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북문로 2가 중앙극장 ‘헌책방 골목’ 고서 등 수집가들의 보물창고
책방은 문화의 소통 경로·역사 생성되는 특구·지혜 발견하는 시공간
1980~1990년대 개신서원 등 7~8개… 대성·중앙서점 남아 명맥 유지
시민들 공감대와 방안 마련 시급… 다양한 책 문화 콘텐츠 만들어야해
‘헌책방 거리’ 청주문화 옷 입히고 색채 칠하는 대역사 필요한 시점
영국 책마을처럼 전 국민이 찾아오는 문화예술의 소통 공간 돼야

한영수 중앙서점 대표                                                                    박봉순 대성서점 대표
한영수 중앙서점 대표                                                                    박봉순 대성서점 대표

 

모든 물상이 시간의 풍화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북문로 2가 청소년 광장에서 바라본 주변의 풍경은 왠지 모르게 쓸쓸함으로 다가온다. 예전에는 인정과 활기가 넘치고 낭만이 깃든 거리였다. 지금은 뭇사람들의 삶의 향기와 웃음꽃이 피어나던 중앙시장과 연인들의 달콤한 이야기가 들려오던 극장도, 학기초 헌책방에 문전성시를 이루던 학생들의 발길도 끊어진 지 오래다. 사라져가는 것을 추억하고 지켜보는 마음이 아리다.

오랜만에 중앙시장통 뒷골목을 여유롭게 걸어본다. 지난 20여 년간 매일 퇴근 후에 성지 순례하듯 헌책방을 돌던 때가 주마등처럼 스친다.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친 듯 고서 수집에 몰두하던 시절이다. 지독한 고서 수집벽은 가정과 건강도 팽개칠 정도였다. 퇴근 후 이 골목길 헌책방을 거치고야 비로소 하루의 일과가 끝났다. 고서 수집은 단순한 수집벽이 아닌 내 삶의 전부였던 때다.
북문로 2가 중앙극장 언저리는 ‘헌책방 골목’이었다. 지금은 대성서점과 중앙서점만 남아 헌책방의 명맥을 겨우 유지하고 있지만, 1980~90년대는 개신서원, 명랑서점, 보문서점, 문화서점, 태왕서점 등 7~8개의 헌책방이 자리 잡고 있었다. 주인장 취향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고서와 헌책과 교과서류를 켜켜이 쌓아둔 헌책방은 수집가들에게는 보물창고나 다름없었다. 퀴퀴한 곰팡이 핀 책 냄새 풍기는 희미한 전등 빛 아래서 성채처럼 쌓인 책더미를 헤치며 원하던 책을 발견할 때의 기쁨은 무어라 말로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목욕탕에서 넘치는 물을 보고 "유래카!"를 외치던 아르키메데스의 심정이라면 지나친 비유일까.책방 순례는 늘 설렘으로 가득했다. 오늘은 또 무슨 책이 나왔을까. 호기심과 궁금증을 안고 예닐곱 군데 책방을 돌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원하는 책들을 양손에 들고 무게감도 잊은 채 귀갓길에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추억이 아련하다. 혹여 아내의 잔소리나 따가운 눈총과 맞닥뜨릴까 봐 현관 옆에 책 꾸러미를 밀어놓고 초인종을 누르던 일이 떠올라 헛웃음이 난다.

 

그 시절, 헌책방 골목의 서점을 돌며 가장 감격스러웠던 때는 바로 개신서원 주인인 문철영옹과 만남이었다. 지금 북문로 ‘옛 청주역사 전시관’ 공원 자리에 있던 서점을 정리하고 노후를 즐기던 분을 어렵게 찾았다. 3층 건물을 오르는 계단과 옥상에 헌책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특히, 안방 서재에 빼곡히 꽂힌 책들은 90년대 이전에는 금서(禁書)였던 일제강점기와 해방공간기에 출간된 사회주의 계열 책들이었다. 간신히 흥분된 가슴을 누르고 먼지를 털어가며 살피는데 두툼한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귀한 물건임을 직감하였다. 고서 수집가라면 누구나 꿈에서조차 탐내는 귀중본, 유길준의 <서유견문>(1895)이었다. 국한문 혼용체로 쓴 근대수필 문학의 효시라고 일컫는 고서 중의 고서이다. 그때의 기쁨을 글로 어찌 다 표현할 수 있으랴.

가끔 심란한 마음을 눅잦히는데 헌책방만 한 곳도 없지 싶다. 책방의 공기는 다른 공간과는 확연히 다르다. 알싸한 공기가 코끝에 닿으면 정수리가 짜르르하다. 병풍처럼 늘어선 서가의 책들이 동공을 확장하며 심장을 벌렁거리게 만든다. 마음 저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희열을 어찌하랴. 온라인으로 전화 한 통이면 필요한 책이 배달되는 세상에 시대착오적인 발상일지 몰라도 서가에서 고서를 뽑아낼 때의 짜릿한 손맛은 강태공 후예들이 물고기 낚는 손맛 못지않다.

지난 3월 모 일간지에 ‘부산 보수동 책방골목에 ‘책 모양’ 건물을 만들어 헌책방의 르네상스를 꿈꾼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문화적 마인드를 가진 그 지역 건설업체가 사업 방향을 바꾸며 지자체와 학생들이 쇠락해가는 책방골목을 구하기 위해 동참했단다. 활기를 불어넣고자 책방골목과 연계한 여러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기사가 진한 감동으로 다가왔다.

 

책방은 단지 책을 사고파는 물리적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람과의 끊임없이 이어지는 문화의 소통 경로이자 역사와 문화가 생성되는 문화 특구이고, 삶의 지식과 지혜를 발견하는 행복한 시공간이다. 청주는 우리나라 인쇄문화의 메카이며 직지의 고장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일환인 청주의 헌책방 거리를 되살리기 위한 운동은 지역 상인들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청주시와 시의회, 지역주민, 문화기획자, 젊은 세대가 다 함께 관심을 가져야 한다. 단지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만 말하지 말고, ‘헌책방 거리’에 생기를 돌게 하는 시민들의 공감대와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 전 세대를 아우르는 다양한 책 문화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도 중요하다.
지난해 청주문화원은 청주문화총서 제14집 <청주의 사라져가는 것들>과 어린이를 위한 동화로 읽는 청주 <땅에 세운 돛대>를 출간했다. 청주시에서는 청주시민들의 정서가 담긴 ‘청주의 미래유산 23곳’을 선정하였다. 이런 일련의 사업은 잊히고 사라져가는 청주의 문화유산에 대한 시민들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정서적 가치를 살리고, 근대문화 유산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한 마중물이라고 생각한다. 기록문화 도시답게 시민들의 삶이 담긴 공간이나 장소, 이야기를 발굴함으로써 청주를 널리 알리는 지속적인 사업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책은 기록문화에 가치를 부여하고, 서점은 거리의 풍경을 바꾸며 지성과 문화를 피어나게 한다. 한때 중앙동 헌책방 골목은 책과 사람이 만나는 특별한 길이었고, 수많은 청주시민의 만남의 공간이었다. 또한, 배움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의 지식 욕구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는 샘터이기도 했다.

 

나는 청주 헌책방의 대명사이자 마지막 남은 두 곳인 대성서점(박봉순)과 중앙서점(한영수)이 해방 조선 당대 지식인들의 만남의 장소로, 다양한 문화 교류의 요람이었던 박인환의 <마리서사>처럼 되기를 꿈꾼다. 쇠락해가는 ‘헌책방 거리’에 청주문화의 옷을 입히고 청주만의 색채를 칠하는 대역사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 거리를 ‘청주의 몽마르트’로 만들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국의 책마을 ‘헤이온와이(Hay-On-Wye)’처럼 전 국민이 찾아오는 문화예술의 소통 공간이 되기를 고대한다.

책방을 나오는데 낯익은 헌책이 눈에 띄어 뽑아 들었다. 박완서의 소설집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먹었을까>이다. 왜 하필이면 많고 많은 헌 책더미 속에서 박완서의 소설이 눈에 들어왔을까. 이 헌책방 골목을 오갔던 숱한 사람들과 수많은 책은 어디로 갔을까. 넘기는 책장 속에서 사라진 것들, 사라지고 있는 것에 대한 모든 물상이 떠오른다.

충북도문화원연합회장·청주문화원장·수필가
충북도문화원연합회장·청주문화원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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