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석 미술평론가
[동양일보]‘제가 지금 하고있는 만화적인 캐릭터 작업의 시작은 대학 졸업 이후부터였어요. 당시 저는 나만의 색깔이 있는 독특한 작업, 남과 다른 나만의 조각적 표현형식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것은 저에게 무척 큰 고민이고 압박이고 불안이었어요.’
대학 졸업을 전후해서 홀로 서는 전업 작가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한 작가라면 누구나 겪는 고민이다. 아직까지 다른 작가들이 하지 않은 것을 탐색하고 차별화된 새로운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오히려 길을 잃고 해매게도 한다. 그 시간이 길어질수록 불안감은 커진다.
‘우선 그 불안에서 나를 떼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자연스럽게 초등학교 때부터 했던 저만의 불안 치유법을 썼죠. 특별한 계획이나 목적 없이 교과서, 참고서, 공책 한 귀퉁이에 그저 손 가는 대로 낙서하는 거요. 그렇게 드로잉 북에 끄적끄적 그리기 시작했어요.’
학창 시절 수업 시간에 한 번쯤 멍하니 낙서 하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박주영(29) 작가는 이미 거기에 인쇄된 글자를 따라 쫓아가기보다, 여백 한 귀퉁이에서 자신만의 놀이터 발견하고, 친구들, 이런저런 이야기를 만들어 놀기 좋아하는 사람이란 점을 다시 떠올린 것이다.
‘남들이 하지 못한 어떤 것, 하지 않는 어떤 것을 굳이 찾기보다는 내 안에서 찾는 것이 더 빠르고 옳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원래 좋아하는 것을 해보자. 나를 의도적으로 무언인가로 만들어 보여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좋아하고 즐기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좋겠다 생각했어요.’
작가는 자신만의 창작 색깔을 얼른 찾아야 한다는 불안감을 잠시 떨치고자 다시 꺼낸 치유법에서 위로를 얻고 있는 자신을, 끄적끄적 낙서를 정말 좋아하고 즐기고 있는 자신을 보게 된 것이다. 나이 들면서 정해진 궤도에서 벗어나는 행위에 사람들은 어린애같이 유치한 짓이라고 한다. 대개 사람들은 그 유치함을 삭제하거나 적어도 드러내지 않고 감춘다. 그러나 작가는 마치 ‘유치하다 해도 좋아. 그게 바로 나야.’라고 말하는 듯하다.
‘어떻게 하면 내가 정말 몰입하고 즐길 수 있을까. 이것이 저의 질문이 됐고. 나의 작업 색깔로 하자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해서 동화적 상상과 이야기를 담아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어렸을 때부터 동화와 만화를 좋아했고 그것에서 받았던 위로와 즐거움을 작업으로 표현하고 있어요.’
작가가 평면 종이 위에 그린 그림이 살과 뼈를 얻어 공간에 몸으로 서게 되는 것은 작가 자신의 상상이 살아 움직이는 실체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지극했기 때문이다. 그 지극함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작가 마음속, 상상 속에 문득문득 떠오르는 다양한 이야기가 마치 몸 안에서 꿈틀댐을 참지 못하고 피부막을 뚫고 우러나오기까지 한다. 작품 표면의 낙서는 밖에서 그린 것이 아니라 안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아이처럼 순진하고 아름답다. 그것이 작가가 사는 방법이다. 어렸을 때 누구나 갖고 있던 자신만의 딴짓, 잠깐의 허튼짓. 그것은 하찮은 것도, 버려도 될 유치한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없어서는 안 되는 삶의 여백이기 때문이다.
▷박주영 작가는...
충북대 조형예술학과(조각전공, 2016) 졸업. 동대학 일반대학원 조형예술학과(2022년 2월) 졸업예정, 개인전 1회, 단체전 15회. 행주미술대전 장려상 등 수상, 청주여자중학교 등 작품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