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길 소설가

고려 때 창건, 국운의 변천에 따라 철거와 이전, 복원의 수난을 겪은 망선루. 2000년 12월에 현재의 위치에 복원.
고려 때 창건, 국운의 변천에 따라 철거와 이전, 복원의 수난을 겪은 망선루. 2000년 12월에 현재의 위치에 복원.

 

[동양일보]

1. 공원의 역할 ㅡ 활력을 충전하는 도시의 허파,

임산자원이나 관광자원 보호 차원의 국/도립공원과 달리, 주거지 근린공원은 공중의 보건과 휴식을 위한 공간이다. 계획적으로 조성한 곳 외에, 외곽의 동산을 주민의 산책이나 운동공간으로 활용하는 곳도 일종의 공원이다, 이러한 공원은 누구도 제한받지 않는 열린 공간이요 쉼터인 동시에, 활력 충전소로 도시의 허파와 같은 곳이다. 성안길의 ‘중앙공원’은 인구밀집지역의 허파 역할과 함께, 시민의 심신 건강증진과 친교, 소통의 공간으로, 청주의 대표적인 공원이다. 85년 전 공원으로 지정, 준공되기 이전부터 군사요충지나 도정의 중심지 역할을 해 왔었고, 역사의 변천을 상징하는 다수의 사적과 기념비가 있는 역사의 땅이기도 한 곳이다.

지금은 마땅한 쉼터가 없는 노년들이 담소와 윷놀이를 즐기는 어르신 전용의 휴식공간처럼 되어, 일반 시민의 발길이 뜸해진 듯하지만, 어르신들과 일반 산책객들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휴게시설을 보완하고, 기존의 유물 유적의 배치 공간을 확대, 전 시민의 소통과 휴식, 학습의 동시 수행이 가능한 역사공원으로 조성한다면 더욱 유용한 대표공원이 될 것이다.

고 이어령 씨가 문화부장관 재임시 추진했던 ‘쌈지공원’ 조성사업은, 공원의 긍정적 효과를 이용, 쌈지처럼 작고 사랑방처럼 정감있는 소공원을 조성, 따뜻한 옛 인심을 되살리고자 한 기발한 착상이었다. 지금은 명칭조차 잊혀진 상태지만, 쌈지공원에서 출발한 근린공원의 확산 효과는 주거지의 쾌적화와 동시에 주민의 소통과 화합에도 기여 하는 바가 크다. 청주시 도시공원 현황자료(2019)에 의하면 행정기관에 등록된 도시공원 합계가 297곳, 관심 있는 시민(신유철, 전 청원교육장)의 장기간 탐문, 답사결과에 따르면, 미등록상태지만 주민들이 ‘마을공원’으로 인식, 활용하고 있는 곳도 약 37곳이 된다고 한다. 공원마다 특색있는 ‘이미지’를 부여, 이를 상호 연관 지어 관리한다면 ‘공원도시 청주’를 새롭게 부각시킬 좋은 소재가 될 것이다.

 

 

2. 청주중앙공원의 터줏대감 ㅡ 압각수鴨脚樹, 충신 구명 일화를 지닌 상징적 존재

청주중앙공원 한가운데 서 있는 거목 압각수는 이 공원의 상징적 존재다. 그 터에 뿌리를 내린 후 900여 년의 풍상을 견디며, 국가변란과 인걸의 부침을 지켜본 터줏대감으로 살아온 것이다. 고려말, 이성계의 세력에 반대하다 누명을 쓴 이색, 이숭인 등 8명의 충신이 청주 옥에 갇혔을 때, 때아닌 홍수로 고을이 물에 잠겼으나, 객관 앞의 은행나무에 올라 죽음을 모면, 왕이 특별교서를 내려 방면했다는 일화에는, 간계에 굴하지 않는 충신의 기개는 누구도 꺾을 수 없다는 숨은 뜻이 내포돼있다. 요즘도 충신의 종중 후예나 관심 있는 방문객들이 압각수 현장을 찾아, 옛 일화를 돌이켜보고, 선현들의 고결한 충절에 경배를 올리는 사례가 있다고 한다.

충북도 기념물 5호로 지정된 압각수는 밑둥치서 벋은 뿌리가 오리발가락을 닮았다 해서 지어진 이름이라 한다. 높이가 30m, 밑둘레가 8m에 이르고, 천년을 바라보는 거목임에도 봄이면 싹을 틔우지 않는 가지가 없고, 여름이면 푸른 열매를 달지 않은 가지가 없다. 긴 세월 버텨 온 표피는 거칠어도, 매년 치솟는 새 가지들의 푸른 기상은 갈수록 싱그럽다.

중앙공원은 지역의 변천사를 품은 역사의 상징이라는 가치 외에, 청주시민의 따뜻한 추억을 간직한 어머니의 품과 같은 곳이요, 거기 우뚝 선 압각수는 선열의 충절과 함께 시민의 자긍심과 희망을 상징하는 아버지의 등판 같은 존재다. 80년대까지 공원 풍경을 배경으로 방문객의 기념사진을 찍어주던 직업사진사는 추억의 배달부였다. 나들이 가족이나 방문객, 연인과 신혼부부들의 희망을 찍고, 약속을 담아 오래 간직할 추억으로 전해 준 것이다.

 

신앙의 자유를 위해 신명을 바친     천주교순교자 현양비
신앙의 자유를 위해 신명을 바친 천주교순교자 현양비

 

3. 유물, 유적의 전시장 ㅡ 온고지신으로 시민정신 정립

청주 중앙공원은 서두에 언급한 대로 역사의 땅이요, 국운의 변천을 상징하는 다수의 사적과 기념비가 모여있는 유적의 보고다. 청주관아의 누각으로, 고려조에 창건, 홍건적의 난과 일제의 침탈을 겪으며 철거와 이전의 수난을 거듭한 끝에, 2000년 12월에 현재의 장소에 복원된 망선루, 그 망선루 한 귀퉁이에, 쇄국/자강鎖國/自强을 꿈꾸다 실권 후 쇠락한 대원군처럼 초라한 모습으로 서 있는 척화비, 조선시대 청주읍성의 병영인 충청도병마절도사영문이었던 정곡루正鵠樓.... 이들은 모두 충북도 유형문화재로 풍운의 역사를 상징하는 귀중한 유물들이다.

시민정신 정립을 위해 제정한 ‘청주시민의 노래’ 홍보용으로 세운 노래비.
시민정신 정립을 위해 제정한 ‘청주시민의 노래’ 홍보용으로 세운 노래비.

 

일제 강압기에 민족자주독립을 위해 의병을 이끌고 항일전에 나섰던 의병장 조헌과 한봉수의 공적비, 온 민족이 함께 일어나 쟁취한 자주독립의 환희를 상징하는 독립기념비, 쇄국과 외세배격의 여파로 희생된 천주교 신자들을 기리는 순교자현양비도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해, 혹은 신앙의 자유를 위해 자신을 희생한, 멸사봉공의 교훈이 담긴 유물이다. 아직도 그 역사적 평가가 정립되지 않은 5.16혁명도 역사의 한 장인 만큼 그 기념비 역시 소중한 자산이다.

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전국에 세웠던 척화비. 망선루 옆에 위치.
대원군의 쇄국정책으로 전국에 세웠던 척화비. 망선루 옆에 위치.

 

조선시대 유학자 율곡이 청주목사 재직시 제정한 서원향약비를 비롯하여, 대한민국경로헌장비, 어린이헌장비, 시민헌장비, 시민노래비 등, 각종 기념비들은 광복에 이어 6.25 남침의 후유증으로 겪게 된 혼란기에, 와해 된 시민정신의 정립을 위한 자정운동의 상징물들이다. 기념비 건립 주관자가 누구이던, 그 뜻은 오래전, 향약을 제정한 율곡의 뜻과 다르지 않을 터. 전래의 미풍양속을 계승하는 온고지신으로, 민주사회의 시민정신을 정립하자는 의도일 것이다. 청주의 대표공원인 중앙공원, 시민의 휴식처에서 추억의 명소로, 나아가 온고지신의 역사공원으로 가꿔 나간다면, 공원의 역할을 재정립하고 시민의 자긍심을 높이는 명소가 될 것이다.

민족 자주독립을 위해 의병을 이끌고    항일전에 나섰던 의병장 한봉수 송공비
민족 자주독립을 위해 의병을 이끌고 항일전에 나섰던 의병장 한봉수 송공비

 

4. 역사공원으로의 꿈 ㅡ 자긍심의 명소로 재탄생 기대.

중앙공원의 확장과 역사공원화 계획은 2021년 당시의 시장이 공약사업으로 내걸었던 사안이라 했다. (2021.5,27, 충북뉴스) 그러나 철거될 시청사의 부지까지 포함하는 방대한 ‘역사공원화’조성 공약은, 사업 착수 전에 시장의 임기가 끝나고 재선이 불발된 데다, 후임 시장의 공약승계도 이루어지지 않아 계획 자체가 무산된 상태다. 하지만, 언젠가 누군가가 해야 할 사업이다. 현재의 중앙공원 부지면적은 4만여 제곱미터, 문화재와 기념비의 배치가 조밀하고 청주시 인구 10만 시절과 달리, 늘어난 이용객들이 불편을 느낄 만큼 휴게시설도 부족하다.

조선시대 청주 읍성의 병영인  충청도 병마절도사영문이었던 정곡루.
조선시대 청주 읍성의 병영인 충청도 병마절도사영문이었던 정곡루.

 

시민들이 공원에서 누리고자 하는 것은 ‘여유’다. 운동과 휴식을 위한 공간과 시설과 시간적 여유, 인구 10만 시절의 대표공원의 명예(?)를, 85만인 현재도 그대로 유지하자면 부지확장은 물론, 역사공원화를 위한 재구성 작업은 필수다. 이는 시민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증진과 자긍심 고양을 위해 도시의 일부를 재구성하는 일이므로, 전 시민을 위한 공공복지사업인 셈이다.

공원의 재구성 작업이 완성되면, 관리에도 진화된 방안이 모색돼야 하지 않을까? 종교단체나 학교, 예술단체의 고유기능을 살려, 공원내에 배치된 유적과 기념비에 관련된 내용을 깜짝 콘서트식으로 연출, 공원 이용객들이 관람토록 하는 것이다. 참여 희망단체가 종목과 공연내용을 선택, 신청하면, 공원관리 담당자가 일정을 조정, 주말 오후 시간을 이용, 공연토록 하는 것이다. 국악인은 망선루에서 판소리 한 마당을, 교회 성가대는 순교자현양비 앞에서 성가 합창을, 학교 합창반은 어린이헌장비 앞에서 전래동요 합창을, 택견인은 정곡루에서 택견 시범을, 가수협회는 민족 고유의 정서가 담긴 가요를, 그 외의 예술 관련 단체나 개인들이 고유의 기능을 봉사, 깜짝공연을 선보인다면, 시민들은 휴식을 즐기며, 주말마다 이어지는 예술인들의 봉사로 우리 옛것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게 될 것이다. 도심의 허파요, 청주의 대표공원, 지역의 역사를 품고 시민의 자긍심을 키우는 명소로 재탄생할 날을 기대해 본다.

안수길 소설가
안수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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