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영 시인

하재영 시인

[동양일보]은행나무 이파리가 노랗게 물든 시월 마지막 토요일 밤

충청도 괴산 발 지진으로 하루종일 불안하던 그날

알 수 없는 불안이 목구멍으로 차오던 그날

그대들의 비보가 도착했습니다

눈 뜨고도 차마 눈 감고도 보고 싶지 않은

끔찍한 영상들이 하늘을 날아 세계 곳곳으로 퍼질 때

그대들의 영혼도 하늘로 날아 올랐습니다

이 무슨 일입니까

슬픔 위에 애도를 보태며

붉은 꽃 화사한 맨드라미 화단 앞에서

‘새끼들, 새끼들, 새끼들아’

이 땅의 부모들은 울부짖는 일 밖에 할 수가 없습니다

밤 하나를 건넌다는 일이 이토록 큰 고통으로 다가오는

발끝으로 밟은 시간의 덮개를 열지 못하는

전쟁도 아닌 축제의 희생양이 되었음을 알고

부끄럽고, 미안하고, 고개를 들 수 없어 화가 났습니다

그대들을 나무랄 수 없습니다

코로나로 묶인 젊음, 빼앗긴 시간, 뜨거운 열정

그 발랄한 꿈으로 한 발 한 발 디뎠을 이태원 골목길

세계 곳곳에서 온 젊은이들과 어깨를 같이 하며

낯선 문화의 새로움에 흠뻑 빠져들고 싶었던

젊음, 청춘, 꽃다움

그 심장이 이토록 허무하게 차가운 주검으로 바뀌다니

그대들이여

이제 두려워하지 말아요

그대들이 겪었을 그 무서운 고통의 무게도 내려 놓아요

강을 건너고 고개를 넘어서 먼 길로 가는 그대들이여

이제 핼로윈이든, 강강술래든, 술래잡기든…….

청춘들이 눈치 보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맘껏 누릴 수 있는 세상에서 편히 쉬시오

즐거움만 있는 천국에서 축제를 즐기며 고통을 씻으시오

부디 무거운 몸 내려놓고

좁은 골목 벗어나

훨훨 날아오르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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