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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에 서서 / 유영선이 만난 사람 - 한지 예술가 이종국
이 길에 서서 / 유영선이 만난 사람 - 한지 예술가 이종국
  • 동양일보
  • 승인 2020.03.17 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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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어들고 스며들면서 색이 변하는 아름다움 알려주는 게 꿈”

“요새는 새가 먼저 울어요. 닭소리가 먼저 들리는지, 새소리가 먼저 들리는지는 그날 아침의 온도에 따라 달라지가든요. 온도가 낮아지면 생명들은 서서히 움직입니다. 꽃도 피었다가 정지하고요. 새는 그것을 소리로 표현해요.”

햇살이 곱게 내려앉은 봄날 오후, 마불갤러리의 중정中庭 뜰엔 모과나무의 새 잎이 돋고 있었다. 이곳은 고요 그 자체다. ‘코로나19’로 사람들의 일상이 정지되고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세상 한가운데서 세상의 바람이 닿지 않는 섬 같다.



한지 예술가 이종국(56)씨.

그를 만나기 위해 대청호를 끼고 있는 마불갤러리(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문의시내2길 20-12)에 들어섰을 때, 그는 뜬금없이 새 이야기를 꺼냈다.

“새는 몸이 풀리면 소리가 달라져요. 생명이 깨어나는 것이지요. 사람이 먹이를 공급해 주는 닭과 달리 자연에서 먹이활동을 스스로 하는 새는 자연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요. 그래서 한땐 새 작업에 매달렸었지요.”

그는 요즘 문의면 소전리 벌랏마을에서 나와 갤러리에서 작업을 하며 지내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새소리가 들린다고 했다. 그리고 부챗살처럼 작업장 가득 번지는 햇살. 그 속에서 종일 작업을 한다고 했다. 시끄러운 세상과는 담을 쌓은 듯 아침 새소리와 햇살에 푹 빠진 남자. 귀촌한 이웃이 만들었다는 향 좋은 구절초 차 한 잔을 앞에 놓고 그가 사는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들어올 때 2층에서 기계소리가 들리던데요.

“부채를 만들고 있었어요. 날씨가 오락가락하니까 밖에서 작업하는 것이 힘들어서. 제 작업은 계절하고 관계가 있어요. 부채재료가 대나무가 아니라 대청호에서 구한 억새라서 겨울에 채취를 하거든요. 새순이 나면 물이 오르니까 새 순이 나기 전에 재료를 준비해야 해요.”

-억새로 부채살을 만든다고요.

“대청호 주변에서 자란 억새 줄기를 손질해서 만드는데 색이 예쁘고 단단하고 부드러워요. 억새 술로는 털이개를 만들죠. 자연의 자료는 참 놀랍고도 엄청나요. 해마다 새로 자라니까 대단한 양이지요. 저는 지역에서 나는 재료를 이용해 생활도구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는데 계절별로 얻는 게 달라요. 사초라는 풀은 한지쓸 때 넣고 맷방석을 만들죠. 오동나무로는 문에 치는 발을 만들고... 그런게 옛날 사람들의 방식이었죠. 요즘은 지역地域을 가르치지 않아서 안타까워요. 아이들도 배우면 지역을 다 떠나죠. 정착하려 하지 않아요. 고향은 돌아오지 않는 곳이 됐죠.”

-대청호의 녹조에 대해 천착하게 된 것도 그런 관심이었나요? 한지 예술가가 녹조로 그릇을 만든다는 말을 들었을 때, 쓸모에 대한 획기적인 발상이 신선했거든요.

“녹조를 말하기 전에 저에겐 대청호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청호는 샘물이거든요. 당대의 우리만 먹는 물이 아니라 후손 대대로 누대에 거쳐 먹어야 하는 생명수인거죠. 저는 대청호야말로 창작의 원천, 생명을 만들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저도 전엔 녹조에 대한 반감이 많았어요. 여름철 호수를 파랗게 뒤덮은 녹조를 보면서, 해마다 그 녹조가 증가한다는 얘기에 나쁜 것이란 프레임이 강했었죠. 그런데 작가라면 적어도 어떤 선입견을 벗어나서 사물을 바라봐야 하는 것 아닌가요. 3년 전 어느 날인가 호수의 물이 빠진 곳에서 맨땅에 쭉 깔린 녹조를 발견했어요. 수분이 없으니까 말라붙었겠죠. 지저분했어요. 흙도 묻었고. 그런데 그것이 궁금했어요. 그래서 물에 넣어 흔들어 보니까 불순물이 다 빠지고 섬유질이 살아나는 거예요. 마치 머리카락 같은 섬유질이었어요. 냄새도 없고 순수한 이끼 같은 살아있는 생명이었지요. 저는 대청호에서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녹조의 섬유질로 그릇을 만들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아마 제가 닥섬유를 오래하지 않았다면 생각하지 못했을 거예요. 지속적으로 녹조를 연구했지요. 1년간 숙성시켜 검은색의 순수섬유질 성분을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을 종이와 섞어 보니까 놀랍게도 단단해지는 거예요. 사실 종이만으로 그릇을 만들 때는 어려운 점이 많았거든요. 그런데 녹조가 마치 흙같은 역할이라고 할까, 점력과 형틀 잡는 것을 도와주었어요.”

-녹조 연구가이자 녹조를 예술의 재료로 활용하는 최초의 전문가가 되셨군요.

“녹조나 억새나 그리고 닥나무로 만드는 한지나 저는 지역성을 중요하게 여기지요. 저의 작품은 모든 재료나 소재를 제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얻습니다. 그것이 작가로서 제일 쉬우면서 빠른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지역성이라는 말이 와 닿네요. 전시회에서 보았던 이 작가의 나무젓가락이 생각나네요.

“이어령 교수님 강의를 들었는데 ‘고려가요 달거리 노래에 12월 분디나무로 깎은 젓가락 내 님앞에 놓았는데...’라는 구절이 있다며 분디나무가 무슨 나무인지 알아보라고 하셨어요. 분디나무는 산초山椒나무예요. 초정약수의 초椒자가 산초 초자거든요. 산초는 톡쏘는 향이 있고 방부제 역할을 해서 음식을 덜 상하게 하지요. 그 나무로 젓가락을 만든 우리 조상들은 옛날부터 과학을 알고 있었던 거예요. 산초나무를 구해 젓가락을 만들어 보았지요. 굽은 가지를 그대로 살리니 손에 감기는 맛이 좋은 젓가락이 되더군요.”

-‘마불’이라는 호는 어떻게 갖게 된 것인지요.

“원래 제 별명이 마부였어요. 마차처럼 생긴 차를 끌고 다닌다고 해서지요. 천막으로 지붕을 만든 오픈카였는데 군용으로 징집된다고 해서 세금이 쌌어요. 그 차에 먹을 것과 텐트 등을 싣고 시간만 나면 돌아다녔어요. 산능선에 올랐다가 눈이 안녹으면 텐트치고 자고 날 좋으면 내려오면서 스케치를 하러 다녔죠. 그런데 돌아다니다가 가축을 만나면 가축들이 저를 잘 따르는 거에요, 저는 어릴 때 소나 염소를 키워봤으니까 어디를 만져주면 좋아하는 줄을 알고 있었죠. 스케치할 때 같이 다닌 은사님이 그것을 보고 ‘평범한 부처처럼 살아라’며 ‘마불’이라고 지어주셨어요. 처음엔 무거워서 안쓰다가 이곳 갤러리 이름을 지으면서 쓰기 시작했죠. 그랬더니 대리석 갤러리인줄 아는 사람도 있네요.”

-고전적 질문 같지만, 젊은 나이에 어떻게 오지인 벌랏마을로 들어가고 이곳 문의에 정착하게 되었는지요.

“제 고향은 괴산 소수입니다. 전깃줄에 제비가 새카맣게 앉았고 개구리가 흔한 시골이었어요. 그런데 성장해서 자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을 때는 그런 풍경이 다 사라져 버렸어요. 대학을 졸업한 뒤 청주에서 미술입시학원을 운영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자연의 소재를 접하게 해주고 싶어서 그때부터 이곳 문의를 들락거렸는데,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입시 교육이라는 것을 알고는 지속적으로 할 수가 없었어요. 게다가 학원은 벽에 못이라도 박으려면 집주인이 쫓아와 뭐라고 해서, 저만의 독립된 공간이 절실히 필요했어요. 그때 어린 시절이 떠오르며 자연에 정착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굴 파고 집짓고 놀면서 내 공간을 만드는 꿈이 있었어요. 오지였던 소전리 벌랏마을을 알게된 것은 한 택시기사 덕이었지요. 시골을 묻는 제게 택시기사가 자기네 동네라면서 데리고 간 거죠. 구불구불한 비포장길을 한참 달려가니, 앞뒤는 막히고 하늘만 열려 있는 산골마을이 나왔어요. 맘에 들었죠”

-그래서 다 털고 들어갔나요.

“처음엔 왔다갔다 했어요. 빈집을 얻어서 수리를 하다가 냄새가 나서 그 집엔 못들어 가고 그러다가 홍신자 선생(세종출신의 세계적인 무용가)을 만나면서 학원을 접고 안성으로 따라갔지요. 당시 저는 북경대 대학원을 가려고 서류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부질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 포기했어요. 그렇게 안성에서 홍 선생님 작업을 돕다가 돌아오니 제 나이 30대 중반. 저를 책임질 나이가 되었더라고요. 그래서 벌랏으로 아주 들어갔습니다.”

그는 이곳에서 지금의 부인을 만났다. 인도와 네팔 등지를 돌며 요가와 명상을 하던 이경옥 씨가 지인의 소개로 그를 찾아온 것. 아름다운 자연을 매개로 둘은 사랑에 빠졌고, 아들 선우(중3)를 얻는다.

“벌랏에서 붙잡은 것이 종이였어요. 마을에 들어왔을 때 지장 紙匠(종이 뜨는 사람)이 두 분 계셔서 종이 만드는 법을 배웠는데 이거다 싶었어요. 그래서 3000평 쯤 되는 밭을 빌려 닥나무를 심고 종이 만드는 일을 시작했어요. 종이 한 장을 만드는 과정은 인내의 과정이지만 창조적인 일이고 또 치유의 과정이 되기도 합니다. 완성된 종이만 보던 사람들이 그 과정을 알게 되면 종이에 대한 생각이 달라져요. 닥나무를 삶아 껍질을 벗기고, 건조시키고, 잿물에 다시 삶고, 물에 헹궈서 방망이로 두들겨 분해하는 과정은 마치 구도자의 고행 같죠. 그렇게 만들어진 종이는 공장에서 만들어진 서양의 종이와는 비교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고 질기고 견고하죠.”

종이 이야기가 나오자 갑자기 그의 톤이 높아진다.

“서양의 종이는 색을 칠해야 하지만, 우리 종이는 스미고 번지고 젖어들어요. 음식도 우리는 절이고 담그잖아요. 스며들고 젖어든다는 것은 동화가 된다는 것이죠. 동화는 지역정서와 밀접한 관계예요. 아이들에게 스며들고 젖어드는 것을 가르쳐야 하는데 요즘 아이들은 칠하고 조립해서 완성하는 서양의 교육 방식에만 익숙해 있어요. 젖어들고 스며들면서 색이 변하는 아름다움은 알지 못해요. 아크릴이나 플라스틱처럼 원점으로 돌아오지 않는 화학적인 재료에만 길들여져 있는 게 안타까워요. 변하지 않는 것 그건 생태계에 문제가 된다는 거죠. 자연은 모두 원점으로 돌아가는 구조를 갖고 있거든요.

-애정으로 가꾼 그 닥나무들을 모두 베었다면서요.

“밭주인이 밭을 내달라고 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1년 정도 미루다가 20년 된 닥나무들은 모두 베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야생닥나무를 찾고 있죠. 다행히 땅을 뒤집지 않은 곳에는 아직 야생 닥나무들이 자라고 있어요. 우리나라는 닥나무를 관리하는 부서가 없어요. 산림청 관계자를 만나보니 재배하거나 관리하면 농업에 들어간다고 하고, 농업 관계자는 먹거나 재배하는 것이 농업인데 닥나무는 품목이 없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지금 90%가 수입으로 얻는 거죠. 우리 것은 10%밖에 안돼요. 닥나무 한 그루 갖기 운동도 해보았지만 사람들은 오래 걸리는 일엔 관심이 없어요.”

-나무를 벨 때 가슴이 아팠겠어요.

“나무를 베면서 아카이브로 남기고자 작가들을 초청했어요. 함께 닥나무를 베고 한지를 만들고, 염색을 하고, 한지 퍼포먼스를 하고 오픈스튜디오를 열었어요. 다행히 국내외에서 많은 분들이 프로젝트에 참여해 한지의 우수성과 예술성에 대해 새롭게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 작업은 충북문화재단 후원으로 <대청호를 품은 대지와 사람들>이라는 기록으로 남기게 되었고요.”

-종이에 대해 더 말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고대 이집트에서 기록을 위해 파피루스를 만들었듯, 한지는 우리 선조들이 기록을 하고 보존을 하기 위해 만들어낸 문화의 산물입니다. 우리 문화의 정체성이죠. 한지는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도구이자 문화였어요. 직지도 금속활자를 종이에 찍은 것이잖아요. 그러데 지금은 청주에서 핵심소재인 반도체가 만들어지고 있어요. 저는 이러한 것들이 모두 연결고리가 있다고 생각해요. 기록문화가 종이라는 뿌리로부터 첨단소재인 반도체로 연결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여기엔 인문학 배경이 있어야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 그런데 지금 우리 종이는 위기예요.”

-전시도 많이 하셨죠.

“국내 전시도 쉬지 않고 했고 유럽, 미국, 일본, 러시아 등 해외 초청전시도 다녀왔죠. 미국 UC얼바인에서 전시했을 땐 작품이 다 나갔어요. 얼바인대 학장이 학교에 적을 두고 작품을 하라고 제의를 했는데 답을 안했더니 이곳까지 다녀갔어요. 학생들을 이곳에 보내고 싶다며 우리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보였어요. 관심이 고마웠지만 이곳을 정리하고 떠날 수가 없었죠.”

-무엇을 더 하고 싶은가요.

“회화를 하다가 종이에 미쳤고, 대청호가 있는 지역에 빠져 생활공예를 하고, 아이들에게 문화예술 교육을 하는 등 나름대로 쉬지않고 바쁘게 살아왔어요. 그런데 여전히 아쉬운 것은 우리 종이에 대한 안타까움이에요. 값싼 외국산에게 자리를 내주고 사양길에 접어드는 것을 보면서 이것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 절실한데 역부족이에요. 지금 제게는 무엇보다 공간이 필요해요. 닥나무가 쌓여있고, 종이가 앉아있는 곳, 종이가 머무르는 공간을 박제가 아닌 살아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다는 꿈을 꾸고 있지요. 종이야말로 현대성이 있는 지속가능한 재료니까요.”

종이 얘기만 나오면 쉼표가 없이 말이 길어지는 이종국 씨. 종이는 그에게 예술의 혼이자 삶의 에너지다. 그런 그가 요즘 의기소침해졌다. 항암을 거부하고 몇 년째 병원에서 투병중인 부인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그는 하루에 2장 밖에 말릴 수 없는 종이를 뜨고, 묵묵히 작업을 한다. 2층 작업실에서 ‘하늘빛 빌려쓰기’를 하면서.

이종국 한지예술가·마불갤러리 원장
이종국 한지예술가·마불갤러리 원장

 




이종국씨 약력



*1964 충북 괴산출생

*1990 서원대학교 미술교육과 졸업

*1998 청원군 문의면(현 청주시 상당구)에 정착

*닥나무와 종이(주)대표

*문화예술 명예교사(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마불갤러리 원장



개인전

*1996 ‘삶의 노래’(가나인갤러리,마산)

*2003 설치 ‘솟대’(Wehiberg, 오스트리아)

*2008 한지공예초대전(한국공예관, 청주)

*2010 ‘Walk on the rice paper’초대전(T-Art센터, 베이징)

*2010 광주비엔날레 광주아트페어

*2010 제11회 장영실의 날 기념 전통문화부분 금상 수상

*2012 ‘종이에 달을 담아서’한국문화원초대전 (베를린,독일)

*2012 ‘Saves Life’초대전(UCIRVINE Modern Arts,미국)

*2013 ‘Papierkunst und-handwerk aus Korea’ 고슬라르시 초대전(고슬라르,독일)

*2013 ‘종이에 시간을 담아서’ 러시아인류박물관초대전(상트페테르부르크. 러시아)

*2014 LA 한국문화원 초대전

*2014 ‘한지, 자연의 결을 담다’(논밭예술학교, 파주 헤이리)

*2015 초대개인전(길담서원 한뼘미술관, 서울)

*2015 ‘종이에 길을 묻다’(한국전통문화전당, 전주)

*2016 ‘다시 한지에서’(마불갤러리, 청주)

*2017 충북문화재단 기획전시

*2018 호주 시드니 국제문화교류(한국문화원)

*2019 ‘종이를 품은 달’ (영인갤러리, 서울)

*2019 ‘종이를 품은 달’ (청주갤러리, 청주)



*저서

*<선우야, 바람보러 가자> (랜덤하우스)

* <지역작가와 농부> (2018)

* <대청호를 품은 대지와 사람들> (2019. 닥나무와 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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