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킨슨병 투병 25년 “어떤 경우라도 감사한 생각은 행복과 함께 옵니다”
[동양일보]
김원택(80) 신부.
청주시민들 중 40대 이후의 사람들 대부분은 가톨릭 신자가 아니어도 그의 이름만 들으면 “응~ 요즘 어때?”라며 그의 근황을 궁금해 한다. 그는 젊은 시절 만능 스포츠맨으로 통하던 멋진 사나이였다. 172㎝의 키에 운동으로 다져진 몸매, 미남형 얼굴에 늘 웃음 띤 표정의 다감했던 ‘우리 신부님’이었다.
그의 집안은 할아버지, 아버지, 형제들까지 고향인 진천군 이월면 신계리 점말(배티성지 와는 고개 하나 사이)의 공소 회장을 맡아온 독실한 가톨릭신자들이었고, 오래전 은퇴한 삼촌 김병철, 김유철 두 신부를 비롯 친고모 김순예 루시아 와 외고모 김방지거 수녀 등 성직자들이 많아서 가톨릭계에선 가히 ‘명문가’로 꼽힌다. 그런 그가 25년 전 파킨슨병(Parkinson’s disease) 판정을 받았다. 탁구 테니스 골프 걷기 등 운동을 통해 억척스럽게 투병의지를 불태웠다. 걷는 것과 말하기가 좀 우둔했고 손 떨림 현상이 있었으나 불편한대로 사목활동을 해 왔다. 교구청에선 2003년 충북재활원 원장신부로 발령을 냈다. 중증장애를 가진 원생들과 생활하면서 오그라드는 몸을 의지와 운동으로 억척스럽게 맞섰다.
그러나 그런 각고의 노력이 병의 진행을 늦추기는 해도 회복의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그는 정년인 70세를 몇 해 앞두고 은퇴미사를 갖기에 이른다. 장봉훈 주교의 세심한 배려였다. 청주교구청이 1998년 3월 개원한 청주성모병원은 같은 시기에 발병한 김 신부의 주치병원이었고, 김 신부는 이 병원 첫 사제환자였다.
혼자 살던 아파트 생활을 정리하고 지난해부터 줄곧 성모병원에 입원해 있던 김 신부가 복대카리타스노인요양원(청주시 흥덕구 신율동180번길 52.☎043.276.7435)으로 옮긴 것은 지난 1월. 그의 거동이 웬만했을 때 가끔씩은 생선초밥을 함께 먹었던 기억으로 점심에 초밥을 가져가면 어떻겠느냐고 전화하자 대뜸 “좋지요”란 대답이다.
2월 14일, 평소 김 신부의 안부를 궁금히 여기던 유성종(93) 전 꽃동네대학 총장과 함께 복대성당 입구에 서있는 카리타스요양원을 찾았다.(‘카리타스’는 라틴어로 ‘사랑’ ‘자선’의 뜻)면회실에서 만난 김 신부의 앉은 자세는 시종 기울어져 있었으나 반가움이 역력했고, 의식은 분명했다. 대화도 귀를 기울이면 거의 알아들을 만큼이어서 의사소통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식사는-더구나 젓가락질은 손이 심하게 떨려서 음식이 입에 들어가는데 옆 사람의 도움이 있어야했다.
돌아와서 계속 고민을 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인터뷰를 하는 일이 김 신부의 자존감을 상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이제는 만나기 어려워진 많은 지인들과의 소통로를 마련하는 것이 잘하는 일인지, 전화로 조심스럽게 의사를 타진했다. (동양일보는 김 신부가 천주교청주교구장 직무대행일 때인 1998년 11월 24일자 ‘충북의 101인’에, 그리고 충북재활원장일 때인 2010년 2월16일자 ‘동양 초대석-조철호가 만난 사람’으로 그를 크게 다룬 적이 있었으므로) “전에 다뤘던 것처럼 인터뷰 기사를 쓰려고 방문하려는 데 괜찮겠느냐”고 물었다. 50년 지기인 그의 대답은 간명했다. “언제 와요?”였다.
3월15일 오후 2시. 복대카리타스노인요양원 서명선 원장의 안내로 접견시간 1시간을 약속하고 두 번째 방문을 했다. 지팡이를 짚은 김 신부가 부축을 받으며 나타났다. 로만칼라에 은발 머리, 25년 간 그를 괴롭힌 파킨슨병의 떨림 증세를 버티느라 애를 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의 앉은 자세는 시간이 갈수록 한 쪽으로 점점 기울고 있었다.
● 몸은 어떠신가요.
“점점 뜻대로 되지 않아요. 약 기운으로 지탱해요. 주변의 모든 분들 은혜로 아직 이렇게라도 살아 있어요. 주변 분들에게 신세만 자꾸 지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워져요.”
● 요즘은…
“어제 성모병원 갔다 왔어요. 한 달에 한번 꼴로. 비뇨기계통이며 치과 쪽도 진료를 받았어요. 병원에 있을 때보다 이 곳 에선 사람들 만나는 것은 좀 까다롭지만, 생각해 보면 이런 호강이 어디 있습니까. 먹고 사는 일 문제없지요, 도와주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 늘 곁에 있어요.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큰 은총이지요”
● 하루 일과는?
“아침 6시 40분에 일어나서 7시쯤, 아침식사 후 오전 11시에서 12시 사이, 점심식사 후 30분 뒤와 오후 2시, 저녁식사 후에 파킨슨 약과 전립선, 안과 관련한 약 등 매일 5회 이상을 복용해요. 약을 먹으면 3,4시간은 버텨지지요. 약을 먹고는 30분 쯤 누워 있어요. 약 기운이 온 몸에 퍼지도록. 그리고 신문을 열심히 읽지요. 아무리 환자지만, 지역과 나라가 돌아가는 것을 알아야지요. 그리고 시간 나는 대로 지팡이를 짚거나 워커를 밀고 성당 운동장을 3,40분간 걷고자 노력해요. 실내에선 자전거 타기도 하고요. 저녁 9시 이전에 잠자리에 들어요”
● 친구들은 가끔 보시는지요.
“시골 초등학교 친구들 4명이 청주에 살고 있는데 6개월째 못 보고 있어요. 남자 친구는 거동을 못하고, 여자 친구 2명은 건강해요. 신학교 친구들은 13명 중 8,9명만 살아 있는데, 그들마저도 볼 기회가 없습니다.”
● 어디 가 보고 싶은 곳이라면?
“시야가 확 트인 곳이라면 어디든 가보고 싶어요. 가슴이 확 열리는 곳, 가까이는 증평의 자구산 같은 곳이라도 좋지요. 바다는 재활원에 있을 때인 2010년에 다녀 온 후 못 가보았지요. 여수나 제주도나 온천지대를 한 번 가보았으면 하지만, (쓸쓸한 표정이 되면서)생각 뿐 이지요”
● 가끔씩 떠 올리는 추억이 있다면…
“재활원에 있을 때 원생들과 공동체 생활을 함께하면서 땀 흘리며 공을 차거나 세뱃돈을 주거나 달맞이 캠프파이어를 하던 일이 자주 떠올라요. 마당 가운데 장작더미를 쌓아놓고 높은 곳에 줄을 매어 솜뭉치에 불을 붙여 쏜살같이 달려와 점화시키면 모인 원생들 얼굴과 주변이 환하게 달아오르지요. 와~ 하고 함성이 일어나고 박수가 터져 나오고…2박 3일간 속리산 캠핑도 갔었지요. 400명이 피난 가는 것처럼 행군을 했어요. 봉명동성당 시절도 잊혀 지지 않아요. 빈 땅에 성당을 짓느라 고생은 했지만, 신도들과 주변 분들이 어찌나 열심히 도와 주셨는지 매일 매일 감동과 기쁨이 넘쳤어요. IMF이전에 7억이란 성금이 모아졌지요. 당시엔 ‘청주의 명동성당’이란 말을 들었어요. 지금 생각해도 고맙고 고마운 은혜였습니다.”
● 파킨슨병을 앓는 환우들에게…
“이 병의 원인이 아직도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열심히 약 먹고 운동하고 맞서 싸우려는 의지가 필요해요. 제 아무리 힘센 병이라 해도 ‘죽을 때 까지는 살 수 있다’지요.(웃음) 그런 신념이 필요해요. 스트레스를 받거나 옛날 일에 젖어만 있지 말아야합니다. 환자가 되면 가족이나 옆에 있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주는 지를 생각해서라도 짜증내거나 불만이나 불평을 해서는 안 됩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아도 부끄러워 할 것이 아닙니다. 주눅 들지 말고 심취할 일을 찾아야 하지요. 사는 날까지 열심히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야합니다.”
● 모든 이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살아있는 사람은 누구나 적자가 없어요. 모든 사람이 흑자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나를 에워싼 부모형제는 물론, 동창이나 이웃사람들이나 모두가 내 뜻대로 관계된 사람들이 아닌데도 내가 불행해 질 땐 망설임 없이 달려오지요. 이런 것부터가 축복입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내 주변 사람들은 나를 위해 있는 사람들이지요. 그러니 어떤 경우라도 ‘감사하면서 살아라’ 라고 전하고 싶어요. 감사한 생각은 언제나 행복과 함께 옵니다. 나를 위해 신경 써주는 모두에게 감사기도를 드리는 자세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투병 25년, 하느님께서 잘 지켜 주시리라 믿습니다. 김원택 신부님- 파이팅 하십시오.
“고맙습니다. 기도 할게요…”
■김원택 신부는…
△1944년 충북 진천 출생
△진천 이월초-광혜원중-서울 성신고
△광주신학교 대학원 졸
△1972년 청주교구 사제서품
△청원군 오송성당 -충주 목행성당-청주 주교좌성당 주임신부
△1984년 미국 LA에서 재미교포 사목
△청주 봉명동성당-청주 영운동성당 주임신부
△1993년 천주교 청주교구청사무처장
△청주 수곡동성당 주임신부
△1997년 천주교 청주교구총대리신부
△1998년 천주교 청주교구 교구장 직무대행
△파킨슨병 진단
△청주교구청 총대리 겸임·용암동주임신부
△2003년 충북재활원 원장
△2010년 충북재활원에서 은퇴미사.
△현) 청주 복대카리타스노인요양원 요양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