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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길에 서서 / 조철호가 만난 사람 - 임각수 전 괴산군수
이 길에 서서 / 조철호가 만난 사람 - 임각수 전 괴산군수
  • 동양일보
  • 승인 2020.03.31 20: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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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마을에 성장엔진 걸어 화제 모았던 무소속 3선 군수의 ‘귀거래사’
중원대- 학생군사학교 유치, 산막이옛길-자연드림파크-수산식품거점단지 조성
임각수 전 괴산군수

겨울비가 내리던 지난 2월 28일 오전 10시, 청주교도소 정문이 열리면서 임각수(74) 전 괴산군수의 얼굴이 나타났다. 임 전 군수는 특가법상 뇌물수수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5년 형기 중 4년3개월을 복역하고 가석방으로 풀려난 것이다.

그로부터 꼭 한 달-.

꽃샘추위가 몇 차례 심술을 떨고 지나갔지만, 3월은 황홀한 봄기운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계절은 한껏 봄인데, 고향을 찾은 이 초로初老의 사내 가슴 속은 아직 설한풍雪寒風이 매운 것을 알면서도 많은 이들이 궁금해 하는 4년여의 옥살이와 ‘바깥세상’ 한 달 간 이야기를 듣기 위해 염치불구하고 직격 인터뷰를 단행했다. 당혹해하던 그는 오랜 세월의 친분을 저버리지 못해 세 차례에 걸친 방문 때마다 성의껏 응해 주었다. 인터뷰는 주로 그의 고향 밭 과수 전지작업장에서 이뤄졌다.



-지난 한달 간을 어떻게 소일하셨는지요.

“만기출소는 올 11월쯤인데 8개월 쯤 일찍 나오다 보니 오히려 당황스러운 일들이 생깁니다.(웃음) 나오자마자 괴산 읍내에서 칠성면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오봉산 아래 있는 300여 평의 밭에 집을 지으려 서둘고 있어요. 5월쯤엔 시작될 거예요. 그리고 태어나서 자란 고향인 이 사오랑이 마을에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밭의 과수들이 5년간이나 방치돼있어 매일 찾아와요. 전지剪枝하면서 보니 제멋대로 자란 나무들에게 여간 미안한 것이 아니 예요. 무슨 일로 어디 갔다가 이리되었노라고 일일이 설명할 수도 없고, 그저 ‘미안해, 미안해’만 뇌이면서 가지치기 작업을 합니다. 호두나무 대추나무 자두나무 배나무 등 되는대로 갖다 심어 200여 주쯤 되는데 한꺼번에 손을 대려니 작업량이 수월치가 않네요.”

-괴산주민들이 임 군수가 ‘감옥에서 나왔다는데 사는 곳도 모르고 전화도 되지 않는다’며 섭섭해 한다는데요.

“그렇게 되었어요. 군수 3선으로 10년간을 관사에서 살았고, 4년이 넘도록 교도소가 내 집이었는데 정작 갑작스럽게 나오다보니 막상 들어갈 집이 없더군요.(웃음) 궁리 끝에 처형이 사는 괴산읍내 아파트(동부주공아파트 102동304호)에서 방 하나 얻어 아내와 기거하고 있습니다.

제가 쓰던 전화는 없어진 지가 오래고, 되도록 아날로그로 살려고 일반전화(043-832-0897)를 새로 놓았어요. 핸드폰은 아내전화를 같이 쓰려니 불편하기는 한데 길들여지면 되겠지요.

심신이 안정될 때까지는 밭에 가서 일하며 ‘뇌물 군수’ 누명을 벗는 방도를 찾으려 합니다. 날이 갈수록 찾아오는 이들이 늘어 어쩔 수 없이 점심과 저녁 식사 때 만나는 약속이 늘어나네요.”

-출소 때 보니 약간 피로해 보일 뿐 건강상태는 좋은 것 같던데요.

“감옥은 가 본 사람만이 압니다. 그 안에서 견디는 일이란 밖의 사람들은 상상을 못해요. 더구나 본인이 누명陋名을 쓰고 들어와 억울한 옥살이를 할 수 밖에 없게 됐다는 절망적인 상태에서의 하루하루는 참으로 견디기 어렵지요. 저도 기대를 걸고 있던 대법원의 판결에서 조차 ‘특가법상 뇌물수수와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5년형이 확정 되자 제일먼저 떠오르는 생각이 ‘이런 세상 차라리 죽어버리자’는 생각이었어요. 죽음으로 결백을 주장하는 길밖엔 없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죽어야 할까를 고민하기 시작 했지요. 3개월간 줄곧 그랬어요. 굶어 죽는 방법부터 목을 매는 방법 등 치밀한 연구(?) 끝에 한 방법이 떠올랐어요. 그런데 문득 자식들이나 아내에게 줄곧 따라다닐 ‘뇌물군수 옥중 자살’의 새로운 누명을 벗을 길이 없더라고요. 그리고 무죄를 받았던 1심(2015년 11월 30일)과 유죄가 인정됐던 2심(2016년 5월23일)부터 대법원 확정판결이 난 2016년 11월25일까지 1년이나 살아온 옥살이가 아까워서 죽기가 억울하더라고요. 더구나 일주일에 6번의 면회 때 마다 괴산주민들이나 친지들이 매 회 3~5명씩 끊이지 않고 접견 와서는 ‘당신이 뇌물 받지 않았을 것을 우리는 다 안다’며 ‘눈 딱 감고 참아야한다. 그래야 이기는 것이다’라며 결백에 대한 믿음과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것이 자결을 포기하게 했지요.”

-‘1억 원 뇌물’ 사건이란 어떤 내용인지요.

“괴산에 있는 한 식품제조업체가 군수 선거운동에 보태 쓰도록 제공하기로 하고 그 회사 회장과 내가 저녁식사를 하는 시간에 전무라는 사람이 내 수행원에게 ‘군수님에게 전해달라’며 (현금 1억원이 든)인삼차 케이스를 줘 승용차에 실었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이 1심 재판(합의부)에서는 무죄판결, 2심에서는 유죄판결, 3심에서 확정 판결된 사건이지요”

-이 사건 시작부터 ’돈을 받은 사실이 없다‘라는 주장엔 지금도 변함이 없는가요?

“1억 원이라는 돈이 적은 돈입니까? 전해 받았으면 회장에게 ’고맙다‘는 인사라도 했어야 마땅하거늘 전달했다는 때로부터 수개월이나 흐른 뒤에 전달했다는 사람의 투서에 의해 사건화 되었고, 아무리 그런 사실이 없다고 주장해도 검찰의 기소내용대로 재판부가 판결을 했지요. 내가 감옥에 있는 동안 그 회사 회장이 ’아무래도 배달사고인 것 같다‘면서 ’용서해 달라‘는 편지가 왔어요. 감옥에 있는 동안 복수와 용서 등 별별 생각을 다했어요.

배달사고를 낸 전무라는 사람보다도 무고하게 죄를 만든 검사가 더 밉고, 기소내용의 심증만으로 내 인생을 망신창이를 만든 재판장이 더 미워서 이들에 대한 섭섭함으로 매일밤을 뒤척였어요. 이제는 그 돈을 전달했다는 전무라는 사람이 마음을 고쳐먹고 ’양심선언‘을 해 올 것을 간절하게 바라고 있습니다. 내 생전에 꼭 그렇게 되리라 믿습니다.”

-아직도 결이 삭지 않은 것 인가요?

“어떻게 결이 삭아요. 한 번뿐인 내 생애가 송두리째 망가지고, 괴산군민들의 명예가 얼룩진 이 사건이 쉽게 묻히거나 잊혀 질 것인가요? 내 결백함이 밝혀지지 못하면 눈을 감고 죽을 수가 없지요. 감옥 에서도 누명을 씌운 자들에게 보란 듯이 살아나와 내게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게하려고 남들보다 더 열심히 운동하며 한겨울에도 냉수욕을 하며 각오를 다져 왔어요. 무소속 3선 군수당선 때보다 더 열심히 더 세차게 심신을 단련했습니다. 사실이 아닌 것은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꼭 보여줄 것입니다.”

-교도소에 있을 때의 느낌 몇 가지를 든다면...

“우린 흔히 교도소를 ’살아서 가는 지옥‘이라 말하지요. 자유를 박탈당한 소외지역인 것은 맞지만, 우리 교도행정은 생각보다 선진국에 속한다는 생각입니다. 첫째는 교도관들의 인성이 다른 조직보다 더 인간적입니다. 되도록 수형자들의 입장을 살펴주려 애쓰는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합니다. 일상에서의 불편함이야 밖의 세상과 비교할 수 없지만, 한정된 공간과 하루생활의 불편함과 지루함을 덜어주기 위한 교정당국의 노력은 높이 평가할 만합니다.

전국이 같은 현상이겠지만, 청주교도소의 경우 시설에 비해 재소자가 너무 많아 생활공간-특히 잠자리가 어찌나 불편한지 밤이 오는 것이 두려울 정도입니다.

저의 경우는 나이도 들고 전직 군수라서 더욱 위로해 주는 교도관들도 많았고, 같은 재소자들도 예우를 해줘서 고마웠지요. 나와 아내가 모두 가톨릭 신자였는데 이번 일을 겪으면서 ’하늘은 모든 것을 헤아린다‘거나 ’신은 전지전능하다‘는 말이 허상인 것 같아 신앙을 포기했습니다. 없는 죄를 만들어 5년 씩 이나 옥살이를 시키는데도 ’하느님 감사합니다‘라는 것이 더 위선僞善이 아닙니까.

감옥에 있는 동안 군민들이 있는 내내 관심과 사랑을 보여주신 은혜로움이 태산만 같습니다. 면회를 오지 못하면 편지라도 보내 주신 수많은 분들께 살면서 그 고마움을 다 갚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어떤 지인께선 확정판결을 받은 후 수없이 자결을 고민할 때부터 가석방으로 나오는 전날까지 3년 남짓한 기간에 무려 1000통이 훨씬 넘는 편지를 보내주셨지요. 그 분이 해외출장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매일 한통씩의 편지를 보내주신 셈입니다. 이 같은 많은 분들의 사랑이 이 화사한 봄을 자유롭게 맞을 수 있도록 한 에너지 일 것입니다.”

-상처를 자꾸 건드리는 것 같아 미안합니다만, 사건의 발단이 된 그 전무라는 사람의 최근 동향은 아는지요.

“아직은 상세히 알아보지는 않고 있어요, 풍문에 60대의 나이인데도 몸이 좋지 않아 서해안 어느 섬에서 요양을 하고 있다고만 듣고 있습니다. 내가 출소했다는 소식을 듣고 생각이 깊어질 것이고, 그러면 1억 원의 배달 사고에 대한 양심선언이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싶어요. 어쩌면 ’위증죄‘의 공소시효(7년)가 지나야 되겠지요.”

-군수재임 10년 간 괄목할만한 사업들이 많지요?

“지역의 볼륨을 키우고 품격을 높이고자 중원대학과 육군학생군사학교 유치에 많은 공을 들였지요. 우리나라 장교들의 96%가 이곳에서 교육을 받고 임관하게 되는 장교의 요람이지요.

가장 신경을 쓴 사업은 아이쿱생협연대(회장 신복수)의 자연드림파크지요. 칠성면에 160만평 부지에 택지만도 40만평에 이릅니다. 전국의 유기농산물을 가공하는 제조시설과 유통을 하게되는 본거지가 될 것입니다. 식당은 물론 영화관과 병원까지 모든 편의시설을 갖추게 됩니다.상주 인구가 2500명 늘어날 것입니다.

아시듯 한국 걷는 길의 모델이 되는 ’산막이옛길‘은 세월이 갈수록 산수경관의 진가가 평가될 것입니다. 유기농엑스포도 유기농의 가치와 절실함이 눈길을 끌 것인데 이 행사로 괴산군수는

세계유기농지방자치단체의 자동직 회장이 됩니다.

문광면에 조성된 국립호국원은 연간 250만 명이 찾아들게 돼 이들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수산식품거점단지와 자연드림파크 등을 들리고 산막이옛길을 돌아본다면 괴산의 진면모를 보게되는 진객珍客들이 되겠지요.

그동안 명성을 쌓아온 절임배추와 절임과정에서 쓰고 남는 소금의 재활용을 위한 소금랜드도 교육용으로 유용하게 활용될 것입니다. 재임 때 심은 소나무 가로수도 세월이 갈수록 멋진 풍광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3선 군수의 중도 퇴임으로 아쉬운 사업들이 많을 것인데...

“군정이란 군수가 바뀌어도 추진하던 사업의 모든 행정적인 처리가 지속되는 것이어서 제가 하던 사업은 마무리가 될 것으로 압니다. 가장 신경을 쓰던 사업 중의 하나가 역발상의 표본이 될 수산식품거점단지입니다. 내륙도 충북의 산골마을에 웬 수산단지냐고 하겠지만 동해와 서해와 남해의 수산물들이 들어와 유통되는 최적지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수산물들이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가장 빠르게 집하集荷되어 신선하고 싸게 팔리는 이치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습니다. 더구나 강에서 나는 메기며 쏘가리 등 민물고기들 까지 곁들이면 괴산을 중심으로 청주,충주 등 주변의 주민들이 생선회 한 첨 먹으려 서해와 동해며 남해로 갈 이유가 없습니다. 주변의 시,군에서 불과 1시간 거리인데다 3해안에서 노량진시장으로 가는 거리의 절반인 곳을 지나칠 이유가 없지요. 제대로 시설만 갖추면 크고 작은 시민들의 각종 잔칫집 역할도 하게 될 것입니다. 먹을 것과 볼 것이 풍부하면 관광산업은 급물살을 타게 되지요. 괴산의 역동성을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좀 엉뚱한 질문이겠지만, 4.15 총선을 코앞에 두고 있는데 어떤 느낌이 드는지요.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만 몰입해 오던 입장이어서 거시적인 안목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번 총선은 종을 잡을 수가 없어요. 코로나 바이러스19의 위기와 겹친 선거여서 후보자나 유권자가 모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거나, 사삼과 사람의 만남을 애써 말리는 사회적인 현상들이 여론을 만드는 입을 틀어막는 듯한 분위기예요. 어떤 후보가 어떻다거나, 어느 정당의 정책이 옳다거나 그르다거나 하는 의사조차 허용되지 않는 듯해요. 더구나 신생정당들이 어지럽게 생겨나고 그 같은 소수정당들이 집권세력의 연장이냐 정권교체냐는 데 힘이 된다하니 셈수가 복잡합니다. 참 이상한 선거를 봅니다. 출소 후 한 달 내내 머릿속이 복잡해요.

그러나 확실한 것은 대한민국을 건강하게, 품격 있게 이끌어 갈 정권이 선택돼야한다는 것이지요. 그러기 위해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는 대 명제 앞에 각 후보들이 옷깃을 여며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당리당략에만 집착하는 것은 옳지 못하지요. 유권자로서 판단이 어려운 선거전을 봅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제 옥바라지를 하느라 고생들이 많았던 아내(김영선. 66)와 아들(경민.41.대전거주.회사원), 딸(현호.40.서울거주. 음악학원)과 자주 만나 생각을 정리하려 합니다. 자유자재로 쓸 많은 시간이 있으니까요.”

-착잡한 심경인데도 취재에 응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기쁜 일들이 기다리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동양일보 회장 . 시인







임각수林各洙 전 괴산군수는...



*1947년 11월 13일 충북괴산군 칠성면 외사리 사오랭이 마을 출생

*괴산 외사초-괴산중-괴산고-국민대 행정학과 졸



*농수산식품부 기획관리실

*국무총리실 산업경제담당-공직기강담당-사회복지담당

*대통령비서실 총무관리담당관-인사담당관

*행정자치부 이북5도위원회 사무국장-감사관실 윤리담당관-

노근리사건지원단장

*2006년 충북 괴산군수(40대-41대-42대, 무소속)



*1993년 대통령 표창

*2001년 녹조근정 훈장

*2011년 가장 일 잘하는 자치단체장1위(cjb)

*2011년 1회 대한민국 기록문화 대상(한국기록원)

*2011년 ‘올해의 인물’선정(동양일보)

*2013년 한국을 빛낸 자랑스런 한국인 대상(언론인연합협의회)



*주소: 괴산군 괴산읍 동부리 주공아파트 102동 304호

(043-832-0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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