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성종 전 꽃동네대학교 총장

 

 

[동양일보]송계(松溪) 박영대(朴永大) 화백(畫伯)초대전에 가보았습니다. 그 개막식에서 늙은이의 여린 마음으로 자꾸 눈시울이 더워짐을 억지로 참았습니다. 송계화백에게는 ‘朴素畫風 永懷向高 大德麥波 初河 드림’이라고 축하했지만, 제가 흐뭇해한 것은 동양일보 창사 30주년기념사업으로 이 순회(청주-충주-제천)기획전을 연 것에 대한 짐작과 감명에서였습니다.

이 기획전은 창사 30주년을 맞는 동양일보가 사시(社是)인 ‘이 땅의 푸른 깃발’을 재확인하고 재강조하고 재천명하는 것이라고 해석하는 데 그 의미를 세웁니다. 그것은 내 고장을 사랑한다는 것은 충북의 인물을 소중히 여기고 키워서 발전 진화의 동력을 만드는 것이 시작이고 마침인 것이라고 하는 신념(信念)에 터한 것입니다.

참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어떤 수준이냐고 하면, 저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부활하시고 승천(昇天)하시기 직전에, 12사도의 으뜸인 베드로(나중에 이 일로 로마 교황청의 초대교황이 된 순교자)에게, ‘너는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십니다. 베드로는 무조건적으로 예수님을 ‘하느님 아드님이시라’고 선포한 제자답게,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은 주님께서 아십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재차 똑같이 물으시고, 세 번이나 거듭 물으십니다. 베드로는 세 번째 가서는 야속했을 것입니다. 슬퍼하면서 대답을 올리니, ‘내 양들을 돌보아라.’ 하시고 떠나가십니다.

우리 고장은 참으로 도민을 공동체로 여기고 서로 절절히 사랑하고 있습니까? 도민 상호간에도 그렇거니와, 고급공무원들은 참으로 도민을 사랑한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까?

몇 가지 예를 들어봅니다. 독일에 있는 세계적 작곡가 박영희 선생이 벨린 필하모닉의 초대음악회에 그 협연이 세계적 명예가 될 것이라는 애향심으로, 청주시에 오시라고 제안을 했었는데, 청주시의 중간 간부가 시장에게 보고도 하지 않은 채 예산이 없다고 거절했었답니다. 그랬더니 그 명예를 경기도 수원시향이 재빨리 차지했습니다. 이것을 장봉훈 주교님께서 알려 주셨습니다. 말씀은 안 하셨습니다마는 ‘너는 이 고장의 유지(有志)라고 하면서, 도대체 왜 이렇게 되어 있는지 새겨두라.’는 뜻이었습니다.

‘직지’를 찾아준 ‘한국과 청주의 은인 박병선 박사’의 말년을 상기해보겠습니다. 특히 ‘직지’의 이름으로 기구를 만들고 책임자가 되어 있는 분들, 연구비나 활동비를 청주시로부터 수령하고 있는 조직들, 박병선 박사의 중태를 걱정하여 수원가톨릭병원의 대수술을 받아 생명을 구한 분이 장봉훈 주교님이었고, 박병선 박사의 국립묘지 안장을 주선한 분도 장봉훈 주교님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까? 장 주교님은 나중에 저를 인천가톨릭대학교에 같이 가자고 하시어, 동행하였더니 강화도의 그 대학도서관 앞에 차를 세우고, 들어가 보라고 하셨습니다. 미심적은 마음으로 들어가 보았더니, 놀랍게도 박병선 박사의 유물들이 도서관의 커다란 방에 공들여서 전시되고, 원고지 한 장조차 소중하게 스캔하여 분류하고 나열되어 있으며, 그 정선된 작업은 계속된다고 하였습니다. 저는 얼굴이 화끈하고 부끄러웠습니다. 인천교구와 박병선 박사와의 인연은 프랑스에서 운명하실 때, 임종을 지킨 신부가 인천교구의 유학생 신부였다는 것뿐입니다. 장 주교님이 저를 그리로 안내한 뜻은 ‘너는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꾸중이고, 앞에서 말씀드린 박영희 작곡가의 일과 함께 커다란 채찍이었습니다.

우리 고장, 이렇게 사람을 가볍게 아무렇게나 생각하면서, 제 고장 인물을 소중히 하지 않고, 키우지 않고 보호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애향심과 지역발전을 말하고 바란다 하겠습니까? 하나의 예를 더 들겠습니다. 문의 문화재단지에 어떤 효자(孝子)를 표양하는 시설이 있어서, 그 아드님이 거기에 사비(私費)로 효도기념관 짓도록 해달라고 청원했더니, 청원군에서 거절당했고, 나중에 청주‧ 청원 통합 후에는 청주시가 거절했다는 사자(嗣子)의 호소를 듣고, 거기에 가묘(假墓)와 초막(草幕)이 있어서 그 연고(緣故)로 그런다는 것을 안 저는 그것은 청주시가 기념관을 짓고, 유족이 가지고 있는 유물을 다 받아 전시하고, 그 아드님(극노인이지마는)과 후손이 그것을 관리하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여 청주시에 탄원하였습니다. 청주시의 담당부서의 답이 그 후손에게는 안 된다는 것이었고, 저한테는 과장이 전화하여 찾아뵙겠다는 것을, ‘안 된다는 대답이라면 오실 것이 없습니다.’면서, ‘안 된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가로되 ‘개인 표양은 하지 않습니다.’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한 마디 했습니다. ‘개인 표양이라 안 된다면, 큰 마을마다 동구(洞口)에 많은 충신(忠臣)‧ 효자(孝子)‧ 열녀(烈女)의 정문(旌門)은 무엇이고, 경북 안동(安東)에는 50여 처의 서원(書院)이 있어 세계적인 자랑이고 명예라는 자부(自負, ‘한국 정신문화의 서울, 안동’이라는)가 있는데, 그것이 개인 표양이 아니고 무엇입니까’라고.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 송계 박영대 화백을 천안(天安)의 백석(白石)대학교에서 석좌교수로 초빙하여,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하고 송계기념미술과과 창작작업실과 봉급을 제공 지급하면서, 그것을 자랑으로 하고 있는데, 충북은 송계화백을 빼앗길 뻔했습니다. 또한 한국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고상돈 산악인은 청주서 자라고 우리고장에서 활동한 사람인데. 출생지가 제주라고 그쪽에서 표양되고 있으며, 최초의 유도 금메달리스트 박종학 교수와 신궁(神弓)이라고 떠들던 김수녕 선수와 올림픽 메달리스트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저는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의 메달리스트를 세계최고의 기능자이므로, 충북체육고등학교의 해당종목 교사로 채용하고자 했지만 교원자격증 소지자만 교원이 되도록 한다는 법조항 때문에 안타까운 번의를 한 기억이 있습니다.

이러니 우리는 고장 사랑의 원동력을 어디서, 누구에게서 찾아야 합니까?<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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