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욱 소리창조 예화 상임작곡가

 
 
차이코프스키와 '러시아 5인조'-아리아크린스키의 수채화 왼쪽에서 박수를 치고 있는 것이 무소르그스키, 그 오른쪽이 보로딘, 발라키레프, 차이코프스키, 악수하는 상대가 림스키-코르사코프. Glinka Museum, Moskva.
차이코프스키와 '러시아 5인조'-아리아크린스키의 수채화 왼쪽에서 박수를 치고 있는 것이 무소르그스키, 그 오른쪽이 보로딘, 발라키레프, 차이코프스키, 악수하는 상대가 림스키-코르사코프. Glinka Museum, Moskva.

 

[동양일보]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러시아 선수의 금메달 시상식에서는 러시아국가(國歌)가 아닌 차이코프스키의 ‘피아노협주곡 1번’이 흘러나왔다. 2019년 도핑샘플 조작에 대한 처분으로 4년간 모든 국제대회에 국가, 국기를 사용할 수 없었던 러시아는 러시아의 국가대신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을 택하였다. 러시아임을 표현하는 강력한 차선책으로 그의 음악을 선택한 것이다. 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Piotr Ilyitch Tchaikovsky,1840-1893)는 러시아에서 가장 대중의 사랑을 많이 받는 작곡가이다.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이로 톨스토이를 들 수 있다면 러시아 음악의 대표는 단연 차이코프스키라 할 수 있다.

보트킨스크 태생인 차이코프스키는 광산기사 아버지와 음악에 조예가 깊은 프랑스계 어머니 사이에 태어났다. 법률가가 되길 원했던 아버지의 바람대로 그는 법률학교에 진학하게 되고 이후 10년을 공부하여 마침내 법무관이 된다. 그러나 법률학교 재학시절에도 합창 수업을 즐겨 듣는 등 음악을 좋아하던 그는 음악가의 길을 꿈꾸며 1961년 러시아의 피아니스트인 안톤 루빈스타인이 세운 음악학교(1962년에 상트페테르부르크 음악원으로 건립)에 입학하게 되고, 현재까지 대중에게 사랑받는 수많은 곡들을 작곡하게 된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감성이 풍부하고 섬세하며 특히 유려한 멜로디를 뽐내는 곡들이 많다. 집안의 반대로 원하던 오페라 가수와의 결혼이 좌절되고, 본인을 사모하던 제자의 구애로 결혼하였으나 이내 파경을 맞이하게 되며, 그의 곡을 사랑하던 후원자와 오로지 편지를 통한 정신적인 사랑을 나누는 등 상처투성이였던 그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면 그의 곡에 묻어나는 애절한 슬픔과 간절함, 그리고 애통하고 비장함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
표트르 일리치 차이코프스키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보통 러시아적인 요소와 유럽적인 요소가 합쳐진 서유럽풍의 음악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국민악파인 ‘러시아 5인조’와 가까이 지내며 그 영향을 받아 작곡하기도 한 그이지만, “러시아 5인조의 음악을 수준이 낮다”고 폄하하며 유럽스타일 음악을 선호했던 안톤 루빈스타인에게 사사하였으니 그도 그럴 법 하다. 실제 차이코프스키의 대표적인 음악 ‘피아노협주곡 1번’이 작곡되었을 때 안톤 루빈스타인의 동생 니콜라이 루빈스타인이 “이 곡은 음악이 복잡하여 연주가 불가능하다”고 거절한 일화도 있다. 차이코프스키의 작품들은 당시 비평가들에게 좋은 평을 받지는 못하였으나 그만의 독특한 매력이 있는 음악으로 대중들에게는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피아노협주곡 1번’은 차이코프스키의 3개의 협주곡 중 가장 유명한 작품으로 전체 3악장으로 이루어져있다. 웅장하게 시작되는 1악장은 매우 잘 알려져 있는 멜로디로 풍성한 오케스트라와 강렬한 피아노소리가 교차 연주된다. 이와는 대비되게 2악장은 목가풍의 평온한 음악으로 흡사 자장가와 같이 들린다. 그리고 마지막, 빠르고 날카로운 피아노연주로 시작되는 3악장은 이내 오케스트라의 꽉 찬 화성으로 받아주며 인상적으로 마무리하게 된다. ‘피아노협주곡 1번’은 앞서 이야기한 러시아와 유럽의 색채가 모두 담긴 차이코프스키 특유의 음악스타일을 느낄 수 있는 곡이다. 이 음악을 오디오로 듣다가 ‘스피커가 터지지 않을까?’라는 엉뚱한 생각이 든 적이 있다. 그만큼 가슴 벅찬 피아노와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을 수 있으니 35분의 긴 곡을 다 듣지는 못하더라도 각 악장의 시작부분이라도 반드시 들어보길 추천한다.

발레곡도 유명하지만, 차이코프스키의 음악은 주제선율만 들어도 마음이 아려오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곡이 많다. 모두 소개할 수는 없지만 그의 섬세한 감성을 느껴보고 싶다면 ‘센티멘탈 왈츠(Valse Sentimentale)’를 들어보시기를.

2022년 4월 8일, 차이코프스키가 20대를 보낸 우크라이나의 자택이 러시아군의 폭격에 의해 폐허가 되었다. 러시아 문화의 상징물을 그들 스스로 파괴하는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지는 현실이 가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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