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준식 충청북도문화재연구원 원장

단양 고수동굴
단양 온달동굴
단양 영천동굴
단양 노동동굴

[동양일보] 단양 지역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석회암 지역으로 지금까지 알려진 천연 동굴만 해도 181여개에 이른다. 태고의 신비를 간직한 채 수억 년에 시간에 걸쳐 형성된 이 동굴들은 년중 영상 14~15도의 기온을 유지하며 지금도 생명력을 간직한 채 다양한 동굴생성물을 만들어 내고 있다.

단양의 동굴들은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로도 지정되었는데, 고수동굴·온달동굴·노동동굴은 국가지정문화재인 천연기념물로, 천동동굴·영천동굴은 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이 밖에도 단양 금굴 유적과 구낭굴 유적은 구석기인들의 흔적이 남아 있는 선사시대 유적으로 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그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1. 영천동굴

최근에 단양군 매포읍에 위치하는 “영천동굴”에 대한 학술조사를 단양군과 한국동굴연구소가 실시하여 동굴의 규모와 특징, 생성물들을 다양하게 확인하면서 세간에 크게 주목되었다. 이 동굴로 인하여 단양지역의 많은 동굴들 중에서도 새로운 “수중동굴”을 추가하게 되었다. 영천동굴로 지칭되는 이 동굴은 소백산맥 줄기의 단양과 제천의 경계를 이루는 갑산의 동사면 아래의 해발 220m 지점에 자리하는 천연동굴이다.

새롭게 구조와 내용이 밝혀진 영천동굴은 육상구간이 175m, 수중구간이 335m, 공기층이 존재하는 수로구간이 225m이다. 지금까지 발견된 수중동굴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은 강원도 정선의 용소동굴이지만, 수중구간의 길이는 이곳 영천동굴이 가장 긴 것으로 알려졌다.

영천동굴은 수심이 낮은 곳은 1m 안팎이고 깊은 곳은 17m에 달한다.

규모가 웅장하지는 않지만, 종유석, 종유관, 유석, 석순 등 다양한 동굴생성물이 확인된다. 생물은 이끼장수노벌레, 귀뚜라미붙이, 관박쥐, 개구리, 나방 등 약 40여종이 서식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2. 고수동굴

고수동굴은 단양군 단양읍 고수리의 석회암층에서 형성된 천연동굴로 1976년 개발됐으며, 금마굴·까치굴·박쥐굴·고습굴 등의 별칭을 갖고 있다.

고수동굴은 남한강 지류인 금곡천에서 500m 떨어진 등우산 서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동굴 규모는 주굴 600m, 지굴 700m로 총연장이 1,300m이고, 수직 높이는 평균 5m 정도이다. 이 가운데 600m 정도가 관광객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동굴의 지질은 약 4~5억년 전 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였고. 동굴내부의 지하수 용식작용과, 이 지하수가 뚫고 흘러내리는 침식작용 등에 의해 현재의 모습이 만들어졌다. 동굴 안의 천장에는 고드름처럼 매달린 종유석들과, 바닥에서 원추형으로 위로 자란 석순, 흐르는 물에 의해 형성된 유석(流石) 등이 존재하고 있다.

특히 상층부에는 길이 10m에 달하는 대종유석이 수 십 개의 고드름을 이어붙인 모습으로 드리워져 있고, 동굴 안쪽에는 인공으로 다듬은 듯 한 기암괴석들이 늘어서 있어 마치 지하궁전을 방불케 하고 있다. 고수동굴은 경관이 매우 아름다운 데다가 미공개 구간에서는 훼손되지 않은 수많은 동굴생성물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이로 인해 고생대 석회암층과 이후 생성된 석회암동굴을 연구하는데 커다란 학술적 가치를 지닌다고 하겠다.

3. 온달동굴

온달동굴은 석회암 천연동굴로 단양군 영춘면 하리의 온달산성 밑에 위치하고 있으며 영춘남굴, 지산굴, 남굴 등의 별칭도 갖고 있다. 온달동굴은 전체적으로 북서-남동 방향으로 발달하여 있고, 북동-남서방향에는 지굴(支屈)도 존재하는 수평동굴이다.

동굴의 입구가 남한강변에 있어 강의 수위가 높아지면 동굴이 물에 잠기기 때문에 동굴에 사는 생물은 거의 찾아볼 수 없으며 민물고기만 서식하고 있다. 강물이 동굴 내부를 깎아내려 비교적 단조로운 형태이다. 천장에 고드름처럼 매달린 담백색의 종유석과 동굴 바닥에서 원추형으로 위로 자란 석순이 발달되어 있다.

온달동굴에 대한 역사적인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 에 처음 보인다. “성산은 현 남쪽 3리에 있는데 진산이다. 아래에 석굴이 있는데 높이가 11척 남짓이고 넓이가 10여 척쯤 되며 깊숙이 들어가 끝이 없고 물이 철철 나와 깊이가 무릎에 닿는데 맑고 차가워 얼음과 같다고 하였다” 성산은 지금의 온달산성이고 석굴은 지금의 온달동굴이다.

온달동굴은 『여지도서』 , 『대동여지도』에는 ‘석굴’로, 『해동지도』에는 ‘남굴’로 표기되어 있다. 조선 정조 때의 인물인 신광하는 온달동굴을 체험한 후 『사군록』 에 기록을 남겼고, 추사 김정희도 온달동굴을 체험하고 남굴(南窟)이라는 시를 지어 『완당전집』 제 10권에 전해지고 있다.

온달동굴은 고구려의 온달과 평강공주가 함께 기거했다는 이야기와 함께 온달의 누이동생이 온달산성 쌓는 것을 도와주기 위해 이곳의 돌을 깨서 나르다보니 굴이 생겼다는 전설이 구전되고 있다. 동굴의 내부구조는 비교적 단순한 편이나 지질학적으로 연구 가치가 높다.

4. 노동동굴

노동동굴은 단양읍 노동리 일대의 석회암층에 형성된 천연동굴이다. 이 동굴은 국내에서 손꼽는 대형 수직동굴의 하나로, 40~50°의 급경사를 이루고 있으며 원줄봉에 위치하고 있어, 원줄굴이라는 별칭도 갖고 있다. 지층은 고생대 초기의 석회암층에 속하며, 4~5억 년 전부터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동굴 속에는 천장의 물방울이 고여 만들어진 종유관, 천장에 고드름처럼 매달린 종유석 동굴 바닥에서 원추형으로 위로 자란 석순, 종유석이 성장하여 돌기둥이 된 석주, 접시 모양의 지형이 계단 형태를 이룬 석회화단구, 흐르는 물에 의해 모양 등이 나타난 유석, 동굴산호 등 2차 생성물이 비교적 잘 발달되어 있다.

동굴 내부에는 용을 닮은 ‘용두암’, 신라 성덕대왕 신종과 비슷해 이름 붙여진 ‘에밀레종’, 사람 손가락 모습을 하고 있는 ‘손가락 바위’, 폭포수가 흘러내리는 듯한 ‘지하백옥 폭포’ 등 자연이 만든 창조물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또한 동굴탐사 당시 내부에서는 토기 파편 일부가 발견된 바 있다. 이와 관련하여 임진왜란 당시 주민들의 피난 흔적이라는 설과, 경상도와 충청도 일대에서 활약했던 의병들과 관련된 흔적이라는 구전이 전해지고 있다.

「1872년도 지방지도」에는 노동리 마을 아래에 큰 동굴의 모습이 뚜렷하게 그려져 있고, 동굴 입구는 ‘굴(窟)’로 표기하였다. 인근에 고수동굴과 천동동굴이 있지만 고문서와 고지도에서 기록이 보이는 것은 노동동굴이 유일하다. 노동동굴은 종유폭포, 석주, 석순 등의 2차 생성물이 잘 발달되어 있어 지질학적으로 연구 가치가 높고 내부 경관도 매우 수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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