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인생의 축쇄판이자 자연무대, 가까워질수록 그 모습 닮아가… ”

[동양일보] 한국의 유일한 내륙도 충북은 높고 아름다운 산들이 많다. 그래서 유명 산악인도 많다.

동,북쪽으로 소백산(1439m), 금수산(1015m), 월악산(1092m), 조령산(1026m), 형제봉(1198m), 동·남쪽으로 속리산천왕봉(1058m)문수봉문장대(1028m), 황악산(1111m), 민주지산(1241m)… 등 1000m가 넘는 봉우리들이 강원·경북 과 어깨를 맞대고 있다. 그래서일까. 충북인들의 자긍심 한켠엔 이곳서 자란 젊은이들이 한국산악사를 새롭게 썼다는 사실이 각인돼 있다. ‘세계의 지붕’ 에베레스트를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등정(1977년 9월15일)한 고 고상돈(1979년 5월 29일 북미 맥킨리6194m 등정 후 조난. 당시 31세), 두 차례나 정상에 오른 허영호, 한국 여성산악인 최초로 등정(1993년)한 고 지현옥(1999년 안나푸르나8091m등정 후 조난·당시 38세)을 비롯해 김웅식·조철희·홍순덕 등 에베레스트 정상정복의 쾌보를 전한 산악인들이 모두 충북출신들이었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Everest는 남쪽으로 네팔과 북쪽으로 중국의 서장자치구인 티베트와 국경이 접한 히말라야산맥에 있는 피라미드 모양으로 솟아 있는 8848m의 봉우리다. 산소부족과 강풍과 혹한 때문에 어떤 동식물도 살 수가 없다. 1852년 영국의 측량으로 발견되어 ‘P15’란 기호로 불리다가 1865년 전 측량국장관 이던 조지 에베레스트 경의 이름을 따서 명명됐다. 티베트에선 ‘대지의 여신’이라는 뜻의 ‘초모랑마’Qomlanma, 네팔에서는 ‘세계 어머니의 여신’이란 뜻의 ‘사가르마타’Sagarmata라 불린다. 영국 산악인들의 32년간에 걸친 끈질긴 도전 끝에 1953년 5월29일 존 헌트가 이끄는 9차 원정대의 뉴질랜드인 에드먼드 힐러리가 최초로 정상을 정복했다. 한국은 이로부터 24년 뒤인 1977년 충북산악회의 고상돈 대원이 정상에 올라 세계 7번 째 등정국이 됐다.

올 5월 29일은 에베레스트가 인간에게 정복된 지 꼭 70년이 되는 날이자, 한국 최초 등정인 고 고상돈 산악인이 북미 맥킨리에서 조난 돼 세상을 떠난(당시 31세)지 꼭 44주년이 되는 날이다. 이를 하루 앞둔 5월 28일에 조령산(괴산군 연풍면)야영장 입구에서 충북산악연맹과 청주대산악부가 공동 주최하는 충북산악인추모제가 계획되어 있다하여 지난 18일 청주대 교수로 정년퇴임한 남기창(82. 청주시 서원구 개신동 삼익1차 아파트)대한산악연맹 고문을 만났다. 1960년대부터 청주대학 산악부를 이끌어온 ‘충북산악인의 대부’다.



●5월이 다 가고 있습니다. 이 5월엔 감회가 남다르시죠? 헤아려 보니 ‘산악인생 60년’이 되시더군요. 충북산악연맹 회장을 하셨고, 현재는 대한산악연맹과 충북산악연맹 고문을 하고 계시지요?

“어느새 고상돈‧ 이일교 대원이 세상을 떠난 지 44년이 됐네요. 5월 29일은 매킨리 정상을 올랐다 하산도중 실족으로 조난됐다는 비보가 날아든 날이지요. 청주대 선,후배인 두 사람이 한 자일에 묶여 있다가 변을 당했어요. 이일교 대원은 당시 영문과 3학년이었는데, 신체조건이며 품성이 훌륭하여 고 대원이 유독 아꼈고, 산사람들이 기대를 걸었던 청년 이었습니다. 매킨리로 떠나기 전에 ‘졸업하면 프랑스 등산학교를 가서 산 공부를 더 하고 싶다’라고 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고상돈 대원의 유해가 제주 한라산 중턱에 묻혀있지요? 고인에 대해 좀 들려주시지요.

“고 대원은 1948년 제주에서 태어났는데 초등학교 때 청주 주성초로 전학을 와서 청주중, 청주상고를 나와 청주대를 졸업했어요. 청주연초제조창에 근무했지요. 고등학교 때 보이스카웃 활동을 하며 당시 충북산악연맹을 이끌던 고 이원근 교사의 권유로 충북산악회에 가입, 산악인의 길을 걷게 되지요. 등산장비점도 운영했고 한국등산학교 암벽반을 수료하는 등 착실하게 산악인의 자질을 쌓았어요. 1977년 9월 15일 한국인 최초 에베레스트 등정 후 10월 6일 귀국하면서 국립묘지 참배 뒤 카퍼레이드가 펼쳐졌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체육훈장 청룡장을 받습니다. 청주에서는 10월 18일 충북체육관 앞 광장에서 충북산악연맹 주최 환영식과 청주시내 카퍼레이드가 있었는데, 이튿날인 19일엔 제주에서 환영식과 제주시내 카퍼레이드, 제주도민 환영대회가 대대적으로 펼쳐졌지요. 이 해 11월 1일엔 서울 미도파백화점 4층 장미홀에서 에베레스트 등정 사진전이 개막 됐는데 박 대통령의 영애 박근혜 양이 참석했고, 17일 만에 70여만 명이 방문해 전시일정을 14일간 더 연장하기도 하는 등 온 나라가 들썩였어요. 고 산악인이 태어난 제주도와 어린 시절부터 청년기를 보낸 충북도가 서로 자기네 도민이라며 ‘고상돈 쟁탈전’(?)을 벌인 격이 됐지요. 그로부터 2년 뒤 고상돈 대장이 이끄는 맥킨리 등반대가 조난 직후 함께 등정했다 유일하게 생존한 제주의 박훈규 부대장 등 제주산악인들이 경기도 한남공원묘지에 이일교 대원과 함께 안장됐던 고 대장의 유해를 1980년 10월 16일에 제주 한라산 중턱으로 이장했지요. 고 대장이 조난당한 직후 서울제주도민회는 ‘고상돈 대장 기념비 건립기금’ 모금을 하는 등 부러울 정도의 순발력을 보였던 기억이 납니다.”



●결혼식을 청주서 했지요? 제주엔 오래 전에 동상이 섰다는데요.

“고 대원은 에베레스트 등정 후 청주백화점 매장에 등산장비점코오롱특약점 문을 열었고, 1978년 4월 17일 모교인 청주상고 강당에서 정종택 충북지사의 주례로 이희수 여사와 결혼식을 했어요. 현재 제주도 민속자연사박물관에 고인의 유품과 사진기록 등 수 백점이 전시돼 있어요. 대한산악연맹은 고인이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9월 15일을 ‘산악인의 날’로 정했고, 2002년부터 ‘대한민국산악상’에 ’고상돈특별상‘부문을 제정해 시상하고 있어요. 2005년 그가 떠난 5월 29일에 한라산 1300고지에 동상을 제막했지요.”



●이일교 대원 유해는 어찌 되었는지요.

“2015년 6월 14일에 청주대산악부 75학번 동기들에 의해 화장하여 조령산 암벽훈련장에 묻고 추모비를 세웠어요. ‘산을 사랑하며 산을 꿈꾸던 그대/맥킨리 설산에서 열정을 다 한 숨결/그대의 산 사랑, 우리 모두는/영원히 가슴에 새기며 기억 하리라’란 비문을 새겨 넣었지요.”



●28일 조령산 합동 추모제엔 누구누구를 추모하는지요.

“고상돈‧이일교‧지현옥과 조령산 암벽훈련장을 개척하고 실족사한 충주의 박진규, 2009년 히말라야 히운추리봉 북벽 등반 중 실종된 박종성과 민준영 등 6명의 산악인을 추모하는 행사입니다. 박종성과 민준영은 충북산악연맹 산악구조대원들이었습니다.”



●남 고문은 2000년 충북밀레니엄원정 총 단장으로 세계 6대주 최고봉을 성공리에 등정하여 세인들을 놀라게 했었지요? 원정대 구성은?

“북미대륙 맥킨리원정대(한승수대장, 최영주등반대장),유럽대륙 엘브루즈원정대(김창식대장,전현숙등반대장),오세아니아대륙 칼츠텐츠원정대(연방희단장, 박연수원정대장),아프리카대륙 킬리만자로원정대(연제환단장, 노동진원정대장, 김성기등반대장),아시아대륙 에베레스트원정대(이광택단장, 윤홍근원정대장, 김영식등반대장),남미대륙 아콩카구아원정대(유병수단장, 서병란원정대장, 오세만등반대장)으로 편성됐지요. 기간은 2000년 5월 31일부터 12월 31일까지였고, 등반대별로 11일부터 73일까지 지역에 따라 달랐어요.”



●그 때 에베레스트 등정은 누가 했나요?

“김웅식(57·청주레저토피아대표), 홍순덕(53·충주·건축업), 조철희(53·네파청주지점장)등 3명이 등정에 성공했지요. 당시 충청북도와 청주대학의 지원이 큰 힘이 됐고, 6개 팀이 모두 무사고 등정을 완료했음이 감사할 뿐이었습니다. 이 해 12월, 충북도청 대회의실에서 열린 송년모임 식장에서 ‘동양일보 올해의 인물’에 ‘충북밀레니엄원정대’가 선정되어 대형 상패를 받아 더욱 기뻤지요. 단순히 충북산악인들의 쾌거가 아니라 전 도민들의 기쁨과 환영의 뜻이 오롯이 담겼기 때문입니다.”



●“고상돈부터 허영호, 이일교, 김웅식, 조철희 대원들이 모두 청주대산악부 후배들이자 제자지요? 여성 산악인 지현옥 씨 까지도 산악지도를 받았다고 들었는데요.

“그렇지요. 청주대 산악부 선후배이자 사제간이었고, 지현옥 대원은 우리가 하는 산악훈련에 열심히 참여해 왔어요. 남자 산악인들에 뒤지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 쓰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요. 새로운 도전에 대한 집념과 산에 대한 열정, 성취감에 대한 강한 근성이 ‘여성 최초’의 세계 최고봉 등정자를 만들었지요.”



●오래전 기억입니다만, 대한산악연맹 창립 50주년 기념식장에서 ‘대한산악연맹을 빛낸 50인’에 선정되어 표창 받으셨지요?

“2012년 4월23일, 연맹 창립 50주년 기념식이 있었어요. 이 자리에서 14좌를 오른 박영석‧엄홍길‧김재수‧한왕용‧김미곤‧김창호, 김홍빈(장애인으로 세계최초), 에베레스트 등정 후 유명을 달리한 고상돈‧지현옥 등과 함께 50인 선정패를 받았지요.”



●산악인들이 선망하는 그 ‘14좌’ 란 무엇입니까?

“좌座란 8000고지 이상의 봉을 말합니다. 히말라야산맥엔 8000고지 이상의 봉우리가 14개가 있어요. 산악인들의 꿈은 이 14좌에 오르는 것이지요. 산악인들은 산 정상에 올라도 ‘정복’이란 말은 쓰지 않아요. ‘등정’이라하지요.”



●충북엔 14좌 등정자가 없나요?

“아직은 없습니다. 2000년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조철희 대원이 현재 6좌를 달성했어요. 한 좌를 오르는데 최소 2,3개월이 걸리니 앞으로 상당기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꿈이 이뤄지기를 간절히 바라지요.”



●충북등산학교를 설립해 지금도 학교장 직을 갖고 있지요?

“충북등산학교 설립이 1995년이니까 이제 28년이 되었습니다. 충북산악연맹(청주시 상당구 방서동 충북체육회관 내)에 주소를 두고 있어요. 단기반은 등산 기초 등 1주일 코스고, 정규반은 등산 전반에 관한 교육과 기술 등반에 관한 이론과 실기를 3개월 코스로 교육합니다. 동계반은 빙벽등반에 대한 이론과 실제를 1개월 간 이수시키는 코스지요. 등산학교 지원현황을 통해 보면, 개설 초기엔 지원자 중 특히 청년들이 많아 선발할 정도였는데 근래 들어 산에 관한 관심이 급격히 줄어드는 현상을 보입니다. 시대가 많이 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산행에 나서 보아도 산을 찾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어요. 자신의 심신수련을 통해 호연지기와 자제력과 극기심을 키우려는 노력에 땀을 흘리려 하지 않는듯합니다. 등산학교는 에베레스트나 해외원정을 가는 정도의 베테랑급 산악인들이 강사들이지요.”



●젊은 시절엔 한국동굴학회 활동도 하셨지요?

“그렇습니다. 청주대학에 몸담고 있을 때인데, 동굴학회에서 1973년 단양 고수동굴을 최초로 공식 탐사한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 때 위험을 무릅쓰고 답사한 동굴이 오늘날 한국 유수의 종유석 석회암 동굴로 훌륭한 관광자원이 되어 있어 흐뭇합니다.”



●합창단 활동도 오래 하셨지요?

“1995년부터 1999년까지 34명으로 구성된 청주부부합창단을 이끌었어요. 2005년에 45명으로 결성한 ‘청주남성합창단’은 단원이 60명 까지나 늘어나고 매년 정기공연 이외에도 요양원이나 병원 등 위문공연도 열심히 했지요. 꽤나 인지도도 높았고요. 초기부터 2021년 까지 16년 간 단장을 맡았었는데, 나이도 있고 하여 지금은 평 단원으로 활동하지요.”



●요즘은 어떻게 지내세요?

“제자들 5명이 운영하는 물환경연구소(청주 상당구 월평로242, 2층)사무실에 주로 나가 내 일을 보지요. 몇 해 전부터 구상하고 있는 ‘한국산악문화연구소’ 개설에 따른 생각들을 정리하고 있어요. 산에 대한 개념이나 철학을 일깨우고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 등 산과 관련한 문화 정착 등을 고민하고 있지요. 건강이 허락하는 대로 노래 부르고, 후배들과 산에 오르면서 탈속하게 살려 합니다.”



●‘60년 산사나이의 인생’을 살아오셨는데, ‘산’은 무엇인가요?

“인생의 축쇄판縮刷版입니다. 세월과 희노애락이 저마다의 문양紋樣으로 보존되어 있어요. 삶의 자연무대이자 살아가는 교육장이지요. 가까워질수록 산의 모습을 닮아가는…”



●여러 차례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 동양일보 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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