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규 문화재청 상임전문위원

정제규 문화재청 상임전문위원
정제규 문화재청 상임전문위원

 

[동양일보]‘문화재’라는 말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진 용어이다. 사람마다 일상에서 쉽게 사용하며 많은 관심을 표현하기도 한다. 때로 그 분야의 전문가만이 알 수 있는 특별한 사실에 대해서도 한마디 더하기도 한다. 나자신도 모르게 익숙하고 친밀한 개념 그것이 문화재라는 개념이다. 익숙하고 친밀한 까닭은 문화재의 정의에서 살필 수 있다. 곧 “문화재란 인위적이거나 자연적으로 형성된 국가적·민족적 또는 세계적 유산으로서 역사적·예술적·학술적 또는 경관적 가치가 큰 것”이라는 대목이다. 그 중 인위적으로 형성되었다는 뜻은 우리 정서를 살려서 만들었다는 뜻이다. 한국과 중국, 일본을 거론하며 동양삼국이라 하지만 그 역사와 풍속이 달라 문화는 묘하게 차이가 있다. 의식주만 따져도 입는 옷과 먹는 것과 자는 곳이 다르다. 그렇게 우리 문화재는 우리의 흔적을 담고 있어 친밀한 것이다.

‘문화재’라는 용어는 1950년대 일본의 문화재보호법에서 사용되었는데, 당시 독일어의 ‘Kulturgüter’를 한자어로 옮겼던 것으로 이해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광복 이후 1960년 11월 10일 국무령 제92호로 공포된 <문화재보존위원회규정>에서 최초로 법정용어로 사용하였고, 1962년 1월 10일 '문화재보호법' 제정으로 ‘문화재’ 용어의 사용이 일반화된 것이다. 그리고 분류체계로서 유형문화재, 무형문화재, 기념물, 민속자료(현재 민속문화재)를 두었고, 몇 번의 법 개정을 거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

 

최근 문화재청은 미래지향적인 입장에서 문화재 명칭 및 분류체계에 대한 검토를 시작한다고 밝힌바 있다. 물론 1962년 제정 이후에도 급격하게 변화해가는 문화재 환경에 맞추어 고도 보존 및 육성에 관한 법률(2004)을 시작으로 문화유산과 자연환경자산에 관한 국민신탁법(2006), 문화재보호기금법(2009), 문화재 수리 등에 관한 법률(2010), 매장문화재 보호 및 조사에 관한 법률(2010),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2015) 등의 제정과 개정을 통하여 문화재정책의 변화를 추구하였다. 또한 지난 2000년 개교한 ‘한국전통문화학교’(현재 한국전통문화대학교)를 통한 전통문화의 창조적 계승․발전과 문화재의 보존․관리 및 활용을 위한 전통문화전문인의 양성을 위한 노력도 쉼없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다시 한번 미래지향적인 입장에서 새로운 문화재정책의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이같은 변화의 추구는 두 가지 사실에 기인한다. 하나는 문화재를 바라보는 우리의 생각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문화재는 우리 주변에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유산이었다. 우리들이 평소 숨쉬며 공기에 대한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듯이, 먹고 살기 위해 만들어진 모든 문화적 소산들이 대대로 전해지며 때로 없어지기도 하고 때로 온전하게 전해지기도 했다. 그냥 우리 곁에 있는 책과 물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보존 관리에 대한 생각 역시 마찬가지이다. 조상들이 물려준 유산이기에 소중하게 간직하며 마치 선조를 대하듯이 지켜왔던 것이다. 그런데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한국의 문화유산에 대한 일부 일본인들의 지나친 소유욕과 거래가 이루어지면서 ‘재화’로서의 가치를 추구하게 된 것이다. 이같은 추세는 광복 이후에도 지속되었고, 특히 1990년대 이후 급격하게 증가하면서 ‘문화재는 돈’이라는 인식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같은 급변한 인식 속에서 ‘문화재’라는 용어를 그대로 사용해도 좋은가라는 고민이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문화재의 정의에도 언급된 바와 같이 ‘문화재는 세계적 유산’이라는 인식이 확대되어 간다는 점이다. 지난 1997년 우리의 <훈민정음>과 <조선왕조실록>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고, 2001년에는 청주를 상징하는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이 등재되어 그 가치를 세계에 알렸다. 이같은 세계유산의 등재가 이루어지면서 비로서 2020년에는 ‘세계유산의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이제 문화재는 민족적․국가적 이라는 시각에서 벗어나 세계사적인 시각에서 접근해야 하는 시점에 온 것이다.

그렇다면 이같은 변화 속에서 우리가 찾아야할 문화재의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본래 간기 선덕6년(세종13, 1431),
본래 간기 선덕6년(세종13, 1431),

 

하나의 사례를 소개해본다. 1980년대 후반경 가치 검토가 이루어진 한 권의 고서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이 책은 온전하고 내용적으로도 두말할 필요가 없는 가치를 지닌 책이었다. 더욱 책의 끝부분에는 간행된 시기를 알려주는 간기(刊記)까지 완전하게 남아 있어 책의 간행부터 전래 그리고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살필 수 있었다. 기록된 간기는 ‘선광(宣光)’이었다. 이 연호는 중국 북원(北元)의 소종(昭宗)때의 연호(年號)로서 1371년부터 1379년까지 9년동안 사용되었던 연호이다. 곧 이 책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고려본(高麗本)’으로서 많이 남아 있지 않은 귀중본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실망과 충격은 책을 꼼꼼히 살피는 과정 중에서 일어났다. 간기인 ‘선광(宣光)’의 ‘광(光)’부분 밑에 본래 글자인 ‘덕(德)’이 확인된 것이다. 곧 ‘선덕(宣德)’이라는 본래의 간기를 숨겨 ‘선광’으로 바꿔치기 하려했던 정황이 확인된 것이다. 왜 그리 했을까. ‘선덕’은 명나라 선종 때의 연호로 1426년부터 1435년까지 사용되었던 연호이다. 곧 글자 하나의 차이이지만 무엇이냐에 따라 ‘고려본’과 ‘조선본’으로 사정이 달라지고 이는 금액의 차이로 나타나는 것이다.

임의로 조작된 선광6년(고려 공민왕23, 1374)
임의로 조작된 선광6년(고려 공민왕23, 1374)

 

세상은 변하고 있다. 당연히 그에 대한 처세술도 달라져야 한다. 그러나 본래의 의미를 잃어버리지 말아야 할 것도 있다. 더욱 후손들에게 남겨야 할 문화적 유산이라면 더욱 그렇다. 새로운 미래에는 대응하나 본래의 가치를 찾는 노력도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가 생각하는 문화재의 가치는 어디에 있을까. 그를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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