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욱 소리창조 예화 상임작곡가
[동양일보]낭만, 로맨틱, 서정적. 이런 의미의 단어들을 접할 때면 늘 쇼팽의 음악이 떠오른다. 그의 음악은 그야말로 감성적이고 서정적이며 로맨틱하고 낭만적이다. 밤을 떠올리게 하고 자연을 상상하게 하며 금새 눈물짓게 하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녹턴, 왈츠, 즉흥곡 등 그의 수많은 피아노곡들 중 대중에게 유명한 곡은 셀 수 없이 많지만 그 가운데 다양한 감성이 함께 담겨있는 곡, 그의 첫 번째 발라드곡인 ‘발라드 1번 g단조’를 소개하고자 한다.
프레데릭 쇼팽(Fryderyk Chopin,1810-1849)은 프랑스인인 아버지와 폴란드 귀족인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피아노에 재능을 보여 폴란드 언론에 “우리나라에도 천재가 태어났다.”라는 극찬을 받았으며 7살에는 이미 폴로네이즈 두 곡을 작곡하였다. 그를 지도하던 피아니스트가 “더 이상 가르칠 게 없다.”며 떠났다 하니 그의 음악성이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할 수 있다. 이후 청년기에 접어든 쇼팽은 음악의 중심지였던 오스트리아 빈으로 가 피아니스트로 큰 성공을 거둔다.
쇼팽의 피아노곡을 살펴보면 정말 경쾌하고 단순한 반주의 왈츠부터 상당한 테크닉을 요하는 에튀드(Etude,연습곡)까지 다양하다. 그는 유능한 피아니스트답게 무려 200여개의 피아노곡을 작곡하였으며 발라드, 전주곡, 녹턴, 마주르카, 스케르초, 즉흥곡 등 다양한 형식의 피아노 음악장르를 개척하였다.
발라드(ballade)는 ‘춤춘다’는 뜻의 라틴어 ‘ballare’에서 유래한 말로 ‘자유로운 형식의 소서사시’를 의미한다. 쇼팽은 그의 친구였던 시인 미츠키에비치의 영향을 받아 4개의 발라드를 작곡하였다. 본래 춤곡에 붙이는 노래였던 발라드를 1835년 쇼팽이 피아노를 위한 발라드로 작곡하면서 그야말로 형식을 깨고 자유와 감성이 모토였던 낭만음악은 그 예술성을 꽃피우게 된다. 쇼팽의 ‘발라드 1번’은 미츠키에비치의 시 ‘콘라느 월렌로드’에 영감을 받은 작품이다. 이 시의 내용은 주인공 월렌로드가 폴란드인 친구가 스페인의 압제에 저항하는 것을 보고 받은 충격으로 투쟁을 벌이다 비극적인 결말을 맞는 이야기이다.
쇼팽의 ‘발라드 1번’은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피아니스트(2002)>의 삽입곡으로도 유명하다. 제 2차 세계대전, 홀로코스트 속에 살다 간 실제 피아니스트 슈필만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로 쇼팽의 녹턴과 발라드가 인상적으로 연주된다. 폐허가 된 집에 숨어 살던 유태인 슈필만은 집을 수색하던 독일인 장교에게 들키게 되고 자신이 피아니스트임을 알린다. 독일인 장교는 그에게 피아노 연주를 청하는데 이 때 슈필만이 연주하는 음악이 쇼팽의 ‘발라드 1번’이다. 이 곡은 4/4박자의 느린 리듬으로 시작하여 곧 6박자의 곡으로 변박되는데, 10여분에 걸쳐 연주되는 이 곡은 다양한 빠르기를 담고 있다. 느린 도입부, 단조 특유의 우울한 느낌의 구간을 지나 이내 아름답고 서정적인 멜로디가 흐른다. 그리고 다시 우울한 음악, 빠른 음악구간을 지나 마지막에는 격정적인 ff(포르테시모)의 강한 다이내믹의 반음계로 끝맺는다. 이 곡을 작곡한 후 쇼팽은 “내가 지금까지 작곡한 곡들 중 가장 뛰어난 명작이다.”라고 만족했다고 하니 그만큼의 열정을 쏟아 부은 것이리라.
쇼팽의 발라드 4곡을 모두 좋아하지만 특별히 ‘발라드 1번’을 듣고 있으면 다양한 감정에 빠져들게 되는 것 같다. 재미있는 것은 이 음악을 들으며 영화의 장면들을 떠올려보면 사랑, 이별, 희망, 절망 모든 씬(scene)들이 어울리는 느낌이 든다는 것이다. 10분 만에 자신의 감성을 끌어올리고자 한다면 한번 도전해 보시길. 세계가 인정한 쇼팽 연주에 최적인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연주를 권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