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민 청주시 상당구 세무과 주무관

▲ 이경민 청주시 상당구 세무과 주무관

얼마 전, 초등학교에 다니는 딸아이와 함께 책을 읽었다. 학교에서 독서 숙제가 나왔다며 같이 읽자고 들고 온 책 제목은 ‘황희 정승’이었다. 딸은 내용을 보고 나서 “엄마, 청백리가 뭐야?”라고 물었다. 나도 순간 어떻게 설명할까 망설이다가 “욕심 안 부리고, 깨끗하게 일한 옛날 관리야”라고 답했다.
우리는 나란히 앉아 책을 읽어 내려갔다. 황희 정승은 높은 자리에 있었지만, 사적인 재산을 모으지 않고 소박하게 살았다고 한다. 심지어 돌아가신 후엔 가족들이 입힐 옷조차 없었다는 대목에서 딸이 물었다. “그렇게 오래 일했는데 왜 돈을 안 모았어?” 나는 잠시 웃으며 말했다. “그분은 공무를 자기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백성들을 위해 일했기 때문이야. 나라 일을 하는 사람은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고 생각한 거지.”
딸은 한참 생각하다가 내 얼굴을 보며 이렇게 물었다. “엄마도 그런 사람이야?” 그 질문에 나는 잠시 말을 잃었다. 아이는 단순한 마음으로 한 말이었겠지만, 내겐 꽤 큰 울림이었다. 나는 과연 내 자리에서, 내 일에서 청렴한 사람인가?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사람인가?
공무원으로 일한 지 오랜 세월이 흘렀다. 처음 임용됐을 때의 다짐이 아직도 생생하다. 공정하게, 책임감 있게, 국민을 위한 행정을 하겠다고 마음먹었다. 하지만 바쁘고 복잡한 일상에서, 실적과 평가에 신경을 쓰다 보면 그때의 마음이 흐릿해질 때도 있다. 딸과 함께 책을 읽으며, 다시 초심을 떠올리게 됐다. 청렴이라는 건 특별하거나 거창한 게 아니다. 그냥 내 자리에 맞게 욕심내지 않고 묵묵히 일하는 것, 그게 청렴이다.
공직자에게 청렴은 기본이다. 법과 원칙을 지키는 일, 공과 사를 구분하는 자세, 작은 유혹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태도. 이런 것들이 바로 청렴의 시작이다. 지인을 위해 절차를 무시하지 않는 것, 사적인 감정을 일에 끌어들이지 않는 것. 작고 일상적인 실천들이 모여 조직의 신뢰를 만든다.
그리고 신뢰는,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사회를 더 건강하게 만드는 밑바탕이 된다. 우리는 지금 세대만을 위한 행정을 하는 게 아니라, 다음 세대를 위한 기준도 함께 만들 수 있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딸은 이렇게 말했다.
“엄마도 나중에 책에 나오는 사람처럼 좋은 사람이면 좋겠어.”
나는 웃으며 “엄마도 그렇게 살려고 해. 매일 노력 중이야”라고 답했다. 그 짧은 대화는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 어떤 자세로 일해야 하는지를 다시금 떠올리게 했다.
청백리의 정신은 옛날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살아 있어야 하는 가치다. 바르고 정직하게 일하는 것, 국민을 두려워하고 책임을 다하는 자세, 내 가족 앞에서도 떳떳할 수 있는 마음. 이게 바로 공직자가 지켜야 할 청렴이다.
앞으로도 나는 내 자리에서, 내 일 속에서 청렴을 지켜갈 것이다.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엄마이자 국민에게 신뢰받는 공직자가 되기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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