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 시내버스 실내 쾌적하고, 운전기사들 친절에 만족감
청주시내에서는 우암동 일대가 노인들 안전보행에 최고지역

[동양일보]■이규문 체육인은…



△1940년 청주 출생 △청주고·충북대·경희대 대학원 졸 △이학박사 (경희대)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불랜드주립대, 오리건주립대 개원교수 및 교환교수 △한국-미국-일본체육학회원 △충북대 체육학과 교수(1971-2005)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1991-1993) △충청북도 체육회 상임부회장 △대한축구연맹 이사, 대학연식정구연맹 부회장 △충청북도도민대상(체육부문)수상(1998) △한국측정평가위원회 부회장 △저서: <체육해부 생리> <현대생활과 신체활동> 논문 80여 편.



전화를 걸어 “21일 점심 함께 하실 수 있겠느냐”고 했더니, “미안하지만 매주 수요일 점심은 선생님을 모시는 약속이 있어 어렵다”는 대답이 돌아 왔다. ‘그 선생님’이 충북대 체육과 정승용 교수(93)임을 주변 사람들은 다 안다. 이 전 교수의 대학 때 은사이자 선배 교수로, 매주 수요일에 식사대접을 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20년이 훨씬 넘는 청주의 미담사례다. 그 쉽고도 어려운 ‘전설’을 만들어 낸 이규문(李揆文·83·청주시 흥덕구 가경동 대림아파트)교수를 만났다. 21일 오전 10시, 반려伴侶처럼 메고 다니는 검은색 배낭排囊은 그대로였지만, 오랜만에 운동모자를 쓰지 않은 모습이다. 이날 아침 일찍 “오랜만에 저 하고 사진을 찍을 일이 있으니 모자를 쓰지 않고 나오셨으면 한다”는 간곡한 부탁을 받아들였음이 고마웠다.



●1984년도던가요? 대학에 계실 때 충북대학 체육과에 전국에서는 처음으로 ‘평생체육연구소’를 개설하여 소장으로 계시면서 운동을 통한 건강증진의 새로운 틀을 시도 하셨던 기사를 썼던 기억이 납니다. 급증하는 노인문제에 대비해 노인운동 프로그램과 인체의 체력변화 등을 연구해 건강상태를 진단, 이에 따른 처방을 내린다는 연구 내용인데, 노인건강에 대한 심각성을 이미 40년 전에 예견하셨던 것이지요.

“사회적인 현상의 여러 변화 중 가장 두드러진 영역이 노인문제일 것이고, 건강한 노인으로 인생을 마감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은 머뭇거릴 것이 없을 것입니다. 이미 이 문제는 전문기관에서 다양하게 연구하고 있고 그 결과물들이 많이 나오고 있습니다. 다만, 나를 비롯한 노령층들의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갖도록 하려면 언론에서 더 관심을 가져 주는 것이 절실하지요.”



●대학 강단에 계실 때의 일화들이 아직도 많이 전해집니다. 학창시절 농구와 축구선수로 이름을 날리셨지요? 교수시절에 학생선수신분으로 대회에 나가 다른 대학이나 실업팀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 와 곤욕을 치렀다는 것부터….

“다 옛날 얘기지요.(겸연쩍은 표정으로 급히 화제를 돌렸다) 체육교수 생활 35년 동안 한 가지 이룬 성과가 있어요. 크고 작은 대회에서 우리가 패했을 때 우리를 이긴 상대팀이나 선수에게 진정으로 박수를 쳐주는 일이지요. 70년대나 80년대만 해도 패한 쪽에서 이긴 쪽을 향해 야유를 한다거나 끝인사도 하지 않은 채 경기장을 나오는 몰상식한 광경을 흔하게 보아왔잖아요. 그래서 나는 내가 가르치는 학생선수들이나 도체육회 사무처장 시절 도 대표선수들에게 패했어도 승자에게 박수를 보내는 멋진 모습을 갖도록 교육하느라 신경을 썼습니다. 처음엔 좀 힘들었어요. 박수는 건성으로 치고 태도는 진정성이 없어 보이는 경우가 많았지요. 시간이 지나면서 운동을 통해 인성을 키우는 자세를 갖추게 했지요. 경기하는 동안이나 끝나고서 비신사적이라거나 사람 같지 않다는 말을 들으면 운동이나 시합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누누이 교육시켰습니다. 스포츠 자체가 비신사적이며 감정적이고 동물적인 환경이기 때문에 아무렇지도 않게 룰을 어기고 오버플레이를 하는 것을 용기나 용맹스러움으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게임에 임하는 태도가 구도자적인 결심으로 무게중심을 인성함양에 두어야한다는 제 철학을 확고하게 지켜 나간 결과는 만족할 만 했습니다. ‘패배를 인정하고 승자에게 진정으로 박수를 보내는 자세’를 볼 수 있었던 것이야말로 퇴직할 때 더 없이 큰 선물이고 보람이었습니다.”



●선물 말씀이 나오니, 퇴직 선물로 승용차 받으셨지요? 장안의 화제였습니다.

“퇴직한다니까 졸업한 제자들이 이제부터 자유롭게 여행이나 다니라며 외제(포드 토러스) 승용차를 선물했어요. 선물치고는 너무 비싸고 엉뚱한 것이어서 조금 당황했어요. 그러니 어쩌겠어요. 운행을 하는데 힘들었어요. 차가 고급이어서 휘발유도 고급으로 써야하고, 애프터 서비스를 받으려 해도 대전으로 가야하고…선물 받은 차니 누구에게 팔수도 없고, 그야말로 그 선물 모시고 다니느라 고생 많았어요(웃음). 20년 가까이 타고서 폐차처분을 하는데도 얼마나 애를 먹었는지요. 그러나 제자들의 그런 고마운 뜻은 잊지 않고 있지요.”



●뭇 제자들에게 귀감이 되는 정승용 교수님은 어떤 분이셨는지요.

“한마디로 제자 사랑이 특별했던 분이지요. 학비 없는 제자 등록금 대신 내주시는 것은 다반사였고, 심지어 외지로 원정 시합을 가면 청주 가는 기차표 사고 남은 지갑의 모든 돈을 털어 주시며 선수들 회식 시키는데 보태 쓰라고 번번이 신경을 쓰셨어요. 그런 사랑과 배려에 아무리 억센 체육과 제자 놈들이라 해도 어린양처럼 고분고분했어요. 선생님은 특히 한국의 연식정구 보급에 기여하신 1등 공신이시지요. 지금 90이 넘으셨지만 심신이 정정하신 것은 그런 공덕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요즘엔 승용차 없이 다니시지요?

“외제 승용차 처분 이후 대중교통 애용자가 되었습니다. 요즘의 시내버스는 얼마나 쾌적한지 몰라요. 승하차 할 때의 발판도 안전하게 잘돼있고 에어컨이나 난방도 얼마나 좋은지요. 더구나 노인들이 타면 출발과 정지할 때 운전기사들이 특별하게 신경 쓰는 것을 느낍니다. 요금도 싸고, 차내 분위기도 청결하고, 운전기사들이 친절하고…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요. 정 급하면 택시 타면 되는데, 나는 웬만하면 걸으려 노력합니다. 그래서 약속 장소 전에 내려서 운동 삼아 걷고 거리풍경도 눈여겨보지요. 주변에 점점 대중교통 이용자들이 늘어나고 있음을 체감합니다. 노인들이 점차 현명해지는 현상이지요. 승용차를 운행하는 데 따른 위험부담이나 시간적인 여유가 있어 건강도 생각하고 경제적인 부담도 줄이는 등 1석 3조인 셈이지요.”



●언뜻 듣기로 ‘15분 걷기’를 하신다는데…

“아침에 5시쯤 일어나면 주변 산책로에서 15분간 열심히 걷고 들어옵니다. 남들은 1시간이다, 2시간이다 걷는 시간을 많이 잡고 있는데 나는 집중력이 흩어지지 않는 시간에 속보로 걸으면 신체가 충분히 반응하므로 더 이상 시간을 쓰지 않아도 같은 효과를 본다고 봅니다. 집중력이 떨어지면 발목이 삐끗하거나 척추에 무리가 오거나 이상 징후가 오기 쉽지요. 대신 쉬지 않고 매일 습관처럼 훈련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노후엔 모든 신체구조가 오래 긴장하지 못하지요. 무리하면 꼭 탈이 나게 마련 이예요. 그래서 나이든 분들이 산행을 하거나 장시간 운동 하는 것을 피하는 것이 지혜지요.”



●요즘도 해외여행을 자주하시는지요.

“코로나 이후엔 주로 일본을 자주 다닙니다. 갈 적마다 느끼지만, 일본은 노인들을 위한 사회적 배려가 부러울 정도지요. ‘노인 천국’이란 말 사실입니다. 웬만한 도시는 노인들이 걷다가 쉴 수 있도록 길가에 벤치가 마련돼 있는데, 놀라운 것은 노인들이 근육이 빠져 딱딱한 의자에 앉기가 불편한 것을 감안하여 쿠션을 깔아 놓은 것이지요. 식사도 여러 가지 재료로 주먹밥처럼 만들어 싸게 파는 곳이 많아서 길을 가다가 식사를 하기 가 쉽게 되어 있어요. 우리나라처럼 차도와 인도의 구별을 위해 층이 지게 만든 도로가 보기 드물지요. 걷기가 불편한 노인들이 지팡이에 의지해 걷는데 조금 춤이 있어도 장애가 되는 것들은 모두 제거해 놓은 것이 대부분이지요. 청주시내에는 우암동사무소 일대가 비교적 노인들의 보행을 돕기 위해 신경을 쓴 표가 나지요. 우암동 일대엔 커피숍이나 음식점들도 노인들에게 특별히 친절하다는 것이 노년층에선 잘 알려져 있어요. 노령 층이 급격히 늘어나는데도 이에 대해 신경을 쓰지 못한다면 문명사회라 할 수 없지요. 경제적인 복지 못지않게 노인들을 안심시키는 것은 노인들의 행동반경에 불편함이 없도록 세심하게 배려하는 행정적인 관심일 것입니다.”



●대학에 계실 때부터 특별히 노인건강에 대한 관심을 가지셨는데요.

“이제 노인건강은 사회적, 국가적 당면과제가 되었습니다. 예를 하나 들면, 노인들은 자신의 생체리듬을 생각하지 않아요. 여성들은 매달 생리일을 전후로 바이오리듬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남자들은 무관심하지요. 특히 노인이 되면 더 무관심하게 되는데, 이제라도 생체리듬에 따라 운동량을 늘리고 줄이는 등의 관심은 있어야 합니다. 억지로 먹고, 억지로 운동하는 것을 지양해야합니다. 기분이 좋을 때는 좀 더 많이 하고, 기분이 별로일 때는 운동량을 좀 줄이는 것이 좋지요.”



●늘 배낭을 짊어지고 다니시지요?

“노인이 되면 들고 있는 물건을 잃어버리기가 일쑤지요. 그래서 되도록 양 손을 비워두는 것이 좋고, 예기치 않게 넘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넘어지려할 때 양손이 비어있으면 무엇이든 잡거나 짚을 수가 있습니다. 그 때 메고 있는 배낭이 허리를 받쳐줘 척추나 고관절을 보호합니다. 특히 겨울철엔 절대적인 안전 장구가 됩니다. 평소엔 핸드폰, 응급 시에 쓸 수건이나 식수 한 병, 모자와 수첩 등을 넣고 다니면 모든 것이 해결되지요. 간편식 하나만 넣어두어도 허기를 메꿀 수 있습니다. 배낭에 명찰을 꼭 부착하는 것도 분실 시나 신체적인 위해를 입었을 때를 위해 필요하지요.”

 

 

●끝으로, 남은 생애에 대한 설계가 있으시다면?

“노인이 되면 세상과 등지고, 고집이 세지고, 이기적이며, 자칫 왕따가 오히려 편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노인이 될수록 여행을 많이 해야 합니다. 여행을 ‘돌아다니는 독서’라고 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무인도(자기굴레)에서 나와 더불어 사는 방법을 터득해야합니다. 세상 돌아가는 것을 알려주는 신문보기와, 생각의 폭과 깊이를 더해주는 독서와, 어느 사람도 품을 수 있는 어울림이 품위 있는 노인상일 것입니다.. 노인이 될수록 ‘왕따가 아니라 찾아뵙고 싶은 어른’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남은 삶은 더욱 더 넉넉하게 모두를 품는 마음으로 살아가려 노력하렵니다.”



●가족은?

“청주 중앙공원 앞 한복거리에서 작은 한복집을 하는 아내(박명희.78)와 결혼 후 미국에 가서 사는 딸 내외와 손녀가 있어요. 결국 노부부만 사는데 서로가 바빠서 저녁이 되어서나 만납니다.



●바쁜 시간 내 주셔서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노인들을 위한 좋은 말씀 듣도록 하겠습니다.



 

조철호 동양일보 회장·시인
조철호 동양일보 회장·시인

 

■ 조철호 동양일보 회장·시인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