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김미나 기자]한국 근대 문학의 선구자, 포석 조명희(1894∼1938) 선생의 삶과 문학을 재조명하기 위한 9회 ‘포석 조명희 학술 심포지엄’이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비대면으로 열렸다.

사상 초유의 비대면 심포지엄은 5명의 토론자들이 이메일을 통해 각자의 주제를 발제하고, 이를 토대로 좌장을 맡은 김승환 충북대 교수가 덧붙여 말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이번 심포지엄은 강찬모 문학평론가의 ‘포석 조명희 시에 나타난 고아의식 소고’, 김진석 서원대 명예교수의 ‘소설을 중심으로 한 궁핍의 사회학과 응전의 논리’, 김문갑 철학박사의 ‘조명희의 현실인식과 문명비판’, 정연승 소설가의 ‘조명희 소설에 나타난 인물 유형 연구’, 김주희 나사렛대 교수의 ‘포석 조명희 소설의 ‘공간’ 탐색’ 등 5가지의 주제로 발제가 이뤄졌다. 심포지엄의 내용을 싣는다. <편집자>


● 토론 (가나다순)

△강찬모 문학평론가·문학박사·포석조명희문학관 근무
△김문갑 철학박사·한국고전번역원 고전번역가
△김주희 침례신학대 겸임교수·나사렛대 교수·문학평론가
△김진석 서원대 명예교수
△정연승 소설가·도서출판 한솔 대표.

● 좌장
△김승환 충북대 명예교수·충북문화재단 대표이사

●정리 김미나 동양일보 기자
 

 

▷김승환 교수

“2020년은 문학만이 아니라 모든 예술과 모든 영역에서, 새로운 이정표가 놓인 해입니다. 새해 벽두에 찾아온 바이러스는 인류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고, 인류의 미래를 새롭게 바라보도록 했지요. 이로 인하여 모든 생각과 형식이 바뀌었는데, 문학예술도 예외가 아닙니다. 아마도 코로나 바이러스로 가장 힘겹게 사는 사람들이 작가와 예술가들일 것입니다. 이번 <포석 조명희문학제>의 학술 부문 역시,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했는데요, 그것이 비대면 학술심포지엄입니다. 비대면이지만 가상(virtual)은 아니어서 다소 위안이 되기는 합니다. 올해는 특히 몇 분이 발표하고 함께 토론하는 다원화 다방향의 실험을 해보고자 합니다. 한편 올해는, 오랜 공을 들인 <포석 조명희전집>이 간행되어 새로운 정본(canon)을 확정할 수 있어서 뜻깊은 해입니다. 이번 전집은 연구자와 전문가도 참고할 수 있고 대중독자도 읽을 수 있도록 교정하고 편집한 정본입니다. 그러므로 1959년 옛 모스크바의 소련과학원에서 출간한 <포석 조명희 선집>을 제1정본, 이번 출간된 <포석 조명희전집>을 제2정본으로 명명하면 어떨까요? 그러면, 비대면 학술심포지엄 첫 번째 발제와 함께 하시겠습니다. 그간 포석 조명희 연구에 매진해온 평론가 강찬모 선생께서 새로운 연구 ‘포석 조명희 시에 나타난 고아의식 소고’를 발표하시겠습니다.”

 

 

▷강찬모 문학평론가

“그동안 한국 근현대문학과 문학사는 반도 중심의 협소한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일제에 대한 ‘저항문학’으로 좁혀보면 더욱 왜소한 게 역사적 사실이죠. 포석은 일제 강점기의 암울한 현실에서 동시대의 다른 시인들이 보여주었던 개량적이거나 소극적인 현실대응과 비교해 볼 때 뚜렷한 차별을 지닌 작가입니다. 포석이 문학사에 끼친 공로는 그 선구적 업적으로 이미 증명이 된 일입니다.

이와 연관된 ‘망명’은 국내에서 자유로운 창작활동이 불가능한 현실에서 선택한 고뇌에 찬 결단이었습니다. 특히 ‘디아스포라’의 삶은 문학을 초월 우리 문화의 영토를 대륙으로 확장 상상의 지평을 넓혔다는 데에 문명사적 의미를 갖습니다.

본고가 주목한 것은 포석의 ‘시’입니다. 그의 지사적인 삶과는 다르게 망명 전 포석의 시에는 ‘고아의식’이 나타난 시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고아의식이 현실을 우회하거나 소극적으로 반응하는 부정적인 태도가 아니라는 점이에요. 궁극적으로는 현실대응력을 강화하기 위한 즉, 고아의식으로 촉발된 상실감이 현실인식을 단련하기 위해 치열한 내적 모색의 발전적 과정임을 3가지 소제목으로 분류하여 천착했습니다. 우리 문학에서 포석과 같이 정서의 이완을 통해 보다 심화된 실천성을 획득한 대표적인 시인으로 한용운과 윤동주 등이 대표적인데 관련하여 착목(着目)해 볼 부분입니다.”

#한국 근현대문학의 업적 연구 필요

“포석 문학의 앞으로의 과제는 한국 근현대문학에서의 선구적 업적을 알리고 연구하는 일입니다. 이러한 일은 망명 후 연해주에서 유실된 창작물을 발굴하며 그의 망명문학을 온전히 우리 문학사의 중심으로 복원하는 일과 동시에 병행할 때 배가될 것입니다.”



▷김승환 교수

“강찬모 평론가께서 포석 조명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하셨군요. 문명사적 관점과 정신분석적 관점에서 고아의식을 분석한 것은 상당히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2년 전 타계하신 김윤식 선생님께서 국가상실(國家喪失)의 식민지 민중은 모두 고아의식(孤兒意識)을 가지고 있다고 진단하셨었는데, 같은 맥락 위에 정신분석을 더하여 흥미로운 해석을 해 주셨습니다. 작품 속에서 적극적 대결의식을 추출한 것 역시 음미할만한 해석입니다. 감사합니다. 그다음, 서원대학 명예교수이신 김진석 교수께서 발제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목은 소설을 중심으로 한 ‘궁핍의 사회학과 응전의 논리’입니다.”

 

 

▷김진석 교수

“만 44세로 생을 마감해야 했던 조명희의 생애는 파란만장 그 자체였습니다. 더구나 조명희의 죽음은 그가 정신적인 요람으로 인식했던 사회주의 종주국인 소련의 공권력(KGB)에 의하여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단순한 아이러니를 넘어서 세계 지성사의 비극이었죠.

1920년대 전반기까지 시와 희곡의 창작에 몰두했던 조명희는 ‘땅속으로’(1925)를 발표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소설 창작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삶의 경험을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문학적 양식을 끊임없이 탐구한 결과입니다. 그 중에서도 ‘낙동강’ 이전의 작품세계는 식민지의 궁핍한 생활상과 지식인의 좌절의식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러한 작가의 비평적 태도는 감상주의 일변도였던 당시의 한국문단에 리얼리즘에 기반을 둔 빈궁문학의 확립과 지식인소설의 제시라는 문학사적 의의와 직결됩니다.

‘낙동강’의 주인공 박성운의 반일투쟁은 그가 사상적 기저로 삼고 있는 계급의식과 민족의식이 통합된 양상으로 나타납니다. 이 과정에서 박성운의 죽음은 파벌투성이인 사회운동 단체들의 통합의 계기가 되죠. 그런 만큼 민족적 선결 과제 해결을 위한 시발점이 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데올로기의 고양을 위한 저항의 변증법뿐만 아니라 반일투쟁의 새로운 지향점을 제시한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낙동강’은 민족 해방에 대한 낙관적 전망과 당위성의 관점에서 일제에 대한 저항의식과 정치적인 응전력을 새롭게 제시한 작품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훌륭한 작가는 지역의 자부심

“조명희의 문학적 편력은 시 · 소설 · 희곡 · 수필 · 평론 등 모든 장르에 걸쳐 있습니다. 희곡 <김영일의 사>, 시집 <봄 잔디밭 위에>, 소설 <낙동강> 등이 그 대표적인 예로 이들 작품은 각 장르별로 새로운 문학의 길찾기에 해당됩니다. 그런 만큼 한국근대문학의 형성 과정에서 선구적인 업적을 남긴 작가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조명희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이루어진 것은 해금 조치가 이루어진 1990년 전후부터였습니다. 이 시기를 기점으로 활발한 논의와 연구가 이루어져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지만 대부분이 몇몇 대표 작품에 한정되어 있어요. 특히 러시아에서 창작된 작품에 대한 연구는 전무한 실정입니다. 이에 대한 연구가 체계적으로 이루어질 때 그의 문학적 자장에 대한 영역도 넓혀질 것입니다.

훌륭한 작가는 그 지역의 중요한 문화 유산이자 자부심입니다. 소중히 가꾸고 사랑할수록 빛나는 보석이 됩니다. 이번에 동양일보와 포석기념사업회에서 발행한 <포석 조명희 전집>은 그의 문학 연구에 좋은 길라잡이가 되리라고 봅니다.”



▷김승환 교수

“김교수님께서는 포석의 서거를 지성사의 비극으로 표현하셨는데요, 시적이면서 적절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한국근현대문학 작가 중 유일하게 총살로 타계한 포석의 죽음은 우리 모두의 죽음입니다. 왜냐하면, 일제식민지하에서 유리걸식하거나 민족해방의 꿈을 안고 연해주로, 북간도로, 북해도로 이주한 것은 민족 모두의 고난이기 때문입니다. 유랑하던 조선인의 비극적 운명 중, 가장 극적인 죽음이 바로 포석의 타살이지요. 그리고 김교수님의 제안 말씀대로 그런 포석의 정신을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연구에 좀더 심혈을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다음은, 철학적 관점에서 현실인식을 분석한 김문갑 박사님의 ‘조명희의 현실인식과 문명비판’ 발제입니다.”

 

 

▷김문갑 박사

“조명희의 시 ‘인간초상찬’은 <성경> ‘창세기’를 배경으로 인간의 원초적 아름다움을 예찬한 작품입니다. 신이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한 인간. 어찌 완벽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지만 인간은 신의 금지(Taboo)를 어긴 죄로 낙원(樂園)에서 쫓겨났고 아름다움 또한 잃었습니다.

현대인에게는 별다른 감흥을 불러일으킬 것 같지 않은 최초의 인간을 조명희는 가장 아름다운 언어로 불러냅니다. 왜 그랬을까요? 무엇이 그런 감흥을 불러일으켰을까요?

‘인간초상찬’에서 그리고 있는 아름다운 인간은 선악을 알기 이전의 인간을 가리킵니다. 선과 악은 인간의 본질과 본질 아닌 것을 가르는 기준입니다. 여기에는 인간이 선악을 알게 되면서 자신의 본질을 잃게 되었다는 문제의식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조명희 작품에서 선과 악은 문명을 대표하는 주요한 개념입니다. 문명사는 규모의 거대화와 함께 이루어져 왔어요. 가족이 씨족이 되고, 씨족은 부족이 되고, 부족은 다시 국가로, 그리고 거대제국으로 확대되어온 역사가 곧 문명발달사죠. 그것은 반복되는 전쟁과 정복을 통해 거대한 지배구조를 세워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동시에 그 규모에 맞춰 법과 제도가 정비되고, 새로운 철학과 종교가 등장합니다. 지금도 이런 문명의 거대화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선악은 이 모든 과정에서 종횡으로 활약합니다. 정복 전쟁에서도, 법의 시행에서도, 특히 철학과 종교에서는 매우 중요한 개념입니다. 대규모의 전쟁은 대개 악을 정벌하고 선을 행한다는 명분으로 수행되었습니다. 신의 이름으로, 사랑의 이름으로 대량살육이 자행되곤 하였죠. 선악만큼이나 인간들을 조직하는데 효과적인 수단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문명은 선과 악이라는 두 실로 촘촘히 짠 그물인 셈이죠.

조명희는 문명이 어떻게 인간을 조직하고 노예화하는지, 정확히 꿰뚫어 보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동경 유학에서 다시 만난 니체를 통해 문명에 대한 통렬한 비판의식을 키워갔을 것입니다.

조명희의 비판의식은 실상 니체를 알기 전부터 내재해 있었습니다. 그는 어려서부터 유교 경전은 물론 노자와 장자, 그리고 불교까지 두루 섭렵하였습니다. 특히 도교나 불교와 같은 비주류 사상은 구한말 유교적 지배체제의 모순을 몸소 겪으며 더욱 짙게 잠재되어 있었습니다. 그렇게 속 깊이 머물고 있던 비판의식이 니체를 만나며 의식의 표면으로 구체화되었던 것입니다.

비록 공부를 다 마치지 못한 귀국길이었지만, 조명희는 열정에 불타고 있었습니다. 인간해방! 일체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그의 가슴은 온통 이런 단어들로 뛰고 있었죠. 그는 수많은 작품들을 단숨에 써 내려갔습니다. <파사>에서는 동서고금의 넓고 깊은 지식을 종횡으로 엮어 문명의 허구성을 전면에 드러내었습니다. 종교와 사상이 선과 악의 이름으로 어떻게 인간의 주체성을 억압하는지, 끝내는 무엇을 위해 혁명해야 하는지, 그 구조와 당위를 천명하였습니다.

자연 그대로, 그 자체로 아름다운 인간, 신의 이름을 빌리지 않아도 충분히 완전한 인간들이 사는 세상. 그런 세상이 조명희가 꿈꾸던 세상이었습니다. 그곳을 향해 그는 망명을 선택하였고, 기꺼이 차가운 동토를 걸어갔습니다.”

#누구라도 쉽게 접근할 수 있기를

“한 작가의 문학세계를 널리 알리려면, 그의 작품을 읽고 이해하는 데에 큰 장애가 없어야 한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처럼 처음부터 가독성(可讀性)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은 작품이라면 모를까, 일단 문학은 쉽게 읽히는 것이 좋습니다.

조명희의 작품은 상당수가 난해합니다. 난해함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옛스런 표현과 압축된 어휘도 중요한 요인입니다. ‘윤생(輪生)의 인연(因緣)의 마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독자는 많지 않을 것입니다. 더구나 잘못된 해석이 붙어 있다면 이해가 아니라 오해하기 십상입니다.

이 시구에서 ‘윤생’은 수레바퀴처럼 생노병사를 되풀이하는 인생, 혹은 그런 삶들의 집합을 뜻합니다. 불교에서 끌어낸 조어(造語)에요. 불과 세 마디 일곱 글자에, 수레바퀴처럼 뭇 생명들이 태어났다가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기를 되풀이하는 와중에 어쩌다 인연이 되어 서로 만나 하나의 삶을 이룬다는 뜻을 담았습니다. 이렇게 압축된 표현은 조명희 문학의 백미인데..... 다만 그 맛을 즐길 수 있는 독자가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무튼 한자식 조어와 옛스런 표현을, 현대식 표현으로 바꿔주어야 독자층이 넓어질 것입니다. 물론 원문의 맛과 번역의 당위 사이에서 많은 고민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그래도 시도는 해 봐야 하지 않을까합니다.”



▷김승환 교수

“김 박사님께서는 인간의 주체성과 타자성, 그리고 주객관계를 바탕으로 한 인간해방에 초점을 맞추셨습니다. 이어서 포석은 선악의 원초적 문제를 직관하고 있었다고 분석하셨습니다. 또한 조명희의 비판의식은 식민지사회만이 아니라 전근대사회의 여러 모순에서 싹텄으며 니체를 비롯한 사상가들의 영향으로 자유와 해방을 희망했다고 해석하셨습니다. 그간 문학연구자들이 가지지 못했던 철학적 관점으로 조명희연구에 의미를 부여하셨습니다. 문학연구자에게 많은 참고가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그 다음은 소설가 정연승 선생의 ‘조명희 소설에 나타난 인물 유형 연구’입니다.”

 

 

▷정연승 소설가

“조명희가 소설을 창작했던 한국의 1920년대는 한 마디로 암흑기였습니다. 조명희는 이러한 암울한 시대를 온몸으로 겪으며 동시대 문제를 소설의 과제로 삼아왔습니다. 즉 식민지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소외된 지식인들과 노동자 농민들의 삶이 여러 복합적인 사회문제와 관련을 맺고 있습니다. 소설과 당시 사회의 특성을 감안하더라도 조명희의 작품에 등장하는 작중인물들은 하나같이 중심에서 밀려나 주변인으로 전락한 인물들입니다. 근대사회로 진입하는 시기에 사회의 주체적인 인물로 살아가기 위해 외국에 유학까지 갔다 온 지식인들은 주류사회로 편입이 되기는커녕 실업자로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농민들 역시 대대로 부쳐오던 자신들의 땅을 빼앗기고 소작인이 되거나 고향을 떠나 도시노동자가 되지만, 역시 힘겨운 생활의 연속이입니다. 그리고 아직도 봉건주의 가부장제가 팽배한 사회에서 경제력을 상실한 가장들로 인해 겪는 고통은 고스란히 여성들이 겪게 되죠.

본고에서는 남성들의 능력 부재로 인한 여성들의 사회진출 과정에서 어떤 변화의 과정을 거치고 있는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를 위해 조명희가 남긴 12편의 소설 중에서 여성인물들의 특성이 그런대로 드러난 작품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그 결과, 크게 세 가지 유형의 여성 인물로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첫째, 가부장제의 관습에 함몰되어 직접적인 해결 노력보다는 가장에게 의지하려는 여성들과 둘째, 남성 중심주의의 종속된 삶에서 벗어나 가정의 어려움을 스스로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이는 여성과 셋째, 남성과 가정이라는 미시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세상의 변혁을 추구하는 여성들이었습니다.

이러한 여성들의 탈주 시도는 그동안 남성 중심주의에 의해 주변부로 밀려나 억압되고 종속된 삶을 살아왔던 여성들이 자신들의 세계를 구축하며 점차 우리 사회의 전면에 등장하는 발판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습니다. 나아가 조명희 소설이 당시 다른 작가들의 작품과 변별력을 지니는 것은 여성에 대한 시각입니다. 당시 대부분 작가들의 작품에 등장하는 여성들에게서는 주체적인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주도적인 남성 인물에 비하면 여성들은 종속적이거나 부수적인 존재로만 나타나고 있어요. 그러나 조명희의 소설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남성 위주 사회의 관습과 종속적인 삶에서 탈주하여 세상의 변혁까지 주도하며 적극적인 현실참여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는 이후 한국소설문학사에서 여성의 존재를 한층 더 격상시키는데 중요한 시발점이 됩니다. 이러한 조명희의 여성에 대한 진일보한 시각은 이후 다른 작가들의 여성에 대한 인식에도 다양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점 또한 조명희 소설이 한국문학사에서 지니는 의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연극·음악·미술 등 다양한 방법으로 포석 알려야

“지금까지 조명희에 대한 연구는 그의 문학작품을 중심으로 소수의 연구자와 관련된 문학단체들에 의해 진행되어왔습니다. 그 결과 조명희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은 아직 미미하기만 합니다. 작가는 당대의 사회 병폐현상을 간파하여 세상에 알리고 모든 사람들이 편안하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견인차 역할을 합니다. 그것이 작가의 고귀한 뜻이자 숙명입니다.

그 뜻을 알리는 것은 후학들의 할 일입니다. 그동안 여러 가지 시대적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그동안 조명희의 문학정신을 널리 전파하는 데는 미흡한 감이 있습니다. 기념관을 짓고 연례적인 행사도 해야 하겠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은 조명희라는 작가의 정신을 널리 알리는 작업이 더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명희의 문학작품을 일반인들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고, 그들이 조명희라는 작가에게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연극으로도 음악으로도 미술로도 형상화시키는 작업을 시도해보는 것은 어떠할까 제안해봅니다.”



▷김승환 교수

“정연승 작가께서는 소설가의 눈으로 인물을 분석하셨습니다. 타자화된 여성을 민족의 주체와 사회의 주체로 설정해야 한다는 소설가적 인물창작론 분석이었습니다. 특히 남성지배구조 속에서 어려운 삶을 살았던 여성인물을 분석하여, 조명희 소설의 주변부적 시각을 살펴보셨습니다. 발전방향으로 말씀해주신 조명희의 작가정신을 대중들이 가깝게 느끼도록 해야 한다는 제언,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정선생께서는 소설가이시도 하니, 포석의 뒤를 잇는 좋은 작품 부탁드립니다. 다음은 김주희 교수님의 ‘포석 조명희 소설의 ‘공간’ 탐색‘입니다.”

 

 

▷김주희 교수

“소설은 현실의 잡다함을 배제하고 인물이 살아가는 시간과 공간을 정교하게 직조합니다. 인간에게 시간이 운명적, 숙명적 조건이라면 공간은 상대적으로 선택적 조건이 되죠. 시간에 대한 최대치는 시간 안에서 생기는 변화의 희망, 공간은 신체가 처할 장소를 선택가능하다는 자유와 관련됩니다. 시간 중심 사유는 원인과 결과의 인과를 추적하기에 유리하며, 공간 중심 사유는 방식과 과정을 세밀하게 살피기에 수월합니다.

“그러면, 네미······, 우리 조선 사람은 살 곳도 없고 갈 곳도 없구나!”

포석 소설 세계의 상황입니다. 구체적 장소는 인물이 처한 실존을 표상하는데 포석 소설의 인물들은 공간을 갖지 못해요. 이 현실은 단편마다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가족들은 집을 가질 수 없고, 개인은 방을 가질 수 없죠.

기존의 ‘공간’이나 ‘자리’ 개념에 여건과 상태·가치를 더해 ‘자리’의 측면에서 보면 단편마다 반복되고 변주되는 요소들을 포괄할 가능성이 생깁니다. 소설에서 ‘자리’는 개인의 위치, 지위라는 면과 집, 방, 땅, 같은 정주의 조건들, 마땅히 지켜야 할 됨됨이로 제시되기도 합니다. 인물들은 어느 것에서도 안전하지 못해요. 임시 거주는 정주가 아니라 이주의 한 과정에 놓여 머물지만 떠나야 하고, 떠난 곳에서도 떠도는 불안에 놓여있죠. 이주자는 불안하고 취약합니다. 장소애를 형성할 수 없는 인물들은 장소상실로 사람자리의 상실에 몰립니다. 사람다운 삶, 사람다운 생각, 사람다운 생활이라는 사람의 자리는 위협받습니다. 삶은 수치스러운 단계로 떨어져 가장 없이 거지로 떠돌거나 가장은 아내에게 버려집니다. ‘사는 자리’와 ‘사람 자리’와 동일시됩니다. ‘자리 탐색’은 ‘낙동강’에서 ‘자리-이야기 되기’로 종합됩니다. 비극적 영웅 면모를 띠는 ‘성운’의 완전한 자유는 공간의 시간화로 나타납니다. 희망과 삶이 유산으로 남아 성운의 존재는 공간적 자리에서 시간적 자리로 그가 하나의 ‘이야기 자리’가 됩니다. 그 이야기는 모두에게 공유되는 희망의 이야기이며, 로사의 삶은 그 희망을 만드는 이야기 만들기, 자리 만들기가 됩니다.

작중 세계 인물들의 ‘자리찾기- 자리되기-자리 만들기’는 실재 세계 작가 포석의 ‘이야기 발견-이야기되기-이야기 만들기’에도 적용됩니다. 작가는 작품처럼 실제 삶으로 이야기를 발견하고 새로운 이야기거리를 발명해 내는 문학사의 이야기 자리가 되는 것이죠. 작가가 성운처럼 떠나 버렸지만 떠나간 로사는 아직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이야기는 그쳤지만 끝나지 않았고 아직 해야 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환경의 압제에서의 자유와 미래에 대한 희망의 이야기가 남아있습니다.”

#포석 소설은 자유와 희망 이야기

“포석 소설은 자유,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정치나 이념은 그 시기, 그 시대를 해소할 대안으로 제시되며 다다르려는 방법의 속성을 띕니다. 지향을 향한 포기, 추구, 좌절, 성공 이야기는 참혹하기도 아름답기도 합니다. 포석의 문학이 시대를 넘어 수용될 소지는 여기에도 있습니다. 정치나 이념의 경계를 가로질러 개인이 희망을 품을 ‘자유’, 자유로울 ‘희망’은 모든 인생의 기본 명제입니다. 시대의 관습, 이념의 경계에 따라 방법은 달라질 수 있고 수용과 배제의 방식으로 수용될 수 있지만 그 도정을 가는 이야기는 언제나 필요합니다. 모든 시대 모든 시기를 관통하는 가치는 근본적일 수 밖에 없는데 그걸 찾는 것, 찾을 수 없으면 만드는 것, 혼자서 만들 수 없으면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들을 모색한 포석의 이야기들은 근본적 가치를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김승환 교수

“김 교수님께서는 조명희 문학의 공간을 장소성의 관점에서 분석하셨습니다. ‘낙동강’을 비롯한 조명희 소설의 ‘장소상실’ 개념은 날카로운 관점이고 또 새로운 해석입니다. 그리고 포석문학에서 자유와 희망을 읽어내시면서 탈정치 탈경계의 지표를 제시하셨습니다. 시간과 공간이 어떻게 사유(thought)되고 연장(extension)되는가를 분석한 김교수님의 글, 여러 면에서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러면 21세기 우리의 자유와 해방은 무엇이어야 할까요? 함께 생각해 보시지요.

이상 다섯 분의 지상발제를 마쳤습니다. 올해는 다섯 분의 연구자들께서 작가 조명희, 조명희의 작품, 조명희의 정신세계, 조명희의 역사적 전망, 그리고 조명희가 꿈꾸었던 민족의 낙원을 분석하고 해석하셨습니다. 완성된 글도 있고, 보완할 부분도 있겠으나 잘 정리하셔서 좋은 논문을 만들어 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객관화된 조명희와 조명희 작품을 민족문학사의 중심에 등재하는 것이야말로 2020년, 우리들이 할 일이 아닐까요? 그것이 문학의 선배, 예술의 선각자 조명희 선생에 대한 최대의 존경일 것입니다. 청중과 독자 제현의 토론을 듣지 못하여 아쉽습니다만, 어쩔 수 없는 상황임을 이해해주시기 청해 올립니다. 이상, 2020년 <포석 조명희문학제> 비대면 지상 학술심포지엄을 모두 마치겠습니다. 내년, 2021년에는 충북 진천의 포석 조명희 문학관에서 만날 것을 기약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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