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안상수(安尙秀. 1952~)는 꿈을 꾸는 사람이다. 아니 꿈을 꾼다기보다 꿈을 채워가는 사람이다. 그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의 나이가 얼마인지, 어떤 일을 해왔는지, 그가 지닌 과거의 사회적인 경력이나 권위는 모두 잊고 그가 꿈꾸는 세계에 대해 저절로 빠져들게 된다.

안상수는 그런 사람이다. 같은 공간에 있지만 생각에 차이가 있는 사람. 같은 쪽을 보고 있지만 시선의 길이가 다른 사람. 새로운 얘기에 눈을 반짝이고, 일상의 기록을 작품으로 만든다. 그가 만나는 사람들마다 한쪽 눈을 가린 사진을 찍는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어느핸가 잡지 표지 사진을 찍기 위해 장난삼아 시작한 것이라는데, 이제는 ‘one eye 프로젝트’로 그의 블로그에서 계속되고 있다.

독특한 점은 그 뿐이 아니다. 대학교수직을 떠나면서 양복을 벗은 뒤 이제는 트레이드 마크가 된 점프수트에 빨간 비니 모자를 쓰고 세계 어디든 간다. 강의 때나 작업 때나 심지어 국제행사에도 그 복장으로 참여해 연설을 하는, 조금은 튀는 사람. 그래서 만나자마자 궁금증으로 질문을 하게 만든다.

 

작품 앞에서
작품 앞에서

 

대안 대학교 ‘배곳’ 설립



“그냥 ‘날개’라고 부르세요.” 교수님으로 부를까 선생님으로 부를까 호칭을 망설이는데 스스럼없이 건네온 말이다. 그래서 ‘날개님’이라고 부르자 “‘님’자는 빼고요”라고 답이 돌아온다.

그는 스스로를 날개라고 했다. 학생들(그는 배우미라고 말했다)을 날 수 있게 도와주는 사람, 즉 학교의 교장이다. 그러고 보니 그가 머무는 곳도 교장실이 아니라 ‘날개집’이다.

그는 2012년 환갑이 되던 나이에 22년간 재직하던 홍익대 교수직을 내려놓고 파주출판도시에 독립디자인 학교 ‘파티(PaTI,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을 세웠다. 독립디자인학교란 일종의 대안 대학교이다. 국가가 인정하는 공식적인 학위를 주지 않는 학교라는 의미이다. ‘무소유’와 ‘무경쟁’, ‘무권위’로 운영하는 이곳의 학사과정은 일반대학처럼 4년제이고 대학원은 2년제이다. 그는 학교를 ‘배곳’, 즉 배우는 곳이라고 했다. 대학원은 더 배우니까 ‘더배곳’이다.

“배곳은 주시경 선생님이 만든 말이에요. 그 분이 운영하던 조선어강습원을 돌아가시던 해 ‘한글배곧’이라고 이름을 바꿨어요. 그때는 받침을 디귿으로 썼지요. 학교는 ‘가르치는 곳’ 보다 ‘배우는 곳’이라는 뜻이 더 크다고 봅니다. 배우러 가는 곳. 저희는 ‘파티’를 ‘멋짓 배곳’이라 하지요. 디자인을 우리말로 하면 ‘멋지음, 멋짓’이거든요. 학교는 배곳, 학생들은 배우미죠. 학부과정은 크다는 뜻 ‘한’을 붙여 ‘한배곳’이라 합니다.”

이곳에는 현재 85명의 배우미(학생)가 있다. 외국에서 온 교환 학생들도 꽤 있다고 했다. 어떤 학생들이 이곳을 오는지 궁금했다.

“용기있는 이들이 온다고 봐요. 특히 부모님의 용기있는 동의가 필요하죠. 2년 전 파티는 영국에서 나오는 유명 잡지 모노클(Monocle)로부터 세계에서 ‘가장 독특한 디자인학교’(Most Unique Design School) 상을 받았어요. 모노클은 세계적인 디자인 및 문화예술 경영 전문가들이 보는 전문잡지인데 파티의 수상이 화제가 되었지요.”

배곳 사랑에 대한 그의 얘기는 끝이 없다.

 

트레이드 마크인 점프수트와 빨간 비니
트레이드 마크인 점프수트와 빨간 비니

 

네모꼴 벗어난 ‘안상수 체’ 개발



안상수는 1952년 충주에서 태어났다. 충주중학교를 졸업한 뒤 청주고등학교에 입학했지만 고등학교 시절은 답답했다. 자율성이 없는 규율과 몰입식 수업으로 학교생활은 오로지 명문대 입시를 위한 준비과정 같았다.

“제가 모범생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1학년 때 커닝을 한 일이 있어요. 그 일로 처벌을 받았지요. 고교 시절 지워지지 않는 강렬한 기억입니다. 이상하죠? 좋은 기억보다 부끄러운 일들이 훨씬 더 선명하게 남아 있으니까요.”그는 작은 일탈로 동아극장(현 상당공원 위치)에 가서 영화를 보거나 수업 외 시간에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견디었다. 그래도 미술반 활동은 즐거운 추억이 많았다. 중학교 때 미술반 활동을 해서 고등학교 때도 자연스럽게 미술반에 들었다. 미술이라면 회화만 있는 것으로 알던 시절, 그는 진로 고민을 하다가 선배들로부터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홍익대 미대 시각디자인과로 진로를 결정했다. 당시는 응용미술과였다. 대학에 이어 대학원도 같은 과를 졸업하고, ‘이상(李箱) 시에 대한 타이포그라피 연구’로 한양대서 박사 학위를, 영국 킹스턴대에서 디자인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안상수’라는 이름이 브랜드가 된 것은 1985년 ‘안상수 체’를 개발하면서부터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을 바탕으로 초성 중성 종성을 배열해 네모의 틀을 깬 획기적인 글꼴이었다. 한글은 네모꼴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린 ‘안상수 체’는 파격적이고 신선했으며 타이포그래퍼서의 그의 이름을 알렸다. 편집과 서체 디자인이라는 개념이 없던 시기, 많은 사람들이 그의 글꼴을 사랑했다. (청주의 ‘뒷목문학’도 안상수체 글씨로 제자를 쓰고 있다.)

 

'모노클'로부터 받은 디자인어워드
'모노클'로부터 받은 디자인어워드

 

세계 최고 권위 구텐베르크 상 수상



“1985년 출판과 편집디자인, 그래픽, 타이포그래피를 다루는 안그라픽스를 설립하고 스튜디오를 열었지요. 뜻있고 재미있는 작업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다가 6년 후에 대표직을 내려놓고 모교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했어요.”

그는 홍익대 교수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지속적으로 실험적인 글꼴들을 개발한다. 첫닿자, 홀자, 받침을 풀어쓴 ‘이상체’를 개발한 뒤 ‘미르체’, ‘마노체’ 등을 연이어 개발했다. 이 외에도 글꼴연구소 ‘AG타이포그라피연구소’를 통해 아모레퍼시픽 그룹의 ‘아리따체’ 개발을 총괄했고, 국토해양부의 ‘한길체’, 조계종의 ‘석보체’, 신세계 그룹의 ‘신세계체’ 등을 개발했으며, 네이버와 함께 디지털 시대에 맞는 글꼴 ‘마루부리체’를 개발했다.

이런 공로로 독일 라이프치히시가 수여하는 세계 최고 권위의 상 구텐베르크상(2007)과, 홍콩디자인센터가 주관한 DFA(Design For ASIA Award)에서 평생공로상(2016)을 받았다.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과 패럴림픽의 개막식·폐막식에서는 입장하는 나라의 이름을 소개하는 글꼴로 안상수체가 사용되었다.

이러한 한글 타이포그래피 작업으로 매진하게 된 계기에 대해 그는 대학 학보사 기자로 학보를 만들 때의 경험을 떠올린다.

“학교 신문사에서 일했던 경험이 특별하죠. 그것이 제겐 특별하고 빡센 동아리 활동이었습니다. 편집장이 되고 신문 만들면서 남들보다 활자를 더 많이 다루게 되었던 게 저한테 한글 멋지음의 방아쇠가 됐던 게 아닌가 싶네요. 공학의 기초학문이 수학이듯 제가 전공한 시각디자인의 밑바탕이 타이포그라피거든요. 사람들은 거의 디자인 바탕이 그림이라고 생각하지, 글자라고 생각하지 않지요. 그런데 제가 대학에서 공부를 하다 보니 디자인의 가장 밑바탕은 그림보다 글자가 더 깊더라고요. 시각 문화가 다 글자에요. 책 디자인, 간판, 웹사이트 등 따져보면 우리 주위의 온갖 게 다 글자입니다. 우리 삶 속에서 글자 빼고 나면 문화가 없는 거죠.”

그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타이포그라피 세계로 “운명처럼” 들어갔다.

“청주는 우리나라 타이포그라피의 시발점입니다. 직지가 바로 그것이죠.” 그에게 타이포그라피는 글자를 멋짓는 일, 즉 글자를 부려서 디자인하는 일이었다. 그는 글자가 문화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라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다.

“문화란 글자로 짓는 집이잖아요. 글씨로, 글로, 글자라는 그릇에 담아내는 것. 글자로 짓는 집이 문명이고....그러니까 글자 이후가 역사고, 글자 이전이 선사잖아요. 글자는 가장 대표적인 미디어인 거죠. ”

파티배곳
파티배곳

 

글자멋짓의 바탕은 ‘한글’ 사랑



안상수의 글자멋짓의 바탕은 한글이다. 그의 한글사랑은 유별나다.

“세종대왕은 엄청난 사람입니다. 600년 전 한글을 만들었잖아요. 글자를 디자인한 거죠.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세계에서 의도적으로 용의주도하게 새로운 글자를 멋지은 예는 한글밖에 없어요. 그래서 한글의 위상이 엄청난 거예요. 한글은 한마디로 ‘위대한 디자인, 큰 멋지음’입니다.”

그는 자신이 아끼고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여기는 우리 글자, 한글이 있기에 모든 일이 가능했고 지속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한글을 하찮게 보는 사회 분위기와 인식이 슬프다고 말했다.

“영어나 외국어를 쓰면 더 멋있다고 생각합니다. 동네에 사진관과 스튜디오가 있으면 스튜디오 사진이 더 좋고 값나가는 사진 같고, 통닭집에서 파는 튀김닭보다 ‘치킨’집 통닭이 더 비쌀 거라는 착각. 이러한 문화사대주의적 생각이 한글의 가치를 스스로 낮추고 있어요.”

그는 자신의 작업을 ‘한글은 아름답다, 한글은 촌스럽지 않다, 한글은 단순히 한민족의 전유물이 아닌 글로벌한 미적 대상이다’라는 것을 말로써가 아니라 멋지음으로, 타이포그라피 작업으로 주장하고 있다고 했다.그는 이 일을 자신의 과업이자 사회적인 소명으로 여긴다. 그리고 파티배곳은 이러한 일을 펼쳐나가는 꿈의 중심이다. 그래서 파티는 설립 때부터 세종 이도,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한힌샘 주시경, 백범 김구, 이상, 다석 유영모를 큰 스승으로 모시고 있다.

파티에서는 다양한 한글사랑 행사를 펼쳤다. 국립한글박물관과 ‘우리, 한글, 멋지음’의 교육프로그램을 했고, 독일 바우하우스 100주년 기념 워크숍에 ‘활자춤’으로 참여하고, ‘시(詩)와 타이포그라피’ 잔치를 열었다. 그리고 그는 베이징 중앙미술학원 객좌교수와 런던 왕립미술학교(RCA) 방문교수로 활동하며 세계속에 한국의 멋짓, 한글의 아름다움을 전했다. 이러한 한글사랑으로 1988년 한글학회로부터 표창도 받았다.

작품 '홀려라'
작품 '홀려라'

 

작가로서 창작에 몰두할 계획



그의 세계는 디자인에만 머물지 않는다. 1980년대부터 그는 작가로서 창작의 길을 걷고 있다. 그동안 이불, 최정화 등과 기획전을 함께 했으며, 2002년 로댕갤러리(리움갤러리 전신)에서 <한.글.상.상>전, 2017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날개.파티> 전 등 대규모의 개인전을 열었다. 또 ‘도쿄 비엔날레’(도쿄, 2021)를 비롯하여 ‘광저우 트리엔날레’(광동미술관, 2023) 등 해외 주요 기획전에도 참여했다.

지난 5월 안상수는 오케이엔피(OKNP) 부산 초대전으로 개인전 <홀려라>전을 열었다. <홀려라>는 말 그대로 무언가에 홀림을 권하는 작가의 제안이 담겨있으며, 홀림의 대상은 읽는 이에 따라 ‘한글’, ‘전통’, ‘조화와 대립’ 등 다양할 수 있다. 이때 선보인 작품들은 2017년부터 지속하고 있는 ‘문자도’ 시리즈의 일환이다. 그의 작품은 한글 닿자와 민화를 조합하여 마치 전통 민화의 문자도처럼 보이지만 뜻도 없고 읽을 수도 없는 일종의 문자추상이라 할 수 있다.

부산 전시에서는 이효리 타투, 황희찬 타투로도 알려져 있는 ‘생명평화무늬’도 전시했다. ‘생명평화무늬’는 도법 스님을 중심으로한 생명평화 운동을 위해 안상수가 제작한 상징이다.

이제 안상수는 인생의 후반기를 창작의 세계에서 살고자 한다. 과거에는 한글을 경외하고 어려워하며 멋짓을 했지만, 이제는 한글을 친구처럼 가까이 하면서 맘껏 가지고 놀고 해체하면서 그림으로 표현하려고 한다. 외로운 창작의 길을 걸으며, 그의 손에서 또 어떤 새로운 영감을 주는 작품이 탄생될까 기대된다.





 

작품 문자도 '한글매화도'
작품 문자도 '한글매화도'

 

안상수는



1952년 충주출생

충주중-청주고 졸업

1970년 홍익대 시각디자인과(응용미술과) 입학

1982년 홍익대 대학원 졸업(석사)

1985년 안그라픽스 설립

1985년 한글꼴 ‘안상수체’ 개발

1988년 독립출판잡지 <보고서보고서> 창간

1991년 홍익대 미술대학 시각디자인과 교수

1996년 한양대 대학원 응용미술학(박사)

1997년 세계그래픽디자인단체협의회 부회장

2001년 영국 런던 킹스턴대학교 명예박사

2012년 서울디자인재단 이사장

2013년 파티(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 날개(교장)

베이징 중앙미술학원 특빙교수

런던 왕립미술학교(RCA) 방문교수

 

생명평화무늬
생명평화무늬

 

주요전시

<한글상상>전 로댕갤러리(2002), 구텐베르크 수상기념전, 독일 라이프치히(2007), <원아이>전 K11 홍콩(2013), <날개.파티>서울시립미술관(2017), <안상수의.삶.글짜. 安尙秀’s.活-字> 타이베이(2018), <홀려라>부산OKNP(2024) 등



수상

Zgraf 국제디자인전 대상(1999), 구텐베르크상(2007), 홍콩디자인센터 평생공로상(2016)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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