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조 다락방의 불빛 대표‧카페 컨설턴트
[동양일보]공군 헌병대에서 군 생활을 했던 친구와 저녁을 먹으며 시작된 군대 이야기는, 그 친구가 운영하는 카페에 가서까지 이어졌는데, 결국 친구의 배우자에게서 “왜 안 들어오냐”라는 전화를 받은 시간인 새벽 1시 30분이 되어서야,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기로 하고 끝이 났다.
여러 친구들로부터 수십 번도 더 들어봤을 군대 이야기는 이미 수십 년이 지났는데도 왜 그리 재미있는지 모르겠다. 필자는 기갑이라는 병과를 부여받아서 전차병 1141기로 광주 상무대를 수료한 후 강원도에서 근무를 했는데, ‘기갑’이나 ‘전차병’이라고 하면 잘 모르고 탱크 운전병을 했다고 해야 바로 ‘아~’ 그러신다.
당시 다른 병과와는 다른 부분이 여러 가지 있었는데, 첫째, 일반 군용 모자 대신 베레모를 썼다. 둘째, 일반 병과는 단색의 야상을 입었지만, 전차병은 얼룩무늬 잠바를 입었다. 셋째, 개인화기가 장총이 아니라 권총이었다.
이러한 차이는 다른 부대와의 연합훈련을 나가서 여러 가지 장점을 발휘하게 되는데, 우선 베레모를 쓰고 다니니 뭔가 특수부대 같은 느낌을 주어 강인하게 보인다는 점이다. 그리고 베레모나 얼룩무늬 잠바에는 계급장을 달지 않았고 더구나 개인화기로 권총을 차고 다녔기 때문에 장교처럼 보였다.
장교처럼 보이는 게 무슨 대수냐고 말씀하시는 분도 계실 수 있겠지만, 군대에서는 뭐니 뭐니 해도 먹고, 자고, 입는 것이 가장 중요한 관심사인데, 어차피 훈련을 나가 있으니 자고 입는 것이야 다 비슷비슷할 것이지만 밥을 먹을 때는 장교처럼 보인다는 것이 큰 위력을 발휘했다.
점심시간은 1시간. 밥과 반찬을 싣고 배급 차가 도착하면 긴 줄이 생기기 때문에, 나중에 식사를 하는 사람은 먹자마자 바로 다음 훈련에 참여하여야 하기 때문에 좋지가 않았다.
먼저 식사를 해야 잠시 쉬거나 여유를 부릴 수가 있었는데, 그동안 고참들에게 들은 것도 있고 해서 여러 부대원들이 길게 늘어선 배식줄을 성큼성큼 지나서 식판을 내놓으면 배식하는 병사가 한번 쓱 훑어 보고는 이해가 된다는듯한 표정으로 즉시 배식을 해주곤 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그 당시 이건 대단한 특권이자 우쭐한 일이었다.
훈련 기간 중 큰 기쁨이었던 일이 하나 더 있었는데, 역시 먹는것과 관련된 일이다. 탱크는 5인승이었지만, 조종석에는 혼자만 있었기 때문에 운행 중에는 완전히 독립적인 공간이었다.
50톤에 이르는 탱크 수십대가가 도로를 질주하는 모습은 정말 장관이었는데,
보통은 헤치를 열고 다니기 때문에 시원한 바람이 얼굴에 계속 부딪쳐왔다.
민간인 지역의 다채로운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가슴 구석구석까지 시원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때 빠져서는 안되는 한 가지 유희가 있는데 미리 준비해 간 납작한 믹스커피를 입안에 일정량 털어 넣고 침으로 녹이면서 그 맛을 음미하는 것이었다.
입안에서는 쓴맛과 단맛, 고소한 맛이 차례대로 느껴지고, 바람은 시원하게 얼굴에 부딪쳐 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살아오면서 필자가 기억하는 최고로 맛있는 커피는 바로 그것이었다.
바람과 자유가 가미된 커피믹스의 맛, 지금도 잊지 못하는 최고의 커피였다.


저는 전차병1151기 3군단직할 2전차전역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