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욱 소리창조 예화 상임작곡가
[동양일보]“음습하고 우울한 독일적 분위기를 단번에 날려버리는 찬란한 태양의 음악”
독일의 시인이자 철학가인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가 오페라 ‘카르멘(Carmen)’에 보낸 찬사이다. ‘카르멘’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집시 여인 카르멘과 보수적인 군 장교 돈 호세의 비극적인 사랑이야기를 다룬 오페라이다.
그리스 비극에서 기원해 신과 영웅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던 오페라는 이후 세속적인 내용과 결합하게 되면서 대중에게 친밀하게 다가가게 되고 바로크, 고전, 낭만 시대를 거쳐 유럽에서 그야말로 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특히, 16세기 이탈리아에서는 오페라가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낭만시대에 이르러는 롯시니, 베르디, 푸치니 등 세계적인 오페라 작곡가들이 등장한다.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 푸치니의 ‘라 보엠’과 함께 세계 3대 오페라로 손꼽히는 작품이 바로 프랑스 작곡가 조르주 비제(Georges Bizet, 1838-1875)의 오페라 ‘카르멘(Carmen)’이다.
프랑스의 작가 P.메리메(Prosper Merimee,1803-1870)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비제의 역작 ‘카르멘’은 현재의 인기가 무색하게도 정작 이 공연이 초연되었던 1875년에는 관객의 사랑을 받지 못한 작품이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바로 공연이 올려 진 그 해에 비제가 ‘카르멘’의 성공을 미처 보지 못한 채 숨을 거둔다는 것이다. ‘카르멘’은 에스파냐의 세비야 담배공장을 배경으로 등장하는 집시 여인 즉, 하층민의 삶을 조명한 작품인데다 군장교의 인생이 파멸로 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러한 소재들이 당시 보수적이었던 프랑스 사회에서는 받아들여지지 못해 관객의 호응을 얻지 못했다.
‘카르멘’은 총 4막으로 이루어진 오페라 코미크이다. 본래 오페라 코미크(opera comique)는 ‘익살스러운 오페라’라는 뜻으로 희극적인 내용을 다룬 프랑스 오페라를 칭하는 말이지만 ‘카르멘’은 비극적인 내용에도 불구하고 극 중 노래가 아닌 연극적 대사를 포함하고 있어 오페라 코미크로 분류된다.
오페라 ‘카르멘’에는 ‘전주곡’, ‘하바네라’, ‘투우사의 노래’, ‘꽃의 노래’ 등 대중에게 잘 알려진 음악들이 여러 곡 등장하는데 그 중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은 카르멘이 돈 호세를 유혹하는 ‘하바네라-사랑은 제멋대로인 한 마리 새’이다. ‘하바네라(habanera)’는 정열적인 쿠바의 춤곡 중 하나인데, 싸움에 휘말려 잡혀가던 카르멘이 도주를 위해 호송군인 돈 호세를 유혹하는 부분에 등장하는 음악이다. 2/4박자의 ‘딴-따딴딴’하는 리듬이 베이스에 반복적으로 깔리며 그 위로 반음계 진행의 매혹적인 멜로디가 연주된다. 하바네라의 이 베이스 리듬은 아르헨티나의 춤곡 탱고(Tango)에도 특징적으로 등장하는 리듬이다. 카르멘의 ‘하바네라’와 영화 ‘여인의 향기(1992)’의 탱고 장면에 삽입되었던 ‘Por una Cabeza’를 비교해 들어보면 그 리듬의 특징을 쉽게 알 수 있다.
동시대 작곡가인 브람스는 ‘카르멘’의 예술성에 감탄하여 공연을 20번이나 관람했고 20세기 작곡가인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음표 하나 버릴 게 없는 완벽한 작품”이라 극찬했다.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오페라 ‘카르멘’이었지만 정작 파리에서는 초연 후 10여년이 지나서야 인기를 얻었다 하니 그 곳에서는 돈 호세를 사로잡은 카르멘의 매력이 무용지물이었던 것일까? ‘하바네라-사랑은 제멋대로인 한 마리 새’를 들으며 ‘팜므파탈(Femme fatale)’의 대명사로 불리는 카르멘의 치명적인 유혹에 빠지는 가슴 뛰는 경험을 해보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