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수경
[동양일보]“너희 아빠랑 헤어지기로 했어.”
‘너희’ 아빠라고 했다. 누리는 엄마가 한 말의 의미보다도 그 단어 자체가 더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무슨 얘기라도 안 해?”
엄마는 조금 초조해 보였다. 누리는 그런 엄마를 힐끗 바라봤지만, 여전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예견된 일이었다. 아빠가 두 달째 집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리는 다시 고개를 푹 숙이고 밥알 같지 않은 밥알을 젓가락으로 뒤적거렸다. 어차피 나에게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어, 아빠는.
누리는 필름 카메라를 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아빠가 누리에게 남긴 유일한 것, 그것은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취미였다. 누리는 자신이 아빠를 하나도 닮지 않았다고 자부했지만, 사진에 대한 열정만큼은 아빠 판박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다.
“누리도 이제 세상을 담을 줄 알아야지.”
아무것도 모르는 8살짜리에게는 과분한 선물이었지만, 아빠는 스마트폰 사주는 것보단 낫지 않겠냐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로부터 4년이나 지난 지금, 허허 웃음 짓던 아빠는 더 이상 곁에 없지만 누리는 목측식 필름 카메라도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프로가 되었다. 스마트폰이 만연한 세상에서 찍고 바로 확인도 못 하는 필름 카메라의 매력이 뭔지, 어쩌면 찍는 순간과 사진이 나오는 순간 사이의 시차가 그 매력을 배가시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누리의 유일하면서도 아주 특별한 취미는 바로 이 ’필름 카메라’와 아파트 탐방을 하는 것이다.
“오늘은 103동, 1~2라인 앞 놀이터.”
행선지는 매번 달라지지만, 촬영하는 모습은 엇비슷하다. 우리 아파트에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벌어지는 사소한 일들을 담아내는 것이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신나게 놀이공원에 가는 아이의 행복한 모습부터 선생님에게 혼쭐이 나서 풀이 죽은 아이의 모습까지. 사진 찍을 때와 인화할 때의 괴리감도 마음에 든다. 찍을 때 이거 정말 대박이다! 싶었던 사진이 오히려 엉망진창일 때도 있고, 아이, 괜히 찍었나 싶었던 사진이 썩 마음에 들 때도 있거든.
“누리, 너 정말 전교 임원 선거에 나갈 거야?”
“응. 한 번 나가보려고.”
누리는 자신을 견제하는 희진이를 약올리고 싶어졌다. 이렇게 티 나게 누리를 싫어하는 희진이 얄밉기도 했기 때문이다. 희진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첫 번째 공약은 뭐로 할까?”
“내가 생각해봤는데, 우리 학교 급식이 맛있잖아? 그걸 어떻게 이용해볼 수 없을까? ”
‘누리 임원 만들기’를 위해 모인 삼총사는 머리를 맞대고 전교생을 사로잡을 공약을 치열하게 고민했다. 누리 삼총사가 만든 벽보는 희진이의 프린팅된 벽보보다 세련되지도 않고, 지원이의 예쁜 벽보보다 잘 꾸며지지도 않았지만, 메시지를 명확하게 전달하려고 애를 쓴 기색이 역력했다. 첫째 공약인 ‘다시 먹고 싶은 급식 부활시키기’ 옆에는 그동안 먹었던 맛있었던 그림을 그림으로 그려 보기만 해도 입에 군침이 돌게 만들었고, 둘째 공약인 ‘실내 체육 1시간 확보’ 옆에는 그동안 했던 다양한 교실 놀이 사진을 붙여놓았다. 학교에 필름 카메라를 가져와도 되냐고 담임선생님께 양해를 구해 정성 들여서 찍은 누리의 사진들이었다. 벽보가 훼손되지 못하게 투명 필름으로 조심스레 감싼 후 1층부터 4층까지의 복도에 벽보를 꼼꼼하게 전시해두고 나니, 우리의 노력이 눈으로 보이는 것 같아 뿌듯하기 그지없었다.
“칫, 애들이 그깟 유치한 것에 현혹될 줄 아니?”
희진이가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 희진이도 본인을 도와줄 팀원 두 명을 꾸리긴 했지만, 공약은 부모님과 함께 정했다고 했다. 벽보도 유명 업체에 디자인과 프린팅을 모두 맡겼다고 기세등등하게 자랑했더랬다. 사실 누리 삼총사는 벽보를 모두 손수 만드느라 빈틈도 조금 있고, 너덜너덜한 구석도 있었다. 그래도 누리는 누리와 친구들이 직접 만든 벽보에 더 눈이 갔다. 다른 아이들의 반응도 누리와 다르지 않았다. 아무래도 공약 중 ‘급식’과 ‘체육’이라는 키워드가 아이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 같았다. 누리 삼총사는 선거를 사흘 앞두고 승리의 기운을 예감했다. 하지만 그것은 섣부른 판단이었다.
“누리야, 나 좀 봐.”
지원이가 누리에게 슬쩍 말을 건넸다. 대놓고 누리를 견제해서 째려보고 인사조차 하지 않는 희진이와 달리, 또 다른 후보인 지원이는 누리를 대놓고 질투하지는 않았다.
“네가 알아야 할 게 있는데….”
지원이는 누리를 복도로 불러내서 핸드폰을 보여주었다. 지원이의 손끝에 나온 화면에는 메시지가 잔뜩 적혀있었다.
[윤지원. 내가 놀라운 사실 하나 알려줄까? 홍누리 걔, 절대 부회장 당선 안 될걸. 걔네 엄마 아빠, 이혼한 거 알아?]
누리는 화면을 찬찬히 살펴보다 ‘이혼’이라는 낱말에 숨을 멎는 듯했다. 우리 엄마아빠가 이혼한 걸 희진이가 어떻게 알지? 지원이는 그런 누리의 손을 꼬옥 잡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이게 다가 아냐. 밑으로 내려 봐.”
[근데 걔네 아빠가 글쎄, 도박쟁이래. 도박을 해서 이웃 사람들에게 돈을 꾸고 다니고 갚지도 않았다는데?]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누리의 세상이 완벽하게 무너졌다. 아니, 누리에게만 세상이 무너졌다. 누리는 엄마가 퇴근해서 집에 돌아올 때까지 소파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방과 후 수업도 가지 않았다. 아마 엄마에게도 전화가 갔을 것이다. 그렇지만 누리는 뭐가 됐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내 세상은 이미 산산조각이 나버렸으니까.
“누리 너, 오늘 방과 후 수업 안 갔니?”
엄마는 누리의 불성실을 가장 못 견뎌 했다. 누리는 웬만한 것에 화를 내지 않는 엄마가 유일하게 화를 내는 불성실만큼은 저지르지 않기 위해 노력했지만, 오늘만큼은 완벽하게 예외였다.
“아빠가 도박을 했어?”
엄마에게 착한 딸이 되어주고 싶었지만, 오늘만큼은 별수 없었다. 누리는 엄마를 노려보았다. 엄마가 무슨 소리냐고, 도리어 화를 내줬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는 경악스러운 눈으로 누리를 쳐다볼 뿐,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맞다고도, 그렇다고 아니라고도 선뜻 말하지 못하는 엄마가 미웠다. 누리는 방문을 쿵! 하고 큰 소리 내며 닫은 뒤 침대에 얼굴을 파묻고 엉엉 울었다. 열두 살이 감당하기에는 너무 잔인한 현실이었다.
한참을 울고 난 누리는 고개를 들고 창문을 활짝 열었다. 눈이 퉁퉁 부어 평소의 반도 채 떠지지 않았지만, 바람을 쐬지 않으면 이 미칠 것 같은 마음이 진정될 것 같지 않았다. 누리는 누리에게 닥친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미어지는 듯했다. 엄마는 힘든 일이 생길 때면 취미를 찾으라고 했다. 하필이면 누리의 취미는 망할 아빠가 남겨준 필름 카메라 촬영이다.
첫 번째 사진, 강아지의 똥을 밟은 105동 꼬마.
두 번째 사진, 요구르트 아줌마에게 커피 사려는데 다 떨어졌다는 말을 들은 옆 반 선생님.
세 번째 사진, 25점짜리 받아쓰기 시험지를 들고 집 문 앞에 선 108동 남자아이.
네 번째 사진….
그동안 찍어놓았던 사진을 모아둔 서랍을 열자 전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였다. 똥을 밟은 꼬마는 세상을 잃은 표정을 짓고 있었고, 옆 반 선생님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한 채 비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남자아이는 아마 자기에게 곧 닥칠 시련을 걱정하고 있겠지? 누리는 사진 하나하나를 넘기며 이 사람들의 마음을 가늠하기 위해 애썼다. 누군가에게는 개똥이 세상에서 가장 불쾌한 일이고, 커피 한 잔이 가장 절실할 것이고, 잘못 본 시험이 가장 큰 실수라고 생각할 거야. 누리는 사는 게 마냥 놀이터인 사람은 없다는 드라마 속 대사를 떠올렸다.
“누리야, 엄마아빠 때문에 네 삶을 꼴등으로 만들진 말아….”
방문에 기대어 흐느끼는 엄마의 목소리에 누리의 마음이 미어졌다.
예상한 대로 누리에 대한 소문은 전교에 쫙 퍼져있었다. 하지만 누리는 사퇴의 시옷조차 입에 올리지 않았다. 누리는 하루 앞으로 다가온 유세 준비에 여념이 없었고, 오히려 4학년부터 6학년까지 학생들이 누리를 보러 5학년 7반 앞에 모여들었다. 그것이 나쁜 관심이든, 좋은 관심이든, 어쨌든 누리에 관한 관심이었다.
영원히 올 것 같지 않은 그 날이 밝았다. 누리는 등교하기 전, 서랍에서 사진 몇 장을 꺼내 들었다. 결과가 안 좋더라도 절대로 상처받지 않기야. 네 잘못이 아니고, 넌 최선을 다했어. 누리는 입이 바싹 마르는 듯해 물로 목을 축였다.
‘후우.’
누리는 길게 심호흡을 했다. 카메라 앞에서 말하는 것은 처음이라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어려웠다.
“다음으로 전교 부회장 '다' 후보 홍누리 학생의 소견발표를 듣겠습니다.”
누리는 카메라 렌즈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친구들과 함께 정했던 공약에 관해 설명하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지킬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다음으로 후보에 대한 질의응답 시간을 갖겠습니다. 홍누리 후보의 아버지에 대한 소문은 사실인가요?”
올 것이 왔다. 누리는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았다. 예상했던 일인데도 그랬다. 지켜보는 눈도 많고, 방송 시간은 정해져 있기에 대답을 얼른 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방송 러닝타임은 속절없이 흐르고 있었고, 그 잠깐의 시간이 영겁의 시간처럼 느껴질 때쯤, 담임선생님이 옆에서 다른 선생님들께 양해를 구하시는 모습이 보였다. 누리는 고개를 푹 숙이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 다 끝났어. 차라리 안 오니만 못했다고 생각하며 일어나려는 찰나, 의자 밑으로 무엇인가 투둑- 떨어졌다.
아빠의 사진이었다.
아빠에게서 필름 카메라를 선물 받은 날, 누리의 손으로 처음 찍은 아빠의 사진이었다. 그리고 유일하게 남은 아빠의 흔적이기도 했다. 아빠는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리며 짓궂게 웃고 있었다. 누리는 사진을 주워 들었다. 그리고 카메라를 향해 사진을 들어 올렸다.
“저희 아빠입니다.”
누리의 주위를 둘러싼 공기가 얼어붙었다.
“정확히는, 제가 기억하는 아빠의 모습입니다.”
우리 아빠에 대해 어떻게 설명할까. 친구들에게 다른 방식으로 해명할 수도 있었겠지만, 누리는 누리의 솔직한 심정을 친구들에게 이야기하기로 했다. 그게 열두 살의 누리에게 가장 어울리는 일이기도 했다.
“저희 아빠는 저에게 필름 카메라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저는 그 카메라를 들고 사람들의 일상을 담는 것을 좋아했어요.”
누리는 누리가 직접 인화한 사진 중에 가장 좋아하는, 놀이공원에서 찍은 사진을 몇 장 꺼내 들었다.
“이건 어렸을 때 놀이공원에서 찍은 사진들인데요, 모두가 놀이공원이라고 하면 즐겁고 행복한 상상만 하지만, 구석에 가보면 부모님을 잃어버려서 울고 있는 아이도 있고, 지친 어른들의 표정도 보여요.”
누리는 오늘 아침 사진을 준비하면서도, 누리가 느낀 걸 아이들에게 잘 설명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어쩌면 혼자 횡설수설하다가 내려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저희 아빠도 마찬가지예요. 제가 기억하는 모습은 이 놀이공원처럼 밝고 즐거운 어른이었지만, 사실은 어둡고 힘든 부분도 있었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런 어두운 부분이 놀이공원을 어둡게 만들지 않는 것처럼….”
저까지 어둡고 힘든 사람으로 만들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라는 말을 끝으로 누리의 청문회 시간은 끝이 났다.
“네 명의 전교 학생회 임원 후보들의 소견발표를 들었습니다. 지금부터는 투표 전 유의사항을 전달하겠습니다….”
방송부원이 서둘러 다음 절차에 관해서 설명했다. 누리는 다른 임원 후보들과 함께 사진을 찍기 위해 운동장 밖으로 나왔다. 선거는 많은 것을 바꿔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누리가 멋진 연설을 해냈다고 해서 아빠의 일이 없던 일이 된 것도 아니었고, 아이들의 수군거림이 완전히 잦아든 것도 아니었다.
“하나, 둘, 셋, 찰칵-. ”
하지만 누리는 생각했다. 사진에 찍힌 인물을 바꿔놓을 수는 없지만, 사진을 모아서 앨범을 만드는 건 결국 자신이라고 말이다. 누리는 팔을 길게 뻗어 기지개를 켰다. 새 구름이 먹구름을 내쫓는 듯한 청명한 하늘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