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호 시조시인

[동양일보]“불이야, 불이야!” 다급한 비명이 허공을 가른다. “○○네 건조실이다!” 피어오르는 연기를 향해 어른들이 뛰어간다. 일사불란하게 개울까지 늘어서더니 물을 퍼 나른다. 양동이를 주고받는 손놀림이 정예병 같다. “아이고, 다 타네, 다 타!” 시커먼 잔해 더미 속으로 탄식이 스며든다. 안간힘을 따돌리고 아수라장은 이내 잠잠해졌다. 집주인 눈물 줄기에 체념이 묻어난다. 초등학교 시절 여름방학, 친구네 담배 건조실 화재 현장은 오래도록 뇌리에 남아있다.

이런저런 설이 있지만, 인류와 불의 인연을 구석기시대로 보는 관점에 시비 거는 이는 없다. 화산, 산불, 번갯불 같은 자연현상을 두려워하던 인류도 시나브로 불을 이용하게 된다. 추위를 녹이고 음식을 익히고 어둠을 밝히는 데까지, 인류의 삶의 질 향상에 불은 일등 공신이다. 정착 문화의 기저에도 불이 있다. 불씨를 얻기도, 운반하기도 어려웠던 원시인들은 불씨를 중심으로 모여 살게 됐다.

안타깝지만, 음양은 늘 공존한다. 옹기종기 집이 들어서면서 불은 뜻밖의 재앙도 불러왔다. 불꼬리에 늘 화재가 붙어 다녔고, 이웃으로 번지며 몸집을 키우기도 했다. 인류는 다시 불을 무서워했고, 급기야 방화의식이 꿈틀댔다. 고려 때 관아별로 금화(禁火) 관리책임자를 둔다. 이엉 대신 기와를 올리라고 권장하며, 연소 확대를 막기 위한 묘책도 냈다. 실화든 방화든 장형이나 태형으로 다스리고, 책임자를 해임했다는 기록도 있다. 조선조 세종 때는 금화도감을 두었으니 우리나라 최초의 독립적인 소방관서다.

군사용어라 섬뜩하지만, ‘초전박살’은 긍정적일 때가 많다. 화재진압에 있어서는 더욱 그렇다. 초기에 진압하려면 발화 기미를 눈치채야 한다. 사람들은 점점 높은 데로 올랐다. 사방이 트여야 발화지점을 쉬 볼 수 있어서다. 소방망루는 그렇게 다가왔다. 1930년대 남산 소방망루를 시작으로 높은 곳을 찾아 초소를 세우고 화재를 감시했다. 낌새가 있으면 사이렌을 울리고, 종을 쳐대면서 출동을 독려했다.

 

청주 최초의 소방망루는 대성동 당산자락에 있었다. 1965년 9월 문을 열고 밤낮으로 화재를 경계했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생은 짧았다. 청주역이 1968년 11월에 우암동으로 이전하면서 도심 풍경은 급변한다. 철로를 걷어낸 자리에 지금의 상당로인 4차선 대로가 생기고 농협충북본부, 청주상공회의소와 같은 건물들이 길가를 따라 모여들었다. 1970년 청주소방서도 그 대열에 합류한다. 연면적 1,370㎡로 집을 짓고 7층 높이의 소방망루도 세웠다.

그렇게 자리 잡은 소방망루는 올망졸망 늘어선 건물들을 내려다보며 자긍심이 대단했다. 훤칠한 키를 뽐내며 소방서의 자랑거리로서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이별 수가 끼었을까, 35년이나 동고동락하던 원주인은 2005년 영운동 새집으로 이사했다. 홀로 남은 그는 지금 북문119안전센터와 동거 중이다.

망루는 자긍심만큼 애환도 많았으리라. 잠든 시가지를 경계하며 눈까풀이 무겁기도 했을 테고, 고요가 뿜어내는 외로움과도 싸웠을 테다. 불나면 비상 걸고 발 동동 구르며 잦아들기를 빌었겠다. 수루에 오른 이순신 장군이 나라 안위를 걱정하듯, 시민들이 무탈하기를 간절히도 바랐을 것이다.

‘지금 어드메쯤/아침을 몰고 오는 분이 계시옵니다./그분을 위하여/묵은 이 의자를 비워 드리지요.’ 조병화 시인의 「의자」처럼, 세월은 주인을 바꾼다. 문명의 발달은 통신에서도 두드러졌다. 1980년대 초반부터 전화기 보급이 늘면서 소방망루가 설 자리는 좁아진다. 언제부턴가 시민들 뇌리에는 ‘119’가 각인됐다. 화재뿐만 아니라 다치거나, 위험에 처하거나, 상황이 곤란할 때도 버튼을 누른다. 자연스레 소방망루엔 인적이 뜸해졌다.

소방관 안내를 받아 망루를 오른다. 가쁜 숨 사이로 던지는 방문 이유에, 이방인 대하는 눈빛이다. 디지털 문화에 익숙한 젊은이니 당연한 반응이겠다. 망루에서 바라보는 도심도 세대 차를 드러낸다. 우뚝 선 고층빌딩은 젊음을 과시하고, 무기력한 중앙시장엔 졸음이 매달린다. 회춘을 꿈꾸는 시청사 철거 현장은 표정 관리에 한창이다. 늙은 이웃들 틈에서 혼자 젊어지기가 미안도 했을 터, 사람도 사물도 청춘의 유혹만은 뿌리칠 수 없나 보다.

자꾸만 오래된 것에 눈길을 둔다. 급변하는 환경이 낯서니 더욱 그러리라. 굳이 케케묵은 ‘온고지신’도 불러낸다.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미루어서 새것을 앎’이라고 사전은 정의한다. 새것이 중요하되, 옛것도 홀대하지는 말라는 속내도 들춰 본다. 2,500년이나 지난 성현 말씀이 아직도 회자하니 틀림없는 경구다.

첨단으로 치달으며 혁신의 압박이 거세다. 웬만큼의 가치가 없는 것들은 ‘효율성’이란 명분 앞에 살아남기 힘든 세월이다. 큰길을 내며, 건물을 다시 세우며 많은 옛것이 사라졌다. 위용을 자랑하던 소방망루도 개발 논리에 밀려 거의 없어졌다. 전국에 몇 군데 없고 충북에는 북문119안전센터 망루가 유일하다. 국회 송재호 의원실이 지난해 전국 소방청사 노후도를 조사했다. 부산범일119안전센터, 수원매산119안전센터, 경남사천소방서본서, 청주북문119안전센터 순으로 오래됐단다. 전국에서 네 번째 고령이니 신축 압박 또한 거세리라.

감시 드론과 정찰 헬기가 하늘을 날고, CCTV가 취약지역을 노려본다. 5G 통신 기술이 확산하고 SNS는 순식간에 정보를 공유한다. 바야흐로 첨단시대지만, 숨은 공로도 눈여겨볼 때다. 오늘날을 이끈 동력은 아날로그다. 북문119안전센터 소방망루도 그렇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두 눈 치켜뜨고 화재를 감시했다. 발화 현장을 지켜보면서는 꼼짝달싹 못 하는 몸을 비비 꼬며 안절부절못했으리라. 피해가 크지 않기만을 바라면서 속을 태운 그가 이제 세월 뒷전으로 나앉았다. 늘 서민들의 안위를 걱정해온 그를 이제는 우리가 섬길 때다. 더구나 전국에 몇 안 남은 귀한 몸이시다. 미래유산으로 지정한 당국에 찬사를 보낸다.

김선호 시조시인
김선호 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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