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도 쉬어가는 월류봉, 풍경과 시심에 젖다

 
 
한천정사.
한천정사.

(동양일보) 아침에 기침을 하면 창문부터 연다. 하늘이 맑은지, 바람이 부는지, 비가 오는지, 오늘 하루 미세먼지 걱정은 안 해도 되는지, 그리고 어디로 가야할지 창문을 열며 하루를 연다. 내 사랑과 꿈과 열정도 창에서 온다. 누군가를 그리워하며 기다릴 때, 옛 생각에 젖을 때, 무엇을 할 것인지 망설일 때, 창은 수많은 추억과 기억을 떠올려주고 가야할 길, 새로운 미래를 밝혀준다.

아침을 여는 것도, 길을 밝히는 것도, 풍경이 깃드는 것도, 책을 읽고 달달한 커피를 마시는 것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도, 이 모든 극적인 순간을 기념하는 것도, 창문을 통해 펼쳐진다. 그러니 굳게 닫혀있는 창문을 열고 세상을 다양하게 볼 수 있는 문을 만들어야 한다. 낡고 비루한 것들로 가득한 문을 닦으며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 날마다 새로움으로 앙가슴 뛰는 창문이 필요하다. 호기심과 신비로 가득한 들창을 바라보며 아름다운 내 삶을 일구면 좋겠다. 세상의 풍경이 깃든 창문이면 좋겠다.

옛 선비들은 책을 읽고 시를 쓰며 마음을 다듬기 위해 저마다의 창문을 만들었다. 그 창문을 통해 자연을 보고 역사를 보며 자신을 보고자 했다. 창문에 비추는 모든 사물에 경배를 하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그 꿈을 펼치고자 고심참담(故心慘憺)했다. 때로는 운둔의 상처를 보듬기도 했다. 상처깃든 풍경이 밀려올 때는 얼마나 가슴 시리고 아팠을까.

우암 송시열 선생이 그랬다. 영동군 황간면 원촌리. 달님도 쉬어간다는 층암절벽의 월류봉(月留峰)을 바라보는 곳에 한천정사를 짓고 자연 속에서 책을 읽으며 학문에 정진했다. 무엇 때문에 여기까지 왔을까. 이곳의 창문에 깃든 풍경은 어떠했을까. 두말할 것도 없이 이곳의 풍광이 좋아 터를 잡은 것이다.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후학을 양성하는데 이만한 곳이 있을까. 우암은 병자호란 때 인조를 따라 남한산성에 들어갔으나 왕이 항복하고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이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가자 낙향해 초야에 묻혀 살았다.

1649년 효종이 왕위에 오를 때 등용되면서 진선에 재임명되었다. 그는 효종의 사부였다. 그러나 청서파(淸西派)였던 그는 인조반정에 공을 세운 공서(功西派) 김자점이 영의정에 임명되자 사직했다. 김자점이 파직되면서 진선에 재임명되고 충주목사, 사헌부집의, 동부승지 등으로 기개를 펼쳤으나 북벌계획을 추진하면서 조정의 갈등이 악화되자 이곳으로 내려왔다. 그의 나이 43세였다. 예나 지금이나 삶은 치열하다. 이념과 당파와 권력과 이해관계 등으로 온 나라가 혼돈이다. 새로운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창문이 필요하다.

월류봉의 비경.
월류봉의 비경.

한천정사 바로 앞에 있는 월류봉을 시작으로 주변의 주요 비경을 한천팔경이라고 부른다. 냉천팔경(冷泉八景)이라 불렀는데 시간이 흘러 한천정사의 한(寒)을 따서 한천팔경(寒泉八景)으로 바꿔 부르고 있다. 거대한 벽으로 마주하며 우뚝 솟은 월류봉은 오른쪽으로 낙타 등처럼 다섯 봉우리가 연달아 있다. 월류봉 끝자락에 월류정(月留亭)이 있다. 굽이치는 초강천은 절벽을 휘돌아나간다. “해 저문 빈 강에 저녁 안개 자욱하고, 찬 달이 고요히 떠올라 더욱 어여뻐라. 동쪽 봉우리는 산천 길 옥처럼 서서, 맑은 달빛 잡아놓아 밤마다 밝네.” 조선의 문인 홍여하(1621~1678)는 월류봉의 비경을 이렇게 노래했다.

산양벽(山羊壁)은 월류봉의 첫 번째, 두 번째 봉이다. 병풍처럼 깎아지른 곳이기에 사람이 근접하기 쉽지 않다. 오직 자연의 내밀함이 있을 뿐이다. 바위틈 사이로 소나무가 뿌리를 내렸으니 그 질김과 푸른 정기가 끼쳐온다. 새들과 수목과 바람과 햇살, 그리고 달빛만이 지나온 날의 상처를 보듬고 있다. 청학굴(靑鶴窟)은 월류봉 중턱에 있는 자연동굴이다. 푸른 학이 깃든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용연대(龍淵臺)는 월류봉 앞에 있는 절벽으로 산줄기가 평지에 우뚝 솟아나와 용연에 이르러 형성된 돌머리 모양의 대(臺)이다.

냉천정(冷泉亭)은 말 그대로 찬 물이 가득한 곳이다. 법존암 앞 모래밭에서 솟은 샘줄기가 여덟 팔(八)자로 쏟아 붓듯이 흘러나와 이곳에 이르는데 한 여름에도 차고 물살이 거세다. 법존암(法尊庵)은 오래 전에 작은 암자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곳이고 사군봉(使君峯)은 이곳에서 몸과 마음을 연마하면 나라의 사신이 된다는 곳이다. 울창한 숲으로 사계절 아름답지만 겨울의 설경이 여느 곳보다 빼어나다.

한천팔경의 마지막 8경이 화헌악(花軒嶽)이다. 한천정 뒤쪽의 산봉우리를 말하는데 봄 꽃, 여름 나무, 가을 단풍, 겨울 설경이 일품이다. 특히 봄에는 기암절벽 위로 진달래와 철쭉이 만산홍을 이루기 때문에 ‘화헌’이라고 이름 지어졌다. 8개의 비경이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금강 상류의 한 줄기인 초강천의 백사장을 사이에 두고 있다. 병풍처럼 한 눈에 들어온다. 그렇지만 마음을 다듬어야 하고 달을 품어야 하며 진한 땀방울을 흘려야 풍경에 깃들 수 있다.

달은 언제나 그 곳에서 제가끔의 풍경을 담고 있다. 오직 인간의 마음만 정처 없다. 그리움이 젖어도 달은 젖지 않는다. 내 마음이 식어도 달은 언제나 그 곳에서 영롱한 빛으로 어둠을 밝힌다. 한천팔경이 아름다운 것은 달이 풍경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생명을 잉태하기 위해 달은 얼마나 많은 시간은 뒤척였을까. 오늘은 그 곳에서 삶의 향기를 담아야겠다.

■ 글·변광섭 문화기획자, 에세이스트

■ 사진·송봉화 한국우리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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