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통령 치적 중 돋보이는 4대강 사업, 청정에너지 보고인 해양 개발로 이어졌으면…”

[동양일보] 경북 영천군 영천읍 산골읍내에 살면서 금호강 맞은편에 있는 학교를 다리가 없어 한 시간이나 걸려 멀리 돌아다녀야 했던 어린소년은, 담임 선생님이 프랑스 파리라는 도시는 시내가 모두 포장돼 흙먼지가 없는 깨끗한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꿈(?)같은 말을 잊지 못한다. 어떻게 해야 그런 곳에서 살 수 있을까, 누가 그렇게 했을까, 나도 그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초등학교 2학년짜리의 이 같은 생각이 서울 유학길에서 자연스럽게 토목공학과를 선택하게 했고, 토목전문가로 성장 시켰다. 토목설계사가 되고, 공학박사가 되고, 교수가 되더니 국립대학 총장으로 임기를 마치고 ‘충청도 사람’이 돼 행복한 노후를 맞고 있다. 신방웅(申芳雄·81·청주시 오창읍 중앙로65 우림필유아파트)전 충북대 총장의 이야기다.



그가 충북대 농공학과 강단에 처음 선 것은 1970년도 9월. 이듬해 토목공학과 전임이 되면서 지난 2007년 8월말 까지 충북대에서의 36년간, 그리고 한국시설안전공단 이사장을 거쳐 이제까지 50여 년간의 청주살이는 어린 시절의 꿈을 성취해 온 보람의 세월이었다.

그의 토목구조물 설계 첫 작품은 대학원을 다니던 조교시절, 은사로부터 의뢰받은 동대구역 고가교량이었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이어서 계산기로만 구조물 응력계산을 해야 했기에 설계에만 3개월이나 걸렸다. 승객안전을 위해 프리스트레서(PS)보와 교각은 원형기둥으로 설계되었는데 레미콘이 없던 시절이어서 철근콘크리트 중량배합으로 당시 대구에서는 가장 큰 공사였다. 이 교량설계 이후 여러 곳에서 각종 토목구조물의 응력 계산 요구가 들어 왔고, 이 연구자료를 모아 첫 저서인 <토목설계>(1969년)를 출간했다. 이 책이 대한토목학회지에 게재되고 부산대와 전남대 등에서 교재로 선택되는 기쁨을 맛본다. 1960년대 대학을 다니면서 필요한 책이 없어 공부하는데 어려움을 겪던 기억을 살려 후학들이나 건축 토목 관련 종사자들에게 도움이 되고자 열심히 원고를 쓰고 책을 출판했다. 자신의 저서로 공부해 기술고시도 합격하고 장관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부지런하게 연구하고, 글 쓰고, 학회발표를 해 대한토목학회 학술상도 수상(1985년)했다.

충북대 강단에 선지 얼마 되지 않아 청주지역 인사들이 청주를 활기찬 도시로 변모시키고자 서문대교에 분수를 설치하자고 결의, 1970년 이 분수공사 설계를 맡겨 유체역학 이론에 의한 설계를 완성해 성공시켰다. 이 분수가 등장하자 관광버스들이 머무는 등 새로운 명소로 화제가 되자 전속영업사진사들의 일터가 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지역 건설 분야 자문 요청이 잦았고 적극적인 참여로 봉사했다. 청주시도시계획위원, 충북도 설계심사위원을 비롯 조달청, 감사원, 건설부, 환경처, 총무처, 교육부와 대통령 자문 정책기획위원회, 대통령자문 균형발전위원회, 도로공사, 수자원공사, 한국산업안전공단, 산업인력공단, 대한토목학회 등의 위원으로 위촉돼 전국적인 봉사활동을 하게 된다. 교수가 직업인지, 건설 토목 관련 자문위원이 직업인지 모를 정도로 바쁜 세월을 살았다. 이 같은 지역사회 기여에 청주시는 청주시문화상(학술부문)1974년을, 충북도는 충청북도문화상(자연과학부문)1985년으로 보답한다.

그는 2001년 17대 충북대 총장이 된다. 그를 총장으로 선출한 교직원들은 “목표가 뚜렷하고, 신뢰할 수 있어 교수들 연구와 학생들의 장학혜택에 도움이 될 것이 확실” 해 선택 했다고 했다. 그런 기대에 어긋남 없이 2006년 까지 5년간 열정적인 활동을 펼쳤다. 충북대를 지방대학의 한계를 뛰어넘도록 외국대학과의 학술교류협력과 자매결연을 했다. 29개국 65개 대학과 2개 기구와 협정을 맺어 상호방문과 연구사업 공유를 꾀하는데 성공했다. 외국인 유치 실적은 2003년도에 전국 국·공립대학 중 3위였다.

지방대 혁신역량강화사업(NURI) 전국 1위를 차지했고, 휴대형 진단치료기기 개발센터-IT산학협동연구-지방연구중심대학 선정 등으로 국고 1800억원을 지원받는 쾌거도 이뤘다. 전국 국·공립대총장협의회 11대 회장이 되었고, 충북대 명예교수제도도 마련했다. 지역 거점대학의 위상을 세우는데 진력 했고, 교직원들은 그의 활력 넘치는 학사운영에 박수를 보냈다.

그가 총장직에서 물러나면서 그의 모교인 한양대는 석좌교수로 영입했다. 그리고 한국시설안전공단 6대 이사장 2008~2010년으로 임명 돼 전국 각처에 산재돼 있는 국가시설물들의 안전진단에 팔을 걷었다. 한국시설안전공단 설립이 성수대교 붕괴 후 ‘사후약방문’ 같은 처방으로 생겨났지만 재발 방지엔 큰 몫을 하고 있어 일하는 보람도 컸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세요.

“80이 넘어서면서 건강에 신경을 쓰면서 심신을 여유롭게 하고 있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매우 바쁘게 살아 왔지요.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정원이나 주변조경이 잘 돼 있어 산책하기도 좋고요. 하루 6~7000보 쯤 걸어서 운동량으로는 충분할 것 같아요.”



 

가족관계를 알고 싶은데요.

“결혼한 지 58년이 되는 동갑내기 아내(임양자·81)와 살고 있어요. 아들은 미국 일리노이주에서 회사에 다니고 며느리는 주립대 교수지요. 딸과 사위(변호사)는 서울에 있어서 가끔씩 보지요.”



●이쯤에서 지나온 길을 돌아다보시면?

“퇴임 후 시간이 있으니 자연 지나온 것을 반추하지만, 크게 후회한다거나 아쉽다거나 하는 것들보다는 참 많은 일들을 했구나, 참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구나 라는 생각에 이릅니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내가 남에게 해 준 일 보다는 남들이 나를 위해 해 준 일들이 많잖아요? 그래서 나이가 들어가니 미안하고 부끄럽고 한 생각들 때문에 존재감이 더 작아지는 느낌이 듭니다.”



●고향인 경상도와 이 곳 중 어느 곳이

더 정이 드는 지요.

“제가 살아온 세월 중 청주생활이 절반이 훨씬 넘어서지요. 어린 시절의 그리움이야 고향에 남아 있지만, 많은 일들의 성취가 모두 충청도에서 이뤄졌기에 제 삶의 무늬는 이곳에서 그려지지요. 그동안 만났던 사람들 대부분이 이곳서 맺어졌고 아직 제 주변에 있어서 고맙지요.”



●건설, 토목전문가의 시각으로 4대강 사업은 어떤 것인지요.

“대한민국의 지형적인 특성은 지형이 경사각도가 심해 물을 보존하기가 어렵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댐과 저수지에 물을 담아 쓰려 해도 저수량이 부족하지요. 더구나 나라가 생기고부터 이제껏 물이 고이는 곳에 토사가 함께 쌓여 담수량이 많이 줄어들었지요. 이명박 정부 들어서 토목을 아는 분이니까 이에 대한 대책을 대대적으로 펼친 것이지요. 4대강 일대를 정비해 물길을 트고 저수량을 크게 늘이려는 것인데 일부 학자들이나 환경단체들이 반대하고 나선 것이지요.”



●환경단체들의 논리는 물이 고이면 썩는다는 것이어서 다소 설득력이 있지 않나요?

“그렇지 않아요. 물은 고인다고 썩지 않아요. 비가 온다거나 수중 어패류 등 생식물들로 자정작용을 하지요. 용기에 가둬둔 물과 같이 생각하면 안 됩니다. 물은 많아도 걱정이지만, 마르면 더욱 큰 문제가 되지요. 우리 같은 농경국가가 가장 두려운 것이 무엇인가요. 가뭄이잖아요? 4대강 사업이 거센 반대에 부딪쳐 당초의 운하 조성계획에는 미치지 못했으나 어느 정도 강 유역의 정비와 담수량 조절만 했는데도 최근 몇 년간 큰 가뭄 피해가 없었잖습니까?”



●신 총장께서 2009년도 8월 어느 신문에 쓰신 글을 보니까 4대강 사업이 해양개발로 이어져야한다고 주장 하셨던데요.

“예, 전 지금도 그 생각엔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서해안은 조석간만의 차이가 5~9m로 세계적으로 큰 편입니다. 이 조수의 흐름에서 얻어질 수 있는 청정에너지의 잠재성을 극대화해야 합니다. 해양과 해안개발을 통한 성장 동력은 친환경적인 국토관리와 문화 관광인프라 구축이 조화를 이루면서 자연자원이 효율적 보존을 염두에 두고 추진될 때 시너지 효과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해양은 녹색성장의 핵심으로 바다를 이용한 이산화탄소 저감기술의 개발과 조력, 파력발전 등 청정에너지 개발, 환경 친화적인 식량자원의 개발은 풍요로운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 믿고 있습니다.”



●현재의 상태에서도 해양개발로 이어갈 수 있습니까?

“녹색성장과 환경보호라는 복합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추진되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은 한 차원 높은 4차원의 청정에너지, 문화관광 자원의 보고인 바다로 연결돼야 합니다. 균형 잡힌 해양개발과 보존에 대한 청사진이 제시될 때 하늘과 땅 하천, 그리고 바다가 건강하게 조화돼 삶의 질이 한 단계 도약할 것이라는 것을 저는 굳게 믿습니다. 건설 토목분야를 전문으로 일생을 살아온 입장으로 역대 대통령의 치적으로 돋보이는 사업 중 하나라고 봅니다.”



●해외여행을 많이 하셨지요?

“호주 빼고는 다 다녔습니다. 첫 여행지가 어릴 때 선생님이 깨끗한 도시라고 말해 부러워 했던 파리였는데 역시 깨끗하고 아름답고 음식이 예상 보다 더 좋았던 기억이 납니다. 모든 것들이 놀라운 문명의 선진지다웠습니다. 해외여행 때마다 느끼는 것은 ‘공부 더 해야 겠다’는 결심이었습니다.”



●잊혀 지지 않는 일이나 존경하는 인물은?

“남궁윤, 이상록 선생등과 경부고속전철(KTX)오송역 유치추진운동을 하면서 그 분들의 진정성과 열정 넘치는 고향사랑의 마음에 감동을 받았었지요. 다 고인이 되셨지만, 그 분들 그리워요. 그 때 이춘구 의원의 숨은 공로도 기억에 남고요. 존경하는 인물엔 역시 우리의 가난을 몰아낸 박정희 대통령의 집념과 구국의 신념에 고개가 숙여지지요. 세계 어느나라 대통령보다도 모든 것에서 훌륭한 영웅이었습니다. 제 어머니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분이지요. 가난했지만 ‘언제나 반듯하게 자라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돼라’를 수 없이 뇌이셨어요. 없는 살림에도 절약하시는 면면이 가정교육의 바탕이셨어요. 83세에 돌아 가셨는데, 제가 그 나이에 이르니 그 반듯하셨던 모습이 더욱 크게 다가섭니다.”



●남기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 어느 곳 보다도 좋습니다. 일본이나 미국보다도 대기 질이 좋아 살기 좋은 곳인데다 의료‧ 연금제도가 세계 최고지 않습니까? 그래서 박 대통령이 더욱 존경스럽습니다. 이 지구상에 대한민국 국민처럼 자유롭고 평화스럽고 사회복지혜택이 잘 돼 있는 나라는 많지 않습니다. 질 높은 삶을 보장 받고 있음이 큰 축복이지요. 감사할 따름입니다.”



●만족한 노후를 보내시는 분과의 대담이어서

시종 즐거웠습니다. 고맙습니다.



 

조철호 동양일보 회장·시인
조철호 동양일보 회장·시인

 

■ 조철호 동양일보 회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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