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을 모신 충신으로 알려져

[동양일보 유환권 기자]공주시는 충절을 다해 단종을 모신 충신이자 진주정씨와 공주와의 인연을 처음 맺은 인물인 충장공 정분(사진) 선생을 4월의 역사 인물로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정분 선생의 본관은 진주(晉州), 호는 애일당((愛日堂)이며, 1382년(우왕 8) 진주에서 태어났다. 1416년(태종 16) 친시(親試) 문과에 급제한 선생은 이조좌랑 등을 역임했으며 1436년(세종 18)에는 충청감사를 맡았다.

문신이었지만 토목공사에 조예가 깊었던 선생은 세종 말부터 단종 초에 이르기까지 궁궐의 조성, 축성 등에 큰 공헌을 했으며 특히 1447년(세종 29) 숭례문 개축공사의 최고 책임자로 임명돼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했다.

절재 김종서 선생과 친분이 있던 선생은 고향 진주와 서울의 중간 지점인 요당에 별서(別墅)를 마련하게 되면서 진주정씨와 공주와의 인연이 시작됐다.

1452년(단종 즉위) 12세의 어린 단종이 즉위하자 선생은 김종서, 황보인 등과 함께 문종의 유지를 받들어 단종을 보필했지만 1453년(단종 1)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으로 인해 단종을 보필하던 충신들은 대부분 목숨을 잃었으며 선생 역시 유배 후 처형됐다.

선생의 죽음 이후 아들인 정지산은 벼슬을 버린 후 며느리인 여산송씨와 함께 공주 요당으로 이주해 어머니를 효성을 다해 봉양했다.

이후 여산송씨가 아들 정윤침(鄭潤琛)과 함께 사곡면 호계리로 이주 및 정착하게 됨으로써 진주정씨의 공주 입향이 시작된다. 현재 사곡면 호계리에는 후손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충신 정분·정지산 정려 및 충효사(忠孝祠), 고로서원(古老書院) 등이 남아있어 선생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이후 1746년(영조 22)에 김종서, 황보인 등과 함께 관작이 복권되었으며, 1758년(영조 34)에는 충장(忠壯)이라는 시호를 받게 된다.

1797년(정조 21)에는 지역 유림들에 의해 공주 요당에 요당서사가 창건되어 선생과 함께 김종서, 황보인을 배향하였으며, 1808년(순조 4)에는 부조묘(不祧廟)가 건립되게 되었다.

김정섭 시장은 “공주 요당에 별서를 세워 진주정씨와 공주와의 인연을 처음 맺은 인물이자 충절을 다하여 단종을 모신 충장공 정분의 삶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4월의 역사 인물로 선정했다”며, “4월 중 시민을 대상으로 충장공 정분 선생 관련 프로그램을 개최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공주 유환권 기자 youyou9999@d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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