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정 대표
사라져가는 기록 남기는 동네기록관

박수정 대표
박수정 대표

 

 

[동양일보 ]금천동 동네기록관 문화공간 정스다방의 현관문에 달아놓은 풍경 소리가 천천히 울린다. 허리가 구부정한 어르신이 조심스럽게 들어오시며 쌍화차를 주문하신다. 수줍은 얼굴에 주름진 미소를 보자 곧 금천 순대 사장님이신 걸 알아보았다.

2020년 금천동 기록을 시작할 때 오랜 가게 금천 순대가 금천동 구종점에 있었다. 1992년 오픈한 금천 순대는 노동에 지친 동네 사람들의 마실방이었다. 기록할 당시 30여년 그 자리를 지켜오신 사장님의 모습은 다리는 불편하고 허리는 굽어서 몸이 매우 쇠약해지신 상태셨다. 그래도 어디로 갈 줄도 모르고 그 자리를 지켰던 것은 오랫동안 찾아준 단골이 있어서 계속 장사를 하셨다며 환한 미소로 이야기를 이어 나가셨던 기억이다.

그러나 2023년 3월 건물의 주인이 바뀌면서 본의 아니게 가게를 접게 되었다고 한다. 폐업 당일에 금천동 동네기록관에는 들려 알려 주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찾아오셨다고 한다. 쌍화탕 한잔을 대접하며 그동안 수고하셨다고 두 손 꼭 잡아 드리자 입가에는 미소를 지으셨으나 눈에는 눈물이 맺힌다. 만감이 교차 되는 순간이었다. 이제 금천동 금천순대는 동네기록관 기록집과 영상에서만 볼 수 있는 추억의 한 자락이 되었다. 금천동 동네기록관은 이런 곳이다. 이미 사라진 것들보다는 사라져 가는 것들이 아쉬워서 남겨놓으려고 애쓰는 마음이 동네 기록에 시작이 되었다.
 

 

낡은 주택을 문화공간으로



2020년 오픈한 금천동 동네기록관은 금천동 구종점 골목 사이에 위치한다. 금천동은 30년 전만 해도 50% 이상이 논과 밭이었고 금천동 구종점을 중심으로 주택과 작은 상가들이 밀집되어있었다. 1994년 명암천이 복개 공사를 하며 본격적으로 재개발이 시작되었고 금천동 인구가 증가하기 시작하며 도심지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런 과정 중에 필자가 어린 시절부터 자라온 추억의 장소들이 어느새 사라지고 변해가는 모습이 안타까운 마음에 구도심 골목에 50년 정도 된 오랜 주택을 구입하게 되었다.

손수 리모델링을 하다보니 동네에 재개발로 버려지거나 부서지는 것들을 가져와서 테이블과 소품으로 사용하여 공간을 구성해 나갈 수 있었다. 버려진 오래된 생활용품들을 주어 오고 부서지는 집들을 기웃거리고 그런 것들을 재사용하는 모습을 본 동네 분들이 시집올 때 쓰시던 자개장, 쌀 저울, 100년 이상 된 함지박 등을 기증해주시기도 했다. 오랜 물건들은 쌓여 자연스럽게 전시 형태가 되어가고 있었고 그래서 2020년부터 청주시 문화 산업 진흥재단과의 동네기록관 일의 시작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2020년 시작 당시 코로나 팬데믹으로 기록의 시작이 암담할 때 눈에 든 것은 어린 시절부터 드나들던 오랜 가게였다. 무조건 필기도구와 사진기를 들고 20년 이상 된 가게들을 찾아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오던 이들도 드나들지 않던 코로나 시기에 골목 상가에 들어와서 기록을 하겠다는 발걸음을 반기는 상인들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용감하게 문을 두드리며 20년 이상 된 가게 17개소를 찾아냈고 사진과 영상과 지도로 남기고 오랜 가게 현판도 부착하면서 첫 번째 기록물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중 서두에 금천순대 가게가 있었고 2024년 현재 사라진 가게도 적지 않아 기록의 소중함을 체험적으로 익히며 현재 금천동 동네기록관의 기록의 씨앗은 움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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