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역사 이래 최고의, 최연소, 동양인 플루티스트’ 영예
“‘성공’의 잣대가 아닌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잣대가 더 중요해”
27일 청주예당서 외할아버지 이상덕 선생 추모음악회 출연차 귀국
[동양일보 박현진 기자]1983년 서울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성모초를 졸업했다. 어렸을 때부터 음악 전공자가 많았던 외갓집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음악과 가까워졌다. 하지만 처음부터 플루트를 시작한 건 아니라고 했다.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취미로 했지만 초등학교 3학년 때 음악수업 숙제로 리코더를 불다가 관악기의 매력에 푹 빠졌다. 그때부터 부모님께 ‘뗑깡’을 부려 플루트를 시작했고 그때 처음 음악가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그렇게 꿈을 키운 소녀는 이제, ‘처음’ 또는 ‘유일한’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세계적인 플루티스트가 됐다.
‘솔리스트로 세계적 커리어를 쌓은 최초이자 유일한 여성 플루티스트’, ‘영국 신피니뮤직이 선정한 역대 최연소, 최고의 플루티스트', ‘미국의 저명한 플루트 잡지 ‘Flute Talk’ 표지모델을 장식한 첫 한국인’, ‘112년 전통의 빈 심포니의 수석 플루티스트로 임명된 처음이자 유일한 동양인 목관악기 수석’ 등, 타이틀만으로도 인지도를 짐작할 수 있는 사람.
그는 바로, 서울예고 입학 후 도미, 미국 커티스음대와 줄리어드 음대 대학원 조기입학, 조기졸업으로 일찌감치 천재성을 인정받은 플루티스트 재스민 최, 한국 이름 최나경(40)씨다.
“어렸을 때는 책 읽는 걸 좋아해서 별명이 책벌레인 적도 있었는데, 요즘은 일정이 빡빡해서 그런지 시간만 나면 일단 잠부터 많이 자는 편”이라며 수줍게 웃는 모습이 오래 만나온 지인처럼 친근하기까지 하다.
여리디여린 그 어디에서 그렇게 폭발적인 연주력과 혁신적인 프로젝트, 쉼 없는 공연을 소화해 내는 열정이 숨어 있을까.
이유는 하나다.
그는 “행복하게 사는 것이 매일의 목표”라며 “이것을 가장 우선순위에 놓으니 라이프스타일이나 삶에서 주어지는 굵직한 선택의 결과가 일반 사람들과는 많이 다르다. 세상이 말하는 성공의 잣대보다는 내가 생각하는 행복의 잣대가 더 중요한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한다”고 강조한다.
일례로 “팬데믹 때는 영상편집이나 인터뷰, 기고 등이 취미였고 당시엔 꽤 즐겁게 그 일을 했다”면서도 “하지만 팬데믹이 지나가고 다시 연주가 전부인 삶으로 돌아오고 나니 역시 음악가는 음악을 하는 삶 그대로가 가장 즐겁더라”는 고백이다.
음악교육과 플루트 확장에도 헌신적인 그는 유튜브 라이브를 비롯해 플루트 초보자를 위한 교본과 연주곡집 발간, 기존 플루트 케이스의 단점을 보완한 ‘재스민최 플루트케이스’ 디자인 출시 등 열정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일’이 아닌 ‘행복’이라며 천상 음악가임을 자처하는 최 플루티스트.
현재 오스트리아 브레겐츠에 거주하며 시간 날 때 인근의 보덴제 호숫가에서 자전거를 즐겨 탄다는 그는 유럽과 미국, 아시아를 오가며 매년 90회 이상의 공연을 소화하는 ‘빡빡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오는 27일 청주예술의전당 대공연장에서 열리는 ‘충북에 음악의 씨앗을 뿌린 선각자’ 외할아버지 이상덕 선생 추모음악회 출연을 위해 16일 귀국했다.
어렸을 때 외할아버지가 지휘하는 공연에 자주 갔었다는 그는 “내가 플루트를 처음 시작했을 때도 가장 많이 응원해 주셨다"며 "첫 협연을 했을 때도 기뻐하시며 공연을 끝까지 지켜봐 주셨다”고 회상했다.
이어 “내가 음악을 하게 된 것도 결국 할아버지의 영향이 가장 컸다"며 "생전에 들려드리지 못했지만, 늘 좋아하셨던 멘델스존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할아버지께 헌정할 수 있게 돼 진심으로 영광”이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할아버지의 삶과 사랑이 그의 가슴 속에 살아있는 한, 전 세계를 향한 그의 플루트 연주는 계속될 것이다. 박현진 문화전문기자 artcb@dy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