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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에 서서 / 유영선이 만난 사람 – 이어령 문학평론가
이 길에 서서 / 유영선이 만난 사람 – 이어령 문학평론가
  • 동양일보
  • 승인 2019.07.02 20: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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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힘이 없는 달변… 그가 ‘툭’ 던지는 말은 우리 사회의 화두話頭가 된다
 
 

 

 한국 최고의 지성…5천년 역사상 가장 돋보이는 창조적 인물 크리에이터

범접하기 어려운 아우라… 실제로 만나면 한없이 부드럽고 소탈한 노老학자

초여름의 북한산과 북악산은 싱그러운 신록이었다. 고즈넉한 평창동 거리를 따라 올라가자 그 두 산을 사이로 숨겨진 보석처럼 기품있게 자리한 영인寧仁문학관이 나타났다. 그 곳에 이름 석자 만으로 대한민국 아이콘이 된 이어령 이화여대명예석좌교수(86)와 강인숙 건국대명예교수(86) 부부가 살고 있다. 한국최고의 지성과 석학, 5000년 역사상 가장 돋보이는 창조적 인물 크리에이터, 그의 이름 앞에 붙는 수식처럼 그에겐 범접하기 어려운 아우라가 있다. 그러나 실제로 만나는 그는 한없이 부드럽고 소탈하다. 누구와 만나든, 어느 분야를 이야기 하든, 막힘이 없다. 달변이다. 그가 툭 던지는 말은 화두가 되고 우리를 사색하게 하는 지혜의 단어가 된다. 그런 그가 요즘 아프다. 아니 아픈 것이 아니라 그의 표현에 의하면 암이라는 친구를 만났다. 대청호 녹조와 한지로 작업을 하는 작가 이종국 씨가 영인문학관에서 전시를 여는 날, 전시관에서 그를 만났다.

-앞마당에 세워진 시를 보고 반가웠습니다.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는 학창시절 참 열심히 외우던 시였거든요.

“아, 저거.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임옥상 화가가 스승의 날에 만들어 준거예요.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와 ‘닭’, ‘지금은 떨어지는 꽃들이 있어’ 세 편의 시를 스테인리스로 글씨를 새겨 깃발형상으로 만들어 세운 것입니다.”

-젊은 날의 감성으로도 이 시는 좀 슬펐어요.

“나뭇가지의 작은 이파리 하나로 태어난 나의 생. 허공 속 바람에 잠시 흔들리다가 혼자서 지고 말아요. 원래 에세이집 서문으로 쓴 시였는데 실존주의가 한창 유행하던 전후의 분위기 탓인지 젊은이들이 많이 외우고 다녔다고 해요.”

-슬픔이란 무엇인지요? 선생님의 책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읽을 때도 슬픔을 느꼈었거든요.

“슬픔은 공감이 될 때 슬픔이 됩니다. 대부분 슬플 때는 글을 쓰지요. 그러나 내가 슬프니까 너도 슬퍼해라 하면 안돼요. 사람들은 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을 만나면 못 본체하고 피합니다. 하지만 겨울 추운 날 거리에서 떨고 있는 사람을 보면 그냥 무심히 지나갈 수 없어요. 왜냐하면 자기도 같은 추위에 떨고 있으니까요. 그 사람의 추위가 내 추위이고 내 추위가 그 사람의 추위이기도 하니까요. 슬픔 역시 개인의 슬픔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느끼는 슬픔이었을 때 비로소 공감이 생겨나지요. 우리가 함께 겪고 있는 슬픔이 과연 무엇인지. 소유가 아니라 존재의 세계에서 울려오는 흐느낌. 그것을 함께 듣는 것이지요.”

-최근의 근황을 듣고 싶습니다.

“이제 창의력이고 글 쓰는 열정이고 땅거미가 지니까, 땅거미가 지니까(그는 이 부분을 두 번씩 말하며 강조했다) 다 옛날 얘기가 됐죠. 그래서 지금은 이제까지 해온 것을 마무리 지어야하는데 마무리를 지을까 아직도 뭔가 새 것을 할까 크게 망설이고 있는 중이에요. 나는 항상 새로운 것을 하고 싶은 사람인데, 몸이 아프고 나이가 드니까 지나온 일들을 정리해야 하나, 아직 살아있기 때문에, 오늘 살아있기 때문에 어제 못한 새로운 것을 해야 하지 않나, 갈림길에서 갈등을 겪고 있다고 할까. 두 마리 토끼를 좇느라 책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어요.”

-평생을 새로운 것을 찾아 혜안을 열어 오셨는데요. 아직도 호기심이 많으신지요.

“그러니까 나는 현실 정치에는 관심이 없고 ‘지력혁명’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어요. 지금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하지만, 인공지능이 주도하는 세상은 산업의 동력이 아니라 지력의 혁명이 되는 것이지요. 인간과 기계가 어떻게 어울려 사느냐의 새로운 도전이지요. 지금까지 먹는 것이 문제였지만 앞으로는 먹고 무엇을 하느냐가 문제가 되는 세상이 오는 것이지요.”

-먹고 무엇을 하느냐의 문제란.

“제가 늘 하는 말이 있습니다. ‘먹고 노는 사회가 아니라, 놀고 먹는 사회를 만들어라.’ 말장난이 아니라 희랍시대 시민들은 진선미를 했는데 그들이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의식주를 해결해주기 위해 일하는 노예와 아내와 자식이 있었기 때문이죠. 이들은 시민이 아니었어요. 이 세 부류가 먹여 살리는 일을 맡았기에 지식인 시민들은 의식주를 벗어나서 진선미를 할 수 있었죠. 그래서 철학은 희랍시대 딱 한 번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AI가 나왔어요. 우리가 먹고 살기 위한 일을 AI가 해주면 모든 사람들이 진선미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발하라리는 사이보그 출현이 호모사피엔스의 종말을 가져올지 모른다고 했습니다. 인류의 직업도 AI에게 빼앗길 것을 우려하는 시각들이 많은데 AI가 두려운 존재는 아닌가요?

“그건 잘못알고 있는 거예요. 기계는 두렵지 않나요? 불은 두렵지 않나요? 인간은 모든 짐승들이 두려워하는 불을 이용했어요. 두려움은 바로 리스크지요. 말을 보세요. 말은 빨라요. 말이 발길질 하면 우리는 죽어요. 잘못 타도 죽어요. 그러나 그 말을 올라타면 말은 두려운 것이 아니라 가장 이로운 것이 되지요. AI도 마찬가지예요. 어느 것이나 인간에겐 두려워요. 컴퓨터가 처음 나왔을 때도 인류를 해친다고 했어요. 내가 아는 유명한 철학자는 컴퓨터로 쓰면 생각을 빼앗긴다고 컴퓨터를 쓰지 않았어요. 그런데 지금은 컴퓨터로 1년에 1권 쓰던 책을 10권씩 쓰고 있어요. 역사는 항상 포지티브한 사람의 것이지 네거티브하고 부정적인 사람의 것이 아니었어요. 위험한 것을 선택하는 만큼 발전이 있어요.”

-인간은 왜 리스크를 알면서도 도전을 하는 것일까요.

“인간이니까요. 두 발로 일어설 때부터 인간은 동물이 아니고자 했어요. 다른 동물처럼 네발로 기면 얼마나 편해. 그런데 두 발로 서서 쓰러지고 멍들면서도 포기하지 않거든요. 그게 비극이라고 해도 그 리스크를 감당하는 길을 선택해서 오늘에 이른 것이지요.”

-선생님이 도전하시는 글은 시작이 되었나요?

“이어령이 암에 걸렸다고 소문이 나니까 출판사가 전기를 쓰고 TV가 다큐멘터리를 찍고 사람들이 매일 찾아와요. 일본사람도 있고 한국사람도 있는데, 그들이 여태까지 내가 글로 쓰지 않았던 것들을 녹음으로 따가니까 그게 새롭게 착수한 것이라고 할까. 오늘 이종국 화가 전시회에서 내가 종이의 역사에 대해서 한 얘기도 처음 하는 얘기가 몇 개 있는데, 아무도 기록하지 않아요. 종이가 인쇄하고 글씨만 쓰는 것이 아니라, 종이비행기도 만들고 쇼핑백도 만들고 예술작품도 만드는 것. 요즘 LED로 문자를 쓰는데 무슨 종이가 필요해? 그런데 그렇다고 종이가 죽어요? 죽지 않거든. 지지자知之者의 종이에서 호지자好之者의 종이, 낙지자樂之者의 종이로 가고 있는 것이죠. 미래는 낙지자의 종이가 될 거예요. 그것을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해 이미 일본에서는 책으로 나왔어요. ‘가위바위보문명’ ‘보자기’ ‘하이쿠’ 전부 내 책인데 일본에서 나오니까 우리나라 출판사에서 일본 것을 번역해서 펴내요. 나는 여기 있는데 안하니까 그런 기현상이 만들어지는 거예요.”

영인문학관에 있는 자신의 동상 옆에서 포즈를 취한 이어령 선생.
영인문학관에 있는 자신의 동상 옆에서 포즈를 취한 이어령 선생.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래서 영인문학관도 직접 만드신 것인가요?

“나는 내 이름의 영寧자 하나 빌려준 것 밖엔 없어요. 관장인 안사람이 모두 관리하고 운영하지요. 영인문학관이 타 문학관과 다른 것은 제 기록을 남기고자 한 것이 아니라, 다른 문인들의 자료와 기록을 모아두고자 우리 부부가 사재를 털어서 세운 것이지요.”

-문학관 안에 있는 문인들의 손도장이 인상적이던데, 굳이 양손을 찍은 이유가 있을까요.

“인간에게 손이 두 개 있는 것은 좌우 갈등도 있지만. 두 손으로 잡으라는 것도 있지요. 새천년준비위원장을 맡았을 때 구호가 ‘새천년의 꿈 두손으로 잡으면 현실이 됩니다’였어요.”

-스물 둘이라는 젊은 나이에 ‘우상의 파괴’라는 글로 기성문단을 흔든 이후, 선생님의 글은 독창적인 아이디어와 날카로운 비판으로 늘 화제를 몰고 왔습니다. 88서울올림픽 당시 굴렁쇠 소년의 퍼포먼스와 즈믄둥이 탄생장면은 온 국민의 뇌리 속에 특별한 장면으로 각인되어 있고요. 그동안 교수, 작가, 문학평론가, 문화부장관, 올림픽 개·폐막식 총괄기획자, 새천년준비위원장, 한·일 월드컵 문화관광 공동대표 등 수많은 직함으로 불려오셨는데 가장 마음에 드는 호칭은 무엇인가요.

“선생님이 제일 좋지요. 남들이 처음 만나면 장관님, 위원장 등 여러 호칭으로 부르지만 나는 이 ‘선생’이 제일 낯익고 좋아요. 제자도 그렇고 안사람도 그렇게 불러요. 선생이 뭔가요. 앞선 생이지요. 앞선 사람, 그게 크리에이터입니다.”

-모두 선생님 건강을 걱정합니다. 하루 일과를 어떻게 보내시는지요.

“직장생활을 하지 않으니까 주로 서재에서 글 쓰고 메모하는 일이 전부예요.”

-수술치료를 하지 않으신다고 들었어요.

“수술 항암치료를 하지 않을 뿐 정기적으로 병원에는 갑니다. 병하고 친해야지 싸우지 않으려 해요. 아픔도 내 일부니까 내 몸안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쾌락도 두통도 건강도 모두 다 내 것, 내 안에 있어요. 사랑까진 안해도 두려워 하지 말아야지, 그래서 투병이 아니라 친병을 합니다. 병을 친구로 여기는 거죠. 수술이나 항암을 하느라 병원 다니는 시간에 책 한권을 더 읽으려 해요. 딸(고故 이민아 목사)도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수술없이 암을 받아들였어요. 죽음도 삶의 일부라고 여긴 딸은 책을 두 권 쓰고 마지막 순간까지 강연을 했지요.”

-지금 우리사회의 제일 큰 문제는 뭐라고 보시는지요.

“우리 사회는 채집시대부터 정보화시대까지가 한꺼번에 샌드위치처럼 쌓여 살고 있어요. 단계를 밟아서 발전하지 못했지요. 한국이 정보화 사회라고 하지만 어떤 때 보면 농경사회, 채집시대 때 사람인 거예요. 우리 몸속에 모든 문명이 동시에 축적돼 있는 것에 깜짝 깜짝 놀랍니다. 그래서 가끔 핫옷입고 한 여름에 나와 돌아다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엄동설한에 모시옷을 차려입고 사는 사람도 있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여름의 화로, 겨울의 부채와 같은 사람도 많아요. 시대착오에서 빨리 벗어나서 21세기 미래를 공유하는 공동체를 이룩해야지요”

-마지막으로 젊은 사람들에게 한 말씀 주신다면.

“불안하지 않은 젊음은 없어요. 다만 요즘 젊은이들은 면역력이 없어서 걱정이지요. 우리는 고생을 해봐서 불행에 대한 적응력이 있고 돌파할 수 있는 능력과 힘이 있었지만. 미래를 알려면 삼색을 해야 해요. 검색(컴퓨터), 사색(명상), 탐색(모험심), 이 삼색을 통합할 때 젊음의 삶이 달라질 수 있어요. 내가 젊었을 때 늘 외우고 다니던 한시의 한 구절이 있습니다. ‘산이 거듭하고 길이 있을까 의심했는데 버드나무 푸르고 꽃이 환한 또 하나의 마을이 있더라.’ 아무리 험난한 산속 길이 막혀 더 나아갈 곳이 없다고 생각할 때 나타나는 ‘또 하나의 마을’이 있다는 것 그것을 꼭 잊지 말라고 당부하고 싶습니다.”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되면 젊은이처럼 눈이 빛나는 그를 누가 87세 노인이라 할까.

스스로 말하듯 남이 하지 않는 것을 하는 사람, 그는 영원한 우리 시대의 크리에이터임이 분명하다.



■ 동양일보 상임이사·동화작가



■ 이어령 평론가는…

* 출생1934년 1월 15일, 충남 아산

* 학력 서울대 국어국문학 학사, 석사

단국대국어국문학박사

* 경력 1990~1991년 제1대문화부장관

2001년 사이언스 북 스타트운동 공동대표

2005년 앙코르 경주세계문화엑스포 한국조직위원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예술교육대회

조직위원회위원장

2011년 이화여자대학교 석좌교수

2012년 한국국제협력단 자문위원



* 수상 서울특별시 문화상 문학분야

48회 대한민국 예술원상

2회마크 오브 리스펙트상

2회 한민족문화예술대상 문학부문상

24회기독교문화대상문학 특상



미니인터뷰==== 강 인 숙 영인문학관 관장

 

-영인문학관의 개관은?

2001년 사재를 들여 만들었어요. 규모는 작지만 누군가가 모으지 않으면 사라질 문인들의 자료를 모아 후세에 전하는 것을 목표로 설립하였지요.

-두 분이 어떻게 만났는지?

대학 클래스메이트. 학교친구였어요.

-이어령 선생님을 한마디로 설명한다면.

좌뇌우뇌가 동시에 발달한 분예요. 논리와 감성을 동시에 지니고 있죠. 그리고 일에 깊게 몰입을 하죠. 우리 딸도 그랬어요.

-요즘 선생님의 일과는?

두 가지 밖에 없어요. 오전 6시쯤 일어나 식사하고 서재에서 올라가 늦게까지 글쓰는 일.

-음식과 운동은?

한식만 좋아해요. 12살에 어머니 돌아가신 뒤 향수음식 같은 거죠. 운동은 혼자서 개발해서 명상과 기를 하세요. 30분에서 1시간쯤.

-바람은?

이 선생은 분초를 아끼며 치열하게 살고 있어요. 요즘은 하루하루 살아있다는 것이 소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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