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홍순명(31·충북 증평군 증평읍)씨의 단편소설 ‘자개장롱’이 22회 무영신인문학상 당선작에 선정됐다.

무영신인문학상은 한국문단에 ‘농민문학’이라는 새 이정표를 세운 ‘흙의 작가’ 이무영(1908~1960) 선생의 문학 혼과 작가 정신을 기리기 위해 동양일보가 제정한 상이다.

동양일보는 기성작가를 대상으로 하던 ‘무영문학상’을 18회로 마감하고 19회(2018년)부터 신인 소설가를 발굴하는 ‘무영신인문학상’으로 전환해 시상하고 있다.

이번 공모에는 전국 각지에서 238편의 작품이 응모됐으며 문단 권위자로 구성된 심사위원회는 본상에 오른 10편의 작품 중 ‘자개장롱’을 당선작으로 선정했다.

시상식은 오는 20일 화요일 오전 11시 이무영 선생의 고향인 음성(충북 음성군 음성읍 석인리 364-1 이무영 생가)에서 열리는 28회 무영제에서 진행된다.

22회 무영신인문학상 당선작과 당선 소감, 심사평을 싣는다. <편집자>




자개장롱

아버지는 매일 아침 여섯 시에 일어났다. 술을 마셔도 아파도 피곤해도 기상 시간을 철저히 지켰다. 아버지가 일찍 일어나는 게 뭐가 대수일까 싶지만, 문제는 그것을 가족들에게 강요한다는 것이다.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잠깐 일어나서 인사드리고 다시 자면 되지 않느냐고 묻지만, 아버지는 그렇게 관대한 사람이 아니다. -다리가 부러진 새도 일찍 일어나면 지렁이라도 한 마리 입에 넣는 거야. 알겠냐? 라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듣고 살았다.

덕분에 아침에 시간이 많았다. 초등학생 때는 공부와 숙제를 했고 중학생 때는 공부하는 척 만화책을 읽었고 고등학생 때는 신문 배달을 했다. 그래도 대학에 가기 전까진 아침 시간을 제법 요긴하게 쓰긴 한 것 같다. 하지만 대학을 가고 술을 입에 대기 시작하니 여섯 시 기상은 그야말로 고문이나 다름없었다. 신입생 환영회에서 부모도 못 알아볼 정도로 진탕 취해서 들어온 다음 날 아버지는 내가 일어나지 않자 라이터로 돈가스 칼을 달궈서 허벅지 안쪽을 지지기도 했다. 믿을 수 없겠지만 사실이다. 아버지는 이런 사람이다.

물론 반항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의 시기였던 중학교 2학년 때 가출한 적이 있었다. 호기롭게 집을 나가 이곳저곳을 떠돌다 해지고 집에 돌아왔을 때 작은 트럭에 내 짐이 몽땅 실려 있었다. -아들, 집을 나가려거든 말해라. 짐은 다 정리해뒀다. 나는 눈물과 콧물이 범벅인 얼굴로 손에서 시커먼 땟국물이 흐를 때까지 빌고 빌었다. 엄마는 아버지 뒤에서 키득키득 웃고 있었다. 그날로 내 사춘기가 끝났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도스토옙스키가 말했던가. 나도 나름의 요령을 터득했다. 방법은 이렇다. 일어나서 대충 옷을 꿰어 입고 모자를 눌러쓰고 집을 나선다. 살짝 열어놓은 내방 창문으로 다시 들어온다. 방에 있는 자개장롱에 들어가서 부족한 잠을 잔다. 이렇게 간단한 방법이 통하는 이유는 아버지는 외출에 대해서는 관대(사내놈은 밖으로 싸돌아다녀야 뭐라도 되는 거야!)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우리 집은 단독 주택이라 창문을 넘나들기 쉽고 엄마가 시집올 때 가져온 자개장롱은 나무판이 두꺼워 방음이 잘 되고 넓었다. 장롱에서 잠을 충분히 잔 뒤엔 다시 창문으로 나가 현관문으로 천연덕스럽게 들어오면 됐다.

대학을 졸업하니 시간이 넘쳐흘렀다. 오랫동안 일할 사람을 찾는 사장님들은 취업 준비나 면접 때문에 쓸데없이 바쁜 데다 취업하기라도 하면 일을 그만둬야 하는 나를 뽑아주지 않았다. 그렇다고 대책 없이 논 것은 아니다. 취업에 도움이 될 자격증을 땄다. 나는 정보처리기사, 컴퓨터 활용 능력 1급, 한국사 능력 시험 1급, 한자 2급, 한국어 능력 시험 1급, 1종 보통 운전면허 자격증을 갖고 있다. 그래도 취업은 못 했고 권태로운 일상의 쳇바퀴를 돌리며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그나마 성과라면 여섯 회사에서 인턴을 해본 것이다. 여섯 회사 전부 열 명쯤 인턴으로 채용했다. 인턴 기간이 끝나고 네 회사에서 한 명씩 정규직으로 뽑았고, 나머지 두 회사는 한 명도 뽑지 않았다. 정규직으로 뽑힌 네 명도 사장의 조카거나 과장의 사촌 동생이거나 부장의 친구의 딸이라거나 팀장의 숨겨둔 아들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십 년 동안 인턴에게 실적이랍시고 보험을 실컷 팔아먹은 뒤에 한 명도 안 뽑았다는 어떤 보험사(그 인사 정책 담당자는 그걸 성과로 고속 승진을 했다)보단 그나마 나은 편이다. 인턴이란 머리 위에 당근을 달아놓고 달리는 말과 같다. 희망은 가장 강력한 원동력이다. 회사는 희망을 무기 삼아 노동력을 싼값에 사들인다. 하지만 그런 인턴 자리라도 감지덕지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문제다. 엿 같은 건 나도 그런 사람 중 한 명이란 사실이다.

나의 일상은 단순하다. 취업 사이트에서 취업 정보를 검색하거나, 취업 카페에서 정보를 얻거나,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거나, 취업 준비하는 동기나 선배를 만나거나, 자거나, 뒷산에 가거나. 취업한 사람에게는 연락하지 않는다. 그들은 내 연락을 피한다. 엊그제만 해도 술잔을 부딪치며 서로를 위로하던 사람들이 취업하고 나면 딴사람이 된다.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나 같이 우울한 사람을 만나 술 사주고 푸념 들어주다 보면 덩달아 우울해지니까. 자기보다 불행한 사람에게 자기 고민을 말할 수 없으니까. 그렇게 샌드백 역할만 해야 하니까 그렇겠지.

할 일도 없고 아침잠도 없는 난 아침마다 산을 오른다. 아침 등산은 아버지에게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건강도 챙기는 일석이조의 운동이다. 흙 내음을 가득 품은 공기의 상쾌함과 하루를 부지런히 보내려는 사람들의 활기가 몸을 가볍게 만들어 준다. 땀을 삐질 흘리며 정상에 올라 발밑에 있는 동네를 바라볼 때 성취감도 좋다. 그리고 산에 비해 나는 보잘것없이 작은 존재라는 것을 깨달으며 나의 고민과 걱정이 얼마나 작은 것인지 알게 되는 산의 작은 위로가 좋다.

산에 오르면 많은 사람을 만난다. 굽은 허리로 느릿느릿 산을 오르는 할머니와 형형색색의 등산복을 입고 넓은 챙의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커다란 선글라스를 쓴 아주머니들(꼭 여럿이 다닌다)과 나무에 등치기를 하고 약수를 떠 가는 아저씨와 산 밑에서 몰래 담배를 피우는 학생들이 있다. 간혹 나와 비슷한 또래의 청년도 만난다. 우리는 서로를 피한다.

피 한 방울에 몰려드는 상어 떼처럼 시련들은 왜 한꺼번에 들이닥치는 것일까.

[귀하의 자질만큼은 높게 평가하나 저희가 원하는 인재상과는 맞지 않아 함께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다음 기회에는 함께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오빠, 우리 그만 만나자. 쉽게 말하는 거 아냐. 너무 지쳤어. 미안하고 고마웠어.]

길을 걷다가 십 분 간격으로 날아든 두 통의 문자로 나의 가녀린 영혼은 완전히 증발해버렸다.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거리에 서서 소매로 눈물과 콧물을 훔쳤다. 눈물이 마를 때쯤 노을이 졌다. 벤치에 앉아 가게들이 네온사인을 밝히는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맞은편에 있는 간판에 불이 들어오며 쪼끼쪼끼란 글자가 나타났을 때 웅태에게 전화를 걸었다. -웅태야 퇴근했냐. -퇴근하고 가는 중이야. -술이나 한잔하자. -왜 뭔 일 있냐. 나 내일 바쁜데. -나래랑 헤어졌다. -알겠어. 또와또와로 와. 20분 뒤에 도착하니까. 먼저 도착하면 시켜.

또와또와는 어릴 때부터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던 동네 술집이었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한동안 발길을 끊었던 곳이다. 문을 열고 들어가니 어느새 머리가 희끗희끗해진 이모가 반가워하며 자리를 내줬다. 주변을 살피고 있으니 이모가 강냉이를 들고 맞은편에 앉았다. -그동안 왜 이렇게 안 왔어. -이것저것 하느라 좀 바빴어요. -그래, 네 나이 때는 바빠야지. 아직 여기 사는 거지? 그나저나 옛날에는 완전 애 같더니 이제는 좀 어른 같다 얘. -이모는 그대로네요? -얘 좀 봐. 우리 아들이 벌써 며칠 뒤에 군대 간다. 다른 테이블에서 이모를 찾는 바람에 대화는 여기서 끊겼다. 이모가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며 물었다. -모둠 튀김에 소주는 빨간 거 맞지? -네.

모둠 튀김과 동시에 웅태가 왔다. 웅태와 이모는 자주 봤는지 인사가 짧았다. 자리에 앉자마자 말을 쏟아냈다. -야, 내가 나래 걔 그럴 줄 알았어. 지금 회사 들어간 지 얼마나 됐지? 1년 반? 암튼 걔 회사에서 솔로인 척한다며. 회사에 찾아오지도 말라고 하고. 솔직히 그 회사 취업도 다 네가 도와준 거 아니냐? 회사 알아봐 주고 이력서랑 자기소개서 써주고 면접 팁 다 알아봐 주고. 사실 뭐 다 해준 거지. 그치? 와, 걔는 대학 다닐 때부터 과제며 시험 준비며 죄다 도움 받아 놓고 이러면 안 되지. 내가 너희 처음 사귈 때부터 조심하라고 그랬지? 내가 얼굴 보면 딱 안다니까. 아이고, 이 호구 놈아. 근데 이래놓고 지난번처럼 다시 사귀는 건 아니지?

웅태는 나와 초중고 대학을 같이 다녔다. 게다가 군대도 동반 입대였다. 내 팬티가 몇 장인지 우리 집 수저가 몇 벌인지도 아는 놈이다. 아마 나보다 나를 더 잘 알지도 모른다. 어느날 나와 똑같이 생긴 놈이 내 행세를 하고 다닌다면, 나는 그 자식을 끌고 웅태에게 가서 물어야 할 것이다. 웅태야, 누가 나냐? 넌 알지? 웅태는 제약회사에서 인턴으로 영업 일을 하고 있었다.

-나래 너무 욕하지 마. 걔가 얼마나 착한데. 다 내가 모자라서 그런 거야. -이 새끼 이거 또 이러네. 꿀꿀하게 그러지 말고 술이나 마셔. 술잔을 주고받다 보니 모둠 튀김을 금방 해치웠다. 언제 왔는지 이모의 아들인 병문이가 일을 돕고 있었다. 병문이가 주문을 받기 위해 테이블로 왔다. -짜식, 너 이제 군대 간다며? -네. 맞아요. 병문이가 머리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군 생활 금방 지나갈 거야. 그래도 군대에 있을 때가 제일 속 편할 때야. -너 방금 그 말 완전 꼰대 같아. -그랬어? 암튼 병문아 너 지금 한창 놀아야 할 때 아냐? -엄마 혼자 일하기 힘들어하셔서 도와드리는 거예요. -착하네. 이모는 든든하시겠네. -우리 두부김치 하나 부탁해. 깨를 듬뿍 뿌린 두부김치는 이모의 주력 메뉴였다.

정겨운 술집 분위기와 옛사람들 그리고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두부김치 맛을 보니 호기롭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아 기분이 들떴다. -웅태야, 너는 연애 안 해? 어째 성희 이후로 몇 년째 연애를 안 하냐. 너 혹시 고자냐? -넌 인마 친구 말 좀 새겨들어라. 내가 삼십 평 아파트랑 중형차 사기 전까진 여자 안 만날 거라고 맨날 말하잖아. 그리고 나는 여자가 지겨운 사람이야. 의사들 계약 한번 따려면 여자, 술, 돈을 얼마나 갖다 바쳐야 하는지 알아? 아침에 잘 서지도 않는다니까. 웅태가 손을 축 늘어뜨리며 말했다.

웅태는 어릴 적부터 재치 있는 입담과 사려 깊은 배려로 발이 넓었다. 그런 웅태를 통해서 친구들의 소식을 들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내가 짝사랑하던 지영이는 펜션을 운영하는 남편을 만나 거제도에서 딸 하나 낳고 살고 있고, 중학교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땅꼬마 진호는 특수부대 중사고, 고등학교 1학년 때 반장 수진이는 재작년에 이혼하고 홀로 아들을 키우면서 공인회계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고, 대학교 동창 민수는 졸업하자마자 속도위반으로 결혼하고 인천에서 중고차 딜러로 지낸다는 소식들. 그런 소식들을 듣다 보니 가게엔 사람이 가득 찼고 두부는 한 조각밖에 남지 않았다. 소주를 털어 넣고 두부를 반으로 잘라 김치와 돼지고기와 함께 먹었다. 웅태의 핸드폰이 울렸다. –예, 팀장님. 아뇨. 저 근처입니다. 택시 타고 30분이면 갈 수 있습니다. 예. 지난번에 강남역에 있는 거기요? 지금 출발하겠습니다. 웅태가 말끝마다 고개를 숙이며 통화를 했다. -미안한데, 나 지금 급하게 가봐야 할 거 같아. 내가 어묵탕이랑 소주 한 병 계산하고 갈게. 먹고 가라. 미안하다. 말릴 새도 없이 웅태가 계산을 하고 사라졌다.

시끌벅적한 술집에서 소주를 털어 넣고 잘라놓은 두부 반 조각을 먹었다. 어묵탕이 나올 때 두부김치 접시를 가져갈 수 있게 남은 돼지고기 세 점을 골라 입에 넣었다. 최저임금을 간신히 넘기는 월급으로 학자금 대출을 갚고 적금을 붓고 집에 생활비까지 보태는 웅태가 사준 돼지고기를 천천히 꼭꼭 씹어서 삼켰다. 뷔페에 가면 볶음밥이나 김밥 말고 갈비찜 같은 걸 먹으라며 등짝을 때리고 횟집에 가면 스끼다시 좀 그만 먹고 생선회나 많이 먹으라며 등짝을 때리던 엄마가 떠올랐다. 병문이가 어묵탕과 소주 한 병을 놓고 빈 접시를 가지고 갔다. 소주 한 잔을 따라 마시고 숟가락으로 어묵탕의 무를 잘라 입에 넣었다.

한쪽 벽에 걸린 티브이에서 한국을 빛낸 사람들이란 프로그램을 방영하고 있었다. 미국에서 컵밥 장사로 성공한 청년 김우민 씨가 주인공이었다. 그는 홀어머니 밑에서 가난하게 자라 공부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오로지 돈을 버는 게 목표였다. 방과 후에는 전단 돌리기, 신문 배달, 종이봉투 접기, 음식 배달 등의 일을 하고 학교에서는 잠만 자는 학창 시절을 보내고 성인이 되자마자 각종 식당을 전전하며 요리를 배웠다. 그러던 어느 날 『아메리칸 쉐프』라는 영화를 우연히 보게 된 그는 미국에서 푸드 트럭을 몰고 다니며 장사하는 꿈을 가졌다. 잠을 줄여가며 영어를 공부하고 음식을 계발했다. 스물아홉 살 봄, 생각했던 돈이 모이자마자 비행기에 올랐다. 처음 팔았던 다진 김치를 올린 핫도그는 처참하게 실패했다. 이후 김치 치즈 주먹밥, 멸치국수, 어묵 꼬치 등등 실패에 실패를 거듭한 끝에 지금의 컵밥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고 대박이 났다. 지금은 자신의 이름으로 함께 고생했던 동료들과 아홉 대의 푸드 트럭을 운영한다고 한다. 미국인들이 그의 컵밥을 먹기 위해 30분씩 줄을 서서 기다렸다.

-그래, 젊은 것들이 저렇게 깡다구가 있어야지. 요즘 것들은 말이야. 비리비리해서 부모가 떠주는 밥만 입 벌리고 기다리고 있다고. 패기가 없어. 까만 양복에 두꺼운 시계를 찬 아저씨가 말했다. 같은 테이블에는 남자 네 명과 여자 한 명이 앉아있었다. 차림새를 보아하니 회식하는 직장인들 같았다. -내가 말이야. 30년 전에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십 원 한 장 없었어. 서울역에서 덜덜덜 떠는 나를 두부공장 사장님이 데려갔지. 맨몸으로 두부 공장에 가서 좁은 창고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일을 배웠어. 악착같이 살았지. 그렇게 조그맣게 두부 공장을 시작해서 이 자리까지 온 거야. 잘 알아두라고 결국 지구에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건 바퀴벌레라는 걸. 맞은편에 앉은 젊은 여자만 고개를 끄덕였고 나머지는 듣는 둥 마는 둥이었다.

티브이에서 미국인들이 김우민 씨의 컵밥을 먹으며 엄지를 치켜세우고 어설픈 한국말로 말했다. 김치 좋아요! 컵밥 맛있어요! 옆 테이블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나도 미국에 가서 미역이랑 김을 팔아볼까? -뭔 개소리야. -저거 봐. 저 사람도 미국 가서 성공했잖아. 내가 알아보니까 지금 미국에서 미역이랑 김이 그렇게 인기래. 내가 생각해봤는데 김으로 아이스크림을 만들면 어떨까? 짭짤하고 달콤하게. 어때? -학교는? -때려치워야지. 남자가 큰일을 할 땐 배수진을 치고 하는 거야. -와, 이건 무슨 신종 불효냐. 새끼야, 저런 건 아무나 하는 게 아니야. 까불다 인생 망하지 말고 그만해라. -나도 알아. 그냥 해본 말이야. 나가서 담배나 한 대 태우자. 옆 테이블의 남자 둘이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소주는 다 떨어졌는데 아직 어묵탕이 많이 남았다. 어묵탕을 남기고 갈 순 없었다. 주머니를 뒤지니 지폐 몇 장과 동전 몇 개가 나왔다. 다행히 소주 한 병 마실 돈이 됐다. 술집에 있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소주와 남은 안주를 비웠다. 병문이에게 담배 한 개비를 얻어 술집을 나와 건물 옥상에 있는 흡연장으로 가서 불을 댕겼다. 기침이 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담배를 끊은 지 삼 년이 조금 넘었다. 쌉쌀한 담배 연기가 폐에 머물다 빠져나갔다. 취기가 올라오고 머리가 핑핑 돌았다. 입꼬리가 올라갔다.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옆 테이블에 앉았던 남자 둘이 뒤따라와 담배에 불을 붙였다. -아, 맞다. 너한테 이거 말해주려고 그랬어. 고등학교 때 김주희라고 알아? -알지. 걔 공부 되게 잘했잖아. 대학도 좋은 데로 가서 학교 정문에 플래카드도 걸어줬잖아. 근데 걔가 왜? -걔가 나랑 같은 아파트 살 거든. 그래서 우리 엄마가 다른 아줌마들한테 들었는데 걔 죽었대. -진짜? 왜? -걔가 대학에서 남자를 만나다가 임신을 했대. 당연히 난리가 났지. 너 걔 엄마 성격 장난 아닌 거 알지? -그래? -옛날에 학교에서 국어 선생이 자기 딸 수행평가 점수 낮게 줬다고 행패 부리고 난리 났었잖아. -아, 맞아. 그게 걔 엄마야? -그래. 그러니 어땠겠어. 한동안 그 집에서 우당탕거리고 소리 지르고 장난 아니었대. 부모님이 기껏 명문대학 가서 살림하고 애나 키우고 앉아있을 생각이냐고 막 소리치면서 당장 헤어지고 애는 지우라고 그랬대. -그래서? -둘이 가출했는데 아주 꼭꼭 숨었나 봐. 한 달쯤 뒤에 여기저기 수소문해서 간신히 찾아서 집에 데려다 놓고 사귀는 건 허락하는데 애는 절대 안 된다고 그랬대. 그리고 며칠 뒤에 목매달아 자살했대. -진짜야? -진짜라니까. 막 경찰차랑 소방차 오고 난리였어. 지금 벌써 집 내놓고 다른 동네로 이사 갔대. 남자 둘이 재떨이에 꽁초를 비벼 끄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나도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 건물을 나왔다. 공원을 조금 걷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아침 6시, 이제는 절로 눈이 떠졌다. 옷을 대충 입고 모자를 눌러 쓴 다음 방을 나섰다. 거실에서 아버지가 뉴스를 틀어놓고 신문을 읽고 있었다. 전날 먹은 술 때문에 속이 쓰리고 갈증이 났다. 화장실에 가서 소변을 보고 부엌으로 가서 물을 마셨다. 현관문을 소리 나게 열고 나갔다가 창문을 넘어 방으로 들어왔다. 장롱을 열고 포근한 이불 속에 몸을 묻으려는데 우당탕 소리를 내며 넘어지고 말았다. 머릿속엔 온통 망했다는 생각뿐이었다. 재빨리 이불을 장롱에 넣는데 문이 열리고 아버지가 들어왔다. -너 뭐 하냐? -네? -지금 뭐 하냐고? 이 상황을 어떻게 말해야 할까. 아버지가 방바닥에 뒹구는 신발과 나를 번갈아 쳐다봤다.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더니 깊고 깊은 한숨을 뱉었다. 그리고 몇 초간 눈이 마주쳤다. 아버지의 눈빛에는 한심함, 연민, 창피함, 어이없음, 분노, 절망, 좌절, 침통, 근심, 자괴, 미움의 감정이 담겨있었다. 차라리 욕을 먹거나 맞는 게 나았다. 아버지가 방문을 쾅 하고 닫고 나가는데 쾅 하는 소리에 나의 뭔가가 부서지는 것을 느꼈다. 벌레가 된 그레고르 잠자가 이런 심정이었을까. 나는 그레고르 잠자의 심정을 어렴풋이 느꼈다. 속이 쓰리고 두통이 느껴졌다. 될 대로 돼라.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자개장롱에 들어가 잠을 청했다.

초등학교 입학을 기다리던 겨울. 커다란 드럼통에서 불이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타오르고 있었다. 드럼통 주위로 동그랗게 눈이 녹아 질척한 땅을 드러냈다. 엄마가 집에 들어가 나의 장난감을 들고나왔고, 아버지가 그것들을 활활 타오르는 새빨간 불에 던져 넣었다.

-넌 이제 어린애가 아니라 학생이니 이런 거나 가지고 놀 시기는 지났다. 앞으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라. 알겠냐?

아버지가 골드런 로봇을 던지며 말씀하셨다. 고무와 플라스틱이 타들어 가며 기분 나쁜 냄새를 풍기고 하늘로 연기가 솟았다. 새하얀 눈 위로 까만 재들이 떨어졌다. 아끼던 미미 인형이 불 위로 떨어졌다. 머리카락과 손이 타들어 가는 미미가 날 바라봤다. 날 쳐다보는 그 눈이 타지 않고 계속해서 날 바라봤다. 마치 살려달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반복되는 꿈이었다.

잠에서 깨면 다시 눈을 감았다. 이 포근한 공간에서 조금만 더 머물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지독한 허기를 이기지 못해 장롱문을 열었다. 방문을 살짝 열고 집안을 둘러봤다. 청국장의 쿰쿰한 냄새가 은은하게 맴돌고 있었다. 부엌에서 보글보글 끓는 소리가 났다. 문을 열고 부엌으로 향했다. 식탁에 애호박전, 꽈리고추 멸치볶음, 배추김치, 총각김치, 김, 콩자반이 놓여 있고 찌개가 놓일 곳엔 냄비 받침이 놓여 있었다. 식탁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던 아버지가 인기척에 고개를 들어 날 바라봤다. 아버지와 눈이 마주치자 애써 붙여놓았던 뭔가가 다시 부서진 것 같았다. 숨이 차오르고 얼굴이 달아올랐다. 아버지의 무심한 눈빛. 심장이 쿵쾅거렸다. 발걸음을 돌려 집을 나섰다.

갈 곳이 없었다. 대문을 박차고 나온 자신을 꾸짖어 봐도 달라질 건 없었다. 슬그머니 다시 집으로 들어갈 수는 없으니. 머리는 무겁고 복잡한데 걸음이 자연스레 산으로 날 이끌었다. 해가 저물며 하늘을 빨갛게 물들이고 있었다. 구두를 신은 남자가 통닭을 들고 지나갔다. 고소한 기름내가 코를 간질이다 흩어졌다. 산 앞에 도착해 산을 올려다보니 분위기가 달랐다. 아침의 산이 방긋 웃으며 인사하는 프랜차이즈 식당의 알바생이라면 오후의 산은 귀찮다는 듯 주문을 받는 오래된 식당의 할머니 같았다.

산에 올랐다. 한발 한발 걸음을 디딜 때마다 숨이 차오르고 몸에 열기가 올라왔다. 그리고 텅 빈 위장이 밥을 달라며 아우성이었다. 오르다 보니 산 중턱에 있는 쉼터가 나왔다. 쉼터에는 벤치와 정자와 몇 가지 운동기구가 있었다. 아침에는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대화도 나누고 커피도 나눠 마시며 친목을 다지는 장소지만 지금은 텅 비어 있었다. 해가 거의 다 넘어가며 최후의 발악을 하듯이 새빨갛게 빛을 뿜고 있었다.

벤치에 앉아 동네를 바라봤다. 가로등이 하나둘씩 켜지며 길을 밝혔다. 골목에서 책가방을 멘 여학생이 장바구니를 든 어머니를 만나 함께 걸어가고, 배달원이 오토바이에서 내려 피자를 들고 빌라로 들어가고, 남학생들이 서로를 밀치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장난치며 걷고, 아저씨 셋이 어깨동무를 하고 비틀거리며 걷고, 주차할 자리를 찾지 못하는 차가 동네를 빙빙 돌고 있었다.

해가 지자 가로등이 어두운 산을 밝혔다. 하지만 워낙 드문드문 세워진 데다 빛도 약해 어두침침했다. 엉덩이를 털고 일어나 쉼터를 휘적휘적 걸었다. 운동기구에 올라 허리를 돌리고 윗몸을 일으키고 다리를 앞뒤로 흔들었다. 철봉에 매달려 부들부들 떨며 상체를 끌어올려 턱걸이를 하려다 포기하고 내려왔다. 정자에 몸을 뉘었다. 천장 곳곳에 거미줄이 매달려 있었다. 고개를 돌리니 구석에 까만 비닐봉지와 반쯤 남아있는 생수병이 있었다. 봉지 안에는 빵 봉지와 빈 우유 팩 그리고 반쯤 남아 은박지에 싸여있는 김밥이 있었다. 코에 대고 냄새를 맡아보니 살짝 쉰내가 나긴 했지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한 조각을 입에 넣고 우물우물 씹어보니 나쁘지 않았다. 김밥을 먹으니 갈증이 났다. 생수병 뚜껑을 열어 냄새를 맡았다. 괜찮은 것 같아 마셨다. 아우성치던 위장이 조금 잠잠해졌다.

갑자기 느껴지는 기척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누군가 쳐다보고 있는 기분. 낙엽이 바스락 소리를 내며 구겨졌다. 어둠 속에서 천천히 고개를 내민 것은 개였다. 하얀 털에 분홍색 코를 가진 진돗개는 한쪽 귀가 반 이상 잘려있었다. 두려움에 몸이 굳었다. 진돗개가 나에게 시선을 고정하고 천천히 다가왔다. 진돗개가 이빨을 드러내고 그르렁 소리를 냈다. 진돗개 뒤로 푸들, 시추, 프렌치불도그, 치와와가 저마다의 크기와 생김새를 드러내며 나타났다. 티브이에서 본 기억이 났다. 재개발 지역 주민들이 이사 가면서 버린 애완견들이 들개가 되어 사람들을 공격한다는 뉴스. 그 피해자가 나라니. 염병.

곰을 만나면 높은 곳으로 올라가고 멧돼지를 만나면 우산을 펼치라고 했는데, 개를 만났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지. 일단 침착하자. 겁먹거나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눈을 떼지 않았다.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아주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손에 있던 김밥을 바닥에 두고 눈을 떼지 않고 뒷걸음으로 거리를 벌렸다. 숨소리도 내지 않을 만큼 조심스럽게 뒷걸음을 쳤다. 진돗개가 김밥을 킁킁거리며 여전히 날 바라보고 있었다. 개들이 날 신경 쓰지 않을 때까지 천천히 거리를 벌리려는데, 깡통인지 나뭇가지인지 낙엽인지 쓰레기인지 모를 뭔가를 밟고 미끄러지며 뒤로 넘어졌다.

개들이 이빨을 드러내고 짖으며 달려들었다. 뒤돌아 냅다 달렸다. 앞은 거의 보이질 않고 뒤에선 개 짖는 소리가 쫓아왔다. 씨발! 두렵기보단 서러웠다. 왼쪽 종아리가 오줌이라도 지린 것처럼 뜨끈했다. 휘청거리며 나무들이 왼쪽으로 기울어졌다. 축축한 낙엽들이 볼을 스쳤다. 데굴데굴 몸이 제멋대로 굴렀다. 나뭇가지와 돌처럼 날카로운 것들이 피부를 긁으며 생채기를 냈다. 정신이 아득했다. 이럴 때 지난 인생이 주마등처럼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다는데, 그냥 수줍게 웃는 나래의 얼굴이 떠올랐다.

눈을 떴을 때 큰 나무에 걸려 누워있었다. 여전히 사위는 어두웠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왼쪽 종아리가 묵직하게 아려오고 허리며 등이며 어깨가 온통 쑤셨다. 축축한 옷 사이로 추위가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온 힘을 모아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나무에 기대앉아 최대한 온몸을 끌어안았다. 추위에 몸이 부르르 떨리고 아픔에 이를 꽉 다물었다. 우우 오오오. 알 수 없는 새가 놀리듯 울었다. 고개를 치켜세우고 주변을 둘러봤다. 많이 굴러떨어진 모양인지 동네가 가까웠다.

나무를 붙잡으며 한발 한발 산에서 내려왔다. 어릴 적 다니던 초등학교가 나타났다. 실내화 가방을 휙휙 돌리며 골목을 누비던 시절이 엊그제인 것만 같은데 나는 고작 이렇게 커버렸다. 그 시절 장래희망에 나는 사육사를 부모님은 판검사를 적어갔던 게 기억났다. 생각해보니 결국 내 장래희망은 아버지가 수의사로 고쳐 적었다. 초등학교의 외벽을 따라 걷다 보니 학교 정문과 오래된 문방구와 빨간 공중전화부스가 나타났다. 공중전화부스에 들어가서 수화기를 들었다. 수신자부담 서비스 번호를 누른 뒤에 수도 없이 눌렀던 번호를 눌렀다. 한참 신호가 간 뒤 전화가 끊겼다.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전화가 연결됐다. 수신자부담 서비스를 설명하는 음성이 끝난 뒤 30초의 시간이 주어졌다.

-여보세요?

-…….

-누구세요?

-나야.

-오빠?

클래식 음악이 흐르며 상대방의 수락 여부를 기다렸다. 전화가 연결됐다.

-무슨 일이야? 이 시간에.

-미안해. 근데 난 우리가 왜 헤어져야 하는지 정말 모르겠어. 나 때문이야?

수화기 너머로 이불을 바스락거리며 그녀가 상체를 일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그녀의 짧은 한숨 뒤로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맴돌았다.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지난 일 년 동안 우리 사이가 서서히 멀어졌다고 느꼈어. 그게 누구 잘못인지는 모르겠어. 그냥 자연스러운 걸지도 몰라. 하지만 이젠 우리가 헤어져야 할 때가 온 건 알아.

-내가 자리를 못 잡아서 그래?

-글쎄 오빠가 자격지심에 거리를 둔 건지, 그런 오빠를 이해할 여유가 내게 없는 건지 모르겠어. 이제는 많은 것들이 바뀌었고 나한테는 오빠에 대한 애정이 더는 없어. 미안해 오빠.

-그래도 어쩜 그렇게 쉽게 헤어질 수가 있어. 아직도 학교 후문에서 날 기다리며 수줍게 웃던 네 얼굴이 이렇게 선명한데.

-오빠,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앞으로 갈 수 있는 거야. 힘들겠지만 앞만 보고 살아. 그래야 살 수 있어.

수화기 너머의 그녀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담겨있는 단단한 진심이 마음을 후벼팠다. 그녀와 함께한 오랜 시간이 멈춘다는 것이 이제야 실감이 났다. 지금 뱉은 말이 그녀가 날 기억할 마지막 말이라는 사실이 나를 짓눌렀고 그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녀의 목소리가 정적을 깼다.

-그동안 행복했어. 오빠는 나에게 언제나 좋은 사람이었어. 나보다 더 좋은 사람 만나서 예쁘게 사랑하고 행복하게 지내.

더는 미룰 수 없었다. 감정이 북받쳐서 말이 잘 나오지 않았다. 정신 차리고 감정을 가라앉히고 가까스로 한 마디 한 마디 꾹꾹 눌러 내뱉었다.

-미안해. 내가 좀 더 좋은 사람이지 못해서 미안해. 열심히 널 잊어볼게. 앞으로는 이렇게 연락할 일 없을 거야. 잘 살아.

그녀는 말이 없었다. 곧 전화가 끊겼다. 수화기를 내려놓고 공중전화부스에서 나와 길을 걸었다. 흥얼거리며 비틀비틀 걷는 아저씨, 아파트 단지를 지키며 졸고 있는 경비원, 불 켜진 가게, 골목을 누비는 학원버스, 쓰레기를 뒤지는 고양이가 한산한 거리를 채우고 있었다. 헬스장 전단이 바람에 나부껴 종아리를 스치고 갔다. 멀리서 새 한 마리가 선을 그으며 날아갔다.

삼거리에 있는 오래된 빵집. 그 안에서 여학생이 떨이 빵들을 쟁반에 담고 있었다. 여학생이 계산대로 가자 머리가 희끗희끗한 주인장이 덤으로 몇 개를 더 끼워줬다. 여학생이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하고 빵이 가득 든 봉투를 가슴에 품고 웃는 얼굴로 빵집을 나섰다. 가게 유리창에 [성실하게 일할 직원 구함]이라고 적인 종이가 붙어있었다. 거리를 밝히는 조명과 빵의 고소한 냄새와 친절한 주인장이 만들어내는 따듯한 느낌이 좋아 거리에 서서 빵집을 바라봤다. 주인장과 그의 아내가 조그만 원탁에 앉아 함께 사진을 보며 웃고 있었다.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었을까. 어떻게 여기까지 흘러온 걸까. 인문계 고등학교를, 문과를, 대학교를, 전공을 선택한 것은 누구지. 나는 왜 물류회사에, 자동차 제조 회사에, 문구 회사에, 식품 제조 회사에, 전자제품 제조 회사에, 보험회사에 지원하고 그들에게 퇴짜를 맞으며 방황하고 있는 걸까. 대체 누가 나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수많은 연어 사이에서 어떻게든 흐르는 강물을 먼저 오르려고 발버둥 치는 삶을 나는 왜 한 번도 의심하지 않고 받아들였을까. 속았다. 인생을 송두리째 뺏긴 기분. 주먹을 꽉 쥐고 걸음을 옮겼다.

저 멀리 집이 보였다. 화장실 문 앞에서 똥이 더 마렵듯이 집이 보이니 극심한 피로가 몰려왔다. 따듯한 물로 씻은 뒤에 이불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가는 내 모습을 떠올렸다. 이 피로로부터 날 해방해줄 집이 간절했다. 걸음을 재촉했다. 저 멀리 대문 앞에 거대한 무언가가 가로등 빛을 받아 반짝거리고 있었다. 다가갈수록 더욱 반짝거리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것은 엄마의 엄마가 사과며 배며 과일을 팔아 번 돈으로 사줬다던 자개장롱이었다.

자개장롱 정면에 노란색 바탕에 빨간 글씨로 대형폐기물이라 적인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문을 열어보니 내가 누워있던 자국 그대로 구겨진 이불이 있었다. 아버지가 버린 것이 자개장롱인지 그 안에서 몰래 자는 못난 자식인지 알 수 없었다. 장롱이 내게 말했다. 어서 와. 너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따스하게 품어줄 수 있는 건 이 세상에 오로지 나뿐이야. 자개장롱 안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문틈으로 가로등 빛이 새어 들어왔다. 익숙한 향기와 아늑한 공간 그리고 이불의 부드러움이 날 감쌌다. 나는 강아지가 되고 송아지가 되고 망아지가 되고 병아리가 되고 아기가 되어 어미의 품에 안겼다. 아버지는 왜 자식을 하나밖에 낳지 않으셨을까. 한 명이라도 더 낳았으면 좋으셨을걸. 아버지가 불쌍했다. 그래도 아버지가 집은 물려주시겠지. 집이라도 있는 게 어디야. 밥값만 벌면서 살지 뭐. 내일은 빵집에 가봐야지. 자궁 속의 태아처럼 깊이 잠들었다.

지평선 너머로 해가 솟으며 하늘을 파랗게 물들이는 새벽. 야광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큰 트럭을 몰고 와서 대형폐기물 스티커가 붙은 거대한 자개장롱과 각종 쓰레기를 실어 갔다. 집에서 나온 사람들이 깨끗해진 골목을 빠져나가 학교로 직장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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