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옥수 유자차스튜디오·원더러스트 대표

 

 

일상이 기록이 되고 기록이 예술이 되는 특별한 공간, 라이트하우스

이옥수 유자차스튜디오·원더러스트 대표
이옥수 유자차스튜디오·원더러스트 대표

[동양일보]아날로그 시대가 저물면서 점점 더 글을 쓰지 않고, 책을 읽지 않는 시대가 되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가늠하는 것보다 더 자주 더 많이 글을 쓴다. 그것은 친구에게 보내는 문자 메시지이기도 하고,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나와 친구 관계를 맺고 있는 이들에게 공개하는 SNS의 포스트이기도 하다. 누군가는 그 기록이 너무 일상적인 것 아니냐고 할 수 있지만 우리의 삶은 그 평범하고 소소한 일상의 집합이다.

방학이면 친구에게 편지를 써서 우표를 붙여 소식과 사진을 보냈고, 40자를 꽉꽉 채워 문자 메시지를 보낸 어린 시절을 돌이켜보면 당시의 기록이란 혼자 쓰고 혼자 보는 일기장에만 남아있었다. 지금처럼 매일 온오프라인을 활용하여 자신을 일상을 기록하고 더 나아가 생각이나 취향을 공유하는 시대가 오리라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에 위치한 동네기록관 ‘라이트하우스(Write house)’는 바로 이 부분에 초점을 맞춰 주민들이 일상의 기록을 조금 더 뾰족하게 만들어 예술적으로 풀어내기 위해 만든 공간이다. 라이트하우스는 무엇보다 1980년대에 지어진 운천동의 주택가에 있어 생활권과 밀접하게 닿아있다.

이곳에서 어릴 때부터 습관처럼 써온 일기와 오래된 앨범 속에 끼워진 사진 그리고 여행을 떠나면 한 편씩 쓰곤 했던 시 등 모두가 일상 속에서 탄생시킨 기록이고 그 기록을 개인의 기록으로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함께 공유하고자 하였다. 그 덕분에 라이트하우스는 지난 2020년부터 운천동 동네기록관으로 선정되어 주민들이 스스로 일상을 기록하고 이 기록을 문화예술적으로 풀어내는 방법을 공유하고 있다.

 

라이트하우스에 모이는 사람들은 자신을 들여다보고 그것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풀어낸다. 그것은 에세이, 여행기, 시, 소설, 동화, 사진, 그림 등으로 표현되었다. 동네기록관으로 선정되어 처음 진행한 프로그램은 신혼앨범을 만드는 <신혼을 여행하다>였다. 요즘에는 결혼을 준비하여 스튜디오에서 사진을 촬영할 뿐 아니라 스마트폰을 활용해 누구나 쉽게 사진을 찍는다. 그러나 과거에는 예식장에서 찍은 사진 몇 장이 결혼과 신혼을 추억할 전부였다. 심지어 그 사진은 낡은 앨범 속에서 묻혀있다. 동네의 어르신들과 그 사진과 기록을 꺼내서 신혼 시절로의 추억을 여행하며 사진을 디지털화하고 새로운 사진집을 펴내는 작업을 하였다. 약혼식과 결혼식부터, 택시기사가 투어를 시켜주었다던 제주 신혼여행, 결혼하고 처음으로 산 차, 첫 아이 등 신혼시절의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평범해 보일 수 있는 일상을 기록하는 작업은 자기화이다. 물론 이러한 작업과정에서 누군가는 동네 출신의 유명인이나 문화자원을 다루지 않고 개인에 초점을 맞춘 것에 의문과 우려를 표했다. 그러나 동네사람들과 기록을 매개로 창작활동을 하는 과정을 통하여 삶을 더 밀도 있게 들여다보게 되었다.

이것을 시작으로 이곳에서 지난 해에만 50권이 넘는 책이 출판되었다. 가장 어린 작가는 초등학교 1학년으로 청주로 이사와서 청주 곳곳을 여행하여 받은 영감을 토대로 동화를 썼고, 몇 명의 작가는 정식으로 출판 계약을 체결하여 인세를 받는 작가가 되었다. 동생을 향한 애틋한 마음을 담은 자서전, 20대 초반에 무작정 떠났던 여행기를 40대가 되어 다시 정리하여 펴낸 여행기 등 일상을 기록을 중심으로 예술로 만들고 있다.

문을 닫은 단술을 빚던 공간에 문을 연 라이트하우스는 이제 글쓰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동네기록관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빚어가는 공간으로 성장하고 있다. 운천동 동네기록관 라이트하우스는 오늘도 자신을 들여다보며 예술적인 감각으로 소통하는 이들을 위해 불을 켜두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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