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시간 뉴스
UPDATED. 2019-07-19 07:47 (금)
우리동네숨겨진이야기(48) 영동 황간과 추풍령
우리동네숨겨진이야기(48) 영동 황간과 추풍령
  • 동양일보
  • 승인 2019.07.11 15: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골목길은 오래된 마을의 실핏줄, 그리움과 느림의 미학이 깃들어 있어
 
 
추퐁령역 풍경.
추퐁령역 풍경.

 

(동양일보) 오늘도 나는 길을 나선다. 책을 읽고 글밭을 가꾸며 고샅길을 걷고 여행을 한다. 사람들을 만나 차를 마시며 세상의 풍경에 귀를 기울인다. 나이를 먹으면서 비겁해지는 일들이 많아졌다. 욕망을 쫓고 현실에 타협하거나 아부하고 이기적인 속물이 되어가고 있다.

그래서 더욱 마음을 찾아 나선다. 타인을 통해 나를 보고 자연을 통해 나를 보며 역사를 통해 나를 본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생의 비겁함을 인정하고 타협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생은 머리에서 발끝으로 향하는 긴 여정이다. 내가 걸어온 길이 나를 만든다. 진정한 공부는 마음 수련이다.

영동군 황간과 추풍령은 오래전부터 가고 싶었던 곳이다. 왠지 그곳에 가면 고향내음 가득할 것 같고 옛 사랑이 찾아올 것 같았다. 빛바랜 간이역과 골목길을 걸으면 절로 시심에 젖고 추억의 옛 맛이 되살아 것 같았다. 그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하나의 풍경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벼르고 별러서 길을 나섰다.

황간에 제일먼저 도착한 곳이 황간역이이다, 언덕에 있는 황간역사를 등지고 아래를 굽어보면 면소재지의 풍경이 단숨에 들어온다. 7월의 푸른 숲이 손짓하고 새새틈틈 햇살과 바람이 눈부시다. 누구였을까. 어떤 사람이 이런 풍경을 만들었을까. 곳곳에 옹기가 가득하다. 시와 그림이 있는 옹기다. 오가는 사람들에게 고향의 정을 나누고 싶은 염원을 담고 싶었을 것이다.

황간은 볼 것이 많다. 월류봉과 한천팔경이 있고 반야사와 백화산이 있다. 곳곳에 숲과 계곡과 과일이 가득한 곳이다. 어죽과 도리뱅뱅이 튀김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나는 면소재지 골목길을 걸었다. 낡고 누추했지만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교통의 요충지였기 때문에 70년대까지는 풍요의 마을이었다. 까치발을 하며 담장 너머의 풍경에 훔쳐보았다. 적산가옥과 방앗간과 농협창고가 나그네의 발목을 잡았다. 상처 깃든 풍경 속에서 지난 사람들의 아픔을 본다. 견딤이 쓰임을 만든다는 것을 묵상한다.

황간은 조선시대 현청이 있었다. 그래서 이곳엔 향교가 있고 누정이 남아있다. 동산위에 있다. 계단 하나 하나 오를 때마다 이마에 진한 땀방울이 맺힌다. 여느 향교와 마찬가지로 명륜당이 있고 동재와 서재가 있다. 내삼문이 있고 그 뒤로 대성전이 있다. 황간향교는 조선 태조 3년(1394)에 현(縣)의 뒷산에 처음 지었다. 그 후 현종 7년(1666)에 서쪽의 토성 안으로 옮겼으며, 영조 28년(1752)과 광무 5년(1901)에 중수하였고, 1978∼1981년에 크게 중수하여 오늘의 모습으로 갖추었다.

가학루(駕鶴樓)는 황간향교 앞에 있는 누정이다. 1393년(태조2) 황간현감 하첨이 창건했다. 세상사는 것이 마치 학이 바람을 타고 떠다니는 듯해서 가학루라고 이름 지었다. 말 그대로 산전수전 다 겪은 곳이다. 임진왜란 때는 적들과 치열한 싸움 끝에 소실되었다. 광해군 때 중건한 이후 여러 차례 중수했다. 6.25때는 황간초등학교가 불타자 이곳에 임시학교를 차렸다. 이곳에서 사람들은 풍경을 보고 세상을 보았을 것이다. 책을 읽은 사람도 있고 시를 쓴 사람도 있으며 술상을 차린 사람도 있을 것이다. 전시에는 여기보다 더 좋은 지휘본부가 없었을 것이다.

추풍령역에 위치한 근대문화유산 취수탑.
추풍령역에 위치한 근대문화유산 취수탑.

“구름도 자고 가는 바람도 쉬어 가는/추풍령 굽이마다 한 많은 사연/흘러간 그 세월을 뒤돌아보는/주름진 그 얼굴에 이슬이 맺혀/그 모습 그립구나 추풍령 고개//기적도 숨이 차서 목메어 울고 가는/추풍령 굽이마다 싸늘한 철길/떠나간 아쉬움이 뼈에 사무쳐/거칠은 두 뺨 위에 눈물이 어려/그 모습 흐렸구나 추풍령 고개.” 가수 남상규 씨가 부르고 배호, 나훈아, 이미자도 이 노래를 불렀다.

고개를 넘나드는 일은 눈물과 시련과 아픔을 견디는 일이다. 험준한 고갯길, 상처 깊은 내 삶의 고갯길을 넘는 일이다. 경부선 기차도 추풍령에 도달하면 숨이 차서 목메어 운다. 추풍령역에 있는 급수탑이 만들어진 이유다. 1939년 건립된 급수탑은 경부선을 운행하던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철도 급수탑 중 유일하게 평면이 사각형으로 되어 있다. 기계실 내부에는 당시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던 펌프가 있고, 급수탑 외부에는 급수에 필요한 물을 끌어들인 연못이 있다. 급수탑과 관련된 모든 시설물들이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역에서 나와 동네 한 바퀴 휘돌아본다.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 골목길은 오래된 마을의 실핏줄이다. 옛 사람들의 삶의 풍경과 냄새가 깃들어 있다. 큰 길 보다 얕지만 느리고 깊다. 골목을 잃어버리면, 골목을 품지 못하면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사랑도 추억도 상처도 없다. 신작로는 근대의 상징이고 조급해지며 서두르게 된다. 그렇지만 골목길은 역사와 풍경을 담고 느림의 미학을 상징한다. 인문학적 성찰이 가능한 곳이다. 그곳만의 혼(魂)이 담겨있고 빛바랜 관습이 살아있다. 오래된 것들은 스스로 빛을 낸다. 마을의 역사가 깊을수록 골목도 나이가 많다. 나이가 많은 만큼 그 흔적 또한 다채롭다.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은 골목길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충청대로 103 (율량동)
  • 대표전화 : 043)218-7117
  • 팩스 : 043)218-7447,7557
  • 창간 : 1991-12-29
  • 제보전화 : 043)218-7227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원중
  • 명칭 : 동양일보
  • 제호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 등록번호 : 충북 가 00003
  • 등록일 : 1991-12-27
  • 발행일 : 1991-12-27
  • 회장 : 조철호
  • 발행/인쇄인 : 유영선
  • 편집인 겸 편집국장 : 김영이
  •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19 동양일보 '이땅의 푸른 깃발'.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ynews@dynews.co.kr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