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조 다락방의 불빛 대표·카페 컨설턴트
[동양일보]오늘은 커피에 관한 글을 쓰려고 아무런 약속도 잡지 않고 집에 일찍 들어와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 웬일인지 머릿속이 하얗고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한참을 앉아 있다가 도저히 안 되어서 무작정 차를 가지고 길을 나섰는데, 김유신 장군의 말을 탄 것처럼 어느새 예전에 자주 가던 카페 앞에 도착해 있다. 여기는 핸드드립이 맛있다.
카페 주인장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커피를 주문했다.
파나마 게이샤를 많이 알아주지만, 오늘은 들어온 지 얼마 안 됐다는 신선한 에티오피아 게이샤를 주문해서 마셨는데, 음~ 맛있다. 약간의 단맛과 신맛이 느껴지고 나면 이어서 화사한 맛이 난다. 흔히들 꽃향기라고 말하는 게이샤 특유의 향이다.
커피를 마시니 각성이 되고 이런저런 생각들이 떠오른다. 이런 점은 참 좋다. 커피는 내 신경계에 흩어져 있는 뉴런에 자극을 주어 서로 연결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짐 자무쉬 감독이 만든 ‘커피와 담배’라는 영화가 있는데, 2003년 작이지만 1986년부터 17년 동안 틈틈이 만든 11편의 단편들로 이루어진 작품이고, 커피와 담배에 대한 예찬을 담고 있다. 커피와 담배라는 소재 그리고 한 공간을 배경으로 등장인물들의 단순한 대화로 이루어져 있는데, 주인공들은 어색한 대화를 나누다가 불편해 질 때마다 커피를 마신다.
마치 어색함에서 도망치려는 듯 보이는데 ‘우리에게 커피는 무엇인가? ‘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장면이다.
이렇게 커피를 예찬하는 영화가 나올 정도로 커피라는 음료는 이미 전 세계인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영화나 TV 드라마 속에서도 커피를 마시는 장면들은 멋있게 연출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인간의 탐욕이 만들어 낸 커피도 있는데, 바로 루왁 커피다. 루왁은 긴꼬리 사향고양이를 말하는데, 루왁 커피는 커피 열매를 먹은 사향고양이가 껍질과 과육을 소화시키고 배설한 커피 씨앗(생두)을 가공해서 만든다.
루왁 커피가 유명해진 건 2007년 ’버킷리스트’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인 잭 니콜슨이 죽기 전에 마시고 싶은 음료로 ’루왁 커피’를 이야기하면서이다.
원래 루왁 커피는 자연 상태의 사향고양이들이 배설한 커피 씨앗을 모아 가공해서 마시는, 아주 소량만 생산되는 특별한 커피였다고 한다. 그런데 영화가 상영된 뒤로 수요가 늘면서 비싼 가격에 거래되다 보니 사람들은 야생의 사향고양이들을 잡아다가 닭장 같은 곳에 가두고 굶긴 상태에서 커피 열매만을 먹여 강제로 배설 시켜 루왁 커피를 대량으로 생산한다고 한다.
야생에서 15년까지도 산다고 알려진 사향고양이지만 인간에 의해 포획된 개체들은 극심한 스트레스로 2~3년밖에 살지 못한다고 하니 인간의 잔인함에 혀가 내둘러진다.
생각해보면 이렇게 스트레스가 극심한 사향고양이의 소화기관에서 나온 루왁 커피가 인간의 몸에 좋을 리가 없다. 또한 커피는 신선한 것이 가장 좋은데, 이미 로스팅된 것을 해외에서 사 와서 먹기까지는 이미 오랜 시간이 지나게 되는 것도 문제다.
커피라는 음료는 참 매력적이고 장점이 많은 음료다.
하지만 필자는 오늘 “다른 생명체를 희생시키면서까지 특별한 커피를 즐겨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