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유도밖엔 모른다. 도복 속에 내 80평생이 들어있다

제자 박종학 선수가 세계 제패한 날의 감격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세계제패 기념 전국유도대회 개최가 꿈...충청인의 기상 곧추 세워야

 

 

옛 소년체전 7연패의 신화를 이룩했던 충북이 근래 들어 다시 체육열기가 불붙고 있다.

극동아시아 한반도 반 토막 난 대한민국, 그 곳에서도 유일한 내륙도 충청북도에 세계무예마스터십 대회가 두 차례나 개최돼 세계 무예인들이 몰려들었고, 올 들어 전국체전에서 종합 6, 전국장애인체육대회에서 종합 3위의 쾌거를 이뤄 도민들의 어깨를 으쓱이게 했다.

이 같이 도세를 뛰어넘는 체육강도體育强道충북의 잠재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두말할 것도 없이 아직도 건재한 체육계 원로들의 땀과 현역 선수·임원들의 열정, 그리고 행정적인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평생을 도복과 함께 살아온 원로 유도인

전국체전의 열기가 아직도 남아있는 10월 마지막 날에 충북원로체육인동우회 강형원(81. 유도 9)회장을 찾았다.

음성 혁신도시를 지나 맹동면소재지에서 대소방면으로 2킬로미터 쯤 가면 작은 마당을 끼고 낮게 세워진 25평짜리 남향집이 나온다. 음성군 맹동면 마산2372-4. 강 회장이 생가 터에 10년 전에 지은 집이다. 문패엔 강형원 이미자부부의 이름이 나란히 새겨져 있다. 뒤 안엔 감나무가, 텃밭엔 대추나무 몇 그루가 서 있을 뿐 소박하고 아담했다. 현관을 들어서니 정면 벽에는 전두환-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의 훈장증, 한켠엔 상패 공로패 감사패가 진열장에 가득하다.

스포츠에서 대표적인 투기종목인 유도와 태권도와 검도 등은 승단昇段으로 실력을 입증한다. 일반적으로 급은 숫자가 적을수록, 은 숫자가 높을수록 고수高手. 실력이 인정되는 유단자들의 한결같은 꿈은 입신의 경지라 일컫는 9단에 이르는 것이다. 그러나 9단에 이르는 길은 바늘귀를 낙타가 지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유도의 경우 한국에 유단자가 25~27만 명을 헤아리지만 9단은 53, 이중 충북엔 강 회장과 박헌혁(78.충북유도회 고문.청주 거주) 씨 등 2명뿐이다.

유도선수로, 감독으로 일관해 평생을 도복과 함께 살아온 강 회장은 충북유도회 명예회장, 대한유도회 심의위원장으로 한국의 원로 유도인이다.

강 회장이 키워낸 제자 유단자만도 4600여명. 그 중엔 198112회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서 한국유도 60년사에 처음으로 세계를 제패한 박종학 (61. 현 청주대 사범대학장)을 비롯해 박경호(198610회 서울아시아경기대회) 최성환(19947회 세계청소년유도선수권대회) 전기영(199626회 애틀랜타 올림픽과 20회 세계유도선수권대회) 조인철(199720회 세계유도선수권대회) 선수 등 국제대회에서 금메달 33, 은메달 24, 동메달 22개 등 모두 79개의 메달을 획득해 유도 한국의 영예를 거머쥐게 지도한 사람이 바로 강 회장이다.

그가 청주 청석고에서 유도지도교사일 때 키워낸 국가대표만도 70여명에 이르니 가히 한국 유도계의 전설적인 지도자라는데 토를 달 사람이 없다.

8남매의 맏이인 강 회장은 부친의 특별한 배려로 고향의 맹동초를 나오자 청주 유학길에 오른다. 주성중 2학년 때 유도복을 처음 입은 후, 청주고 2학년 때는 학교 대표선수가 되어 대회에 출전한다. 이렇게 시작된 유도인의 길이 경희대 체육과-대한유도대학-청주대를 거치며 청석고와 대성중 유도팀을 창단, 코치생활을 하다가 대성중 정식교사로 발령을 받는다. 그리고 청석고로 전보되고 두 학교 선수들을 함께 지도하면서 유도인생의 땀 밴 여정이 시작된다.

대한유도회 심의위원장으로 바쁜 일상

-오랜만에 뵙습니다. 출타가 잦으셔서 만나 뵙기가 조금 힘들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어제는 청주에서 장애인체육대회 해단식이 있어서 갔다 왔지요. 대한유도회 심의위원장 일을 보다보니 전국적으로 출장을 다녀야하는 일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궁금했었는데요, 대한유도회 심의위원장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요.

우리나라 유도 승단심사를 총괄하고, 연금대상자 선발 심사를 총괄하는 직책이지요. 유도회가 주관하는 전국행사가 연중 24회가 있습니다. 전국규모 대회 때마다 5단 이상 고단자 중 누가 참석하는가를 파악하고 기록하여 제출합니다. 이를 근거로 연금대상자를 가리는데 심의 위원장이 내는 점수가 필수점수가 됩니다. 정직하고 공정하고 확실하게 파악을 해야 하기에 결코 쉽지는 않습니다. 올 해로 7년 째 맡고 있어 이제는 후배들에게 물려줘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어요. 대한유도회장의 뜻을 따라야하는데, 회장은 바뀌어도 계속 연임되다보니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2014년 종신수혜자 선정… 충북유일

-유도계에서 연금 수혜자는 몇 명이나 되는지요.

한국유도원에서 주는 공로연금인데 953명 중 수혜자는 6명입니다. 충북에선 나 혼자 20147월부터 종신수혜자로 선정되어 매월 50만원을 받습니다.”

유도인구 중 여자듀도인 크게 늘어

-한국 유도의 현재상황은 맑음인가요?

유도인구는 전국적으로 늘고 있어요. 특히 여자 유도인들이 눈에 띄게 늘어납니다. 충북의 경우도 4,5년 전에 7개 뿐 이던 유도장이 지금은 18개로 늘어났습니다. 생활체육의 활성화에 따른 현상입니다. 그러나 엘리트 유도인들은 정체 상태를 면치 못하고 있지요. 한국유도에서 선수가 되려면, 특히 국가대표가 되려면 용인대에 가야한다며 쏠림현상이 계속되고 있지요. 다른 대학에서는 결국 용인대 들러리 만 될 것을 특기생 뽑아 무엇하나라고 반문합니다. 엘리트유도의 다변화가 절실합니다.”

-소년체전 7연패를 기념하는 모임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떤 분들인지요.

“7연패할 때의 각 경기단체 전무이사, 체육회나 체육관련 기관 행정관들의 모임인데, ‘77라는 모임입니다. 매월 2만 원 씩 거둬서 식사하고 담소를 나누곤 하지요. 나이들이 많아서 돌아가시거나 건강이 나빠지거나 하여 참석하지 못하는 분들이 늘어나고 있지요. 멤버는 최동식(전 체육회 수석부회장) 최도국(고인) 김윤환(태권도)김태완(럭비)김태봉(사체과장)곽동근(배드민턴)곽완길(야구)신준호(펜싱)김병찬(씨름)유태기(사체과장)유무웅(양궁)정신일(체육회사무처장)박종억(국궁)주명로(배구)김항구(육상)백경묵(축구)이장권(축구)권영배(복싱)김종만(조정)씨 등이고 현재 회장은 김선필(역도)씨가 맡고 있지요

상대를 적으로 보지 말라 가르쳐

-유도계에서는 특별한 지도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어떤 비결이라도 있는지요.

운동은 누가 땀을 많이 흘렸느냐 지요. 나는 친교와 신뢰를 늘 강조하지요. 상대를 적으로 보지 말라,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사람을 믿지 못하면 운동 못한다고 말합니다. 유도는 늘 상대와 함께 맞잡고 겨루는 운동인데 적으로 보면 적개심이 생겨서 불편해지고 운동의 정신이 흐려지게 됩니다. 사람과 늘 가까이하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지요. 그런 마음가짐 위에 기술이거나 투지거나 승부욕이 더해져야 좋은 결과가 나온다고 가르칩니다.”

-강 회장님의 특기라면?

선수생활을 할 때는 남들보다 하체가 강하지 못해서 상체를 활용해 승부를 겨뤘습니다. 빗당겨치기가 특기였습니다.”

-요즘도 운동을 하십니까?

매주 화요일 저녁에 청주 율량동에 있는 청주교회에서 의사 교수 등 부부 몇 분들에게 낙법 등 유도의 기본기를 익히게 할 겸 몸을 풀고 있습니다. 청주유도회관(청주시 용정동)에도 11회는 들려서 후진들의 훈련모습을 지켜보곤 합니다.”

'박종학 선수 세계 첫 제패' 잊지 않아

-이제까지의 유도 인생에서 가장 잊혀 지지 않는 일이 있다면?

“198195, 네델란드에서 들려온 박종학 선수가 세계유도선수권대회를 제패했다는 뉴스였습니다. 박 선수는 청석고 3학년 때 국가대표선발전에서 71급의 당시 국가대표였던 이창선 선수(용인대 4)를 이겨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었습니다. 수도경비사 유도부에서 군복무 중이던 19809, 10회 세계군인유도대회(오스트리아)에서 금메달을 땄고 이듬해 54회 아시아유도선수권대회(인도네시아)7, 11회 세계군인유도대회(미국)에서 연이어 은메달에 머물더니 불과 45일 만에 최고 권위의 세계유도연맹이 주최한 12회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서 당당히 금메달을 획득한 것입니다. 이는 한국유도역사 60년 만에 이룬 첫 세계제패여서 온 나라가 떠들썩했지요.

당시 청주실내체육관 앞 광장에서는 박 선수를 위한 대대적인 환영대회와 카퍼레이드가 펼쳐지는 등 충북유도의 위상을 만천하에 떨쳤습니다. 그 때의 그 감격을 나를 포함한 한국의 모든 유도인들은 일생동안 잊지 못할 것입니다. 유도 종주국이라는 일본을 제압한 사실 하나만으로도 얼마나 통쾌한 사건이었는지, 지금도 그 때를 떠올리면 가슴이 뜁니다

세계제패기념 대회 열리는 것이 꿈

-그로부터 38년이 지난 오늘, 많은 이들은 그 감격을 거의 잊고 있지 않을까요?

그것이 안타깝습니다. 양궁의 김수녕 선수 같이 세계를 재패하면 김수녕양궁장을 세워 그 감동을 기려주는 등의 기념사업이 이어져야하는데, 박종학 선수의 세계제패는 그냥 묻히고 마는 듯 해 안타깝습니다. 지금이라도 충북체육인의 기개를 곧추 세우기 위한 기념사업을 펼치는 것이 저를 비롯한 유도인들의 꿈입니다. 아니, 어떤 종목이든 세계를 제패하면 기념사업을 해 주는 풍토 조성이 절실합니다. 그래서 다른 시,도처럼 세계제패를 기념하는 무슨 무슨 대회가 많아진다면 그만큼 충북의 위상이 높아지는 게 아니겠습니까? 언론에서 각별하게 힘을 써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내 상패· 표창패는 아내의 땀값

-평생 유도인으로 살아오시면서 잊을 수 없는 사람을 꼽는다면?

늘 주변분들 도움으로 평생을 도복 하나 걸치고 살아왔기에 잊을 수 없는 분들이야 많고 많지요. 꼭 한 두 사람만 꼽는다면 60년도 대한유도대학을 다닐 때 시골뜨기인 나를 특별하게 사랑해 주셨던 이재황(유도 8)학장님입니다. 그 분의 아낌이 유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결심케 되었지요. 그 다음을 꼽는다면 아내(이미자.68)입니다. 대성중과 청석고 교사로 있으면서 유도 지도자의 길을 갈 수 있도록 온갖 고생을 다 한 아내에겐 평생 큰 빚을 졌습니다. 청주 우암동 겨우 마련한 집에 선수들 합숙시설을 갖춰 많게는 17명이나 숙식을 감당케 했었습니다. 한창 왕성한 식욕의 청소년 선수들을 먹이고 재우는 일이란 쉽지 않았을 것인데 13년 간 이나 그 일을 묵묵히 계속해 준 내조의 힘에 고개를 들 수가 없어요. 제자들이 국가대표가 되고 세계를 제패하여 환호할 때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생해 준 아내의 고마움을 저 혼자 새기곤 했지요. 내가 받은 각종 훈장이나 표창패는 사실은 아내의 땀과 눈물 값입니다.”

-이 집에선 두 분만 살고 계신가요?

두 늙은이만 삽니다. 아들(강덕훈.52. 외국반도체회사 한국지사장)은 서울에서, (강윤수.47)은 재경부에 근무하는 사위와 대전에서 살고 있습니다.”

-고향에 돌아와 사시는 재미는?

“3개월에 한 번씩 초등학교 친구들과 모여 웃고 떠들지요. 이젠 많이 세상을 떠나고 열 두서너 명이 모여요. 그리고 가끔 충북유도회의 모체라할 수 있는 청유회에 나가 유도인들의 근황을 듣지요.”

-좌우명이 있으신지요.

부친께서 주신 말씀이 내 좌우명인데, ‘사람을 가까이하라입니다. 평생을 유도복 속에 품고 살았지만, 더 겸손하려 하고 더 부드럽게 하려는 유도의 가르침을 따르려 하고 있습니다.”

-가을 끝자락입니다. 긴 시간 고맙습니다.

 

동양일보 회장. 시인

 

강형원姜亨遠회장...

 

1939630일 충북 음성군 맹동면 마산리 출생

맹동초-청주 주성중-청주고-대한유도대

청주대(상과)-경희대교육대학원(체육과)

대성중 청주상고 청석고 유도팀 창단. 코치

대성중-청석고 교사

충북유도회장 남궁유도회관초대관장 한국중.고유도연맹심판위원장

대한유도회심판위원장 세계청소년유도선수권대회감독

세계유도선수권대회감독 세계여자유도선수권대회단장

9단 승단(2007)

한국유도원 이사장

)한국유도회심의위원장 현)한국유도원공로연금종신수혜자

대통령표창1986) 체육훈장백마장(1996) 국민훈장석류장(1999)

충북도민대상(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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