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영어교사-치과의사-시민단체장-건설사대표-대학총장-이사장
전국누비는 라이더로 40년… 이젠 농장지기 상머슴, 자칭 ‘반 자연인’

[동양일보]

■정상길(鄭相吉·79)이사장은…

△1944년 중국 길림성 출생 △청주고·충북대 농화학과, 동 대학원 졸. △조선대 치과대 졸 △명예경영학박사(충북대) △중·고교 영어교사 △정상길치과의원·시민치과의원 원장 △청주신문(주간)발행인 △청주주성대학장 △충북보건과학대총장 △충북스키협회(초대)회장 △충북시민회(초대)회장 △화인종합건설(주)회장 △충북수상스키협회장 △충북산악회장 △문학예술신인문학상 수상 △현)학교법인 주성학원-충북보건과학대학 이사장



세상에 사람들이 넘쳐나도 같은 얼굴 같은 경력을 지닌 사람은 없다. 한 생애를 사는 일이 사람마다 다르고 다양하여 누구는 이름을 남기고, 누구는 기억 밖으로 사라진다. 태어나고 살아가는 삶의 문양紋樣에 따라 ‘사람 값’ 또한 달라진다. 보는 시각과 평가에 따라 그 값은 달라지지만, 인생 80쯤에 이르면 각자의 궤적軌跡이 확연해지므로 누가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가늠케 된다. 그 중 우리의 눈길을 잡는 사람은 ‘한정된 삶을 길게 산 사람’이 아닐까 싶다.



정상길(79·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미원초정로)충북보건과학대 이사장은 1944년 만주 길림성 돈화시에서 태어났다. 두 살 때인 해방 이듬해 아버지와 월남해 청주에서 평생 살아왔고 내년이면 8순에 이른다. 어영부영하다가 80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이력과 경력으로 살아오느라 같은 나이의 남들 보다 치열한 삶을 살았다. 그는 40대 이후의 청주 사람이면 거의 알고 있는 청주시 남문로1가 ‘정치과’ 집의 외아들이다. 그가 청소년이던 시절엔 청주 시내에 상당‧중앙‧민생‧동인치과의원 등 모두 5곳의 치과만 있었기에 아버지(정해붕·1990년 71세로 작고)가 개업한 ‘정치과’와, 치과원장이면서 사냥을 즐기는 재산가인 부친의 내력까지도 잘 알려져 있었다.

그가 대학에 들어가자마자 전국의 대학가에 불길처럼 일었던 ‘한‧일회담반대’ 데모가 이웃한 청주대까지 번져 경찰이 최루탄을 쏴 해산시키는 등 시국이 뒤숭숭한데도 충북대가 조용하자 혼자서 성토문을 학교 게시판에 붙이는 바람에 ‘유기정학’을 당한 ‘관찰대상학생’이었다. 대학을 나와 첫 직장은 충북농촌진흥원 화학실(지방직 공무원)직원이었다. 2년을 해보니 적성이 아니었다. 공주사대 중등교원양성소를 수료하고 영어교사가 돼 황간중‧청주농고‧주성중에서 10년간 교단에 섰다. 아버지가 회갑연을 하시는 자리에서 ‘치과의사가 되기를 눈물을 보이시며 권하시는 바람에’ 1980년 조선대 치과대학에 학사편입을 한다. 불과 2개월 후 광주 5.18민주화 운동이 벌어지는 현장을 보게 된다. 치과대학에 다니는 4년간 하루 4시간 이상을 자 본 적 없고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해 치의예과 78명 중 2등으로 장학금을 받기도 했다.

1984년 졸업 후 곧바로 청주시내 구 고속버스 터미널 부근에 ‘정상길치과’를 개업하고, 이어 청주시 운천동에 건물을 짓고 자리를 옮겨 ‘시민치과’ 로 간판을 바꿔 22년간 치과의사를 했다. 그는 치과를 운영하면서도 3년간 ‘청주신문’이라는 주간지 대표이사도 맡았고, 1989년엔 충북시민회를 창립, 초대 회장이 된다. 현 충북참여자치시민연대의 전신인 충북시민회는 발기인 20명으로 결성되었는데, 이는 전국에서 첫 시민단체로 발족되자마자 고속전철 오송유치권을 결정케 하는 등 성과를 보여 시민들의 관심을 모았다. 그는 1999년 화인종합건설㈜대표이사 회장, 2005년 리드종합건설㈜대표이사 회장을 맡아 주택건설 사업에도 손을 댔다.

충북대 대학원 농화학과 식품가공 전공 석사인 그는 건설업에 손을 대면서 청주대대학원 건설경영인과정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국가정책과정을 수료하기도 했는데 2005년 5월, 주성대학 학장이 된다.(가족이 주성대학의 학교법인인 주성학원을 인수하면서 그는 이사가 되었다) 2006년, 충북대는 그에게 명예경영학 박사학위를 수여한다. 학장 임기가 끝나자 2011년부터 2021년까지 교명이 바뀐 충북보건과학대 총장, 명예총장을 역임하고 현재 이사장으로 있다.

그는 일주일에 대학 이사장실에 나가는 월, 화, 수요일을 빼고는 언제나 청주 내수읍에서 미원으로 넘어가는 ‘이티봉’ 아래 (미원면 미원초정로 979) ‘홍송산원’(잣나무농원)에서 ‘상머슴’처럼 일한다. 부친이 물려준 1만2000평의 농장인데 가족묘가 있고, 우람한 잣나무 300주가 하늘을 덮는 임야 8000평과 전답 4000평이 잇닿아 있다. 땅콩 고구마 감자 옥수수 고추 토마토 참깨 들깨 벼…등 농사지을 수 있는 작물은 모두 있다. 무농약 유기농법으로 짓고 있어 벌레와 짐승(멧돼지와 고라니 등)과 주인이 3분의 1씩 공평하게(?) 나눠 먹는단다. 농장을 경영하면서 거의 모든 농사를 혼자 짓다보니 사고를 당해 응급실에 실려 간 적도 다섯 차례나 된다. 벌에 쏘여서, 나무를 자르다 낙상해서, 경운기 사고로, 모터톱 사용하다가, 바위를 옮기려다…혼자서 위기를 벗어날 수가 없어 119신세를 지지 않을 수 없었다. 15년 째 매달리는 농사는 녹록지 않았다. 힘들게 일을 하고 농장에 손수 만들어 놓은 3평짜리 온돌방에서 한숨을 자고나면 몸과 마음이 거뜬해지는 그 쾌감은 경험해 보지 않은 이들은 모를 것이란다.

그도 부친처럼 한 때 사냥을 즐겼다. 그러나 수렵제한이 엄격해 지자 다른 레저 스포츠 쪽으로 눈을 돌렸다. 충북스키협회를 창립했고 충북수상스키협회, 충북산악회, 충북승마협회 등 신생경기단체의 회장이나 고문직을 역임했다. 충북적십자사청년봉사회장 부터 상임위원, 현재는 대한적십자사 전국대의원이다. 자격‧면허증도 다양하다. 치과의사면허‧중등1급정교사(영어과)자격증‧패러글라이딩자격증‧스쿠버다이빙자격증‧수렵면허‧건설기계조종사(3t미만굴착기)면허증 등. 그가 40년 째 즐기는 취미는 자전거 라이딩. 그동안 타던 자전거만도 7대, 펑크수리 등도 능란하다. 골프도 월 4회쯤 필드에 나간다. 평일이고 주말이고 구별이 없이 할 일이 줄을 서 있다. 유한한 인생 종반부에 들어섰다고 생각하니 하고 싶은 일과, 해야 될 일들이 너무나 많단다.

몇 차례 만에 겨우 전화통화가 됐다. 예상대로 농장에서 일을 하느라 받지 못했단다. 지난 13일부터 연일 쏟아 부은 물 폭탄에 손 쓸 일이 많아졌다고 했다. 혼자 복구작업을 하느냐니까 잡념도 없애고 운동도 할 겸 땀을 흘려본단다. 주말에 사무실에서 만나자니까 작업복이나 갈아입고 오겠다며 시간을 냈다.



●일주일 중 어느 요일에 이사장실로 출근하는지요.

“평소엔 월, 화, 수요일 정도 대학에 갔는데, 근래 들어 대학들이 비상상태니까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농장엔 주말만 겨우 가게 돼 일거리가 밀려 좀 힘이 들지요.”



●수도권역 이외의 모든 대학들이 어려운듯한데 회생방안은 나올까요?

“이미 오래전부터 예고된 위기잖아요? 학령인구의 감소에 따른 정원감축의 후폭풍이어서 지역의 대학들이, 특히나 전문대학들이 직격탄을 맞는 것이지요. 입학생들은 줄어드는데 교수나 직원들의 수를 더 이상 줄이기도 한계에 닿았지요. 대학이라는 작지 않은 조직들의 수지균형이 맞지 않으니 너 나 없이 고민에 빠져 있어요. 충북보건과학대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들어 젊은 총장이 다시 취임하면서 머리를 짜내 여러 방안을 모색 중이지요. 뾰족한 수는 없겠으나 소속 교직원들이 머리를 맞대면 대학의 백년대계를 위한 방안이 나오지 않겠어요?”



●‘위기가 기회’라는 말도 있습니다. 참, 시인으로 등단한 것이 2008년이던가요? 작품은 좀 쓰십니까?

“<문학예술>지 신인문학상으로 등단은 했지만, 작품은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를 써야겠다는 신념은 있어 꾸준히 시를 익히고는 있어요. 특히 매일 동양일보가 2면 머리에 싣는 ‘아침을 여는 시’들이 좋아서 노트에 빠짐없이 옮겨 써보고 있지요. 많은 공부가 되는데다 하루를 시향詩香과 더불어 시작한다는 의미도 있고 정서적으로 큰 도움이 됩니다.”



●좌우명은?

“젊은 시절부터 이제까지 ‘주어진 환경에 최선을 다하자’입니다.”



●평일에 대학에 가고, 주말에 농장에 가면 라이딩은 언제 합니까?

“라이딩을 하는 날을 특정하지는 않습니다. 어느 날이고 4~5시간 틈을 낼 수 있겠다 싶으면 지체 없이 자전거를 탑니다. 지난 6월부터는 국토종주를 하고 있습니다. 대청호-세종보-공주보를 거쳐 군산까지 가는 금강 하구둑을 가는데, 한 번에 40㎞쯤이 무리도 없고 좋습니다. 다녀보면서 느끼는 것은 우리나라는 어디를 가나 자전거길이 잘 돼 있어 고맙지요. 조 회장과 58년 전 대학 2학년 때 함께 자전거 전국일주 무전여행 했을 때는 온통 비포장 자갈길이어서 고생을 많이 했었지만, 지금은 그 때에 비하면 천국의 길을 다니는 기분이 듭니다.”

●그 때, 강원도와 경북 일대에선 남파간첩으로 오인돼 무장경찰까지 출동하는 소동도 빚었었지요. 가난한 시대여서 밥 얻어먹으며 다니느라 꽤나 고생한 기억이 잊혀 지지 않아요.

“돌이켜 보면 반세기만에 우리는 상상도 못한 천국 같은 세상을 살고 있다는 생각에 눈물이 날만큼 감동하게 됩니다. 아마도 지금의 젊은이들은 불과 반세기 전의 우리 생활상을 상상도 못할 것입니다. 하물며 ‘무전여행’으로라도 여행의 욕구를 채우려 무일푼으로 집을 나서는 고등학생-대학생들이 부지기 수였고, 그들이 굶기를 밥 먹듯 하면서 조국의 산하를 톺아보려 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격세지감이 느껴집니다.”



●얼마 전 세종시로 이사 했지요? 가족들은?

“몇 해 전, 세종시내 아파트로 갔어요. 가족은 아내(박영자·74)와 1남(인훈·43·충북보건과학대 교수)2녀(지혜·49·저술가, 지인·47·세종 거주)인데 아이들은 따로 살지요. 나는 일주일에 절반 쯤 농장에 있어 내 주소는 미원면에 있지요. 흙과 숲이 좋아 반 자연인처럼 살아요. 생활이 좀 번거롭기는 해도 살림집이 있는 세종시가 자전거 타기의 허브 같은 곳이어서 여러모로 편리합니다. 특히 시간을 쪼개 쓰기가 좋은 곳이지요.”



●남은 생애에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시간이 주어진다면, 맘껏 책을 읽고 그림을 그렸으면 합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그리기에 소질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림을 할 기회가 없었어요. 좋은 그림을 볼 때마다 당장이라도 붓을 들고 싶더라고요. 이제노후에 들면서 더욱 절실하게 느껴지는 것은 ‘노인복지 타운’입니다. 노인을 위한 갖가지 복지정책이 복에 겨울만큼 많은 것 같은데, 실제 노인들이 편안하게 들어가서 취미나 소질에 맞는 일을 하며 조용히 인생을 마무리할 수 있는 곳은 아직 없는 것 같습니다. 정부나 지자체가 이런 타운을 민자 유치도 하여 연차계획에 따라 점차 늘려나간다면 장수시대에 대비한 대안이 아닐까합니다. 가난한 나라를 세계적인 경제 대국으로 이끈 고급 두뇌들이 노인이 됐다 하여 요양원이나 주간보호센터 등에서 ‘세월 죽이기’를 하고 있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겠습니까?”



●개인이나 대학에서 지방정부와 손을 잡고 사설 노인복지타운 설립도 할 때가 되었지 않았는지요. 인구가 줄어든다하여 신생아 출산에만 목숨을 걸 일이 아니라, 노인들이 건강하게 오래살 수 있도록 배려하고 정책을 입안하는 일도 중요하다는 생각에 이릅니다. 80평생을 남다르게 열심히 소신껏 살아오셨음에 박수를 보냅니다. 오랜시간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조철호 시인·동양일보 회장
조철호 시인·동양일보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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