신력만으로 죽음과 싸워 이기길 반복하며 인간의 위대함을 입증시킨 탐험대장 최종열. 그와 2시간 30분간의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니 청풍문화재단지 주차장을 메웠던 관광버스들이 떠난 자리에 낙조가 드리워지고 있었다.

동양일보 회장 . 시인



■ 최종열崔鍾烈 탐험가는…

* 1958년 7월 7일생

* 1978년 금수산 암벽개척

* 1980년 사인암 암벽개척

* 1985 대한민국 최초 국토종주 구보(1500km)

* 1987 대한민국 최초 동계 에베레스트 등반 성공 (8848m)

* 1989 대한민국 최초 자북점 도달(나침반의 북극점)

* 1990 대한민국 최초 북극점 탐험(북위 88도)

* 1991 대한민국 최초 북극점 도달(북위 90도)

* 1996 세계 최초 사하라 도보횡단 208일(8600Km)

* 2000 세계 최초 실크로드 자전거 대횡단 143일 (1만7000km)

* 2002 대한민국 최초 아프리카 적도 대탐험 139일 (2만km)

* 2010 대한민국최초 해양대탐험 서해, 남해,

동해 무동력 보트 대탐험 74일(2500km, SBS 8부작)

* 2014 EBS 스페셜프로젝트 극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3부 북극,탐험의종착-혹한생존북위64도에서)

* 2016 남미 페루안데스 사막 밀림 탐험

* 체육훈장 백마장·맹호장. 충청북도 도민대상.

* 제천시 시민대상. 사람과산 탐험대상.

* 저서 <또 다른 꿈을 향하여 나는 달린다>

* 연락처 : 010-4590-8881, Email : 8848cho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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