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욱 소리창조 예화 상임작곡가
[동양일보]많은 음악가들의 생애를 들여다보면 뛰어난 재능은 갖고 태어났으나 안타까운 가정환경에서 자란 이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러나 태어나면서부터 소위 금수저라 불리는 환경을 다 가진 음악가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펠릭스 멘델스존(Felix Mendelssohn,1809-1847)이다. 멘델스존은 독일 함부르크의 명망 있는 유태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의 조부인 모제스 멘델스존은 독일의 철학자로 유태인 계몽주의 운동의 선구자였으며, 아버지 아브라함 멘델스존은 금융업에 종사하는 부유한 은행장이었다. 독일의 유명 철학자인 괴테가 집에 오고갔으며, 아들의 생일에 선물로 악단을 만들어 주었다 하니 그야말로 부와 명예를 다 가진 집안이었던 것 같다. 실제로 멘델스존의 이름인 ‘Felix’는 라틴어로 ‘행복한’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멘델스존의 음악이 대체적으로 아름답고 유려한 멜로디를 가진 것도 이러한 환경 덕분이었으리라 짐작된다.
멘델스존은 작곡, 피아노와 오르간 연주, 지휘 뿐 아니라 시와 그림에도 재능을 보였으며 영어, 이탈리아어, 그리스어, 라틴어, 프랑스어 등 다양한 언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고 한다. 여행을 즐겼던 그는 유럽의 각 나라를 다니며 그 풍경들을 음악으로 표현해 내곤 했다. 그의 교향곡인 ‘이탈리아’와 ‘핑갈의 동굴’ 등이 그렇게 탄생되었다. 내내 삶의 행복과 여유를 누렸던 그는 본인의 재능을 발휘하여 셰익스피어의 희곡에 붙인 음악극 ‘한여름 밤의 꿈’, 무언가, 가곡, 서곡, 교향곡, 협주곡 등 많은 작품을 남겼으며, 바흐, 베토벤, 모차르트, 슈베르트의 숨겨진 곡들을 찾아 연주함으로써 명곡을 널리 알리고 기록했다. 당시 쇼팽 등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음악가들에게 연주 기회를 제공하였으며, 1843년에는 슈만과 함께 라이프치히 음악원을 설립하여 후학 양성에 힘쓰는 등 독일 음악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큰 기여를 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유난히 생각나는 음악이 있으니 낭만파 작곡가인 멘델스존이 남긴 단 두 개의 바이올린 협주곡 중 하나인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이다. 이 음악과 함께 따뜻한 차 한 잔을 준비하고 앉아 창밖을 바라보노라면 화려한 바이올린에 정신을 빼앗겼는지 상념에 잠기곤 한다. 멘델스존 특유의 아름답고 편안한 음악들에 비하면 이 곡의 바이올린 선율은 앙칼지다. 이 곡이 작곡된 1844년은 멘델스존의 왕성한 성인기였으나 38세가 되던 해인 1848년 죽음을 맞게 되는 그의 일생으로 보자면 인생의 마지막 시기였다고 할 수 있다.
협주곡은 독주악기 하나와 관현악단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 연주하는 형태를 말한다.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 e단조’는 낭만협주곡 형태로 빠르고 느리고 빠른 3개의 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빠른 템포로 연주되는 1악장이다. 오케스트라의 연주로 시작되는 여느 협주곡과 달리 이 음악은 처음부터 허공을 가르는 듯한 인상적인 바이올린 연주로 시작된다. 잔잔한 오케스트라 반주를 배경으로 앞에 나선 바이올린 연주자가 강렬한 주제 선율을 연주하고 나면 그 선율을 오케스트라가 이어받아 더욱 풍성하게 연주하고, 뒤이어 바이올린 연주자는 바이올린이 낼 수 있는 온갖 기교들을 구사하며 환상적인 하모니를 이룬다. 이 음악은 멘델스존이 지휘자로 있던 악단 ‘게반트 하우스’의 수석 바이올리니스트이자 독일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중 한사람이었던 페르디난트 다비드(Ferdinand David, 1810-1873)를 위해 6년여에 걸쳐 만든 곡이다. 작곡하는 데 긴 시간을 들였을 뿐 아니라 친구였던 다비드와 함께 바이올린의 주법을 연구하며 작곡한 탓에 현재까지도 명곡으로 손꼽히는 연주곡이며 다양한 기교들을 담고 있는 탓에 바이올린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이라면 거쳐 가야 할 레퍼토리 중 하나이기도 하다. 연일 맑은 날씨가 계속되는 요즘이지만 차분하게 봄비가 찾아오는 어느 날, 음악과 차 한 잔이 주는 여유를 누려보는 것은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