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의면 주민들 "국민관광지로 재추진" 외치며 연일 시위

 

[동양일보 지영수 기자]옛 대통령 별장 청남대가 1983년 12월 완공돼 2003년 4월 충북도민의 품으로 돌아오기까지 20년간 우여곡절을 겪었다.

청남대가 들어선 인근 청원군(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주민들은 각종 규제로 인해 재산상의 피해를 보고 있다며 개방과 각종 규제를 풀어줄 것을 요구하는 등 수차례 항의시위를 벌였다.

청남대를 찾은 역대 대통령들은 주민들의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장학금 등의 선물을 안겼다. 동양일보는 창사 29주년을 맞아 청남대의 개방 과정 등을 살펴봤다.

●청남대 건립 계기

청주시 문의면 대청호변에 자리 잡은 청남대는 1983년 대통령 전용 휴양시설로 건립됐다.

1980년 제5공화국 정권이 출범하고 얼마 되지 않은 12월 대청댐 준공식에 참석한 전두환 대통령이 현재 청남대가 위치한 지형에 매료돼 별장에 대해 언급한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청남대가 건립되기 이전 대통령 별장으로 경남 거제(옛 진해) 저도의 ‘청해대’가 이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청해대 지역은 간첩선의 잦은 출몰로 인한 경호상 안전문제와 서울과의 원거리로 인한 유사시 지휘통제 곤란 등의 취약점을 지녔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중부 내륙지역의 집무실을 겸한 효율적인 휴양시설 신축을 결정했다.

1983년 6월 18일 첫 삽을 뜬 후 6개월 만인 12월 27일 준공됐다. 그해 연말연시 행사를 위해 전두환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던 장세동 경호실장의 지시로 시급히 조성했다.

당초 ‘봄을 맞이하는 곳’인 영춘재(迎春齋)로 불리다가 1986년 ‘따뜻한 남쪽의 청와대’라는 뜻의 청남대(靑南臺)로 명칭이 바뀌었다.

 

 

●문의면 주민 20년간 피해

1983년 신축돼 20년 동안 4명(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의 대통령이 연간 1~3회 머물다 간 이곳은 문의면 주민들에게는 불만의 대상이었다.

대통령이 정국 구상 또는 휴가차 오는 날에는 군인들이 청남대 인근 곳곳에서 보초를 서고 대통령 일행이 차량으로 이동할 때는 도로에 사람조차 얼씬거리지 못하게 한 적도 있었다.

청남대 개방은 김영삼 대통령때부터 거론됐지만 결국 무산됐으며 김대중 대통령도 1997년 대선 공약으로 약속했으나 실현되지 못했다.

당시 문의면 주민들은 청남대가 들어서면서 20년 동안 거의 개발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하소연했다.

심지어 낚시도 못 하고 건축도 심한 규제를 받았다. 이 때문에 1만3000명에 달하던 인구가 5700명으로 크게 줄어들었고, 70년대 2만원하던 땅값이 2003년 4만원 할 정도로 쇠락의 늪에 빠졌다. 청남대가 개방되기 전까지 문의면이 얼마나 소외됐는지 알 수 있는 사례다.

앞서 청남대를 둘러싸고 있는 대청댐은 1975년 착공됐다. 대청댐 준공을 앞두고 정부는 1980년 3월 문의면 일대를 ‘국민관광휴양지’로 지정했다. 이에 따라 주민들은 대청댐 준공에 맞춰 관광보트를 사들이고 민속마을도 지었다.

그러나 대청댐 준공식에 참석했던 전두환 대통령이 “이런 곳에 대통령 휴양시설이 들어서면 좋겠다”고 말한 뒤 청남대가 건설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1983년 국민관광휴양지 지정이 취소되고 이곳에 있던 민속마을도 철거됐으며, 문의~옥천을 운항하던 유람선은 시작한 지 3개월 만에 중단됐다. 주민들은 장만한 관광용 모터보트 30여 대를 폐기 처분했다.

이때부터 주민들은 청남대 입주를 반대하는 집회를 열기 시작했다.

주민들은 관광지 기대 속에 소재지 집중이주로 인한 문제 발생을 비롯해 소재지 상가 및 경기불황, 부동산가격 하락 및 거래부진 악순환 발생, 각종 부채 누적 및 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하며 1983년 7월부터 관광지 재추진을 요구하는 집회를 20여 차례나 거듭했으나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1987년 8월 15일 청원군 문의면 미천리에서 이색시위가 벌어졌다. 250여 명의 주민들이 도로를 점거하고 ‘생계대책 보장하라’, ‘낚시터 개방하라’, ‘국민관광지로 다시 지정해달라’, ‘공장유치 및 취업을 알선해 달라’고 쓰인 현수막을 들고 구호를 외쳐댔다.

주민들이 모여 있는 삼거리 건물 벽에는 ‘영빈관 철거하라’는 또 다른 구호가 나붙었다. 이 벽보는 경찰측의 ‘제발 좀 떼어달라’는 요청으로 모습을 감췄다.

주민들의 시위가 시작되자 충주에서 전경들이 급파됐지만, 최루탄이 터지거나 돌멩이가 나르지는 않았다. 전경들은 주민들과 몸싸움을 벌이면서 진출을 막는 정도로 그쳤고 주민들은 크게 자극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오전 9시부터 시작된 농성은 소나기가 쏟아지는 오후 5시까지 계속됐다.

주민들의 시위가 수그러들지 않자 노건일 충북지사가 초조한 표정으로 달려왔다. 노 지사는 주민들 앞에 나와 해산을 종용하면서 주민대표들을 따로 만나 설득작업을 펼쳤다.

주민집단행동 이틀 전 생계보호대책위원회는 ‘시위안내문’을 통해 “지역에 공장이 들어서고 낚시를 할 수 있어 최소한의 생계가 보장되고 문의면 이주민에 대한 정부의 오점을 시정하는 의미에서 세금을 면제해 주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역사의 순리”라고 밝혔다.

이들은 이듬해 7월 29일 국민관광휴양지 지적촉구와 유람선·모터보트·노보트 운행허가, 낚시터 공식허용, 경비구역 축소, 부채 장기저리 촉구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충북도에 애소문을 보냈다.

충북도는 이에 대한 회신을 보냈다. 도지사로서 지역 단위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적극적인 자세로 임해 그동안 건의하고 요구한 내용을 중심으로 문의지역 종합개발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회신했다.

종합개발사업계획을 수립하고 있는 기간에 이 계획에 포함시킬 건설적인 의견이 있으면 대표기구를 구성해 충분한 논의와 합의를 거쳐 면장, 군수를 통해 건의해 주면 시책수립에 포함시켜 반영토록 할 것도 약속했다.

국민관광지 지정과 유람선 등의 운항, 낚시공식허가 문제는 이 지역이 청주, 천안 등 100만 시민의 식수원(상수도보호구역)으로서 개발에 어려움이 있으므로 다수 주민의 피해를 감안해 넓은 아량으로 양해해 달라고 답했다.

채무 장기저리자금 대체 문제는 융자 당시의 조건이나 약정된 규정이 있어 이의 해결을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 배려가 있어야 하므로 중앙정부에 건의, 해결토록 열성을 다해 추진할 계획으로 밝혔다.

주민들은 ‘청남대 개방만이 살길’이라며 궐기를 계속 이어 나갔다. 노태우 대통령이 1992년 9월 추석을 앞두고 정국구상을 위해 청남대에서 휴가를 즐기던 당시 흥분한 주민들은 상여를 메고 경운기를 앞세운 채 청남대 진입을 시도하는 격한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충북 도내 사회단체들도 청남대를 폐지하고 관리권을 지방자치단체에 줘 이를 주민공익시설로 이용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청남대 관리권을 넘겨받은 충북도는 대통령의 추억에 역사를 덧대 청남대를 국민 휴양지로 탈바꿈시켰다.

 

●청남대 이용 역대 대통령 지역 선물

대통령 전용별장은 이승만 대통령 때부터 4곳이었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은 1993년 청남대를 제외한 나머지 별장을 모두 폐쇄했다.

제주 임시공관은 외국 국빈 영접용으로 용도를 제한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여름 휴가지였던 진해 앞바다의 ‘청해대’도 해군에 반환했다.

마지막 남은 대통령 전용별장 ‘청남대’는 생긴 지 20년 만인 2003년 4월 18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반환 약속에 따라 마침내 주민 품으로 돌아갔다.

충북도는 이날 오전 10시 청남대 본관 앞 광장에서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길이 25cm 모형 열쇠를 전달받고 청남대의 공식관리에 들어갔다.

청원군 문의면 32개 마을 이장단과 주민 5800여명은 노 대통령에게 고마운 마음을 담아 돌 5800개로 쌓은 탑을 선물했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전두환·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등 5명의 대통령이 총 88회에 걸쳐 366박 471일을 사용했다.

청남대 공식기록에 의하면 김영삼 전 대통령이 사용횟수가 28회로 가장 많다. 사용일수는 노태우 전 대통령이 128일로 김영삼 전 대통령보다 이틀 많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여름휴가 기간은 보름 정도로 이후 대통령들의 최대 일주일에 비해 길었다.

청남대 개방행사를 위해 전날 도착해 하룻밤을 지낸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제외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방문횟수가 가장 적지만 평균적으로 한번 방문하면 가장 오래(1회 7.5일) 머물렀다.

당시 청남대는 단순한 휴양지가 아니라 대통령이 정국 구상을 하는 곳이었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은 국정이 꼬일 때나 결심이 필요할 때 이곳에 들어가 생각을 가다듬곤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경우 ‘금융실명제’ 발표나 전임대통령 구속을 앞두고 청남대에 들어갔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2년 12월 취임 후 청남대만을 대통령 전용 휴양지로 남기고 모든 대통령 별장을 해제하면서 임기 내내 여름휴가를 청남대에서 보냈다.

1995년 11월 청남대에서 3박 4일을 보내며 이른바 역사바로세우기에 대한 구상을 했다. 이로써 전두환·노태우 전직 두 대통령이 구속됐고, 5.18특별법 제정으로 지판에 회부돼 구속되는 결과를 낳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광복절 기념사’ 등을 이곳에서 정리했다. 그래서 당시 언론들은 대통령이 이곳으로 가기만 하면 ‘청남대 구상’이란 표현을 써가며 촉각을 곤두세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청남대 개방행사 하루 전 청남대에서 민주당 정대철 대표,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대행, 자민련 김종필 총재 등 3당 대표와 만찬회동을 갖고 6일 뒤인 23일 예정된 북한·미국·중국 3자회담에서 한국이 배제된 배경을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하는 등 정국현안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청남대를 방문한 역대 대통령들은 지역에 크고 작은 선물을 안겼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2년 9월 10일 정국 구상을 위해 청남대에서 휴가를 보내던 중 문의면 지역 화합잔치가 열리고 있는 문의초등학교를 찾아 지역 초·중·고·대 학생들을 위한 15억원의 장학금을 쾌척했다. 이 지역 학생들은 현재까지 장학혜택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은 충북도와 인근 시·도지사들에게 격려금도 나눠줬다. 당시 관선 지사였던 이원종 충북지사는 이 격려금으로 ‘목민심서’를 구입해 간부 공무원들에게 나눠줬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1994년 2월 15일 청남대 방문 시 인근 남일면에 위치한 남일초등학교를 찾아 일일교사로 학생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다. 또 맨땅 운동장에 잔디를 깔아줬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1999년 9월 30일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개회식 참석한 뒤 부인 이희호 여사와 청남대 인근 문의초등학교를 방문, 1·2학년의 영어특활반과 글짓기반 활동을 참관하고 학생들을 격려하는 시간을 가졌다.

김 전 대통령의 문의초 방문은 이 학교 6학년 김소라양이 김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내 청남대 방문길에 꼭 자신의 학교를 들러달라고 요청한 데 따른 것이다.

김 전 대통령은 문의초에 삼원방송 시설을 설치해 줬다.

1909년 3월 16일 사립 ‘문흥학교’로 개교한 문의초는 1980년 6월 2일 대청댐 완공으로 현 위치(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문의시내1길)로 이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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