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하니 마실가자’에서 기록한 용암동 마실 지도.
가을동화잔치에 참여한 어린이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동양일보 유영선 기자]기록하는 마을, 책 장을 넘기면 반가운 이웃들이

초롱이네도서관은 지난 4년간 10권의 마을기록집과 22편의 기록영상을 제작하여, 도서관 내 동네기록관 공간에 비치하고 있다. 유튜브 ‘초롱이네도서관 동네기록관’에 영상을 업로드하고있어 상시 살펴볼 수도 있다. 영상에는 낯익은 사람들이 잔뜩 등장하는데 한 편씩 열어보다 보면 서로 연결되어 마을이라는 퍼즐을 맞춰나가는 것 같다.

동네기록관을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우리가 모르고 지나친 역사적 의미가 있는 문화유산이 있는지, 특별한 인물을 이웃에 두고 못 알아본 것은 아닌지 여기저기 물어보고 정보를 찾았다. 용암동 지명의 유래가 된 용바위 흔적 같은 것을 누구에게 알리고 싶었던 것일까. 사람을 기록하자. 위인이나 타인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을 기록하자는 생각에 이르기까지 돌고 돌아왔다. 이웃에 사는 사람과 매일 마주하는 골목, 공원, 시장, 복지관, 도서관에 차곡차곡 우리의 시간이 쌓여 있었고, 오랜 찻집에서 언젠가 만났더랬다. 코로나로 잠시 멈추어 있던 시기에 아이러니하게도 ‘마을’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리 기록 01-가을동화잔치>기록집과 기록영상에 “가을동화잔치를 하지 못해 너무 아쉬워요. 내년에 꼭 다시 만나요~”라며 손을 흔드는 꼬마의 모습이 담겨있다. 동화잔치는 다음 해에도 이어지지 못했고, 가족 책축제는 이제 기약하기 어려워졌다. 다시 못 올 축제의 시간을 인터뷰와 사진자료와 영상에 담아두기를 참 잘했다. 그때를 기억하고 사랑했던 사람들, 아쉬워하는 우리들의 표정과 마음이 기록으로 남았고, 언제든 떠올릴 수 있고 손에 잡히는 기억이 되었다.

<우리기록 07-심심해서 그렸어>편은 도서관에 봉사 오시는 마을 어르신들의 ‘그림일기’로 진행되었다. 처음에는 “우리가 글은 무슨 글을 써” “아휴, 그림은 또 어떻게 그리냐구”라며 손사래를 치셨다. 어렵사리 도전한 활동이다. “무심천을 친구랑 걷다가 쉬었다가 가는데, 갈대가 막 흔들렸다. 바람에. 그 모습이 꼭 나 같다”라는 글에는 바람에 허리는 잔뜩 굽히고 있는 갈대를 그렸고, “건영아파트 담벽에 자라고 있다. 처음 자세히 보았다.”라는 글에는 강아지풀이 춤추는 듯한 모습이 그려졌다. 어르신들의 소박한 속마음을 마주하며 깜짝 놀랐는데,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린 당사자도 놀랐다. “내가 이렇게 표현할 거라고는 생각 안 해봤거든, 한 번도. 무얼 그릴지 생각하며 가만히 앉아 있는 것도 좋았어요”. 연말에 가족들을 초청해서 전시회를 열었는데, 아들과 며느리가 어머니 그림일기를 보며 눈물을 뚝뚝 떨어뜨려 다 같이 먹먹해 했다.

<우리기록 08-심심하니 마실가자>는 전년도 ‘심심해서 그렸어’의 마을편이다. 어르신들과 기록활동가들이 육거리시장과 중흥공원과 무심천을 우르르 몰려다녔다. 앞서거니 뒤서거니하며 나눈 이야기를 기록하고 그 시간의 모습을 사진과 영상에 담았다. 어느 날은 도서관 오가는 길에 쉬었다 가는 중흥공원의 벤치에 다 같이 앉아서 꽃이랑 하늘을 보았고, 어느 날은 모두가 아는 육거리시장 꿀벌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용암동의 미술창작스튜디오에는 처음으로 문열고 들어가 미술작품을 관람했다. “심심 마실 안했으면 손주 유모차 끌고 그냥 왔다갔다 하고 있겠지.” 마을과 사람을 기록하는 일에 관심을 두고 경험을 쌓은 기록활동가들이 생겨난 것은 큰 성과다. 기록하는 마을이라니, 마을의 업력이 상승했다.

원고를 쓰느라 다시 돌아보니, 기록활동이 사람들을 참 가깝게 해주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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