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 청주 대표로 뽑힌 서도화씨
청주 유일 수곡1동 주민센터 주민자치프로그램 ‘성과’
청주시평생학습관 외 문해강좌 수강생 없어 폐지 수순

▲ 2025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 청주 대표로 뽑힌 서도화씨의 작품.
▲ 2025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 청주 대표로 뽑힌 서도화씨의 작품.

‘부모님이 남겨주신 / 내 이름 석자를 못써서 / 매일 남의 손을 빌렸었다 // 공부방에 다니면서 / 다른 건 몰라도 / 내 이름 석자는 쓸 수 있다 // 내 이름은 서도화 / 하늘에 계신 / 아버지 어머니 / 저 이제 제 이름 쓸 수 있어요 // 내 나이 팔십이 다 되어서야 / 내 이름 석자를 씁니다.’ (서도화 작 ‘내 이름 석 자’ 전문)

나는 1944년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에서 태어났다. 낳자마자 세상 떠난 어머니 탓에 젖 한 번 못 먹어 보고 아버지가 씹어서 넘겨주는 밥알을 먹고 자랐다. 걸어 다닐 때쯤 새어머니가 낳은 이복동생들 업어 키우느라 매일 허리가 아파 울었다. 계모가 아버지하고 3남매 데리고 서울로 이사 가는 바람에 천덕꾸러기가 됐고 고모네 머슴 살던 아저씨 소개로 16살에 사직동 사는 목수한테 시집왔다.

19살에 큰딸을 낳았지만 쌀이 없어 사흘 동안 미역국은커녕 첫 국밥도 못먹고 손이 귀한 집안 대를 이어야 해서 딸 넷에 막내로 아들 하나를 더 낳았다.
띄엄띄엄 일거리 들어오는 남편 벌이로는 생계가 어려워 식당 주방일이나 벽돌쌓기 등 잡역에 자리 날 때마다 쫓아다녔다.

 

▲서도화씨
▲서도화씨

그때마다 출근부에 이름 석 자를 기입하라고 하는데 한글 자체를 몰랐다. 되돌아보니 학교는 둘째치고 글씨 한 자 배울 시간이 내 인생에는 없었다.
세월이 흘러 5녀 1남 아이들 다 출가시키고 일흔 살 되던 해 남편도 먼저 보냈다. 손주 보는 재미에 저녁 봉사 해주러 다니던 경로당에 지난해 초 수곡1동 주민센터에서 사람이 나왔고 한글을 가르쳐 줄 테니 오라고 했다. 두 번 생각할 것도 없이 다음날 센터를 찾았고 이제 드디어 그토록 꿈에 그리던 내 이름 석 자를 나이 팔십에 쓸 수 있게 됐다.
 

▲신갑식(왼쪽) 강사가 서도화씨의 한글공부를 도와주고 있다.
▲신갑식(왼쪽) 강사가 서도화씨의 한글공부를 도와주고 있다.

지난 23일 청주시평생학습관은 ‘2025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 출품할 대표 시화작 6편을 시민 투표를 통해 최종 선정 발표했다.

그중 3등 상을 받은 서도화(81)씨의 자서전적 이야기다.

현재 청주에서 운영되고 있는 성인 문해 프로그램은 배움의 기회를 놓친 성인들에게 초등학교 학력 취득의 기회를 제공하는 평생학습관 해봄학교를 비롯, 경로당이나 작은 도서관 등 찾아가는 읍·면·동 프로그램을 제외하면 거의 전무한 상태다.

그나마 평생학습관 주도가 아닌 주민자치프로그램으로 운영되는 실버공부방은 서 씨가 다니고 있는 수곡1동 주민센터가 청주 유일의 공부방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문해프로그램의 인프라 부족이 관의 정책적 지원 부족에서 기인했다기보다는 "아직도 한글을 모르는 사람이 있어?"라는 세간의 인식과 관련, 무학을 수치스럽게 생각해 거부하거나 수강생이 없어 만들어 놓은 프로그램도 폐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18년째 문해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신갑식(64)씨는 “학업을 못한 게 내 잘못은 아닌데 그걸 부끄러워하게 만들고 드러내기를 꺼리는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며 “글을 아는 건 세상을 아는 것과 같다. 현재 함께하고 있는 (수곡1동)11명의 수강생들이 얼마나 즐겁게 배움을 만끽하고 있는가를 그분들에게 보여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 씨는 “기역, 니은, 디귿, 자음 한 글자 한 글자를 알아갈 때마다 너무 기분이 좋아 밤새도록 연필로 덧칠하듯 쓰고 또 쓴 기억이 생생하다”며 “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고 더 바랄 게 없다. 매일이 지금만 같았으면 좋겠다”고 환하게 웃었다. 박현진 문화전문기자 artcb@dy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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