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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숨겨진이야기(45) 영동 반야사와 영국사
우리동네숨겨진이야기(45) 영동 반야사와 영국사
  • 동양일보
  • 승인 2019.06.20 1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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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소리 ‘은유의 꼬리’를 무는… 그 곳에 가면 나를 만날 수 있을까
영국사은행나무.
반야사를 품고 흐르는 벽계수.

(동양일보) 이른 아침, 산으로 가는 길에 다람쥐가 꼬리를 쳐드니 숲길이 환해졌다. 싸리꽃이 지더니 밤꽃이 몸을 풀기 시작하고 매밥톱꽃은 숲 그늘에 앉아 어서 오라며 입술을 내민다. 소나무숲길, 참나무숲길, 아카시아 가득한 길을 지나 산초나무 새 순에 초록물이 오르더니 대지의 노래가 되고 풍경이 된다.

저 많은 숲속의 악동들은 햇살 쏟아지는 유월의 아침을 열기위해 얼마나 많은 날을 뒤척였을까. 모든 것이 소생하고 재생되며 탄생하고 환생하는데 난 언제나 머뭇거린다. 삶이 고되다며 뒷걸음질 친다. 그래서 숲으로 달려가 소생하는 모든 것들에게 눈을 맞추고 인사를 하지만 마음의 빗장이 풀리지 않았는지 심산하다. 나를 돌아보는 시간, 그 특별한 여행이 필요한 이유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에 사찰만한 곳이 있을까. 산수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산사의 모든 것이 경관이다. 경전이고 성지다. 산사에 감도는 적막은 분화된 모든 것들을 하나로 묶어 근원으로 돌리는 신비가 있다. 사찰 건축과 탑과 연꽃과 주련이 실실하다. 유월의 숲이 하나씩 비밀의 문을 열기 시작하면 풍경소리가 은유의 꼬리를 물고 나그네 가슴에 파고든다. 스님의 묵언수행은 청량한 목탁소리로 그 깊이를 알 수 있다.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좋은 일이 있겠구나, 좋은 일이 있겠구나. 대단히 좋은 일이 있겠구나. 지극히 좋은 일이 있겠구나. 아, 기쁘구나”라는 뜻이다. 산사에 들어서면 왠지 내 마음이 절로 수련되는 것 같다. 오늘은 산사에서 비루한 욕망을 부려놓고 맑고 향기로운 기운을 듬뿍 받아야겠다.

계곡과 숲의 비밀의 통로를 따라 들어가자 반야사의 붉은 꽃무덤이 마중 나왔다. 500년을 지켜 온 배롱나무가 꽃을 피우기 시작한 것이다. 배롱나무의 붉은 꽃은 6월에 피고 8월에 진다. 여름을 뜨겁게 사랑하는 꽃이다. 반야사는 크지도, 화려하지도 않지만 꽤 유명한 고찰(古刹)이다. 대웅전 앞의 보물 제1371호 삼층석탑과 지장산 절벽에 올라 있는 문수전 때문이다. 반야사 삼층석탑은 높이 3.35m로 보기만 해도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다. 오랜 세월 거친 풍상과 사람들의 염원을 온 몸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지장산 절벽위에 앉아있는 문수전은 전각을 둘러싼 경치가 빼어나다. 하늘은 높고 산은 푸르며 계곡의 물이 굽이친다. 어디에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 알 리 없다. 햇살과 바람과 물길이 하나의 풍경이 되어 흐르고 또 흐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반야사 템플스테이를 자처한다. 산속의 사찰이니 적막할 것 같지만 무성한 소리의 숲이다. 산에서는 새들이 노래하고, 계곡에서는 물소리가 가득하다. 새새틈틈 풍경소리가 끼쳐온다. 소리의 숲이지만 마음을 깨우는 소리니 싫지 않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묵언수행을 하고 오솔길을 걷는다. 계곡의 돌다리를 건너고 돌탑을 하나 둘 쌓으며 삿된 마음을 부려놓는다. 편백숲에서 치유의 힘을 확인한다.

영국사는 영동을 대표하는 사찰이다. 양산팔경의 제1경이다. 고려 고종 때 임금의 명을 받아 탑과 승탑, 그리고 금당을 새로 지었고 절 이름을 국청사(國淸寺)라 하였다. 맑고 향기로운 나라를 일구겠다는 염원을 담았으리라. 지금의 이름인 영국사는 공민왕 10년(1361) 홍건적의 난을 피하기 위해 노국공주와 대신들을 데리고 피난길을 떠나 당시 국청사로 불렸던 이곳에 들러 나라의 안녕을 빌고 국난을 극복하고 나라가 평온하게 되었다 하여 편안할 영(寧)자와 나라 국(國)자를 써서 영국사로 고쳐 불렀다. 그 때 절 아래 마을 사람들은 왕이 절에 편히 닿을 수 있도록 칡넝쿨로 다리를 엮어 주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래서 절 아래 마을을 누교리(樓橋里)이다.

영국사는 기암절벽과 소나무 숲으로 가득한 천태산 기슭에 위치해 있다. 사찰로 가는 길에는 진주폭포와 삼단폭포가 있고 삼신할멈바위도 있다. 숲과 계곡과 신화와 전설이 가득한 곳이다. 영국사를 지키고 있는 어르신은 천연기념물 제223호 은행나무다. 천 년을 살았으면 생의 가지가 쓸쓸할 법도 한데 아직도 싱싱하다. 그동안 이곳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누가 다녀갔는지, 기쁨과 슬픔 제 다 간직하고 있지만 천기누설을 하지 않는다. 영국사에는 원각국사비, 영국사 승탑, 삼층석탑, 영산회후불탱 등 5점의 보물이 있다. 이곳에서도 템플스테이를 할 수 있다.

사찰 기행을 하면 마음의 여백이 생긴다. 이렇게 한갓진 시간을 보내며 마음의 잡티를 덜어낸다. 텅 빈 가슴에 맑고 향기로운 기운으로 가득하다. 그러니 진정한 삶과 아름다움을 위해 연장을 들어야겠다. 마음을 다듬고 행동을 다듬는 연장 말이다. 그리고 가던 길 머뭇거리지 말고 가야겠다. 진정한 아름다움을 일구는 일에 게으름 피우지 말아야겠다.

■ 글·변광섭 문화기획자, 에세이스트

■ 사진·송봉화 한국우리문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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