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효욱 소리창조 예화 상임작곡가

 
 
BBC 프롬스 콘서트의 ‘위풍당당행진곡’ 연주 장면
BBC 프롬스 콘서트의 ‘위풍당당행진곡’ 연주 장면

 

[동양일보]고전과 낭만음악이 풍미했던 18세기에서 19세기에 걸쳐 유럽에 유수의 훌륭한 음악가들이 등장했으나 유난히 영국에서는 이렇다하게 이름을 남긴 음악가를 찾기 어렵다. 이렇게 유럽의 음악들에 묻혀있던 시기, 20세기를 시작하며 영국인들에게 문화적 자긍심을 안겨준 이가 있었으니 바로 영국의 대표적인 작곡가 에드워드 엘가(Edward Elgar,1857-1934)이다. 우리에게 친숙한 연주곡 ‘사랑의 인사’로 잘 알려져 있는 엘가는 후기 낭만주의음악가로 고전음악에 영국의 민족주의 요소들을 배치하여 당대에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영국인에게 가장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는 음악가이다.

엘가는 교회 오르가니스트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음악을 접하게 되었으나 집안형편이 좋지 않은 탓에 변호사 사무실 업무 등 음악가와는 동떨어진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던 중 그에게 피아노레슨을 받으러 온 귀족 여성 캐롤린 앨리스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는데 ‘사랑의 인사(Salut D'Amour, 1888)’도 이 시기에 쓰여진 작품이다. 그녀와의 결혼은 엘가가 상류사회에 발을 들이는 계기가 되고, 앨리스는 엘가에게 물심양면으로 후원할 뿐 아니라 음악적인 아이디어도 제공하는 등 그를 훌륭한 음악가의 반열에 올리는 주춧돌 역할을 굳건히 한다.

엘가를 유명하게 만든 첫 번째 곡인 <수수께끼 변주곡(1899)>의 작곡배경을 보면 그녀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했는지 알 수 있다. 어느 날 무료하게 피아노를 치고 있는 엘가에게 다가간 앨리스는 “그 음들로 재미있게 만들어 봐요”라며 권유하게 되고 그녀의 이야기를 따라 하나둘 음들을 나열하던 그는 가족과 친구들을 표현하는 14개의 변주곡을 작곡하게 된다. 낭만시대에는 고전과 달리 각각의 변주곡에 새로운 요소를 부가하는 ‘성격변주곡’이 작곡되었는데, 엘가는 14개의 변주곡에 각각 어떤 이를 상징하는 이니셜을 붙여 음악과 알파벳으로 각 변주곡에 표현된 인물을 맞춰가는 방식으로 작곡하였다. 이 곡은 작곡과 동시에 대중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되고 그의 장난기어린 이니셜 찾기 놀이는 음악과 더불어 청중에게 소소한 재미를 안겨주었다.

유명세를 얻게 된 엘가는 1901년 영국 국왕 에드워드 7세의 대관식을 위해 ‘위풍당당행진곡’을 작곡하는데 이 곡은 엘가의 인생 역작으로 남게 된다. ‘위풍당당행진곡’은 총 6개의 행진곡으로 이루어져있다. 그 중 가장 사랑받는 곡은 1번 행진곡인데, 보통 이 1번의 제목이 ‘위풍당당행진곡’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그의 유작을 보완하여 완성한 6번을 포함하여 6개의 행진곡이 모두 이에 포함된다. ‘위풍당당(Pomp and Circumstances)’이라는 말은 직역하면 ‘화려한 의식’을 가리키는데 이 용어는 영국의 문학가 세익스피어의 희곡 <오델로>의 대사 "영광스러운 전쟁의 자부심과 위풍당당함과 화려한 의식(Pomp and Circumstances)과도 작별이다."에서 따온 것이다.

에드워드 엘가
에드워드 엘가

 

‘위풍당당행진곡’ 1번은 빠른 템포의 오케스트라 연주로 휘몰아치며 시작되는데 2분쯤에 등장하는 웅장한 멜로디가 이 작품의 가장 감동적인 포인트이다. 이 곡을 들은 에드워드 7세는 주제멜로디 부분에 가사를 붙이라 지시하고 ‘희망과 영광의 나라’라는 제목의 가사가 붙게 된다. 영국과 영국인들, 그리고 국왕을 찬양하는 가사가 붙은 ‘위풍당당행진곡’ 1번은 지금까지도 영국의 국가(國歌)에 버금가게 자주 연주되고 있다. 1902년 엘가는 예일대학교에서 명예음악박사학위를 받게 되는데 이 때 이 곡이 연주된 것을 시작으로 영국과 미국의 학교 졸업식에서는 ‘위풍당당행진곡’ 1번을 연주하는 것이 관례가 되어 이어져오고 있다. 또한, 100년간 이어져오는 영국의 역사적인 콘서트 ‘BBC 프롬스’의 마지막 레퍼토리로 늘 연주되고 있으며 노래가 나오는 부분에는 모든 관객이 함께 노래할 정도로 뜨거운 호응을 받았으며, 유래 없이 앙코르가 연달아 두 차례 연주된 적도 있었다 하니 그 인기를 가히 알 수 있다.

1902년 그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였던 앨리스의 사망으로 엘가는 작곡의 암흑기를 겪게 되지만, 이후 영국의 왕실악장을 맡을 뿐 아니라 국위선양한 이들에게만 수여되는 공로 훈장(OM), 빅토리아 훈장(GCVO)을 받으며 행복한 생을 마감하게 된다.

‘위풍당당행진곡’을 듣다보면 마음 속 끓어오르는 어떤 에너지를 받게 된다. 마지막 음악을 전달하며 독자여러분들 모두 위풍당당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가시라는 메시지를 담아 보내고 싶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