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전섭 충북도문화원연합회 회장

[동양일보]바람 부는 날에는 그곳에 가고 싶다. 오늘처럼 무심천 갈대숲이 바람결에 사운대고 추적추적 비가 내려 마음이 허허로울 때면 무작정 길을 걷다가 저절로 발길 머무는 곳이 있다. 연탄불 화덕에 지글지글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하고 불콰해진 얼굴로 소주잔 부딪치는 소리와 잠시 시름을 잊은 젊은이들의 웃음소리가 끝없이 이어지는 그곳, 서문시장 삼겹살 거리이다.

청주의 음식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무엇일까. 청주의 대중 음식인 삼겹살이다. 가까운 계곡이나 캠프장으로 야영을 떠날 때면 삼겹살은 빠지지 않는 단골 메뉴이다. 밑반찬을 챙길 필요 없이 간단한 조리로 풍성한 식탁을 만든다. 청주 지역 음식으로 옛 문헌인 <반찬등속>에 조리법이 수록된 반가(班家)의 음식이 있지만, 모든 시민이 즐기는 청주의 식문화 중 널리 사랑받는 음식은 바로 삼겹살이 아닐까 싶다.

 

오늘날처럼 한국인이 즐겨 먹는 돼지고기는 조선시대까지 돼지 사육이 대중화되지 않았고, 돼지고기를 즐겨 먹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불교의 영향 탓도 있으리라 생각된다. 조선시대 빙허각 이씨가 쓴 <규합총서>에서 “돼지고기는 풍병을 일으키며 회충이 해를 끼쳐 풍병 환자나 어린아이는 많이 먹으면 안된다.”라고 평하고 있는 걸 보면 그 당시에는 돼지고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있었던 듯하다. 하지만 소고기에 대한 선호도는 대단하여 도축을 금하는 ‘우금(牛禁)정책’이 시행되기도 했다.

청주문화원이 발간한 청주문화총서 13집 <청주의 식문화>(2021)는 ‘청주와 삼겹살(조혁연)’ 편에 청주 삼겹살의 모든 내용을 상세히 담고 있다. 청주 돼지고기의 역사적 근거는 조선 영조 때 간행된 <여지도서>에 처음 나타난다. 매년 돼지 한 마리를 진상하여 조정에서 주관하는 춘추제례에 제수용으로 배정되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청주산 돼지고기는 조선시대에도 명성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럼 ‘삼겹살’이란 단어의 등장은 언제일까. 요리연구가인 방신영의 <조선요리제법>(1931)에는 삼겹살을 ‘세겹살(뱃바지)라고 쓰고, 돈육 중 ‘배에 있는 고기’가 제일 맛있는 고기라고 소개하고 있다. 또한, 홍선표가 쓴 <조선요리학>(1940)에도 ‘세겹살은 가장 맛 좋은 부위’라고 기록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발행된 신문에도 ‘세겹살’이란 표현과 ‘도야지고기’의 기사 내용이 있는 것을 보면, 그 당시에 돼지고기가 본격적으로 서민들의 식탁에 오른 게 아닐까 생각된다. 조혁연 교수의 연구 자료에 의하면, ‘삼겹살’이란 단어가 처음 등장하기 시작한 시기는 지금까지 알려진 1970년대 초가 아닌 1950년대 말쯤으로 파악된다. 청주 삼겹살은 1960년대 연탄불에 석쇠를 올려놓고 고기 위에 왕소금을 뿌려 구워 먹는 연탄구이 삼겹살(시오야끼)로 시작했다. 지금 같은 불판 구이용 형태는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 초인 것으로 나타났다. 필자의 기억으로도 1980년대에 꽤 소문났던 백로식당의 대패 고추장삼겹살과 볶음밥에 반해서 자주 드나들던 기억이 생생하다.

 

청주 식문화의 대표적 삼겹살은 청주의 진심과 맛이 담겨있다. 굵은 왕소금을 뿌려 노릇노릇 익은 삼겹살에 파절이를 얹어 한입 물고 소주 한 잔을 털어 넣으면 고소한 삼겹살의 육즙과 소주가 어우러진 맛의 조화가 기막히다. ‘홍탁삼합’인 삭힌 홍어와 묵은지, 돼지고기에 막걸리가 어울리듯이, ‘청주 삼겹살’의 삼합인 간장소스 삼겹살, 파절이, 묵은지에 소주 한잔이 제격이다. 여기에 새콤달콤한 파절이가 삼겹살의 미각을 더해준다. 두툼한 삼겹살 위에 파절이를 얹어 입 안에 넣으면 새콤, 달콤, 매콤의 ‘삼콤 맛’이 느껴지는데, 비결은 바로 청주 미호천 변의 비옥한 땅에서 재배한 대파에서 나온다. 미호천 둔치에 끝없이 이어진 대파 재배지는 보는 것만으로도 장관이다. 집단 재배된 대파는 삼겹살 식당에 공급되어 농가의 수입 증대와 청주 삼겹살 특유의 ‘삼콤 맛’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지 싶다.

 

삼겹살 문화를 전파시킨 장본인은 바로 도시 근로자들이었다. 고단한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화덕에 둘러앉아 연탄구이 삼겹살에 소주잔 몇 순배로 피곤한 심신을 풀었다. 이제 삼겹살은 남녀노소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전 국민이 즐겨 먹는 돼지고기 요리의 대명사다. ‘삼겹살에 소주 한잔’은 우리 청주만의 전유물이 아닌 대한민국의 대표 음식으로 회자된다. 청주 서문시장의 ‘삼겹살 거리’는 전국에서 처음으로 조성됐다. 청주시와 서문시장 상인들의 부단한 노력과 행정력의 뒷받침으로 특화된 ‘삼겹살 거리’를 조성함으로써, 지역 상권을 되살리고 전국의 관광객들이 찾아드는 명소가 되고 있다. 요즘은 약간 침체된 느낌도 들지만, 다채로운 행사와 ‘청주 삼겹살 활성화 방안’의 연구팀이 제시한 ‘추억의 맛과 향수가 살아있는 청주 삼겹살’의 비전을 완성할 역사 스토리텔링, 맛의 차별화와 콘텐츠 집중화로 청주가 K-Food 삼겹살의 본고장으로 자리매김하는 그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시장은 단순히 상품을 사고파는 상업적 공간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시장은 다양한 사람의 만남의 공간이자 소통 경로이며, 문화예술의 향유 공간이다. 나아가 외부의 문물이 유입되고 전파되는 삶의 터전이다. 숲이 사라진 공간은 산새가 날아들지 않듯이, 맛과 재미와 끌림이 없는 시장은 젊은이들이 찾지 않는 소멸의 공간이다. ‘청주 삼겹살’의 브랜드화를 위해서 반드시 고민해보아야 할 과제라고 여긴다.

 

문화는 서로 비교할 수는 있어도 우열을 논할 수는 없다. 사람도 저마다 처한 환경과 습관이 다르듯, 음식 문화도 각각 그 지역의 풍토와 풍습, 생활환경에 따라 맛이 다르게 나타난다. 국가와 지역에 따라 된 생성된 고유의 문화를 어떻게 살리고 보존하며, 계승하고 발전시키는가에 따라 지역 문화의 정체성과 원형이 뚜렷이 확립되리라 믿는다. 천년 고도 청주에는 숱한 근대문화 유산이 있다. 청주의 식문화 중 ‘청주 삼겹살’은 청주만의 특화된 음식이 아니라 전국적인 대중음식이다. 역사적 기록이 남아있는 ‘청주 삼겹살’을 청주 시민의 생활 문화와 밀접하게 관련된 근대 무형유산으로 보존하고 활용하려면, 청주 시민의 중지를 모으고 청주시의 지속적인 행정력 뒷받침과 홍보전략, 변하는 고객의 입맛을 맞추려는 상인들의 부단한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세상에는 듣기 좋은 숱한 소리가 있다. 어느 문인은 자작나무 타는 소리가 운치 있다고 했지만, 청주사람으로서 불판에 얹은 삼겹살 위에 왕소금 탁탁 튀는 소리와 지글거리며 고기 익는 소리도 여느 소리 못지않게 정겨운 소리로 다가온다. 돌아오는 주말에 멀리서 지인이 온단다. 그분에게 청주의 맛있는 소리를 들려주고 싶다. 청주 서문시장 ‘삼겹살 거리’에서 ‘청주 삼겹살’에 소주 한잔 마시며 청주의 문화가 담긴 맛과 멋을 선보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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