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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있는 문화재 베일을 벗기다(3) 점말동굴의 의의
숨어있는 문화재 베일을 벗기다(3) 점말동굴의 의의
  • 동양일보
  • 승인 2020.02.27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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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준식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장

 

[동양일보]점말동굴 외벽에 새겨진 여러 각자들을 신라화랑의 행적으로 추정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각자들 중에 “오랑도상란종득행(烏郞徒祥蘭宗得行)”은 화랑의 한 무리인 오랑도의 상란과 종득이 다녀갔다로 해석되며, 정랑도양월(正郞徒陽月). 경선행(庚宣行). 효필행(孝弼行). 금랑행(金郞行) 이라는 화랑들의 이름과 낭도의 존재가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금랑金郞은 신라화랑들의 대표적인 유오지인 울주 천전리의 서석에서도 확인되는 동명의 화랑이다. 인명과 더불어 새겨진 글자들에는 수기신행(守其身行). 대선의절행(大先義節行). 송죽행(松竹行). 의필(義匹) 등이 확인되는데, 이 문구들은 화랑들이 심신수양과 義와 節을 고양시키는 의제이며, 서약과 절개와 기상을 상징하는 내용이다. 이것은 화랑의 덕목 중의 하나인 금란지교와 교우이신과 같은 내용을 각인한 것으로 판단된다. 인명 아래에는 최소한 15회 정도 行자가 표기되어 그들이 이곳에 다녀갔음을 분명하게 알리고 있다. 따라서 이 각자들은 후대에 추서된 것이 아니라 당대의 화랑들이 그들의 행적을 직접 새긴 것이 확실하다고 하겠다. 그렇다면 화랑들이 언제 무엇 때문에 이곳 점말동굴을 찾았는지 사뭇 궁금해진다.

점말동굴의 각석에서 연월일을 가리키는 문구가 2군데서 보이는데 “癸亥年五月三日奉拜行進慶見行”이다. 이것은 “계해년 5월 3일에 이곳에 와서 받들며 절하고 기쁘게 보고 갔다” 로 해석되는데, 이는 점말동굴이라는 신성처를 순례했다는 만족감과 점말동굴이 당대에 중요한 성지였음을 직접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이해된다. 앞의 각자가 있는 같은 면에는 “癸亥年十一月二十日 陽月行”이라고 서각 되었는데 양월은 農曆으로 10월의 별칭이므로 화랑들이 순례했던 두 번의 계절은 계해년 오월과 시월로서 파종과 수확과 관련된 “농경제의” 행사 때 이곳을 순례한 사실과 그들의 행장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 된다. 두 번에 걸쳐 표현 된 계해년이 어느 시기의 년간지 인지는 앞으로 중요한 연구과제로서 반드시 해결되어야 할 문제라고 하겠다.

점말동굴은 화랑들이 신령과 교감하는 신청 처였다고 해도 화랑의 무리가 계해년의 농월인 5월과 10월에 순례기록을 남긴 것은, 빼어난 승경과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농경문화의 대표적 유적지인 “의림지”와 관련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확인된 화랑의 각자로는 울주 천전리 서석과 고성 삼일포 암벽에 “술랑도남석행”이라는 각석, 강릉 강동면 하시동리에 소재한 “신라천인영랑연단석”이라는 10여자 미만의 단편적인 글자들만 확인된다. 이들과 대비해볼 때 점말동굴은 방대하고 풍부한 서각기록을 남기고 있어 우리나라 화랑도연구에 가장 으뜸 하는 유적지라고 할 수 있겠다.

속초의 영랑호는 1530년대에 편찬된 관찬지리지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永郞이라는 화랑이 이 호수의 경관에 감동하여 이 일대를 즐겨 찾았다고 기록하여, 영랑호는 영랑이라는 화랑과 연유되어 명명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속초시에서는 오래 전부터 영랑호를 화랑체험관광단지로 조성하여 관광사업을 활성화하고 있다.

최근에 제천시에서도 점말동굴의 화랑유적에 주목하여 관광자원화를 위한 개발과 환경개선을 진행 중에 있어 다행한 일이라고 하겠는데, 개발에 앞서 적극적인 유적보호와 서각들에 대한 충분한 조사연구가 선행되어야하며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용하여 가장 모범적인 문화재활용사업으로 진행되기를 기대한다.

점말동굴 앞 광장지의 발굴조사에서 다수의 기와편, 토기편, 자기편들과 더불어 석조탄생불상과 금동불상편이 출토되었다. 이와 같은 불상편의 출토로 보아 동굴 앞에는 건물이 있었고 이곳이 절터였던 것으로 판단되고 있다.

 

탄생불은 석가모니의 탄생 직 후의 상으로 외형상 벌거벗은 모습으로 조성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예배의 대상이기보다는 석탄절의 관욕의식에서 주로 사용되는 아기부처의 상이라고 하겠다. 그런데 점말동굴 앞 광장에서 출토된 탄생불은 독특한 도상으로 크게 주목된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 전래되는 탄생불의 대부분이 금동상인데 비하여 석재로 조성되어 희소가치가 매우 높은 탄생불이라고 하겠다.

기존의 탄생불들은 양식에서 두광(頭光)정도만 갖추고 있는데 이 상의 경우는 커다란 주형의 거신광배가 갖추어져 있고, 일반적인 탄생불상들 과는 달리 왼손을 위로 향해 들고 있다. 한편 연화대좌의 폭이 넓어서 예배 상으로 안정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일반적인 금동탄생불상과 달리 신체의 양감이 매우 부드럽고 대좌의 연판도 정교하게 만들어지는 등 조각수법이 뛰어난 상이라는 점이다.

양식으로 볼 때 조성시기는 통일신라 말 정도로 추정되는데 광배와 대좌를 위엄 있게 갖추고 있으며 불신의 표현도 매우 정교하여서 예배 상으로서의 성격이 강한 것으로 판단된다.

이처럼 점말동굴 앞 광장지 출토 석조탄생불상은 이곳 점말동굴 유적이 구석기시대 뿐 아니라 역사시대에 들어와서도 지속적으로 사람들이 왕래하였고 또 통일신라시대 말이나 고려시대 전반 정도에 이곳에 절이 세워지기도 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매우 흥미롭고 중요한 상이 아닐 수 없다.

앞 장에서 말했던 화랑의 유적으로 추정되는 석굴사원에서 마애불상이 조성된 예는 경주의 신선사 유적, 진천의 장수굴 유적, 증평의 남하리사지의 유적 등에서 나타나지만 점말동굴유적지에서의 석조탄생불은 그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희귀한 예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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