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교향곡의 아버지’, 고전주의 스타일의 기악 양식을 확립한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Franz Joseph Haydn, 1732-1809)을 이르는 말이다. 고전주의 음악을 대표하는 작곡가들을 비교해 볼 때, 베토벤은 9곡, 모차르트는 40여곡을 쓴 데 반해 하이든은 100곡이 넘는 교향곡을 작곡했다 하니 왜 그런 별명이 붙었는지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오스트리아 근교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하이든은 마차바퀴를 제작하는 아버지, 귀족들의 부엌일을 돕던 어머니, 많은 형제들과 함께 그리 넉넉지 않은 집안에서 자랐다. 어려운 환경 탓에 제대로 된 수업을 받을 수 없었지만 그의 음악적 재능을 알아본 아버지는 성당의 음악교사에게 성악, 바이올린, 하프시코드 연주 등을 배우도록 한다. 이후 오스트리아 빈 슈테판 성당의 성가대 오디션에 합격한 하이든은 1740년 오스트리아의 음악도시 빈으로 이주하게 되고, 당시 형편이 어려운 음악가들이 그러했듯이 귀족 집안에 전속음악가로 들어가 그들을 위한 음악을 작곡하였다. 1757년 모르친 백작 집안에 취직하여 안정을 얻은 하이든은 이 곳에서 교향곡 작곡을 시작하게 된다. 이후 모르친가의 재정악화로 3년 만에 에스테르하지 후작 집으로 옮기게 되는데 사설 악단을 소유할 정도로 부유했던 이 가문에서 하이든은 장장 30년 동안이나 머무르며 수많은 곡을 작곡했다. 에스테르하지 후작의 사망 후 하이든은 프리랜서로 활동하게 되면서 런던에서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 때 그의 나이가 이미 60대였으나 그의 일생 마지막 20년 동안 보다 구조적으로 풍성한 작법을 만들어나갔고, 그의 작품 중 걸작으로 불리는 오라토리오 ‘천지창조’ 와 ‘사계’ 또한 이 시기에 작곡되었다.
77세, 당시 음악가들에 비해 긴 생애를 보낸 하이든은 그의 생애동안 100여곡의 교향곡을 비롯하여 현악4중주 68곡, 피아노3중주 43곡, 피아노 소나타 55곡, 오르간, 바이올린, 첼로, 오보에, 트럼펫, 호른을 위한 협주곡을 작곡하였으며 미사곡 14곡, 오라토리오 ‘천지창조’, ‘사계’를 비롯해 현악 3중주, 피아노 독주곡, 서곡, 가곡, 칸타타, 오페라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장르에 걸쳐 약 750곡을 남겼다. 다른 작곡가들에 비해 월등히 많은 작품 탓에 그의 작품 전곡을 연주한 이가 없고, 실제로 전곡연주 미션을 달성하는 이벤트들도 생겨났다. 현재 진행형으로 이탈리아의 지휘자인 지오반니 안토니니는 하이든 탄생 300주년인 2032년 완성을 목표로 한 교향곡 전곡 녹음 프로젝트를 2014년부터 시작했다.
하이든은 고전시대의 큰 획을 긋는 두 인물, 베토벤과 모차르트와도 연이 있다. 하이든의 제자였던 베토벤과는 불화로 더 이상 보지 않게 되었으나, 하이든을 ‘파파’라는 애칭으로 불렀던 모차르트와는 서로의 작품을 존중하고 서로 음악적 영향을 주고받는 특별한 관계였다. 1791년 24살 아래였던 모차르트가 본인보다 일찍 사망하자 당시 음악에서는 볼 수 없었던 단조 곡 ‘안단테와 변주곡 f단조’을 작곡하여 그 슬픔을 표현하였다.
tv장학퀴즈 오프닝 곡으로 사용되었던 ‘트럼펫 협주곡 Eb’, 신성로마황제 프란츠 2세에게 헌정하여 이후 독일의 국가로 쓰인 ‘현악4중주 황제(Kaiser)’ 등 대중에게 유명한 곡들이 많지만 하이든의 교향곡에는 ‘시계’, ‘놀람’ 등 그만의 위트가 담겨 있는 곡들이 종종 발견된다. ‘고별 교향곡(1772)’도 하이든의 이런 면모를 볼 수 있는 작품이다. 에스테르하지 후작이 그의 악단 단원들에게 휴가를 주지 않자 하이든은 악보에서 한 (악기)파트씩 사라지는 곡을 작곡하였고, ‘고별 교향곡’의 마지막에는 지휘자만 남고 연주자들은 모두 ‘고별’을 고하고 퇴장한다. 이를 본 후작이 마침내 휴가를 보내줬다고 하니 하이든의 남다른 유머감각을 엿볼 수 있다. 2009년 하이든 서거 200주년 기념으로 열렸던 빈 필하모닉 신년음악회(다니엘 바렌보임 지휘)에서 마지막 프로그램으로 ‘고별 교향곡’을 연주했는데 4악장 중반부터 연주자들이 하나둘 사라지자 지휘자가 당황하는 퍼포먼스를 펼쳐 관객들에게 큰 웃음을 안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